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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58화 (58/202)

# 58화

연수는 애써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셨군요. 길이 엇갈리지 않아 다행입니다.”

“그런데 너, 사문이 어디지?”

“선배님 사정이 있어 사문을 밝히기가 힘듭니다.”

“그래? 정은 아닌 것 같은데···.”

“예. 어찌 그리 생각하셨나요?”

“꼽추를 제자로 받는다는 정파의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어. 그놈들이야 워낙에 자질을 따지니까. 거기다 제법 내력을 쌓은 것 같은데 태양혈은 평평하기 그지없고, 무공을 익힌 흔적이 거의 보이질 않더군. 그런 놈들은 십중팔구 사파 놈들이지.”

“안목이 대단하십니다.”

“게다가 그 변성술. 정파 놈들은 자신을 숨기는 짓을 하지 않아.”

연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말없이 처유희를 바라보는 연수.

“꼽추가 맞긴 한 건가?”

처유희의 눈매가 좁아지며 연수를 노려봤다.

연수는 처유희의 날카로운 눈길을 피하며 주변을 살폈다.

-사정이 있어 변장했습니다.-

-무슨 사정?-

-남궁세가의 소가주의 원한을 조금 샀습니다.-

처유희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최근 남궁진수라는 놈이 눈에 불을 켜고 누굴 찾고 있다 들었는데 그게 너구나!-

-아마도 맞을 겁니다.-

처유희는 즐거운 표정으로 물었다.

-변장은 누구에게 배웠지?-

-사부께 배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변장이라면 몰라도 변성술이라면 나도 꽤 하니까. 제법 나쁘지는 않아.-

연수는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 변장과 변성술은 사부가 제일 자신 있게 전해준 나름의 비전이었다.

사부는 이 두 가지로 위험천만한 위기와 고비를 넘기며 사파행을 했다고 했는데 단번에 꿰뚫어 보는 인물이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군요. 제 변성술이 어설픈가요?-

-딱히. 다만 경험자로서 알 수는 있지. 네 진신 목소리가 아닌 것쯤은.-

연수는 말없이 차를 홀짝였다.

처유희 또한 차를 마시며 말이 없자 답답해지는 건 공숙이었다.

갑자기 연수의 꼽추 등을 따지던 사부와 연수가 말없이 차만 마시고 있으니 두 사람의 침묵에 불안해지는 공숙은 더는 참지 못하고 떠들었다.

“사부님. 연 동생은 착한 사람이에요.”

“나쁜 놈이었으면 벌써 죽였을 거다. 걱정하지 말아라.”

처유희는 공숙의 어깨를 토닥이며 공숙을 달랬다.

“그런데 왜 면도도 안 하고 이 꼴로 다니는 게야?”

“면도해도 또 나잖아요.”

“그래도 여자가 이리 흉한 몰골로 다녀서 되겠느냐?”

“전 이게 편한데요?”

“어휴, 말해 뭐하겠느냐. 소귀에 경 읽기인걸. 되었다. 이제 일어서거라. 돌아가자.”

돌아가자는 말에 공숙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사, 사부님. 조금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될까요?”

“왜 그러느냐?”

“그, 그게···. 연동생이 나쁜 놈들한테 괴롭힘을 당하면···.”

“누가 누굴 걱정하느냐? 하수가 고수 걱정할 시간이 어디 있어!”

“아휴 사부님 연 동생은 고수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저를 누님으로 모시죠.”

답답한 듯 가슴을 치며 항변하는 공숙을 보며 처유희는 공숙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차분히 설명했다.

“저 아이가 마음이 착해 너를 누님으로 모신 것뿐이지 너보다 고수란다.”

사부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수를 보는 공숙.

“연 동생 정말이야?”

“글쎄요. 누님과는 손을 섞어 본 적이 없으니 잘은 모르겠지만 지지 않을 자신은 있죠.”

“그런데 왜 누님이라고 한 거야?”

“그냥 누님 같아서 누님이라고 한 거죠.”

“그래? 사부님 연 동생은 등이 불편한데 어떻게 저보다 고수가 되었을까요?”

목소리를 낮춰 사부에게 속삭이듯 묻는 공숙.

“어허! 다른 무인의 무공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저 아이는 꼽추가 아니다. 변장한 것이야.-

사부의 전음에 눈이 화등잔만 해진 공숙이 연수를 홱 돌아봤다.

처유희가 전음으로 공숙에게 뭐라 하였는지 대충 짐작한 연수가 공숙이 발작하기 전에 전음을 보냈다.

-쫓기는 몸이라 변장하고 있던 거에요. 속인 거 아니니까 화내지 마요.-

“이···! 이!”

-숙누나 전음으로 하세요···.-

“나는 전음 못한다. 이 나쁜 놈아!”

버럭 소리를 지르는 공숙.

연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공숙을 달랬다.

한참을 달래고 칭둥귀와 요리 몇 개를 시켜 주자 겨우 진정이 된 공숙.

“걱정하지 마라. 기막으로 소리는 차단해 두었다.”

처유희의 말에 연수는 그제야 주변에 느껴지는 기감으로 처유희의 기막을 살폈다.

‘이런 응용이 가능하다니···. 기막이라···. 어떻게 하는 거지?’

연수가 신기하게 살펴보자 처유희는 기막을 거두며 쏘아댔다.

“네 사부에게 묻거라.”

“큼큼!”

연수는 처유희의 사제와 거한 식사를 마칠 때까지 딱히 별말을 하지 않았다.

처유희 역시 얼추 의문은 풀렸는지 연수에 대한 호기심을 거둬들여 별말이 없었고, 공숙만 그간 있었던 일들을 사부에게 자랑하듯 떠들 뿐이었다.

“입에 넣은 음식은 다 삼키고 말하거라. 여자가 이래서 어디에 쓰려고.”

꿀꺽 하고 입안 가득한 음식을 삼킨 공숙은 하던 말을 잇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랜 식사가 끝나자 처유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떠날 준비를 하자.”

“하지만 사부님 연 동생이 그 남궁세가 아들놈에게 당하면 어떡해요?”

“남의 은원에는 함부로 끼어드는 게 아니야.”

“그래도···. 연 동생은 남이 아니에요. 저를 누님으로 모셨으니 동생이라고요.”

“숙아, 다른 가문도 아니고 남궁가다. 저 아이도 다 생각이 있으니 일을 벌였겠지.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워낙에 변장술이 뛰어나니 별일이야 없을 게야.”

“정말요?”

“그래. 너는 사부와 약속을 하지 않았느냐? 벌써 잊은 게야?”

“아니요···.”

“사무진독공이 팔 성에 이르기 전에는 다시는 강호에 나서면 안 된다. 알았느냐?”

“예.”

공숙은 별수가 없자 기가 한껏 죽어 연수에게 이별을 고했다.

“연 동생 내가 더는 지켜 줄 수가 없게 되었어. 혹 곤란한 일이 생기면 여진족 땅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언제든지 국경을 넘어 길림으로 와. 구모산을 찾아오면 나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연수는 그동안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막상 공숙이 떠난다니 아쉬웠다.

공숙의 혈독과 무공은 꽤 든든한 힘이 되어 주어 막상 남궁진수와 맞붙는다 해도 공숙과 합공하며 함정을 이용하면 이길지 모른다는 자신감도 붙어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큰 전력이 이탈하게 되자 아쉬운 연수였다.

그 안에는 그동안 나름 정이든 사람과 이별하게 되니 서운한 감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숙누나 걱정하지 말고 가세요. 전에도 말했잖아요. 저희 사문의 비전으로 도망가는 건 자신 있다고.”

“그래! 괜히 고집부리다 죽지 말고 여차하면 도망쳐.”

“예.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사부 따라가서 열심히 배워요. 사부 곁에서 무공배울 때가 제일 좋을 때입니다.”

“그래. 그럼 또 보자. 연 동생.”

공숙은 그렇게 사부 손에 이끌려 북경을 떠났다.

배웅하던 연수를 계속 돌아보며 아쉬운 눈으로 손을 흔들던 공숙이 보이지 않자 나름 섭섭한 감정이 들던 연수는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황궁쪽으로 집중했다.

‘황궁 무고···. 어떤 상승무공이 있을까?’

연수는 더는 황궁의 내부에 관해서 묻고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아 그동안 조사한 바를 종합해서 궁의 내부를 그려봤다.

‘궁 안은 황제가 기거하는 내정으로 가면 경계경비가 삼엄해지고 만약 무고가 내정에 있다면 지금의 나로서는 방법이 없어.’

계속해서 황궁의 전체적인 지형을 그려가는 연수.

‘무고가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외조의 태화전인데···. 밤이 되면 내정보다 경계가 허술하겠지.’

연수는 조사한 바를 토대로 완성한 엉성한 지도에 아는 대로 경비의 수와 경계시간을 적어 보았다.

얼추 그림을 완성한 연수는 준비해놨던 야행복을 꺼냈다.

조금은 낡은 검은색의 무복과 복면.

연수의 사부가 연수가 하산할 때 준비해 주었던 야행복이다.

야행복을 꼽추로 위장한 등에 구겨 넣은 연수는 객잔을 나와 이동했다.

어둠이 내린 밤하늘을 올려다보자 가녀린 초승달이 검은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연수가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가 사라지자 잠시 후 흐릿한 그림자가 은밀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황궁의 높은 성벽을 꿈틀대며 조용히 기어오르던 그림자는 어둠에 몸을 의지해서 황궁에 들어섰다.

기세 좋게 야행복을 차려입고 월담한 연수는 순간 당황했다.

‘어디가 어디인 거야? 뭐가 이렇게 커?’

종이에 긴 직사각형을 그리고 외조와 내정만 나누고 대충의 그림만 그렸던 연수는 실제 황궁의 크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컸다니···.’

정신을 가다듬은 연수는 천천히 주변의 기척을 감지하며 어두운 그림자가 들어선 곳을 몸을 숨기고는 주변의 경비의 수를 감지해 보았다.

‘아직은 들어갈 만하다.’

최대한 어두운 그림자를 찾아 이동하던 연수는 보화전을 찾으며 황궁의 외곽을 따라 움직였다.

멈칫.

암행하던 연수의 기감에 내력이 느껴졌다.

‘무공을 익힌 놈이 벌써 나와?’

몸을 웅크리며 그림자 깊숙이 몸을 숨기고 주변을 살피는 연수.

연수의 시야에 금의위 위사 둘이 들어왔다.

위사들은 경계를 하는 경비들을 살피며 독려하고 있었다.

‘왜 금의위가 경비들까지 신경을 쓰지?’

“동창에서 황궁에 침입하려는 무도한 놈들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한 치의 틈도 없이 경계에 힘써라.”

나직한 목소리로 경비들을 독려하는 금의위 위사의 목소리는 이목공을 운공하던 연수의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내 탓이구만.’

아무래도 무공을 익힌 정체불명의 인물이 황궁의 지리에 대해 캐고 다니다 보니 무공을 익힌 금의위 위사들이 황궁의 경계근무에 투입된 것 같았다.

연수는 더 진입하지 않고 금의위의 위사들이 없는 곳을 살피고 잠행 다니며 최대한 지리를 익히고 경비병들의 수와 근무 시간을 살피고는 해가 뜨기 전 성 밖으로 나왔다.

그날부터 달빛이 밝지 않은 밤마다 황궁을 담을 넘으며 궁내의 지리와 상황을 살피던 연수였다.

몇 달이 지나자 연수의 허술하던 지도는 앞쪽 부분은 나름 자세히 그려져 있었다.

‘얼추 보화전으로 가는 길이 보이네. 문제는 금의위인데, 이놈들은 언제까지 경계를 서려고 그러는지···. 이놈들만 빠지면 보화전까지는 살펴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장장 석 달이 넘도록 달빛이 어두운 날마다 월담을 하며 연수는 기회를 노렸다.

연약한 초승달의 달빛이 검은 밤 구름에 갇혀 칠흑같이 어두운 밤 연수가 기다리던 기회가 찾아왔다.

평소 보화전을 비롯한 내정으로 가는 길목 곳곳을 경계하던 금의위 위사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연수는 숨을 죽이며 조심스럽게 보화전으로 향했다.

보화전으로 가는 길목 곳곳을 일반 병사들이 경계하며 돌아다녔지만, 무공을 익히지 않은 그들 정도는 그럭저럭 따돌릴 수 있는 연수였다.

커다란 보화전의 전각 앞에는 두 명의 병사가 있었는데 굳게 닫힌 입구 앞을 막고 서서 지키고 있어 연수로서도 그들의 이목을 속이고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찌할까 생각하며 어둠에 숨어 지켜 보고 있는데 저 멀리 어린 내관 한 명이 보화전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내관을 향해 돌아가는 두 병사의 시선.

연수는 지금이 바로 도박을 해야 할 때란 생각하고 과감히 움직였다.

천리견보의 경신공을 최대로 운공 하며 두 경비가 서 있는 곳의 천장 대들보로 뛰어올랐다.

연수의 양손에는 긴 대 못이 들려 있었는데 순식간에 대못을 대들보에 박으며 양손으로 못 끝을 붙잡고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밑을 살펴보자 다행히 두 경비와 내관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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