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중년의 고수와 생사결을 벌인지 보름이 더 지났다.
연수의 어깨와 손목은 많이 아물어 제법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만, 연수는 더욱 힘든 상황에 부닥쳐있었다.
‘다른 추적조들이 붙었어. 무림맹인가?’
얼마 전 마주쳤던 가슴에 활이라는 글자를 수놓은 무사들은 실력은 별 볼 일 없었지만, 연수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러왔다.
‘새로운 추적이 얼마나 붙은거지?’
전혀 알수가 없었다.
남궁세가의 추적조가 얼마나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으로서는 무엇하나 짐작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지친 몸을 재촉하며 움직이는데 앞으로 제법 강한 내기가 느껴졌다.
무영심공을 익힌 지 얼마 안 되었지만 기감이 매우 민감해졌다.
연수는 움직임을 멈추고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이목공을 펼쳤다.
“개봉에서 여기까지 보름을 밤낮없이 말을 달려왔더니 겨우 이런 산길이나 지키며 막고 있으라니 이거 너무한 거 아닙니까?”
“입 다물고 있어라. 본타에 있던 승개들도 똑같은 임무를 맡고 고생하고 있어.”
“그래도, 맹에서 저희까지 급파할 정도로···.”
“닥치라고 했다.”
“예···.”
연수는 기척을 죽이며 크게 선회해서 앞에 있는 무인들을 피해 돌아갔다.
‘개방까지 온 건가?’
남궁세가의 소가주라는 직책은 연수의 예상보다 훨씬 큰 존재였다.
무림맹과 소속 문파들이 움직이는 것 또한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연수는 한참을 선회하고는 아직 다 아물지 않아 조심하던 양팔을 땅에 가져다 대며 네발로 뛰기 시작했다.
손목이 욱신거리고 겨우 아물기 시작한 어깨에 상처가 벌어지며 피가 베어 나왔지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한참을 달리는데 앞쪽으로 또 다른 기척들이 느껴져 왔다.
마치 커다란 그물이 조여오는 듯한 압박감에 가슴이 답답해 지는 연수.
‘어떻게 할까? 피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던 연수는 결심했다.
‘이대로는 적들의 의도대로 될 뿐이야.’
자신의 예상 퇴로를 막으며 조여오는 적들의 뜻대로 몰리다가는 언젠가 포위당하는 것밖엔 길이 없다고 생각된 이를 악물고 허리를 펴며 앞으로 달렸다.
세 명의 무사들이 모여 사방을 주시하며 경계하는 곳으로 연수가 튀어나왔다.
-채채챙!
순간 나타난 연수의 모습에 날카로운 금속음을 울리며 검을 뽑아 들고 연수를 겨누며 경계하는 무사들.
검은 무복을 맞춰 입고 삿갓을 눌러 쓴 무사들의 모습에 연수의 입매가 비틀렸다.
‘암검대!’
“호검문? 암검대 맞소?”
연수의 질문에 무사들은 경계를 살짝 풀었다.
“생선은 고양이에게.”
‘암구어 인가?’
“나는 맹에서 나왔소. 목표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놈을 놓쳐 뒤쫓고 있소. 혹시 이쪽으로 지나친 무인은 없었소?”
암구어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고 맹의 이름이 나오자 암검대 세 명의 무사들은 잔뜩 긴장했다.
‘역시. 아직 추적조들끼리의 빈틈이 있다.’
“일단 답어부터 답하시오.”
“흥! 겨우 호검문 따위가···. 내 누군지 알고 있소?”
연수는 한발 한발 암검대의 무사들에게 다가갔다.
서로의 거리가 한 장까지 가까워지자 가운데에 있는 무사가 검을 겨누었다.
“답어를 대지 않는다면 적이오!”
“진 문주가 간이 많이 커진 모양이군.”
순간 흠칫하며 떨리는 암검대 무사들의 어깨.
그 순간 연수의 독침이 날아갔다.
“큭”
“독이다!”
-땅!
오른쪽의 한 무사를 제외하고는 두 무사는 연수의 암습에 당했다.
연수는 앞으로 박차고 나가며 독침을 피한 무사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진화수연참화격!’
요혈만을 노리며 빠르게 상대를 몰아붙이는 강가쾌련창의 절초가 연수의 양손에 들린 단검에서 재현되며 암검대무사에게 퍼부어졌다.
-캉캉! 까까깡! 촥!
암습을 받은 데다가 당황한 암검대의 무사는 결국 모든 초식을 막아내지 못하고 팔목에 일격을 허용하며 검을 놓쳤고 그 순간 연수의 독침이 무사의 가슴에 적중했다.
“읔!”
“지금 너희가 당한 독은 진사독이다. 해독 방법은 나만 알고 있지. 신호를 보내거나 하면 해독법은 물 건너간다.”
연수는 차오르는 숨을 최대한 숨기며 허세를 떨기 위해서 씩 웃었다.
“살고 싶으면 답어를 말해.”
“차라리 죽여라.”
연수는 암검대 무사들의 눈을 보자 협박에 굴할 것 같지 않은 단호함을 볼 수 있었다.
‘쳇!’
“제법 강단은 있구나. 지금부터 운기 하여 독기를 여태혈로 몰아내고 중지 발가락을 자르면 살 수 있을 것이다. 어찌할 거냐?”
연수는 최대한 세 무사의 행동을 주시했다.
그때 한 무사의 손이 품속으로 들어가자 연수는 빠르게 바늘을 쏘아냈다.
“큭!”
“안되지. 주변에 신호를 보내면 내가 곤란해.”
손등에 바늘이 꼽힌 무사는 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이제 둘 남았구나. 너희는 어쩔 거지?”
잠시 눈치를 보던 두 무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연수에게 달려들었다.
연수는 뒤로 물러서지 않고 두 무사의 목을 깔끔하게 베어냈다.
두 무사가 쓰러졌다.
‘죽이지 않았다면 내가 죽었을 거야···.’
세 번째 살인이었다.
애써 마음을 다독이며 스스로 위안을 해 봤지만, 연수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살인에 대한 거부감은 어쩔 수 없이 연수의 마음에 죄책감을 심어주고 있었다.
연수는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앞으로 나갔다.
머지않아 저 시체들이 발견될 것이기에.
한참을 앞으로 나가는데 또 여럿의 내기가 연수의 기감에 잡혔다.
연수는 우회하기보다는 도박하기로 했다.
순간적으로 경공을 펼치며 연수가 나타나자 검을 빼 들고는 경계하는 무사들.
“생선은 고양이에게.”
연수가 암구어를 먼저 내뱉자 덩치가 제일 큰 무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쥐는 호랑이에게.”
검을 빼든 무사들이 안도하며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형장은 어디서 오셨소?”
“급한 임무를 맡고 있어 길게 이야기할 수 없소. 양해 부탁하오.”
대답을 마친 연수는 서둘러 장내를 벗어났다.
“저 양반은 무슨 임무를 맡았길래···.”
“됐어. 우리야 우리가 맡은 임무만 잘 하면 되지.”
떨떠름한 표정의 무사들을 뒤로하고 달려나가는 연수.
‘도대체 포위망을 어디까지 구축한 거야?’
연수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그런 연수의 앞으로 또 다른 무사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연수는 같은 방법을 또 써보기로 하고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돌파해 갔다.
“생선은 고양이에게.”
“쥐는 호랑이에게···. 그런데 처음 보는 얼굴이오?”
“급한 임무를 맡아서 먼저 가 보겠소. 양해를.”
막 몸을 돌리려는데 검을 뽑는 소리가 연수의 발길을 붙들었다.
“저놈이야! 보내면 안 된다!”
연수가 돌아보자 지난번 처음으로 연수의 암수에 적중당했던 무사 중 하나가 끼어 있었다.
다른 무사들 또한 검을 빼 들며 연수를 겨눴다.
“이놈! 내 두고 보자 했지!”
‘재수도 더럽게 없지. 하필!’
연수는 단검을 손에 쥐며 주변을 둘러봤다.
다섯 명의 무사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일류 둘, 이류 셋, 인가?’
“조심해야 하오! 저놈은 독을 쓰오!”
무사의 경고성에 다른 무사들이 잔뜩 경계했다.
경고성을 내뱉은 무사는 어느새 품에서 호각을 꺼내 들고는 힘껏 불었다.
-삐이이익!
‘큭!’
연수는 다급한 마음에 제일 약해 보이는 무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캉!
연수의 일격을 막은 무사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그와 동시에 양옆과 뒤에서 검을 들이밀며 달려드는 무사들.
연수는 뛰어오르며 앞에 무사를 뛰어넘어 무사의 등을 발로 힘껏 찼다.
-퍽!
“큭!”
등을 차인 무사는 피를 토하며 앞으로 밀려났고, 연수의 등을 찌르려던 무사는 검을 거두며 밀려나는 무사의 몸을 붙잡았다.
-까까깡! 깡깡!
연수의 단검이 두 개의 날카롭게 찔러 오는 장검을 쳐냈다.
연수의 손에 들린 단검이 빙글빙글 돌며 두 명의 무사들을 몰아쳤다.
하지만 무사들은 공격보다는 방어에 집중하며 연수의 도주로를 막는 데에 집중했다.
‘이대로는 안 돼.’
연수는 그 자리에서 빙글 돌며 양손의 단검을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회련쾌창격!’
원래는 창을 품으로 끌어들이며 빙글 돌아 주변의 적들에게 날카로운 내기를 발출 하는 초식이었지만 연수의 양손에 들린 단검에서 펼쳐지니 빠른 검기가 연수주위로 흩뿌려지듯 퍼져 나갔다.
순식간에 공허함과 함께 단전이 비는 감각이 강하게 연수를 압박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내력을 아낄 여력이 없었다.
주변의 무사 중 일류 두 명을 빼고는 세 명의 이류 무사들이 연수의 검기에 적중당하며 피를 흩뿌리고 쓰러졌다.
침착하게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검기를 막아내는 일류 무사들.
그러나 연수는 검기를 쏘아내며 단검을 거둬들이고 독침 또한 같이 쏘아 보냈다.
검기를 막은 두 무사는 이어져 날아온 무음의 독침에 적중되고는 크게 뒤로 물러섰다.
“비겁한!”
“이놈!”
연수는 그 두 무사가 물러서며 열린 퇴로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도주하는 연수의 어깨와 등에는 새로 생긴 검상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연수가 회련쾌창격을 펼치는 동안 일류 무사 둘이 가만히 기다려 주지 않았던 것이다.
달리는 연수의 입으로 쉼 없이 피가 토해져 나왔다.
‘내상이 심하구나···.’
달려나가는 연수의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출혈이 워낙 심해서 시야가 흐려질 정도였다.
그런 연수의 앞으로 강한 내기가 느껴졌다.
멈춰선 연수는 단검을 쥐며 눈에 힘을 줬다.
눈앞에 고수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암습을 하려 손목에 숨겨둔 바늘을 더듬었지만 이미 모두 쓰고 남아있는 바늘이 없었다.
‘젠장!’
연수는 아쉬운 대로 독이 묻지 않은 도청용 바늘을 찾아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다 대며 눈에 힘을 주어 상대를 살펴보았다.
여전히 시야가 흐려 상대를 제대로 살피기가 쉽지 않았다.
그저 뚜벅뚜벅 걸어오는 상대의 커다란 덩치가 보일 뿐이었다.
어느새 연수의 지척까지 걸어온 상대.
연수는 손에 힘을 주며 단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이미 한계를 넘어선 몸은 더는 말을 듣지 않았다.
상대의 흐릿한 형체가 양팔을 들어 일장을 내뻗는 듯했다.
‘여기까지구나.’
순간 눈을 감으며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연수.
그런 연수의 몸이 두 팔에 와락 당겨졌다.
“이게, 이게 무슨 꼴이야! 네가···. 네가 암수일살이야? 왜? 왜 네가···.”
어깨를 뜨겁게 적시는 감각과 익숙한 목소리에 긴장이 탁하고 풀렸다.
“소, 소···. 개냐?”
순간적으로 다리의 힘이 풀려 주저앉는 연수를 안아 든 소개.
소개는 연수 등의 혈을 두드리며 지혈하고는 품에서 금창약을 꺼내어 검상을 입은 연수의 온몸에 약을 발랐다.
“하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말도 정말 많지만, 시간이 없다. 꼭 살아야 해. 고연수! 인마! 듣고 있는 거야? 죽으면 진짜 가만 안 둔다 너! 꼭 살아남아야 한다고!”
“알았어, 인마. 귀청 떨어지겠다.”
힘없이 웃으며 너스레를 떠는 연수를 잠시 바라본 소개는 이를 악물었다.
땅에 떨어진 연수의 단검을 손에 쥐고는 다른 방향으로 경공을 펼치며 달려나가는 소개.
잠시 후 먼 곳에서 호각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소개가 추적을 교란하려 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