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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71화 (71/202)

# 71화

새벽부터 눈을 뜬 연수는 일찍부터 공숙과 떠날 준비를 했다.

아침 탕약을 준비하던 늙은 의원이 떠나려는 연수를 보고는 말을 붙여왔다.

“떠나십니까?”

“예. 갈 길이 멀어서요.”

“깨어나는 건 확인하고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러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네요.”

“예. 그럼 어쩔 수 없지요.”

막 연수가 마루에서 자리를 일으키려는데 방안에서 무사의 갈라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울···. 물 좀···. 주시오···.”

의원은 환자의 목소리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깨어났군! 정신이 좀 드시오?”

“물을 좀···. 주시오···.”

의원은 대접에 받아놓은 물을 들고 환자의 목을 받쳐주었다.

물 한 대접을 천천히 들이킨 무사는 숨을 몰아쉬며 의원을 보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중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던 당신을 저분이 살렸소.”

의원은 열린 문밖으로 연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무사는 힘겹게 몸을 세우며 문밖 연수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저으며 방으로 들어서는 연수.

“정신이 드오?”

“고맙습니다. 대협의 은혜로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그게···. 적을 만나 격전을 치르다 보니···.”

그때 공숙이 안으로 들어서며 막 입을 달싹였다.

“전···!”

-전극공합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다급한 연수의 전음에 공숙은 그대로 입을 벌린채 의아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무사의 눈길을 피했다.

시선을 돌리며 딴청만 피우는 공숙.

“적들의 수가 많았나 보군요?”

“예? 아, 예···. 혹시 저 말고 다른 사람들은···.”

“생존자는 없었습니다. 대체 어떤 놈들이길래 무림맹의 무사들을 몰살시킨 겁니까? 역시 사황성인가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모두 얼굴을 가린 놈들이었습니다.”

잠시 멈칫 하더니 따뜻한 미소를 짓는 연수.

“그렇군요. 어쨌든 이리 목숨을 구해서 다행입니다. 저희는 갈 길이 멀어서 아쉽지만 이만 떠나야 합니다.”

“대협의 은혜는 언젠가 꼭 갚겠습니다.”

막 몸을 세우며 절을 하려는 무사의 어깨를 부드럽게 누르며 연수가 고개를 저었다.

“무리하지 마시오. 그럼 이만···.”

“대협! 성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전···. 고무영이오.”

말을 마친 연수는 방을 나서 작은 의원을 벗어났다.

공숙이 서둘러 따라붙으며 물었다.

“전극공합 이야기는 왜 안 물어본 거야?”

“아마 전극공합이라는 게 밖으로 새면 안 될 이야기인 것 같아서요. 저 무사도 자신이 그 이야기를 한 걸 인지 하

지 못한 것 같아요. 게다가 거짓말까지 하는 걸 보니 밖으로 알려지면 곤란한 이야기 같더라고요.”

“무슨 대단한 보물 같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곳까지 오면서 진을 치고 있던 놈들의 분위기로 보아서 대단한 물건임에 틀림없어 보여요.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숙이 짓궂은 표정으로 물었다.

“훔치고 싶지 않아?”

“저는 무슨 도벽이 있는 도둑질에 환장한 놈이 아니에요. 게다가 누울 자리 보고 다리를 뻗으라고 했어요. 지금은 도둑질···. 큼큼! 투행보다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요.”

“그렇구나. 난 또 막 훔치자고 할 줄 알았는데.”

“뭔지도 모르는 걸 왜 훔칩니까?”

“알면? 알면 훔치고?”

“알아도 안 훔쳐요.”

“왜?”

“모르긴 몰라도 전극공합이라는거 여러 사람 잡겠더라고요. 그런 물건에 휘말려 생목숨 날릴 생각 없어요.”

“에이, 시시하게.”

“누이는 어째 제가 뭔가를 훔쳤으면 하는 눈치네요.”

“그건 아닌데, 그냥 궁금해서.”

연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경공을 펼쳤다.

“같이 가!”

공숙이 연수 뒤를 바짝 쫓으며 달려왔다.

바삐 재촉하며 이동한 둘은 열흘 만에 무채 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말 살 수 있겠다.”

“예. 말부터 구해야겠어요.”

“이제 발바닥 아프게 안 움직여도 된다!”

연수는 피식 웃으며 공숙을 봤다.

아이처럼 다리를 주무르며 신이 난 공숙.

“그렇게 좋아요?”

“그럼! 그동안 발바닥 불나도록 뛰어다녀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엄살은, 그럼 빨리 말부터 구해요.”

조그마한 마 시장으로 들어선 둘.

“나는 저거!”

공숙은 하얀 털이 우아한 백마를 보고 눈을 반짝였다.

“저는 저 녀석이 마음에 드네요.”

연수가 고른 녀석은 흑갈색의 덩치가 제법 큰 말이었다.

흥정 없이 값을 치르고, 둘은 말을 올라타며 근처 객잔을 찾았다.

“오늘은 일찍 쉬고 내일 일찍 길을 떠나요.”

“응.”

적당히 식사를 끝내고 서로의 방으로 들어가 일찍부터 잠자리에 드는 둘.

물론 연수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명상을 시작했다.

늪 속에서 깨달음을 얻은 이후부터는 이렇게 집중해서 심상 수련을 하는 것에 재미를 붙인 연수였다.

심상 속에서 가상의 적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초식의 수련을 하기도 했다.

자정이 한참을 넘어서야 누워서 잠자리에 든 연수.

이른 새벽에 눈을 뜨자 아니나 다를까 공숙이 눈을 비비며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에휴.”

둘은 운기조식을 서둘러 마치고는 해가 뜨자 식사를 서둘러 끝내고 말에 올라탔다.

“서호까지 얼마나 걸릴까?”

“한 보름이면 갈 거예요.”

“그래? 꽤 걸리네.”

“이제부터는 큰 관도로 달릴 테니까 답답하지는 않을 거예요.”

“진짜?”

“예. 그게 편해요.”

말을 마친 연수는 말을 몰며 달렸다.

보름간 여유롭게 말을 달리며 서호에 도착한 연수와 공숙.

“스읍 하~”

코로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숨을 뱉는 연수의 표정이 아련해졌다.

“기분 좋아 보인다?”

“좋죠.”

“친구 만날 생각에?”

“예!”

지금도 자신의 단검을 들고 망설임 없이 뛰어가던 소개의 뒷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런데 어떻게 불러? 정파인이라며?

-아! 그것도 그렇네요.

예전 같았으면 그냥 서호 분타로 가서 소개를 찾으면 되었겠지만, 지금은 아무리 변장을 했어도 함부로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서호의 개방 분타로 달려가 목놓아 소개를 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음에 마음이 답답해지는 연수.

‘여기까지 왔는데···.’

-일단은 서호 분타 근처에서 기다려 보죠.

-무작정?

-예···.

“아휴.”

“일단은 객잔부터 잡을까요?”

“그래.”

서호의 중심거리에서 벗어나 한적한 객잔을 잡은 둘은 식사를 마치고 서호의 개방분타 근처 주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언제까지 기다리려고?

-그놈이 승개라서 자주 나다닐 거에요.

-그래? 승개는 뭔데?

-개방의 금수저라고 생각하면 돼요.

“푸하하하”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는 공숙 때문에 연수는 주변을 살피고는 말을 이었다.

-웃기긴 하죠.

-금수저를 입에문 거지?

-예.

며칠을 같은 주루를 들러 자리를 지키자 좀이 쑤셨던 공숙이 볼멘 전음을 보내왔다.

-맨날 이러고 있을 거야? 뱃놀이 가자. 약속했잖아.

-그렇기는 한데 일단 친구 놈 얼굴은 보고요.

볼을 부풀리던 공숙은 아미를 찡그리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옷 사 입고 올게.

-오, 옷이요?

-응 약속했으니까. 면사도 그만할 거야.

-그러지 말고 며칠만 더···. 아닙니다. 그렇게 하세요.

-정말이지? 갔다 온다.

‘후우 저 정도 참았으면 오래 참았지.’

한숨을 삼키는 연수의 기감으로 제법 강력한 기운이 들어왔다.

‘응?’

자연스레 시선을 돌리는 연수.

주루로 들어서는 도를 찬 무사를 보는 연수의 눈이 커졌다.

‘저놈이 서호에 있었나? 근데 이 주루에는 왜?’

연수가 개방의 서호 분타 길목을 살피고 있는 이 주루는 허름하여 오대세가의 소가주가 올 만한 주루는 아니었다.

‘가는 곳마다 왜 이래? 마가 꼈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저놈은 남궁진수와 죽마고우였다.

자신의 정체를 알면 죽자 살자 덤벼들 것이 분명했다.

이미 남궁세가와 돌이킬 수 없는 철천지원수가 되었는데 굳이 하북 팽가와 또 원한의 고리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놈은 본타를 갔나? 어디 있는 거야···.’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연수는 몸을 흠칫 떨며 그대로 굳어졌다.

무거운 기세.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조차 허용치 않겠다는 듯 연수의 온몸을 무겁게 짓누르는 기세였다.

이런 경험은 어려서 무황의 살기를 정면으로 받아 내상을 입은 후로는 처음이었다.

“긴장하지 말고 앉아.”

순간 무겁게 짓누르던 기세가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다.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시선을 들어 상대를 바라보는 연수의 동공이 흔들렸다.

“큼큼! 처음 뵈오만 뉘신지···.”

연수의 앞에 앉은 젊은이는 고개를 흔들며 손에 들고 있는 술병을 들어 빈 찻잔에 따랐다.

“내가 기억력이 좋아.”

“글쎄···. 나는 기억이 없는데···. 젊은 청년이···.”

“거기까지. 귀엽게 봐주는 건 딱 거기까지야.”

“하하···. 하···. 제가 농담이 심했죠?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르신.”

“됐고. 그냥 지나치려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말이지.”

“하문하시지요.”

“어디서 났지? 무영심공.”

연수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경계의 자세를 취했다.

“지난번에도 들었던 의문입니다만 제 사문의 무공을 잘 아시는군요.”

“잘 알지. 그 무공의 시작이 사황성이었니까.”

“대영심공까지 아니었습니까?”

“무영심공 없이 대영심공이 있을까 봐? 잘 알고 있을 텐데.”

“그, 그렇긴 하죠. 연이 닿아 배웠습니다.”

젊은 청년의 시선이 연수의 눈에 닿았다.

“네놈 사문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만 도둑질당하고 세상에 기분 좋은 사람은 없는 법이야. 대영심공과 무영심공은 달라.”

“사황성의 담을 넘은 적은 없습니다.”

“말···. 안 할 거야?”

서서히 조여오는 무거운 기세.

“후후, 안 하기는요. 이제부터 소상히 설명해 드리려 했습니다. 그러니 이 사나운 기세는 넣어 두셔도 됩니다.”

연수의 넉살에 젊은 청년은 피식 웃었다.

“말해봐.”

“황궁 무고에서 발견했습니다. 제 예상입니다만 아마 동창에서는 대영심공과 무영심공을 수련하는 것 같더군요.”

“동창?”

“예. 황궁 주변을 얼쩡거리다가 동창에 잠시 쫓긴 적이 있었는데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렇다는 말이지.”

연수는 잠시 청년의 눈치를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 변장이 이렇게 금세 탈 날만큼 허접한가요?”

“나 사황성주 패천후야.”

“알죠.”

“우리 쪽에도 변성술이나 변장에 능한 놈들이 많다 보니. 그리고 네놈같은 기운은 잊히지 않아. 제일 경계하는 기운이거든. 은밀한 기운들.”

“그렇군요.”

“그나저나 놀라운 성장이야.”

“이래저래 사선을 넘다 보니 쑥쑥 크네요.”

패천후는 찻잔 가득 따른 술을 한 번에 들이키고는 연수를 보았다.

“너.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 없지?”

“아무렴요.”

“후우···. 하나 더 묻자.”

“하문하시죠.”

“만약 정사 대전이 일어나면 사파인으로서 참전할 거냐?”

“아니요.”

숨도 마시지 않고 대답하는 연수.

“참···. 안타깝네. 어떻게 잠시도 망설이지를 않고 즉답하냐?”

“그랬나요?”

“높은 자리 줘도 안 할 거지?”

“그렇고 말고요.”

“얄미운 놈.”

“그런데···. 정사 대전 일어납니까?”

“글쎄. 어쩌면 그럴걸?”

“많이 죽을걸요?”

“그렇겠지.”

“어쩌면 사파는 지옥 같은 매일을 살아야 할지도 몰라요.”

“왜? 사파가 질까 봐?”

“아무래도 그렇겠죠.”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저 같은 놈이 많으니까요. 사파는.”

“후우. 그렇지. 참 골 아프단 말이지. 사파 놈들은.”

“그런데 괜찮습니까? 안쪽에 하북 팽가 아들놈도 있던데···. 구면이시잖아요?”

“걱정 안 해도 돼.”

“하나 더 물어도 될까요?”

“어.”

연수는 조금 더 쌀쌀맞아진 패천후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뗐다.

“전극공합이라는거 뭡니까?”

패천후의 눈매가 날카로워지며 연수를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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