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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74화 (74/202)

# 74화

공숙의 양어깨를 붙잡고 전음을 보내는 연수.

-여기서는 안 돼요.

-말리지 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놈들이 내일의 해를 볼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공숙이 길게 찢어지며 날카로워진 눈동자로 연수를 올려다보았다.

-누이의 모습은 특징이 강해요. 이런 사람들 많은 곳에서 노출되면 안 됩니다.

-정말 저놈들이 내일 해를 못 보는 거지?

“약속할게요.”

연수의 말에 한숨을 푹 쉬며 눈을 감는 공숙.

잠시 후 떠진 공숙의 눈은 평상시처럼 돌아왔다.

잠시 무사 무리를 노려본 공숙은 걸음을 옮겼다.

그날 저녁.

말을 타고 관도를 달리는 남궁세가의 일곱 무사 뒤를 검은 인영 둘이 따라붙었다.

-지금 치자

-조금 더요. 조금만 더 가면 숲을 끼고 관도가 돌아 나 있는 곳이 나와요.

머지않아 연수가 말한 숲이 나오고 숲을 관도가 크게 우회하며 휘어져 있었다.

말들의 속도를 줄이며 속보로 말을 모는 무사들.

-저 중 원수는 누구예요?

-둘. 키가 작은놈과 수염이 짧은 놈.

-나머지는 제가 맡을게요.

-응.

무사들의 말이 꺾인 관도로 진입하는 순간 무사들을 향해 바늘이 날아들었다.

-따따따따따땅!

날아오는 바늘들을 순간적으로 검을 뽑아 쳐내는 무사들.

말 등을 차고 오르며 땅으로 내려선 무사들은 재빠르게 서로의 등을 지키며 원 진을 이루고 주변을 경계했다.

“감히 누가 남궁세가를 암습 하느냐?!”

“썩어도 남궁세가라 이건가? 제법 하네.”

숲의 어두운 그림자를 뚫고 걸어오는 야행복 차림의 두 인영을 보는 남궁세가 무사들의 표정에 경계심이 서렸다.

남궁세가임을 알고도 공격하고 심지어 일곱을 상대로 둘이 다가온다는 것은 자신들을 이길 자신이 있거나 미쳤거나 둘 중 하나였다.

무사 중 키가 작고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무사가 외쳤다.

“제형진을 펼쳐! 방심 하지 마라.”

연수는 눈에 익은 검진을 보며 볼을 씰룩였다.

-먼저 갔다 올게요.

전에 흡성신공의 고수가 저 검진과 남궁진수의 합격에 고전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빠르게 달려드는 연수.

그런 연수를 포위하듯 움직이는 진.

주변을 모두 포위당하는 순간 연수는 자신의 앞에 있던 무사와 거리를 모두 좁혔고, 그 순간 연수의 손이 그어지자 날카로운 검기가 지척의 거리에서 무사를 향해 날아갔다.

“핫!”

무사가 기합과 함께 검을 내지르는 순간 일곱 무사의 기운이 요동을 쳤다.

날아오는 검기를 가볍게 검을 휘둘러 베어내는 무사.

일곱의 무사가 연수를 압박하며 검을 휘둘러 오자 연수는 엄청난 기세가 온몸을 조여오는 듯한 감각에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느낌이었군. 단순 합격진이 아니었어. 이러니 흡성신공의 고수도 고전했지.’

연수의 양손에 단검이 들리자 연수의 몸이 흐려지는 듯한 착각이 일어났다.

-채채챙!

순식간에 자신의 요혈을 노리는 검 세 개를 쳐 내고는 움직이는 연수.

내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며 발끝에 힘을 주자 연수의 신형이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무사들을 스쳐 지나갔다.

한순간에 일곱 무사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광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멈춰진 시간 속에 유유히 홀로 움직이는 듯한 모습.

일곱의 무사를 스쳐 지나간 연수의 양손에 들린 단검이 어느새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목줄기로 피 분수를 뿜으며 쓰러지는 다섯 무사.

다섯 명의 무사가 쓰러지자 연수를 압박하던 기운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흐려졌다.

다섯 명의 무사가 순식간에 쓰러져 버리자 당황하여 동공이 흔들리는 두 무사.

둘은 순간 눈을 맞추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렸다.

“어딜!”

공숙의 손에서 풀려나온 채찍이 달아나는 젊은 무사의 목을 휘감고 잡아당겼다. 그대로 공숙의 채찍에 끌려가는 무사.

한 손에 채찍으로 무사의 목을 옥죄고 반대로 뛰어가던 무사를 뒤쫓는 공숙.

채찍에 목을 잡혀 질질 끌려가는 무사는 두 손으로 채찍을 풀어보려 몸부림을 쳐 보았지만, 채찍은 전혀 풀리질 않아 질질 끌려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순식간에 키가 작은 무사의 뒤를 따라잡은 공숙은 무사의 등에 그대로 일장을 날렸다.

-펑!

“크헉!”

등에 일장을 맞자 그대로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지며 바닥을 구르는 무사.

“쿨럭, 도대체 누구냐? 누구길래 우리 남ㄱ···! 넌!!”

피를 토하며 말하던 무사는 얼굴을 다 가리고 두 눈만 내놓은 공숙의 눈을 확인하고는 놀라 말문이 막혔다.

공숙은 복면을 밑으로 잡아 내리며 입을 열었다.

“기억하겠지. 내 사부를 죽이던 그 날을.”

“그, 그건···.”

“됐어. 변명 따위 안 들어도 돼. 왜 죽는지 알았으면 죽어.”

공숙의 손끝에서 검붉은 기운이 무사의 가슴으로 날아가 적중되었다.

무사는 뭐라 말을 하려다가 얼굴로 검은 핏줄기가 올라오며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말도 할 수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을 거야. 죽음이 찾아오는 삼일의 시간 동안. 아, 이 말도 못 듣겠구나.”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붙잡은 무사의 두 손으로 머리 가죽이 뜯겨 나오며 피가 흘러내렸다.

목을 채찍에 붙잡힌 채로 그 광경을 바라보는 마지막 남은 무사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제, 제발···.”

돌아서는 공숙의 눈을 본 무사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타고나길 그리 타고났으니 서로 목숨을 노릴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내 사부에게 지인을 배신하게 하고 거짓말을 했어. 사부의 목이 떨어지는 그 순간의 그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해.”

“그건 소가주가···.”

“그놈은 이미 죽었으니. 너도 죽어.”

무사의 단전으로 날아드는 검붉은 기운.

두 무사가 고통에 몸부림을 치며 바닥을 구르는 모습을 뒤로하고 공숙과 연수는 숲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섯 남았네요.”

“응. 이제 다섯 놈. 다 죽여서 사부의 영전에 절을 올릴 거야.”

“예···.”

다음날 새벽 두 사람은 평범한 모습으로 해가 뜨기 전부터 일찍 길을 나섰다.

두 사람이 구룡산을 오르는 해가 중천에 뜬 그 시각.

남궁세가는 뒤집혀 있었다.

전서구를 통해 전해진 창궁검대의 무사 일곱이 객사했다.

다른 무인들도 아니고 창궁검대였다.

남궁세가의 얼굴이자 상징인 창궁검대가 습격받아 길 위에서 죽었다는 것은 몇 년 전 소가주가 암살된 이후 최대의 충격적인 일이었다.

가주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흉수를 찾아내라 노발대발했고.

며칠 후 무사들의 시신을 인도받은 남궁세가는 다시 한번 뒤집혔다.

다섯 명의 무사의 목에 난 검상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에.

“암수일살!!!!!!!!!”

가주의 원한 서린 외침이 안휘의 하늘에 메아리쳤다.

이후 강호에는 암수일살이 남궁세가를 노린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남궁세가의 무사들은 경계 어린 표정으로 몰려다니며 이 소문을 확신시켰다.

구룡산을 오르는 공숙은 불만 어린 얼굴로 투덜거렸다.

“경공으로 빨리 가면 안 돼?”

“아직은 안 돼요. 초입에는 약초꾼들도 간혹 있어요. 인적이 드문 곳까지는 평범하게 걸어야 해요.”

“아휴, 너는 너무 조심성이 많아.”

“아시잖아요. 저희는 그래야 오래 살아요.”

“...”

한참 산을 오르자 산세가 험해지며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제대로 산길이 나 있지 않은 곳이 나왔고, 둘은 경공을 펼치며 날듯이 산을 올랐다.

“여기에요!”

멀리 보이는 절벽 밑에 초옥을 가리키며  흥분한 연수의 모습에 공숙이 웃었다.

“드디어 네 사부님을 뵙는구나.”

“예! 빨리 오세요.”

달려나가는 연수의 등을 보며 아련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공숙.

그러기도 잠시 연수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연수와 가까워질수록 공숙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감각을 느꼈다.

신이 나서 뛰어가다 우뚝 멈춰선 연수의 등에서 불안감이 느껴지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흉흉한 살기가 흘러져 나와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왜···.”

연수의 등에 가려 보이지 않던 앞을 몸을 틀어 바라본 공숙은 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사방에 핏자국과 박살이 나 있는 집안 풍경은 흉흉한 분위기를 그대로 풍겨내고 있었다.

“연수야···.”

말없이 쓰러져 있는 싸리 담벼락을 밟고 안으로 들어가는 연수.

연수는 바닥에 나 있는 핏자국들과 집안 곳곳에 남아있는 격전의 흔적을 살폈다.

잠시 후 연수는 경공을 극한으로 발휘하며 점이 되어 초옥에서 멀어져 갔다.

공숙만이 말없이 그런 연수의 뒤를 따랐다.

한참을 달려나가자 저 멀리 절벽 끝에 초옥이 보였다. 그대로 담을 뛰어넘으며 마당에 떨어져 내리는 연수.

그 뒤를 공숙이 따라 내려섰다.

초옥의 안에서 사람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자 연수는 불안한 얼굴로 초옥의 문을 벌컥 열고 안을 살폈다.

오래도록 쌓인 먼지와 집기들로 보아 무황이 집을 비운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노야께서 사부와 같이 계신다면 분명 무사하실 거야. 분명!’

“연수야···.”

걱정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공숙의 목소리에 연수는 고개를 돌리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대단한 고수분이 사부의 곁을 지키고 계세요. 분명 멀쩡하실 거에요. 분명히.”

마치 기도를 하듯 말하는 연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공숙.

“그래···.”

잠시간 집안을 더 살피던 연수는 마당으로 나오며 이를 악물었다.

후회되었다.

강진령의 집안에는 가전 창법 하나 훔쳐보겠다고 일 년의 잠복을 했었는데 하필 왜 추적술은 배워 놓지 않았을까?

생사의 고비를 넘을 때도 뼈저리게 후회를 해 놓고, 그 후로 몇 년의 시간 동안 왜 추적술을 배워 놓지 않았을까?

배우려고 하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었다.

오만과 자만.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찾아온 깨달음과 무영심공의 확신으로 인한 무인의 자만심이었다.

추적술은 하찮은 하류기술 따위라고 마음속에서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추적술만 잘 배워 놓았으면 상황을 더 잘 읽고 사부의 뒤를 쫓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적어도 사부의 생사는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괴로웠다.

답답한 마음에 터덜터덜 걷는 연수.

그런 연수의 뒤를 묵묵히 따르는 공숙.

무황과 비무 지도를 받던 공터가 나타나자 주변을 둘러보는 연수의 얼굴에 짙은 그리움이 떠올랐다.

“하아.”

가슴 깊은 곳에서 절로 한숨이 나오는 연수.

“무사 하실 거야. 걱정되겠지만 믿어야지.”

“알아요. 근데 마음이 진정이 안 되네요.”

“...”

한동안 구룡산을 배회하던 연수는 해가 질 무렵이 되자 마을로 내려왔다.

작은 마을에 몇 없는 허름한 객잔에 방을 잡은 연수.

‘그러고 보니 이 마을에서 처음으로 무인으로서 싸움했었지.’

흑돈을 때려잡은 날을 떠올리자 지난 시간이 다시 한번 아득히 느껴지는 연수였다.

공숙과 허름한 객잔에서 독주를 시켜 놓고 술을 마시는 연수.

“음식도 좀 먹어.”

“예.”

말과는 달리 술잔만 비우는 연수.

공숙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 어렸다.

한참을 술에 취해가고 있는데 허름한 객잔 안으로 도사들의 무리가 한기를 풍기며 들어섰다.

다섯 명의 도사들의 도복 위로 먼지가 쌓인 것이 오래도록 쉬지 않고 바람을 맞으며 다닌 듯했다.

날카롭게 날 선 검을 보는 듯한 기세.

도사들의 날카로운 기세가 객잔 안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연수의 반쯤 풀린 눈에 그 도사 일행이 들어오자 연수의 눈썹이 실룩였다.

‘곤륜파?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여기까지 기어왔대?’

“쳇!”

“왜 그래?”

“그냥 기분이 안 좋아서요.”

“그만 마시고 올라가자.”

공숙이 팔을 잡아끌자 몸을 일으키던 연수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 구룡산은 확실히 떠난 것 같습니다. 돌아온 흔적은 없어요. 아무래도 세외로 몸을 피한 게 아닐까 합니다.”

“흥! 그 정체불명의 고수만 아니어도 그날 쳐죽일 수 있었을 것을.”

여기까지 들은 연수는 다시 앉아 술잔을 채우며 탁자 밑으로 내린 손끝으로 주정을 몰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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