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이목공을 더욱 끌어 올리자 도사들의 대화 내용이 더 확실히 들려왔다.
“사형. 그 정체불명의 고수 말입니다만···.”
“그 이야기는 장문인께 전했다. 장수무투와 관련 있는 자이니 아무래도 걱정이 됩니다. 그 기운은···.”
“그래. 장문인께서도 그런 우려 때문에 모든 장로를 하산시켜 속가들의 협조까지 구하고 있어.”
“사형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희의 비전을 도둑맞은 걸까요?”
“자네 생각은 어떤데?”
“제 생각으로는···. 아무리 비전을 훔쳐갔다 해도 그 정도의 무위는···.”
“나도 자네와 생각이 비슷하네. 나도 자네도 우리 곤륜의 장로들은 대부분 나름의 비전들을 익히고 있네. 그런데 그 고수보다 강한 고수는···.”
“장문인이라면!”
긴 수염과 날카로운 눈매가 고집스러워 보이는 도사는 고개를 저었다.
“장문인께서는 그자가 초절정 이상의 고수라고 확신하셨다.”
“초, 초절정이라니요? 그날 검강은 보지 못했습니다.”
“살수를 피한 것일 뿐. 그의 무위는 우리와는 또 다른 경지라는 거 자네도 느끼지 않았나?”
“그렇지만···.”
“알아. 그러니 찾아야 하네. 찾아서 죽이든 살리든 내막을 알아야 해. 무슨 짓을 하든 찾을 생각을 하게.”
연수는 거기까지 듣고는 공숙과 방으로 올라왔다.
연수의 방으로 들어선 공숙이 전음을 보내왔다.
-사부와 관련된 도사들이 맞는 거지.
연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창을 열어 밖을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저자들에게 사부가 발각되어 도주한 것 같아요. 다행스럽게도 무사하신 모양입니다.
-그래? 그런데 어디로 가셨을까?
-모르겠어요. 하오문을 찾아야겠습니다.
-그 치들은 또 왜?
-장수무투에 대한 소문을 알아봐야 해요.
-사부의 별호가 장수무투야?
-네.
-그랬구나. 어쩐지···. 그럼 사부와 같이 있다는 고수는?
-절대 비밀이에요. 아무리 누이라도 말해 드릴 수 없어요.
-알겠어. 그렇다면야. 그럼 저 도사들은 어찌할 거야.
-그냥 둬야지 어쩌겠어요. 느끼셨겠지만 저 다섯을 상대로 저희 둘로는 승패를 장담할 수 없어요. 무엇보다 저들에게는···.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어요.
-왜?
연수는 잠시 인상을 구기고 생각을 하고는 전음을 보냈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요. 그냥 거기까지만 알고 따라 주세요.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알겠어.
-내일부터 바빠질 것 같아요.
-응. 일단 오늘은 푹 쉬어.
공숙은 몸을 돌리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사부님. 제발 무사해 주세요.’
열린 창문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는 연수의 표정이 심란해 보였다.
다음날이 되자 연수와 공숙은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길을 떠났다.
지금 머무는 마을은 너무 작아서 하오문은 고사하고 변변한 주루조차 없는 작은 마을이었기에 조금 더 큰 마을로 가서 하오문을 찾을 요량이었다.
“큰 마을로 가서 말도 구해요.”
“응! 저기···.”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주저하는 공숙.
“알아요. 멋진 백마로 구해줄게요.”
“응! 고마워!”
며칠을 경공을 발휘하여 도시에 도착한 둘.
먼지를 꽤 뒤집어써 평범하게 변장한 모습이 더 빛을 발했다.
큰 마을로 들어온 연수는 객잔을 잡고는 새로운 변장을 시작했다.
“또 변장해?”
“하오문에는 속을 알 수 없는 놈들이 많아요. 앞으로 쓸 일이 많은 모습을 보여줄 순 없어요.”
“그렇구나.”
염소수염에 비굴해 보이는 인상의 중년인으로 변장한 연수.
“그런데 그 풀로 눈매를 자꾸 그렇게 잡아당기면 나중에 문제 생기는 거 아니야?”
“글쎄요? 누이도 눈매를 처지게 붙여놨으니···. 또 모르죠. 진짜 처진 눈으로 변할지.”
“치.”
연수의 농담에 공숙이 잠시 화난 눈치를 보이다가는 피식 웃어버렸다. 이제야 평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이는 공숙이었다.
하오문을 찾은 연수는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어렵지 않게 정보를 파는 놈과 대면할 수 있었다.
“원하는 정보가 무엇이오?”
제법 젊어 보이는 청년이 나와 물었지만, 연수는 방심하지 않았다.
“장수무투에 대한 정보. 혹여 요즘 소문이라던가 위치라던가.”
“음···. 장수무투라. 그 늙은이에 대한 정보라면 딱히 없는데. 기본적인 것 외에는 최근에 들어온 정보는 없소. 확인되지 않은 소문은 있지만.”
“그 소문이 어떤 거요?”
손을 내밀며 손가락 두 개를 펴는 청년.
“은자 두 냥 주시고.”
“내가 아는 소문이면 어쩌려고?”
“그러면 한 냥은 돌려주겠소.”
연수는 피식 웃으며 은자 한 냥을 청년에게 던졌다.
청년 역시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최근 장수무투가 곤륜의 도사들에게 쫓겨 세외로 도망쳤다는 소문이 돌고 있소. 장수무투가 곤륜의 비전을 훔쳐 달아났다 하오.”
“그게 다오?”
“그 외에는 뭐 초절정 고수가 장수무투를 호위한다느니 장수무투의 무위가 절정에 달했다느니 하는 믿을 수 없는 풍문도 들려오고 있소.”
“그렇군.”
“그런데 장수무투에 대한 정보는 왜 필요하오?”
연수는 잠시 청년의 눈을 노려보다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그 소문을 먼저 들었거든. 곤륜의 비전이라면···. 나눠 쓰면 더 좋지 않겠소?”
“그렇군요. 그럼 다른 정보는 필요 없소?”
“정보는 되었고. 혹여 추적술에 능한 자가 있소?”
“있기는 하오만 왜 그러시오?”
“그 추적술 좀 배울 수 있을까 해서.”
“하하하”
청년은 대소를 터트렸다.
“직접 추적해 보려 하시오?”
“뭐 그냥.”
“추적술은 배우기가 매우 까다롭소. 많은 무인이 잡기 취급하며 하찮게 보지만 생각만큼 쉬운 기술이 아니란 말이지.”
“됐고, 배울 수 있소? 없소?”
“얼마나 배울 생각이오?”
“가르쳐 주는 대로.”
“금자 다섯 냥. 낼 수 있소?”
연수의 눈썹이 씰룩였다.
“내가 호구로 보이오?”
“그럴 리가.”
“그런데 묻지도 않고 가격이 척 나온단 말이지?”
“당연하지요. 내가 그 추적술의 달인이니까.”
“아. 그러셨군.”
“낼 수 있소?”
연수는 품에서 금자 다섯 냥을 꺼냈다.
“배우는 데 얼마나 걸리오?”
“기본적인 건 빠르면 며칠 심화 과정과 그 이상의 내 독자적인 기술은 장담을 못 하겠소.”
연수는 금자 다섯 개 중 세 개를 던졌다.
청년은 의아한 눈으로 연수를 보았다.
“선수금. 배워보고 배울 만했다 싶으면 나머지 두 냥을 주겠소.”
“뭐 좋소. 언제부터 배우겠소?”
“내일 이 시간부터 배우겠소.”
머무는 객잔 근처로 온 연수는 객잔을 나설 때처럼 창을 통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서자 기척을 느꼈는지 공숙이 뛰어 들어왔다.
“어떻게 됐어?”
“자세한 정보는 없더라고요. 그저 소문뿐.”
“소문?”
“세외로 가셨다는 소문뿐이네요.”
“세외라면···.”
“일단은 안심해도 될 것 같아요.”
공숙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럼 앞으로는 어찌할 거야?”
“당분간 여기 머무르며 좀 배울게 있어요.”
“배울거?”
“예. 그 후에 곤륜의 도사들을 지켜봐야겠어요.”
“괜찮을까?”
“예. 괜찮을 거예요. 예전에 알려드린 암동, 기억하시죠?”
“응. 은신술.”
“자주 써야 할 것 같아요.”
“나는 너만큼 안되던데···.”
“저는 무영심공의 특성상 암동과 잘 맞아서 그런 거예요.”
공숙은 탁자에 앉아 찻잔에 차를 따라 마셨다.
“그런데 오늘 이상한 소문을 들었는데.”
“소문이요?”
“응. 지금 객잔의 일 층에 호사가가 와 있는데 얼마 전 암수일살이 나타나서 남궁세가의 창궁검대를 잔인하게 몰살시켰다는데?”
“암수일살이라···. 역시 알아보네요.”
“너 암수검 조심히 써야겠다.”
“예. 걱정하지 마세요. 그나저나 암수검을 쓰는게 나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단검을 쓰는 고수가 나 하나도 아닌데 어떻게 알았을까요?”
“네 단검. 그거 검상이 다르 다고 하더라.”
“예?”
“호사가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기형 단검을 쓴다던데. 검상만 봐도 검흔이 다르다고 했어.”
“그건 생각을 못 해봤는데···. 똑같이 일자로 긋는데 뭐가 다른가?”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에 빠진 연수는 불현듯 난도질 된 무사들의 흔적만 보고 일면식도 없는 고수의 무기와 무공이 떠오른 기억이 났다.
“아! 그런 건가?”
“뭐가?”
“알 것도 같아서요. 딱 집어 뭐라 말은 못 하겠지만. 고수의 검흔은 저도 곧잘 알아보거든요.”
“그런데 배 안 고파?”
“밥 안 드셨어요?”
“응. 호사가 이야기만 듣다 왔어.”
“내려가죠. 밥 먹어요.”
연수는 공숙을 데리고 객잔의 일 층으로 내려왔다.
공숙이 말한 호사가는 아직 가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두 가지 요리와 소면을 시켜 놓고 식사를 하는데 호사가의 이야기가 절정을 달하고 있었다.
“그때 무림맹주 매화검신! 현천! 입에 물고 있던 풀잎을 손에 들고 허공을 긋자 선명한 보라색 강기가 나와서 천일중의 목을 그대로 지나갔소! 그리고 툭! 하고 떨어지는 천일중의 목.”
-저거 사실일까?
-거짓말이죠.
-그치?
-흡성신공을 익힌 천일중이 당대에 천하무적이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에요. 천일중이 급사하니 정파에서 괴소문으로 지들 맹주를 신격화한 거죠.
-쳇. 나쁜 놈들.
연수는 공숙의 짐짓 화난체하는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밥이나 먹읍시다.”
둘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도 호사가의 정파 고수에 관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대부분이 정파의 협행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간혹 정파의 악인을 같은 정파인이 척결하는 이야기도 있었고, 사파인이 물리쳐내는 이야기도 있었다.
식사를 끝낸 연수가 차를 한잔 마시며 입가심을 하고는 공숙을 보며 이야기했다.
“내일부터는 뭘 좀 하느라 바쁠 것 같아요.”
“뭘 하는데?”
-하오문도에게 추적술을 좀 배워 놓으려고요.
“그냥 혼자 할 게 있어요.”
-추적술은 뭐하게?
“꼭 해야 해?”
-배워 놓으면 쓸 일이 많을 거예요.
“예.”
“할 수 없지. 나는 뭘 하고 있을까?”
“누이와 제가 탈 말을 좀 알아봐 주세요. 백마는 구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도 있으니까 천천히 알아보세요.”
-그리고 바늘과 떨어진 독, 해독약을 만들 약재와 재료를 좀 구해놔 주세요.
-벌써 독이 다 떨어졌어?
-그건 아니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거로는 불안해서요.
-알겠어.
연수는 방으로 올라가 공숙에게 전표를 몇 장 나눠 주었다.
“전가전장 전표에요. 혹시 모르니 넉넉히 갖고 계세요.”
“알겠어.”
말을 마친 연수는 먼저 가부좌를 틀고 운기를 시작했다.
번갈아 운기를 마친 후 공숙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하오문도에게 추적술을 배우는 연수.
“그러니까 당신은 그냥 잠시 보고도 이 흔적을 그렇게 바로 알아차린다는 거요?”
“그렇소.”
연수는 의심의 눈초리로 하오문도를 노려보았다.
“왜 그렇게 보시고?”
“그동안 각종 흔적으로 합당한 추론을 하는 법은 모두 배웠소. 나름 합리적인 추리이고 논리라고 생각하오.”
하오문도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오. 이처럼 흔적 하나를 살피는데 일각이 넘도록 살펴야 하오. 흔적을 찾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리오. 이걸 어떻게 한번 훑어보고 바로 찾고 바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단 말이오? 말이 안 되지.”
“혹시 추적받아 본 적 있소?”
하오문도 기당의 질문에 연수는 대충 얼버무렸다.
“뭐 이리 오래 살다 보니···.”
“그럼 대충 아시겠네. 추적자들이 바짝 뒤쫓지. 계속 반나절 하루 하며 늦게 뒤쫓지 않는 이유가 뭐겠소? 당신 말대로 흔적 하나 발견하고 분석하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면 추적술을 누가 써먹을 수 있겠소?”
“그건···. 또 그렇네. 그럼 대체 어떻게 그리 빨리할 수 있는 거요?”
연수도 대충 알고는 있었다. 지금 자신이 억지를 쓰고 있다는 것쯤은.
그런데도 이러는 이유는 짜증이 나서였다. 금방 배우고 써먹을 수 있을 줄 알았건만 뭐가 이리 더딘지, 더 짜증스러운 것은 배울 건 다 배운 것 같은데 기당의 가르치는 방식 때문에 울컥 짜증이 올라왔다.
“뻔한 걸 물으시오? 경험의 차이지.”
“...”
기당은 빙글 미소를 지으며 말 없는 연수를 바라 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