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둑놈에서 고수까지-79화 (79/202)

# 79화

남은 늙은 도사 중 날카로운 인상의 늙은 도사가 입을 열었다.

“그리 기죽을 것 없다. 사제가 말은 저리해도 척관 너를 많이 믿고 있으니. 그리고 이건 비밀이다만 저놈은 젊었을 적에 수련을 등한시하고 몰래 술을 마시러 다니다 사부님께 잡혀 와 먼지 나게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그러니 개의치 말아라.”

“예. 사숙.”

연수는 날카로운 인상의 늙은 도사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집법당주라고 했던가? 저 중 제일 고수네. 암습 하면···. 삼백 초식 이전에 죽일 수 있겠···. 헛!’

자연스럽게 상대를 죽일 계산을 하는 자신의 모습에 흠칫 놀란 연수였다.

앞에 있는 찻잔에 차를 가득 따라 벌컥벌컥 마시고는 벌떡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가는 연수를 공숙이 뒤따랐다.

방으로 따라 들어온 공숙이 기막을 치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그, 그게···.”

“왜?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아무래도 이상해서요. 언제부터인가 살심이 강해지고 지금도 성격에 영향을 줄 정도로 살심이 깊어지는 것 같아요.”

공숙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심마?”

“저도 그런 줄 알고 당황했는데···. 심마였다면 벌써 사달이 났어도 났어야 해요.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제가 익힌 무공 중 심령에 영향을 주는 마공은 전혀 없어요.”

“확실히 너 변하기는 했는데···.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도 잘 몰랐어.”

“좋지 않은 징조에요. 무엇보다 지금의 경지에 자신의 상태를 완벽히 인지 못 하는 것은···.”

“어떡하지?”

“글쎄요···. 저도 모르겠어요.”

“운기 할 때 별 이상은 없어?”

“그게 가장 이상해요. 자각한 이후부터 운기를 하며 항상 주의하는데 무엇하나 이상한 것이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글쎄요. 살심이 강해지는 것은 좋지 않은데···.”

“하긴 최근 네가 뿜는 살기는 내가 봐도 오싹했으니까.”

“그 정도예요?”

“응. 아마 웬만한 무인은 주저앉아 오줌을 지릴걸?”

공숙의 말에 연수는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한참 후 입을 떼는 연수.

“누이.”

“말해.”

“아무래도 곤륜 놈들 무공을 좀 훔쳐봐야겠어요.”

“응? 이런 상황에?”

“이대로 살심이 깊어지는 것은 절대 좋지 않아요. 이럴 때 할 수 있는 것은 정심한 정파의 심결이나 법문을 이용하는 거밖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어요.”

“저들의 수련하는 모습을 훔쳐본다고 구결을 배울 수 있을까?”

“글쎄요. 해봐야지요. 어차피 다른 방도도 없는데.”

“알겠어. 내가 도울 일은 없을까?”

“만약을 대비해서 주변 지리를 잘 외워두세요. 그리고···.”

연수의 설명을 들은 공숙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 그거 괜찮네. 내가 알아서 할게.”

“할 수 있죠?”

“응!”

그날부터 연수는 도사들을 예의주시했다.

이틀 후.

도사들은 이른 아침부터 대수산으로 입산을 했고, 그 뒤를 연수가 뒤따랐다.

산으로 들어서자 갈색과 초록색으로 얼룩진 옷으로 갈아입은 연수.

혹시 몰라 준비해놨던 위장복이었다.

복면까지 완벽하게 한 연수는 천천히 도사들의 흔적을 찾아가며 멀리서 그들을 뒤쫓았다.

어설픈 추적술을 발휘해 떠듬떠듬 도사들을 뒤쫓기를 한참 해가 질 때쯤 연수는 작은 천막을 쳐놓고 검을 휘두르는 도사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암동을 펼치며 잔가지와 잎사귀가 무성한 거목 위에서 그 모습을 주시하는 연수.

해가 완전히 떨어지자 무영심공을 이용하여 무음의 바늘을 몇 개 날려 연결된 실을 귓바퀴에 걸자 도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형. 사부님과 사숙들은 밤마다 어디를 다니시는 걸까요?”

“아마도 장수무투의 뒤를 추적하는 이와 연통을 주고받는 거겠지.”

“그런데 대체 언제까지 이곳에 처박혀 폐관에 가까운 수련을 계속해야 할까요? 본산에 있을 때 보다 훨씬 힘이 듭니다. 특히 요즘은···.”

“척관아 언제 정사 대전이 벌어질지 모르는 때다. 한 푼이라도 무공을 더 쌓아 경지를 높여놔야 본산을 지키고 나아가 정도의 강호를 지키고 민초와 정파의 정기를 지킬 수 있다.”

“그건 저도 알지만···. 요즘은 너무 갑갑합니다.”

“그래 네 마음 모르는 바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좋지 않구나.”

“예. 사형.”

‘정파의 정기라···. 그런 놈들이 우리 사부 하나 잡자고 이런 데서 이러고 있냐? 운남 곳곳에서 중소 정파가 피를 흘리고 있는데.’

그로부터 장로들이 돌아올 때까지 한참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연수는 연신 심기가 불편했다.

하는 이야기가 대체로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이야기에 세상 물정 모르는 갑갑한 이야기 뿐이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정사 대전의 현 상황이 마치 사황성에서 몰아가는 듯 말하는 것이 갑갑했다.

사황성주는 정사 대전을 막기 위해 나름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자신 같은 까마득한 후배에게 사황성주씩이나 되는 양반이 자존심 상하는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무림 역사가 증명하고 있었다.

정사 대전 이후 사파의 연합은 꼭 망해왔었다.

무림맹은 항상 그 위치를 지켜왔던 것에 비하면 사황성 입장에서는 정사 대전 만큼은 꼭 피하고 싶을 것이다.

정파들의 힘이 주체 못 할 만큼 커지다 보니 힘의 분출구로 현 정사 대전의 위기가 생겼다는 것이 연수의 생각이었다.

장로들이 돌아오자 천막 안에서는 연수의 귀가 쫑긋할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지목행수 화금극도 수토정행 그 의미를 얼마나 깨달았느냐?”

“사부님. 상청심공은 제자 이미 팔성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후우, 이놈아! 누가 그걸 모르더냐? 심공의 경지만 깊어지면 무얼 하느냐? 소청검법의 경지가 아직도 멀었는걸. 입문공인 소청검을 아직도 대성하지 못한 것은 네놈이 소청심공의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깨우치지 못해서 그런 것임을 모르느냐? 그런 주제에 무공욕심만 많아서 요즘은 네놈 사형을 졸라 분광풍검법을 수련 중이라지? 기본을 제대로 쌓지 못한 놈이 상승의 무공을 익힌들 대성할성싶으냐?”

이목공을 펼치지 않아도 들려올 정도의 노기 어린 호통 소리에 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무공은 기초가 튼튼해야지. 저놈은 싹수가 틀려먹은 것 같군. 지목행수 화금극도 수토정행이라···.’

안에서 들려오는 구결을 곱씹는 연수는 두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 한참을 깊은 사색에 빠져있는데 연수의 귀로 주뼛주뼛 심결이 들려왔다.

“단단한 땅 위에 굳건히 뿌리를 내려 중심을 잡는 것이 시작이요. 뜨거운 불을 삼켜 열을 머금고 내부를 단단히 달구되 부드럽게 외유하여 모든 기운을 올바르게 움직여 정신과 몸을 바르게 써야 한다.”

“잘 외고 있구나. 알고 있느냐? 아는 것과 할 줄 아는 것은 다르고 할 줄 아는 것과 잘 하는 것은 또 다르다.”

“제자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내일은 너희의 검진을 살펴보겠다.”

-예.

일동 대답하는 젊은 도사들의 목소리에 연수의 눈빛이 반짝였다.

곤륜의 진법은 무공만큼이나 강호에 이름이 높았다.

그중 곤륜의 검진은 심오하고 오묘하기로 그 명성이 대단했는데 그런 검진을 직접 견식 할 생각을 하니 벌써 심장이 두근거렸다.

‘남궁세가의 검진과는 얼마나 다를까?’

조용히 바늘을 거둬들이고 느릿느릿 나무에서 내려와 하산한 연수는 객방 창을 넘어 들어와 암동을 풀었다.

그와 동시에 방안으로 뛰어들어오는 공숙.

“왔구나! 어땠어?”

“작은 성과는 있었어요.”

“그래? 예. 기초 심결을 몇 자락 얻었어요. 확실히 곤륜의 무학은 정심하네요.”

“그 치들 무공은 좀 확인해 봤어?”

“아직 이요. 내일은 검진수련을 한다나 봐요.”

“곤륜의 검진이라···. 명성만큼 대단할까?”

“글쎄요? 저도 궁금하네요.”

“나는 물건을 구해놨어.”

“잘 하셨어요. 나머지도 잘 해주세요.”

“응! 걱정하지 마. 내가 잘 처리할게.”

“예. 그럼 먼저 운기 하세요.”

고개를 끄덕이고 가부좌를 틀며 공숙이 운기를 시작했다.

탁자에 앉아 기감을 넓혀 보자 미약한 점소이의 기운이 위층에서 느껴졌다.

‘이상하네. 도사 놈들과는 기운의 궤가 조금 다른데?’

고개를 가로저은 연수는 머릿속의 의문을 지웠다.

‘사부의 일과 내 상태, 곤륜파만으로도 충분히 골 아프다. 다른 일에 관심 가질 여유가 없지.’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사부의 뒤를 쫓고 있다는 추적자였다.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부의 흔적을 계속 쫓으며 곤륜과 연통하고 있다면 분명 사부의 안위는 아직 완벽히 안전하지 못한 상태였다.

‘잠깐! 연통? 무슨 수로? 사부의 뒤를 쫓으며 연통을 넣는다?’

그 부분에 생각이 닿은 연수의 눈이 반짝였다.

공숙과 번갈아 운기를 마친 연수는 잠시 눈을 붙이고는 해가 뜨기 전에 다시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와서는 육포를 씹으며 대수산을 올랐다.

어제와 같은 나무에 자리를 잡고 암동을 운행하며 시선을 고정하는 연수였다.

천막 안에서 운공을 하는 도사들의 내기가 느껴졌다.

해가 대지를 밝히며 서서히 떠오르자 천막 밖으로 나온 도사 무리. 세 명의 젊은 도사들은 장로들 앞에서 삼각형의 진형을 만들고는 검을 뽑아 들며 검진을 펼쳤다.

그런 그들의 위로 발을 굴러 뛰어오른 장로 한 명이 떨어져 내렸다.

장로를 상대로 검진을 유지하며 손속을 섞는 도사들.

‘호오 대단하잖아.’

연수의 감상대로 도사들의 검진은 마치 서로를 밀어내듯 순환하며 장로를 압박해 들어갔는데 절정고수인 장로를 뒤로 밀어낼 정도로 기세가 묵직했다.

장로의 검을 부드럽게 밀어내며 진의 생문 밖으로 밀어내는 검진의 위력은 연수로서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번에는 척관의 사부라는 장로가 검을 뽑아 달려들었다.

쾌검을 구사하며 순식간에 주변을 검영으로 가득 채워 나가는 장로.

그런 장로를 상대로 세 도사의 위치가 일렬로 잠시 겹쳤다가 퍼지며 검을 찔러가자 무거운 기세가 뻗어 나오며 제일 앞에 있던 젊은 도사와 장로의 검이 부딪혔다.

둘의 검이 부딪히자 주변으로 경기가 퍼져나가며 바람이 휘몰아쳤다.

힘에 부쳤는지 처음 검을 막은 도사가 뒤로 한발 물러서자 남은 두 무사가 앞으로 나서며 검을 찔러 왔고 장로의 쾌검이 두 무사의 검을 빠르게 쳐냈다.

-채챙!

검을 찔러가던 두 도사가 힘에 밀리면서 검이 찌르르 울렸지만 빙글 돌며 다시 검을 찔러갔고, 그와 동시에 잠시 물러섰던 도사까지 합세하자 세 명의 도사에게 포위당한 장로의 주위로 무거운 기세가 몰아쳤다.

소매가 부풀어 오르도록 내력을 끌어올린 장로의 주위로 몰아치던 바람이 더욱 거세졌다.

“합!”

기합과 동시에 검을 휘두르는 장로의 검에서 강력한 검풍이 일어나며 세 도사의 검을 막아냈다.

장로의 검이 휘둘러지자 빙판에서 미끄러지듯 뒤로 주르륵 밀려나는 세 도사.

한 장 가까이 뒤로 밀려나던 도사들이 동시에 같은 자세로 검을 당겼다가 뻗어내자 다시 장로를 향해 미끄러지며 장로를 압박했다.

그와 동시에 뛰어올라 공중에서 몸을 뒤집으며 검을 뻗는 장로였다.

세 도사의 검 끝과 장로의 검 끝이 맞닿았다.

-후우웅

물구나무서듯 세 도사의 검 끝과 자신의 검 끝을 맞대어 공중에 몸을 띄우고 있는 장로.

그와 검진을 중심으로 강맹한 기운이 주변으로 넓게 퍼져갔다.

‘후, 정신없네.’

몰래 이 상황을 관전하고 있던 연수는 자신의 몸을 스쳐 가는 기운의 여운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고작 저 정도의 실력의 도사 셋이서 검진을 짜 이렇게까지 절정고수를 막아내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왜 그리 곤륜의 진법이 명성이 높은지 실감이 되었다.

일대 제자들의 무위가 생각보다 낮아 내심 얕잡아 보았던 연수의 마음속으로 경각심이 들었다.

한참을 검을 맞대며 막대한 기운을 쏟아내던 네 도사는 마치 짠 것처럼 동시에 떨어졌다.

“훌륭하구나. 어디 하나 흠잡을 곳 없을 정도다. 옥령검진은 이 정도면 어디에 내놔도 좋을 정도다.”

-감사합니다.

검을 역수로 지고 포권하며 대답하는 세 도사의 모습이 마치 거울을 비추는 것처럼 똑같이 딱 맞아 떨어졌다.

“항상 지금 같은 호흡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라.”

-예.

“그럼 이제부터는 각자 수련을 시작하거라.”

-예.

이후 서로 떨어져서는 각자 검법을 수련하는 세 도사.

장로들은 그런 젊은 도사들을 하나씩 맡아 지켜보았다.

연수는 그런 젊은 도사들의 검법을 유심히 관찰했다.

“척관! 유려낙수의 초식은 더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떨어트리듯 해야한다.”

“예! 사부님.”

검을 휘두르는 도사들의 검을 관찰하는 연수의 동공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연수였지만 커진 동공 중앙에서 연한 푸른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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