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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106화 (106/202)

# 106화

일행이 귀주의 사황성이 자리 잡은 천주현에 들어서자 과연 사황성의 본거지 다운 패기가 느껴졌다.

현 곳곳에 사황성의 무사들이 살벌한 기세를 뿜어내며 활보하고 있었고, 그 외에도 많은 사파인들이 독특한 병장기를 그대로 드러내고 돌아다녔다.

여기저기서 사파인들끼리의 다툼도 간간이 보이는 것이 사파의 본거지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사황성의 전각들을 보며 곧장 그 방향으로 말을 몰아갔다.

사황성이라는 큰 현판 밑으로 이 장 높이의 정문을 올려다보며 공숙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 정문 앞에는 다섯 명의 무인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갑자기 자신들의 앞으로 말을 몰아오는 세 무인을 훑어본 문지기의 볼이 씰룩였다.

이제 일류쯤 되어 보이는 반반한 사내놈과 뭐가 그리 좋은지 해맑게 성을 올려다보며 좋아하는 반반한 여인, 그리고 무공을 익힌 그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비실비실해 보이는 놈 하나.

지금은 정사 대전이 한참인 중이었다.

별의별 사파 놈들이 성에 투신하겠다며 찾아오는 통에 제법 경력과 무위가 받쳐주는 자신 같은 무력대 소속 무사들이 정문을 지키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런데 이런 어중이떠중이까지 찾아오니 은근히 짜증이 치밀었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에는 그런 짜증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어디서 왔소? 이곳은 사황성이오.”

“응, 알아. 문 열어.”

응, 알아. 문 열어. 라···. 자신의 귀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저건 분명 하대이고 반말이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잘 쳐줘봤자 자신보다 오래 산 거로는 보이지 않는 애송이가 분명했다.

그렇다고 성내에서 오래 생활한 자신이 모르는 성의 숨겨진 고수라고 생각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보통의 문지기였다면 분노로 이성을 잃고도 남을 일이었지만 필사의 인내력을 발휘한 문지기는 발작하려는 옆에 동료들을 손짓으로 막으며 한 번 더 존대로 물었다.

“어디서 오신 누구시오? 자신을 밝히시오. 여기는 사황성이오!”

“아! 내 얼굴 모르지? 성주님이 언제든 오라더라. 나 암수일살이야. 성주께 안내해.”

“...”

딱 벌어진 입안으로 파리가 들어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린 문지기.

연수는 그의 목젖을 보며 씩 웃어 보였다.

“빨리 열어.”

“그, 그게···. 예···. 그런데 잠시만.”

당황한 문지기는 바로 옆에 막내 무사에게 눈짓했고 그는 옆에 쪽문을 열며 성내로 달려갔다.

“그, 그런데 저 옆에 분들은···.”

“하나는 개방의 무화개라는 전향자이자 내 친구고 이 분은 내 누이자 처유희 선배의 직계제자.”

“오, 옥안사···.”

차갑게 퍼져오는 한기에 놀라 말문이 막힌 문지기가 한기가 뻗어 나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어여쁜 여인이 어느새 무서운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에게 뻗어 나오는 한기는 마치 음한지공을 극성으로 익힌 고수의 그것처럼 뼈가 시려 왔다.

“누이. 잘 모르는 것 같은데 한번 봐줘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 공숙이 입을 열었다.

“사부께서는 그 별호 싫어해. 한 번 더 그렇게 불렀다간···.”

“헉!”

세로로 갈라지는 그녀의 눈동자와 마주친 문지기는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저, 절대로 그러지 않겠습니다.”

“문 안 열 거야?”

당황한 문지기는 안절부절못하며 입을 열었다.

“그, 그것이 지금 높은 분을 모셔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성주님이 별호만 대면 바로 자기한테 데려다줄 거라 했는데···. 내 참 그 양반 허풍은.”

결단코 성주를 저리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자는 성내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는 문지기였다. 하지만 상대는 암수일살이다.

현재 사파인에게 가장 지지를 받으며 높은 관심의 대상이 되는 암수일살.

“죄송합니다. 너, 너무 대단한 분이신지라 저희 멋대로 접객당에 모실 수가 없어서···.”

“쳇! 귀밝은 양반 같으니라고.”

연수의 중얼거림에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이던 문지기는 갑자기 자신의 앞으로 솟아오르는 인영에 놀라 뒤로 넘어졌다.

“왔구나!”

“제 별호만 대면 바로 문이 열릴 것처럼 이야기하시더니 길바닥에 이리 세워놓고 텃세 부리시는 겁니까?”

“크크크 하여튼 그놈의 입심은 그대로구나.”

“그럼요.”

사황성주 패천후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걸렸다.

“귀한 손님이다. 빨리 문 열어.”

“서, 서, 성주님···.”

주저앉은 문지기는 순간 멍해져서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다행히도 눈치 빠른 다른 문지기들이 서둘러 문을 열었다.

같은 사황성에서 생활하는 처지지만 자신이 성주를 직접 본 것은 팔 년 동안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그것도 먼발치에서나 봤지 이리 가까운 곳에서 본 적은 없었다.

성주의 뒤를 따라 성내로 들어서는 일행을 멍하니 바라보는 문지기.

“야, 정신 좀 차려. 얼이 빠져서 그러고 있다가 괜히 기강이 해이해졌다고 경을 친다.”

그제야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가다듬은 문지기가 중얼거렸다.

“내, 내가 암수일살이랑 말을 섞었구나.”

앞서 걷는 성주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물어왔다.

“그런데 같이 온 일행은 누구지?”

“개방에서 무화개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던 제 둘도 없는 친구와 처 선배의 제자인 제 누이입니다.”

앞서 걷던 성주가 돌아섰다.

그를 향해 포권하는 공숙.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공숙이라 합니다.”

“처 누구를 말하는 거야?”

강호에 처 씨 성을 가진 고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대답하지 않고 빙글 웃어 보이는 연수.

그 짓궂은 표정에 성주가 기감을 펼쳤다.

“오! 옥안쌍편의 제자였구나!”

“예!”

“그 아이가 남궁세가에 의해 큰 변을 당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유감이구나.”

“원수는 확실히 갚을 테니 괘념치 마십시오.”

고개를 끄덕이는 성주.

“그래, 그래야지.”

말을 마친 성주의 눈매가 좁아졌다.

“그런데 개방이라···.”

자신을 사나운 눈매로 지켜보자 소개가 뻣뻣하게 포권을 했다.

“후배가 성주님을 뵙습니다.”

“정파 놈 아니랄까 봐 딱딱하네. 근데 이놈은 왜 데려온 거야? 차도 살인이라도 하려고?”

“설마요. 전향입니다.”

“나한테 그걸 믿으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지?”

“제가 보증해요.”

그 말에 성주의 미간이 구겨졌다.

“네가 뭔데?”

씩 웃으며 대답하는 연수.

“암수일살이요.”

말과 함께 연수의 몸에서 폭풍 같은 투기가 한 차례 뿜어져 나왔다가 사라졌다.

“쳇, 그 빌어먹을 재능이 대단하기는 하구나.”

“보증할 만하죠?”

성주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참전이라도 하려고?”

성주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소개.

“진짜야?”

연수를 보며 물어오는 성주.

“예. 저희 셋. 모두입니다.”

성주의 입이 귀에 걸릴 듯 벌어졌다.

“하하하, 네놈이 드디어 사파에 공헌하는구나.”

“그전에. 제 손님들은···.”

연수의 말을 끊으며 답하는 성주.

“걱정 마. 잘 모셔놓았다. 일단 들어가서 마저 이야기하지.”

성주의 집무실은 커다란 대전의 뒤로 있었는데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각종 장식품부터 고급스러운 가구가 들어차 있었다.

흑단목을 깎아 만든 의자에 앉자 금세 시비가 차를 들여와 놓아주었다.

“후르륵.”

소리 나게 차를 한 모금 마신 연수가 물었다.

“사황성주 할 만하네요.”

“크크크 왜 이제 와 이 자리가 욕심나느냐?”

“그럴 리가요.”

“남들은 눈이 벌게져서 노리는 자리다.”

“관심 없습니다. 그보다 사황성의 기강이 해이해진 겁니까? 아니면 성주님 권위가 추락한 겁니까?”

밑도 끝도 없이 꺼낸 이야기에 성주의 인상이 구겨졌다.

성주에게서 노기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풍겨 나왔다.

공숙과 소개가 안절부절못하며 성주의 눈치를 살폈다.

“무슨 소리지?”

“오는 길에 습격을 받았단 말이죠. 귀형가의 무인들에게.”

성주의 표정이 흉신악살처럼 구겨졌다.

“망노가 성주님을 꽤 만만하게 보는 것 같은데요?”

연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주가 쥐고 있던 의자의 손잡이가 우그러지며 부서졌다.

“이건 제 개인적인 원한 따위가 아닙니다. 이간계 따위는 더더욱 아니고요. 사황성에서 참전하기로 한 이상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뒤에 적을 두고 앞으로 나가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 그 늙은이가 감을 많이 잃었나 보군. 정말 망령이 났나?”

성주의 오른손이 위로 올라가자 성주의 옆으로 검은 무복을 입은 인영이 솟아났다.

공숙과 소개는 제법 놀란 눈치였지만 연수는 무감정하게 나타난 인영을 바라봤다.

“비영에게 지금 들은 이야기를 전해.”

“충!”

묵직한 대답과 함께 사라지는 인영.

“비영이라면 그 중도를 쓰는 양반 맞죠?”

“그래. 안 그래도 그놈이 언제 한번 널 다시 보고 싶다 하더군. 꼭 한번 손을 섞어보고 싶다나?”

“그 양반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요.”

“크크크, 내가 제일 믿는 놈이야.”

“알아요. 후계자 맞죠?”

성주의 표정에 처음으로 놀란 감정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어떻게 알았어?”

“성주님 제자가 일곱이나 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 누구도 중도를 쓴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어요. 그 양반 딱 보니까 성주님의 기운이 풀풀 느껴지던데요?”

“하여튼 눈치는 빠르구나. 이건 비밀이다.”

“예.”

“그럼 복잡한 일은 잠시 미뤄두고, 뭘 원해?”

“마음대로 휘젓고 다닐 수 있는 지위요.”

“호오, 높은 자리에는 관심이 없는 줄 알았더니?”

“남궁세가, 무당파, 곤륜파. 갚아줘야 할 혈채가 많습니다.”

성주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까놓고 이야기하지. 너 정도 되는 무인은 큰 전력이 된다. 솔직히 밖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할 일이 많아요. 그리고 성내에서 빌어먹을 정치질에 휘둘릴 생각도 없고요. 특히나 제가 성주님 곁에 있으면 귀형신살 죽을걸요?”

“클클클 네가 죽을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되세요?”

“아니. 솔직히 믿을 수 없지만, 네놈이 그 늙은이에게 질 것 같진 않군.”

솔직한 성주의 이야기에 피식 웃은 연수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성주를 바라봤다.

“약속드리죠. 화끈하게 휘저어드린다고.”

“얼마나 필요해? 달랑 셋은 못 보내.”

“일류 셋 절정 하나 붙여 주세요.”

“겨우 그걸로 뭘 하게?”

“저 암수일살이에요.”

“쳇! 잘난 척은.”

“잘났잖아요.”

“그거면 정말 되는 거야?”

“저와 같은 놈들로 주셔야 합니다. 무영심공을 익힌.”

성주의 눈썹이 씰룩였다.

“내 직속인데···.”

“예.”

“화산을 지우느라 많이 세가 약해져서···.”

“그러니까요.”

“꼭 그놈들로···.”

“주셔야 해요.”

“빌어먹을 놈!”

씩 웃어 보인 연수가 성주의 두 눈을 바라봤다.

“약속드린다니까요.”

“지위는?”

“대충 누가 간섭 안 하게 내려주세요.”

“며칠 내로 성대하게 내려주지.”

“꼭 그래야 해요?”

귀찮은 표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연수를 보며 한숨을 내쉰 성주가 입을 열었다.

“네 말대로 너 암수일살이야.”

동그랗게 눈을 뜨고 의문을 담아 보내는 연수.

“사기가 크게 오를 거다.”

“그 정도는 아닐 텐데···.”

“자각하지 못하는 모양인데 지금 네놈과 비영 강진후 셋은 우리 사파 내에서는 가장 떠오르는 고수들이야. 특히 요즘에는 네놈이 강세지.”

“강진후? 그 양반은 누구예요?”

“사패일성.”

“아! 그분이구나. 요즘은 어디서 뭐 하고 계십니까?”

“조만간 만나게 될 거다. 근처에서 계집질 중이니까.”

“그래요? 기대하고 있죠.”

성주가 식은 찻잔을 들고 내력을 이용해 차를 데워 마시기 시작했다. 아무런 말 없이 차만 마시며 이 각이 지나자 연수가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큼큼!”

“왜?”

“할 말은 다 한 것 같아서요.”

“그래서? 후르륵.”

“거참···. 그.. 어디 있는데요?”

“뭐가?”

성주가 모르는 척 차만 마시자 연수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아시잖아요.”

“클클, 이놈 병나기 전에 데려다줘. 가면 방 많으니까 당분간 거기서 묵고 있어.”

성주의 말에 새로이 나타난 인영.

회색 무복을 입은 무인이 앞으로 나서며 안내를 자처했다.

“그럼 또 봬요.”

“그래.”

“만나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

공숙과 소개 역시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공숙과 다르게 아무 말 없이 인사를 올리는 소개를 보며 성주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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