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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119화 (119/202)

# 119화

잠시 주위를 둘러본 진벽가주의 입이 열렸다.

“삼 할···. 정도입니다.”

“그, 그렇게 차이가 난단 말인가?”

놀란 화령가주의 말에 진벽가주가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지었다.

“처음 대처를 잘못했습니다. 지금도 귀주, 호남, 강서, 북건을 뺀 전 중원의 사파인들이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힘을 한데 모으지 못한 실책은···. 너무나 컸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힘을 보존한 채 몸을 숨겼는지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두 가주.

성주는 그런 두 가주를 나무랐다.

“겨우 그딴 걸로 전의가 꺾이는가? 쯧쯧.”

두 가주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성주와 같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 연수.

“쯧쯧, 나이가 많아서 그런가? 패기라고는 약에 쓸래도 없네요.”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연수에게 눈만 부라리는 두 가주.

사황성에서 성주를 빼면 단 셋밖에 없는 초절정의 최고 고수인 두 가주는 어쩌다가 저런 어린놈에게 이런 모욕을 다 받아야 하는지 한탄스러웠다.

체력을 보충한 사황성의 전력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철목가의 무인들은 가주와 함께 후방에서 뒤를 지켰고, 귀형가의 무인들이 비영의 지휘를 받으며 선발대로 앞서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감시자들을 처리하며 이동을 주도했다.

하루 두 시진을 빼고는 거의 쉬지 못하고 이동하며 강행군을 고집하는 성주였다.

강서와 호남의 경계를 넘을 때쯤 철목가주가 성주를 찾아왔다.

“굳이 이렇게 서두르시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지친 가문의 무인들을 대변하는 철목가주.

성주는 직접 대답하지 않고 진벽가주를 바라봤다.

대신 나서며 입을 여는 진벽가주.

“적의 반응을 예측하기 쉽지 않아 하루라도 빠르게 성으로 귀환해야 합니다.”

“...”

무표정하게 진벽가주를 빤히 바라보는 철목가주.

티 나지 않게 한숨을 내쉰 진벽가주는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현재 무림맹의 반응은 크게 몇 가지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모든 전력을 총동원해 전선을 압박하여 저희의 전력을 분산시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전력을 총동원하여 귀주를 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전력을 총동원하여 강서, 북건, 둘 중 하나를 혹은 그 둘을 차지하며 밀고 들어오는 겁니다.”

여전히 고개를 갸웃하는 철목가주.

그 모습을 답답하게 보던 연수가 나섰다.

“답답하기는! 저 셋 중 무엇이 되든 성에서 전력을 재정비하고 남은 전력을 끌어모아야 대처가 될 거 아닙니까?”

“큼큼! 그건 알고 있다. 그런데 굳이 체력을 낭비하며 강행군을 해야 하는 이유는···.”

“자칫 저 중 하나라도 저들의 움직임이 우리보다 빠르다면 뒤늦은 대처를 하는 쪽에서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대체 철목가에는 머리가 돌아가는 무인이 하나도 없는 것인지···.”

“뭣?! 이놈이 그깟 잔대가리 좀 돈다고 입을 함부로···.”

“철가군.”

철목가주의 말을 끊는 싸늘한 부름에 철목가주는 고개를 숙이며 성주의 앞으로 다가갔다.

“지금이 억지 쓸 때야? 만만해 보이지? 정사 대전을 벌여야 한다고 강경하게 주장하던 게 너와 주염철이 망노 셋이었어.”

“...”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묵묵히 고개를 처박고 있는 철목가주.

“전쟁 중이야. 네놈 자존심보다 내 명예보다 중요한 게 뭔지 잘 생각해.”

“명심하겠습니다!”

허리를 숙이는 철목가주에게서 시선을 돌린 성주.

잠시 눈치를 보고는 후방으로 돌아가는 철목가주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더 빠를 거예요.”

“이상하지 않으냐?”

“이상하죠.”

한숨을 내쉬는 성주.

“역시 그렇지?”

“예. 냄새가 구려요.”

진벽가주마저 성주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대군이 움직이는데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할 법도 한데 말입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단 말이지.”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연수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분명히 꿍꿍이가 있을 거예요. 이대로 가만있을 놈들이 아닙니다.”

“당연한 이야기 하지도 마라. 그 꿍꿍이가 뭔지 모르니 불안한 것 아니겠냐?”

진벽가주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혹시 아직 전력을 총동원하지 못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럴 리가.”

“절대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단언하는 성주와 연수였다.

“그렇겠죠? 그 늙은 구렁이가 그럴 리가 없겠죠.”

사황성 팔 할의 전력이 강서를 돌파해서 안휘의 남궁세가를 지웠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무림맹이 잠잠하다.

지금도 성과 매와 인편을 이용해서 소식을 주고받고 있었다. 무림맹과 전선의 동정을 살피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잠잠했다.

만약 성으로 귀환하는 중 무림맹의 전력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좋을 일이 없었다.

게다가 매복이라도 당한다면? 사황성은 그날로 끝장이 날것이 분명했다.

이런 호기를 놓칠 무림맹이 아니었다.

하여 귀형가를 앞세워 철저히 퇴로를 살피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수고를 비웃기라도 하듯 잠잠하기만 한 무림맹이었다.

이런 형세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불편한 표정으로 가문의 무인들을 독려하는 철목가주가 답답한 연수였다.

그렇게 귀주까지 돌아온 사황성의 무인들 표정에는 안도의 빛이 감돌았다.

드디어 보름 가까이 계속된 강행군의 끝이 보였다.

이제 하루만 더 고생하면 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열두 가문의 가주들은 무인들을 독려했고, 성주 역시 안도의 한숨과 함께 사황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반나절 정도 이동을 하자 저 앞으로 성주의 일곱 제자와 성의 무사들이 마중을 나왔다.

성주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이는 일곱 제자.

“사부님! 안휘 정벌을 성공적으로 마치신 것을 경하드립니다.”

-경하드립니다!

그런 제자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사황성주 패천후였다.

“그간 별일은 없었느냐?”

성주의 첫 번째 제자인 경만추는 성주의 눈치를 잠시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얼마 전부터 무림맹의 사자가 성으로 찾아와 성주님을 뵙고자 기다리고 있습니다.”

“뭣!! 언제부터?!”

“그, 그게 한 칠일쯤···.”

“어째서 나는 그 소식을 듣지 못했지?”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너에게 판단할 권리를 주었지?”

“...”

말을 잇지 못하는 경만추.

그런 경만추를 대신하여 여러 제자가 입을 모았다.

“저희도 사형과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잠시 그런 제자들을 노려보던 성주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망노는?”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귀형신살과 자신의 일곱 제자의 사이는 이상하게도 가까웠다. 얼마 전까지는 수시로 왕래를 하며 특별한 친분을 유지했다.

특히 첫째 제자와 셋째 제자의 경우는 그 빈도수가 높아서 몇 번 물어보았지만, 그저 성내의 가주 들과의 친목을 다질 뿐이라며 다른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다.

최근 망노의 행태를 보면 곱게 눈길이 가지 않는 성주였다.

어릴 때부터 거둬 제자로 키운 놈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 성주는 그나마 비영을 보며 마음의 위안으로 삼았다.

정식 제자는 아니었지만 유일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 받은 성격부터 자질과 행동거지까지 무엇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없는 훌륭한 무인이었다.

“길 막지 말고 일어서.”

말을 마치며 바로 제자와 무사들을 지나쳐 성으로 향하는 성주.

그의 뒤를 지친 기색이 역력한 성의 무인들이 뒤따랐다.

성주의 옆으로 연수가 따라붙는데 성주의 제자들은 눈을 흘기며 그런 연수를 노려봤다.

‘뭐야? 저 반푼이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성주와 나란히 걸으며 입을 여는 연수.

“냄새가 구립니다.”

“구리다 못해 똥이라도 싸놓았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그런데···.”

-저 반푼이들 상태가 왜 저 모양입니까?

-반푼이라니! 그래도 내 제자들이야.

-어째 성주님 밑에서 저런 게 나왔습니까?

“하아, 유구무언이다.”

-딱 봐도 살귀도의 반도 안 되는데요?

-그놈 반만 되었어도···. 내가 비영을 후계로 두지도 않았어.

-무공은 제대로 전수하신 거 맞아요?

-자질이 나쁜 건 아닌데 수련이라고는 하는 꼬락서니를 보기가 어려우니···. 어려서부터 제대로 키웠어야 했는데.

안 봐도 훤히 그림이 그려지는 연수였다.

흩어진 사파인들의 구심점이 되어 신성처럼 나타나 사황성을 만들고 무림맹을 견제하며 사파인의 태양으로 떠오른 패천후였다.

그런 패천후의 제자로서의 삶에 빠져 무인으로 사는 삶을 게으르게 살아온 놈들.

연수가 제일 경멸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저런 것들도 무인입네 하며 주둥이를 나불거리는 걸 제일 싫어했다.

항상 상승무공에 대한 열망과 목마름에 빠져 수련에 매진했던 연수였다.

그런 연수에게 좋은 무공을 두고도 게으름에 본분을 망각하고 헛짓거리하는 놈들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머리한 쪽에 성주의 제자들에 대해 결론을 내린 연수는 그들에 대한 일말의 생각조차 모두 지워 버렸다. 지금은 저런 망나니들을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이 쓰였던 무림맹에서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내밀고 나섰다.

그 진위를 파악하는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욱신거렸다.

“진벽가주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깊은 사색에 잠겨있던 진벽가주 또한 짚이는 구석이 없는지 말을 아꼈다.

“됐다. 가 보면 알게 되겠지.”

성으로 들어서는 무인들을 정문에서부터 환호로 맞는 사황성의 무사들.

아쉽게 참전하지 못하고 성을 지키고 있던 그들은 승전보를 안고 귀환하는 무사들에게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그런 무사들을 이끌고 커다란 연무장으로 이동한 성주가 작은 단상 위로 올라가며 입을 열었다.

“남궁세가를 지웠다.”

-와아아아!!!!!!

-성주님 만세!

-사황성 만세!!!

지친 무인들조차 피곤을 잊으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런 무인들을 손을 들어 진정시키는 성주.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시작이다. 거짓말하지 않으마.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저들에 비해 열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원에서는 우리 사파인이 살육을 당하고 있을 것이다.”

성주의 마지막 말에 무인들은 침음을 삼키며 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적들의 피보다 우리 사파인의 피가 훨씬 더 많이 흘렀다.”

무인 중에는 주먹을 부르르 떨며 분을 토해내는 무인들도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우리의 시체보다 더 많은 적의 시체를 쌓을 것이다. 우리가 흘린 피보다 더 많은 적의 피를 흘리게 할 것이다. 사파인들의 혈채를 모두 받아낼 때까지 사황성의 무인이 단 한 명도 남지 않을 때까지 이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와아아아!!!

-함께 하겠습니다!

-성주님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환호가 잦아들자 성주는 뜨거운 기세를 끓어 올리는 무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들어라! 사황성이 망해도 좋다!”

의아한 눈으로 성주에게 집중되는 장내의 시선들.

“우리 사파인들은 그간 많은 이름으로 다시 모였다. 사패련이었던 적도 있고. 사련맹이었던 적도 있다. 매번 정사 대전이 있을 때마다 우리 사파의 구심점은 철저히 무너졌다. 하지만 봐라!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렇게 하나로 모여있다! 이게 우리 사파인이다. 정파의 위선자들에게 사파인의 긍지와 저력을 보여줄 것이다. 마지막 한 명의 무인이 남을 때까지 저들의 목줄기를 물고 늘어지며 싸울 것이다! 함께 산화하자!”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던 뱃속에서 끌어 올려 내지르는 함성에 인파의 제일 앞에 서 있던 연수는 무인들의 기운에 뒤로 밀릴 것 같은 느낌마저 받았다.

‘이렇게 까놓고 나올 줄이야···. 완전히 카리스마네.’

결연한 표정으로 무인들을 바라보는 성주에 대한 연수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지금까지의 다소 가볍고 장난스럽던 성주의 모습이 지워지며 진정한 사황성주 패천후의 진면목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불리한 형국에 사기가 꺾일 위기인데 이런 식의 정면돌파로 아군의 사기를 올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황성주 패천후는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무인이자 사파인 이였다.

어느 순간 가슴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뜨거운 무언가를 토해내듯 함성을 지르고 있는 연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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