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고개를 가로 기울이며 생각하는 연수.
‘그렇다고 무재가 월등한 것도 아닌데···.’
그저 타고나길 튼튼히 타고났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여후상은 다음 날 해가 밝을 때까지 꼬박 환자들을 살피며 치료에 열중했다.
도화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연수.
“내가 지켜볼 테니까 좀 쉬고 와.”
고개를 가로젓는 도화.
“괜찮아. 누이도 좀 쉬고 오세요.”
공숙은 도화의 팔짱을 끼고는 도화를 일으켜 세웠다.
“그래. 말 듣자. 너는 벌써 며칠째라며. 저 양반이 있는 한 문제 없을 거야.”
공숙은 망설이는 도화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소개야 너도 좀 쉬다 와라.”
“난 됐다. 그래도 같이 전선을 넘은 전우들인데.”
“같이 지낸 지 겨우 한 달 남짓한 너도 그렇다는데 성에서 함께한 세월이 적지 않은 어떤 양반들은 그냥 뒈지라고 방치나 하고.”
“큼큼! 이 두 사람은 이제 안심해도 될 듯한데···.”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바꾸는 여후상.
그의 말에 슬쩍 두 사람의 진맥을 해 보니 여전히 맥이 약했지만, 확실히 사경을 헤매던 어제보다는 훨씬 상태가 좋았다.
“도산은 어떨 것 같소?”
“지금부터가 고비요. 정혼옥구환을 복용시킬 것인데···. 문제는 과연 그의 단전이 버텨 줄 수 있을지가 의문이오.”
“정혼옥구환이라···.”
어제 천영에게 받은 정혼옥구환을 꺼내보는 여후상.
‘이건···. 성주가 준 영약이잖아.’
잠시 영약을 바라보던 연수가 물었다.
“효능은?”
“정혼옥구환은 내력 증진의 효력은 약한 편이오. 대신 혈맥과 경락, 단전을 튼튼히 해주는 데에 특화된 내 비전 영약이요. 먹어 봤자 내력은 겨우 반 갑자 정도 느는 게 다지만 혹 내상에 먹는다면 그 효력을 톡톡히 볼 수 있을 거요.”
“성주님에게도 주었소?”
“당연하지 않겠소? 성주님에게는 특별히 대정혼옥구환을 드렸지.”
고개를 끄덕이는 연수.
그런 연수를 잠시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는 여후상.
“하아, 문제는 이 무사가 도무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소. 시침하여 최대한 원기를 북돋아 주려 했지만 이미 진원 진기마저 심하게 손상되어 있어 쉽지가 않소.”
잠시 고민하던 연수는 밖으로 나왔다.
“도평!”
연수의 부름에 날듯이 달려 나오는 경도평.
“부르셨습니까?”
“너와 도산 역시 무영심공으로 내력을 쌓았지?”
“예. 암영대와 암검대의 무인들은 모두 대영심공과 무영심공을 주로 익힙니다.”
연수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허공에 시선을 고정했다.
“천영!”
“예.”
땅으로 떨어져 내리는 천영.
“만약 주렴각을 찾는 이들이 있다면 성주님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들여서는 안 돼.”
“굳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그럴 겁니다. 저희의 임무이니.”
“절대. 주렴각으로 들어서는 자는 없어야 할 거야.”
진지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연수를 잠시 바라보던 천영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도평. 날 좀 도와줘야겠다.”
“말씀하시지요.”
“일단 들어가자.”
도평과 안으로 들어온 연수는 자리에 앉아 입을 열었다.
“도산이 정혼옥구환을 복용하면 너는 그의 단전이 절대 깨지지 않게 보호해줘. 물론 위험한 건 알지만 지금은 부탁할 사람이 너밖엔 없다. 네가 단전을 보호하면 나는 최대한 영약의 기운을 몰아 이놈의 대맥을 중심으로 치료를 할게.”
연수의 말에 도평은 큰소리로 반대했다.
“안됩니다!”
“아니면 이놈 죽어.”
“하지만···.”
“알아.”
도평과 같이 여후상을 노려보는 연수.
여후상은 당황하여 입을 열었다.
“자, 잘못되면 나 또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지옥에 빠지게 되오! 걱정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요.”
연수는 여후상에게서 시선을 거둬 도평을 바라봤다.
“일단 살리고 보자.”
“...”
경도평은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단순한 진기도인이나 벌모세수따위가 아니었다.
모도산의 상태는 혼자서는 한 줌의 내기조차 움직일 수 없는 위중한 상태였다.
지금이라도 단전이 깨어지고 내기가 흩어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태였다.
그런 상태의 무인 몸에 요상을 인도하여 내가 치료를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경도평이 연수를 바라봤다.
검디검은 눈동자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하아.”
한숨을 내쉰 경도평은 여후상을 노려보며 단언했다.
“혹시라도 불경한 짓을 한다면 아무리 전시상황이라도 성주님께서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걱정하지 말게나 나도 목숨이 달린 일이야.”
씩 웃은 연수는 그대로 모도산의 백회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손을 번쩍 들었다.
손이 머리에 붙은 듯 일으켜 세워지는 모도산.
그런 모도산의 등에 반대 손을 대며 천천히 내리니 자연스럽게 가부좌를 틀고 앉혀지는 모도산이었다.
여후상은 재빨리 모도산의 턱을 꾹 눌러 입을 벌리고 정혼옥구환을 집어넣고는 입을 닫았다.
백회에 올린 손을 유지하며 반대 손으로 모도산의 양 견갑골을 두드리자 쭉 펴지는 모도산의 양팔.
경도평은 그런 모도산의 양 손바닥과 자신의 손바닥을 맞대어 그의 몸으로 조심스럽게 내기를 흘려보내 단전을 감싸기 시작했다.
경도평의 내력이 어느 정도 단전을 감싸기 시작하자 백회로 흘러들기 시작한 연수의 내력이 붙잡고 있던 영약의 기운을 놓아주었다.
-움찔. 부르르.
모도산의 몸이 발작을 일으킬 것 같이 떨려오자 여후상은 미리 꺼내놓았던 침을 모도산의 얼굴 곳곳에 꽂기 시작했다.
“뇌기를 흘릴 것이오.”
경고하고는 잠시 후 여후상의 손끝에서 뇌기가 뻗어 나오며 침을 타고 흘러 들어가자 부르르 떨던 모도산의 떨림이 멈췄다.
영약의 기운이 대맥을 중심으로 온몸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연수는 바빠졌다.
영약의 기운을 최대한 눌러놓으며 조금씩 퍼지도록 조절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심력의 소비가 심했다.
특히나 한줄기의 기운이 자칫 꼬인 경락으로 흘러들어 단전에 무리를 주게 되면 한순간에 단전이 깨어질 것이 분명했다.
조심스럽게 강맹한 영약의 기운을 누르며 모도산의 몸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연수였다.
중간중간 위험한 상황이 찾아올 때마다 뇌전 침법으로 위기를 넘기며 진땀을 흘리는 세 사람.
그렇게 두 시진이 지났다.
“후우.”
한숨과 함께 백회에서 손을 떼는 연수.
그와 같이 경도평 역시 손을 떼었다.
안도의 눈빛으로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벌렁 드러눕는 여후상.
“비령곡에 잡혀갈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피식 웃은 연수는 밖에서 느껴지는 공숙의 기척에 입을 열었다.
“소개야 누이와 호법 좀 부탁하자.”
“응.”
바로 운기에 들어가는 연수와 경도평.
잠시 눈을 붙이고 안으로 들어서는 도화와 공숙은 그 광경을 보고 의문을 담아 여후상을 바라보았다.
“안심해도 되오. 저 무사는 오래오래 살 팔자 같으니. 명이 보통 긴 게 아니오.”
공숙과 도화는 그 말에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고 있는 모도산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거무죽죽하던 얼굴빛에 핏기가 돌며 화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쁜 내색을 보이는 도화와 공숙이었다.
한 시진이 지나자 눈을 뜨는 연수와 경도평.
연수는 가부좌를 튼 채 미동도 하지 않는 모도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운도 좋은 놈. 도평 이놈 좀 부탁하마.”
말을 마치고는 밖으로 나가는 연수.
“어디가?”
지쳤을 법도 한데 바로 나가는 연수를 보며 소개가 물어왔다.
“일이 좀 있어. 정파에서 무슨 사자가 왔다나?”
“정파에서?!”
정파라는 말에 소개의 인상이 굳었다.
최근 들어 정파인에 대한 적대감이 점점 커지는 소개였다.
“응. 성주님과 같이 만나봐야 해.”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정회가 검을 휘두르며 수련에 한창이었다.
툇마루에 앉아 신을 신으며 잠시 그녀의 검무를 바라보던 연수가 참견을 하고 나섰다.
“초식을 벗어나는 걸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있잖아. 그럴 거면 초식을 완벽하게 펼치던지. 이도 저도 안 되고 있어.”
평소 같으면 반발을 하고도 남을 그녀였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더 정교하게 초식을 펼치는 정회였다.
“하아, 멈춰봐.”
“후우···.”
검무를 멈춘 그녀는 납검하며 연수를 바라봤다.
“너. 신체훈련을 더 해야겠다. 음···. 그래. 물구나무서서 쓰러질 때까지 몸 굽혀펴기를 해. 그리고 온 힘이 소진되면 천천히도 좋으니 칼같이 초식을 구사하는 수련을 해. 절대 검로가 벗어나지 않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매번 검무만 연습해도 하나 소용없어. 그리고 앞으로는 초식을 펼칠 때는 지금의 속도보다 세 배는 느리게.”
“알았어.”
말을 마침과 동시에 검을 풀어 놓고는 그 자리에 물구나무를 서는 정회.
“하나를 해도 바른 자세로 하는 게 중요해.”
잠시 그녀를 보고 있는데 주렴각 밖에서 느껴지는 기척.
비영이 주렴각 밖에서 정문을 열고는 들어오지 않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제 대약전에서 한바탕 했다며?”
“들으셨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비영.
“그 이야기를 듣고 귀형가를 끌고 가서 의각대 놈들을 다 때려죽이려다 겨우 참았다. 다른 가주 들도 화가 많이 났어. 심지어 철목가주마저 망노를 찾아가 따졌다고 들었다.”
“호오, 그 양반이요?”
“철목가주가 망노와 친분이 있을지언정 사리 분별을 못 하는 사람은 아니야. 화령가주는 모든 가주 들을 소집하고 오늘 일이 끝나면 이번 일을 공식적으로 따진다며 열불을 내고 있더군. 이번 출전의 숨은 공로자들인데 이딴 대접을 받아선 안 되지.”
“어쨌든 위기는 넘겼으니까요. 일단 갑시다.”
성주의 거처인 성화각으로 가는 길에 진벽가주가 알은척을 하며 다가왔다.
“오셨소? 안 그래도 기다리던 참입니다.”
“먼저 가 계시지 않고?”
연수의 물음에 진벽가주는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제 사달이 난 후로 성주님 심기가 영 좋지가 않아서···. 다른 가주들 또한 모두 화가 많이 났소. 망노를 비령곡으로 보내자는 가주 들까지 있을 정도니···.”
“지금 같은 상황에서 망노를 쳐내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진벽가주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성의 군사역으로 말하자면 불가능하다고 말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않아도 수나 질적으로 밀린다고 판단되는 전력인데, 귀한 초절정고수 하나를 그냥 쳐버릴 수는 없지요. 하지만···. 성주님의 성정이 한번 화가 나면 그런 걸 따지시는 분은 아니시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연수와 비영이었다.
오래 본 것은 아니었지만 연수가 생각하는 성주는 한번 눈이 뒤집히면 그다지 뒷일을 생각하는 부류는 아닌 것 같았다.
성화각의 앞에 다다르자 성주가 성화 각 앞의 연못에서 세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허리를 숙여 성주에게 인사하는 비영과 진벽가주.
그에 비해 연수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성주를 꼬나 보았다.
-망노 어떻게 하실 거에요?
-글쎄.
-직접 손쓰기 힘드시다면 제가 처리해 드릴 수 있습니다.
성주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걸음을 옮겼다.
“일단 그 사신 놈부터 만나보지.”
접객당으로 걸음을 옮기는 네 무인은 각자 깊은 생각에 빠져 딱히 대화가 오가지 않고 있었다.
한참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던 연수가 먼저 대화의 물꼬를 텄다.
“근데 맹주는 무슨 생각으로 사신을 보냈을까요?”
“글쎄. 이제 와 휴전을 하자 할 리도 없는데.”
“혹시 비령곡에 누구 잡아 온 놈들 있어요?”
성주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진벽가주를 바라봤다.
“있던가?”
“맹주가 신경 쓸 만한 인물은 없습니다.”
성주는 잠시 생각을 해 보더니 연수를 보며 짓궂게 웃었다.
“네놈이 무당제일검을 죽였다고 목을 내어 달라는 게 아닐까? 네놈 목을 주면 휴전 협상을 해 준다고.”
움찔한 연수는 목을 쓰다듬으며 대꾸했다.
“살벌한 말씀 마세요.”
“세상 무서울 거 없는 것처럼 굴더니 맹주는 무서운 모양이구나.”
“그럼요. 아직은 그 양반과 잘못 만나면 목숨 부지하기 힘든데요.”
“크크크 나중엔 아니고?”
씩 웃으며 성주를 바라보는 연수.
“아직 덜 컸다니까요?”
패천후는 연수의 저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서 머지않아서 사파에 새로운 입신경의 고수가 나타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기왕 클 거면 빨리 커라.”
“어떤 양반이 자꾸 짐을 지워줘서요.”
“푸하하하 짐이 될지 힘이 될지는 두고 봐야지.”
진벽가주는 성주와 연수의 대화를 들으며 연수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저 성주의 신임을 받는 신진 고수 정도로 생각했는데, 성주는 연수를 그리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마치 친한 동생을 대하듯 하는 성주를 보며 내심 충격까지 받은 진벽가주였다.
‘성주께도 저런 모습이 있었던가.’
접객당에 도착한 일행은 무림맹의 사신이 머무는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