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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125화 (125/202)

# 125화

종남의 운무검제와는 직접적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자신이 종남의 상승무공을 훔친 것은 사실이었다. 과연 이 사실을 눈치챈 정파의 무인이 얼마나 있겠냐고 생각해 보면 없다고 단정할 수가 없었다.

추룡소개라면 당장 소개가 걸렸다. 그나마 소림신권과 직접적인 원한을 맺지 않은 것을 천운이라 여겨야 할 판이었다.

“후우, 어찌 되겠죠.”

“알고 있지? 맹주는 무당 출신이야.”

“젠장! 맹주가 체통 머리 없이 저를 지목하고 나오겠습니까?”

자연히 목소리가 높아지는 연수였다.

“글쎄 모르지.”

“어떻게 되겠죠. 어차피 안 받고는 배길 수 없는 제안이었어요.”

성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대전으로 가자. 진벽가주, 모두 소집시켜.”

“예.”

진벽가주가 가주 들을 불러 모으러 자리를 옮기자 걸음을 옮기며 주위로 기막을 치는 성주.

“이번 정사 대회가 끝나면 망노를 쳐낸다.”

비영은 주위를 잠시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아니. 적영대장이 직접 처리할 거야. 너는 귀형가에 반발이 없도록 확실히 정리해놔.”

“예! 이미 망노의 사람들은 모두 걸러 냈습니다.”

“적영대장. 문제 있어?”

씩 웃으며 성주를 바라보는 연수.

“그럴 리가요. 진작 치웠어야 했어요. 미꾸라지 한 마리 때문에 흙탕물 마시는 것도 지쳤습니다.”

“미꾸라지라···. 중원에 아홉밖에 없다던 고수 중 일인이야. 나름 큰 인물이니 이무기 정도가 좋겠어.”

“노망난 망령에 불과하죠.”

“필요한 지원은?”

“없습니다. 언제고 명만 떨어지면 그 모가지를 잘라버리죠.”

“정사 대회가 끝나 돌아오면 더는 그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을 것 같아.”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연수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붉은 살기가 휘몰아쳤다.

성주는 비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비영.”

“예.”

“내 후계자는 너다.”

“서, 성주님!”

당황한 비영을 보며 성주는 차가운 목소리로 매몰차게 말했다.

“후계는 확실한 게 좋아. 잡음 따위 듣고 싶지 않구나.”

“...”

“왜 대답이 없어? 이것 또한 적영대장에게 부탁을 할까?”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놈들은 틀려먹었어. 놔둬봤자 너에게나 성에나 짐만 될 것이다. 모두···. 확실하게 처리해.”

“예!”

성주의 권력마저 나눠 받은 일곱 제자를 쳐내라는 성주의 명은 비영에게 그 어떤 때보다 행하기 어려운 명이었다.

기막을 풀며 대전으로 들어서는 성주.

대전에서 잠시 기다리자 열두 가주 들이 모두 모였고, 망노와 몇몇 무력대의 대주들 또한 모였다.

성주는 빠르게 결정된 사항들을 전달했다.

“... 이견이 있나?”

성주가 결정한 사항들에 이견을 다는 가주 들은 없었다.

무거운 표정의 화령가주와 철목가주를 바라보며 입을 여는 성주.

“왜? 자신 없어?”

“그곳에서 뼈를 묻겠습니다!”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이는 화령가주였다.

씩 웃으며 믿음직스럽게 화령가주를 바라보는 성주.

“저 또한 무인으로서 죽겠습니다.”

철목가주 역시 각오를 보이자 대전에 뜨거운 열기가 가득 차올랐다.

오직 망노만이 무표정하게 그런 장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 각자의 가문들을 잘 단속하고 있어. 날짜가 정해지면 열두 가문은 모두 정사 대회에 참가하게 될 것이야. 혹시나 불상사가 없도록 무인들을 잘 단속하고, 정파 놈들 앞에서 조금의 추태라도 보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

-예!

“좋아. 소식이 있을 때까지 쉬고 있도록.”

막 성주가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철목가주가 망노를 힐끔 보고는 입을 열려고 했다.

-그 이야기는 여기서 하지 않는 게 좋겠군.

성주의 전성에 말문이 막힌 철목가주가 성주를 바라봤다.

-이미 그에 대한 처분은 끝났어. 정사 대회가 끝나면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후계자는 비영이다. 앞으로 화령가주와 함께 잘 보살펴 줘.

눈이 부릅떠진 철목가주가 성주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충!

그의 묵직한 전성이 성주의 머릿속에 울렸다.

성주가 일어서 사라지자 슬금슬금 가주 들이 모여서 자신들끼리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화령가주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비영을 잠시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혼자 가려고?”

발길을 돌리는 연수를 붙잡는 비영의 목소리.

“할 일이 많으니까요.”

“가주 들과 친분을 쌓아 두는 것도 좋지 않겠나?”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요.”

“크큭. 성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제일 성내에서 정치를 잘할 사람이 너라고 하던걸? 절대 적으로 두지 말라고 몇 번을 당부하셨지.”

“하아, 정말이지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데 화령가주와 철목가주가 다가왔다.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는 연수.

“그렇게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 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

화령가주의 말에 연수는 말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아직도 전에 일을 마음에 두고 있는가?”

“그때 입은 내상이 아직도 낫지 않고 있어서요.”

가시가 돋친 말에 화령가주는 어색하게 웃으며 품에서 목합을 하나 꺼내 건넸다.

“별건 아니지만 받아주시게.”

눈을 반짝이며 목합을 받아드는 연수였다.

“영약인가요?”

“정혼옥구환이라네.”

“큼큼! 어른이 이리 사과를 하시는데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요.”

화령가주는 어색하게 웃으며 철목가주를 바라봤다.

묵직한 쇳소리의 음성으로 말하는 철목가주.

“어제 있었던 이야기는 들었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서 유감으로 생각한다. 만약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해. 철목가는 그 같은 부당한 일에는 언제든 나서서 힘을 실어 줄 준비가 되어있으니.”

묵직한 기세를 뿜어내며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상당한 노기가 서려 있었다.

“일단 위험한 고비는 넘겼습니다. 다만 그놈 단전을 심하게 다쳐서···. 무인으로서 재기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영약이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워낙에 귀하다 보니. 당시 상황을 들어보니 정파인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세 명이 수많은 정파의 무인들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대항했다고 하더군요. 성을 위해 산화를 각오하고 무리를 한 모양입니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하는 연수의 표정을 보며 철목가주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런 영웅들을!”

뒷말을 삼키며 대전의 구석에서 성주의 제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망노를 노려보는 철목가주였다.

“그렇지 않아도 천괴의를 닦달해 정혼옥구환을 하나 받아내어 치료에 쓰기는 했지만···. 워낙에 중상인지라. 하여 이리 주신 영약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부디 그놈이 무인으로서 재기해야 할 텐데요.”

철목가주는 연수의 말을 들으며 서슴없이 품속에서 목합을 꺼내 들었다.

“이것 또한 써 주게. 남궁세가를 지우는데 숨은 공로자가 무인으로서 주저앉게 되는 것은 성의 큰 손실이지.”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연수는 덥석 목합을 받아들며 입을 열었다.

“염치불구하고 상황이 다급하니 받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철목가주.

“그가 깨어나면 철목가는 적영대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고 전해주게.”

“우리 화령가 또한 그들의 의기를 잊지 않겠다고 전해주시게.”

“예. 그럼 할 일이 많아 가보겠습니다.”

처음에는 반말지거리에 알은척도 하지 않던 연수가 꾸벅 고개를 숙이니 그제야 철목가주와 화령가주는 연수의 성품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전형적인 받은 대로 주는 놈이구나.’

두 가주의 똑같은 생각이었다.

연수를 따라 비영이 몸을 돌리는데 그의 머릿속에 화령가주와 철목가주의 전성이 울렸다.

-화령가는 성주님의 후계자를 인정합니다.

-철목가는 성주님의 후계자를 따를 것입니다.

잠시 움찔한 비영은 두 가주를 향해 슬쩍 고개를 숙이고는 연수의 뒤를 따라 대전 밖으로 나섰다.

대전을 한참 벗어나자 비영이 입을 열었다.

“내가 알기로는 위기는 벗어났다고 들었는데? 그리고 아직 그들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은 거로 알고 있고.”

“큼큼! 모른 척해주세요.”

“자네 인제 보니 영약 욕심이 보통이 아니구만.”

“영약 싫어하는 무인도 있습니까?”

“그래도 보통은 자네처럼 극단적으로 변하지는 않거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못 잡아먹어 안달하던 저 둘을 상대로···.”

“말 몇 마디로 정혼옥구환을 두 개나 얻었으면 남는 장사죠.”

“하하하, 자네 같은 고수도 내력 욕심을 내는 것 보니 무인은 고수나 하수나 똑같군.”

비영의 말에 연수는 문뜩 깨닫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현재의 자신에게 영약은 별 쓸모가 없었다.

정혼구옥환같은 경우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내상 약으로 하나쯤 갖고 다닐만했지만, 그 이상의 영약 따위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앞으로의 길은 내력보다는 운용과 깨달음의 싸움이었다.

‘이래서 없이 살던 사람들이 악착같이 사나 보네.’

하도 내력에 대한 열망이 컸던 시절이 길다 보니 그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소개가 주었던 영약하나에 얼마나 큰 기쁨과 성과를 얻었는지 생각해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 이후로 구룡산을 뛰어다니며 영약을 캐겠다고 난리를 친 세월도 적지 않았다.

‘사부는 잘 계시나?’

구룡산 시절을 떠올리니 절로 사부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다른 이도 아니고 무황이 곁을 지키고 있으니 별걱정이야 없었지만 갑작스럽게 불구가 된 사부의 생활이 어떨지 걱정이 컸다.

자신이 알려준 봉익퇴를 얼마나 익혔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니까. 듣고 있는 건가?”

“예?”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는 거야?”

어색하게 웃으며 솔직하게 말하는 연수였다.

“그냥 어릴 때 생각을 하다가 사부 생각이 나서요.”

“아, 사부님은 좀 어떠셔?”

“생명은 구하셨지만, 그때 보셨듯이 신체적 불편이 커지셔서 어떠실지 걱정이네요.”

“음.”

일반인 또한 장애가 생기면 폐인이 된다고 말할 정도로 치명적인데 무인이 그런 장애가 생겼을 때는 그 심적 타격이 어떠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비영이었다.

“강한 분이시니 분명 잘 극복하실 거에요.”

“그래야지.”

주렴각의 정문을 열자 땀으로 온몸이 젖은 정회가 천천히 초식을 펼치고 있었다.

팔과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상태에서도 검로를 지키려 애쓰는 그녀의 눈빛에서 강렬한 독기가 느껴졌다.

하수의 수련이었지만 무인으로서의 뜨거운 열정이 느껴지는 그 모습에 연수와 비영은 잠시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겨우 초식을 마무리 짓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정회.

“쯧쯧.”

혀를 차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비영과 연수를 확인하는 정회.

“내가 수련할 때는 절대 자의로는 쓰러지지 않았다. 내 사부께서 말씀하시기를 육체의 한계는 생각만큼 낮지 않다고 하셨지. 육체의 한계로 쓰러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무인의 의지로 쓰러지는 것은 수치라 하셨어.”

연수의 매몰찬 말에 부들부들 떨리는 육체를 일으켜 다시 초식을 펼치는 정회였다.

“알아둬. 무인의 수련은 항상 자신과 싸움이야.”

말을 마치고는 정회를 지나쳐 들어가는 연수.

그런 연수의 뒤를 따르며 비영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지금도 충분히 한계 같은데? 굳이 몰아붙이는 이유가 있나?”

“저 두 눈에 가득 맺힌 독기 보셨죠? 몰아쳐야 크는 부류에요. 자질도 훌륭한 편이고. 잘만 가르쳐 놓으면 믿고 도화의 안전을 맡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여인의 몸으로···.”

“그녀를 모욕하지 마세요. 그녀는 무인입니다.”

비영은 가녀린 정회가 안타까워 생각 없이 했던 말에 아차 싶었다.

“실언했군.”

모도산과 두 무사가 치료받는 안채로 들어서자 여후상이 한숨을 몰아쉬며 시침한 침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왔어?”

공숙과 소개는 안으로 들어서는 연수에게 시선을 모았다가 따라 들어오는 비영에게 슬쩍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놈들은 좀 어때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입을 여는 여후상.

“안심해도 된다네. 해서 하는 말인데···.”

뒷말을 흐리는 여후상.

“갔다 오세요. 무슨 일이 있으면 부를 테니.”

환자들이 위급한 상황을 넘기니 완전한 불구가 된 사제가 걱정되는 여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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