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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138화 (138/202)

# 138화

몸을 세워 보려는데 잘린 허리의 근맥으로 인해 도무지 몸을 세울수가 없었다.

땅에서 꿈틀대며 몸을 뒤집은 연수는 떨리는 팔을 이 악물고 들어 올려 품속의 전극공합을 꺼내려 했지만, 도무지 손가락과 손목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마치 손이 아닌 물건을 붙들고 품을 뒤지듯 겨우 전극공합을 꺼내 땅에 떨궈놓은 연수는 목합을 열지 못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빌어먹을!”

바닥에 엎드려 꿈틀대며 전극공합을 바라보는데 목합이 여러 개로 나뉘어 보이며 초점이 잘 맞지 않았다.

‘이대로 정신을 잃으면···. 죽는다.’

입술을 꽉 깨물며 정신을 차리려는 연수.

맹주와 의문의 고수 십인. 복면을 슬쩍 올려 자신에게 침을 뱉던 그 무인들의 목을 딸 기회를 눈앞에서 놓칠 수는 없었다.

정신을 붙잡으며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을 움직여 겨우 목합을 열자 연보라색의 단약 하나가 목합에서 굴러 나와 땅을 굴렀다.

이마로 땅을 짚고 꿈틀대며 기어가 겨우 단약을 입에 무는 연수의 얼굴은 피와 흙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단약은 입에 들어가기 무섭게 녹으면서 목을 넘어갔다.

깨어진 단전으로 회전하며 전극공합의 엄청난 내기가 몰려들자 그 아찔한 고통에 정신이 번쩍 드는 연수였다.

“끄으으······. 아아아!!!”

참으려 해도 비명이 절로 터져나왔다. 깨어진 단전으로 내력이 모이며 새로운 단전을 형성하는 그 고통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는 고통이었다.

흩어졌던 무영심공의 내력을 대신하여 쌓이는 기운들은 도무지 연수의 뜻대로 움직이질 않으며 연수의 온 경락을 휘돌며 제멋대로 다니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덕에 출혈이 잦아들고 있다는 것뿐.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온 경락과 혈을 돌아다니던 전극공합의 내력이 연수의 백회로 몰려들었다.

연수의 백회에 뭉쳐있던 살기와 융합되기 시작하는 일부의 내력.

그 순간 연수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검붉게 물들어있는 연수의 눈.

전극공합의 일부 내력이 백회의 살기와 융합되자 내기의 성질이 뜨거워지며 연수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자 연수는 참을 수 없는 살심이 끓어 올랐다.

뜨여진 연수의 시야에 성주의 목이 잘린 시신이 들어오자 살심이 폭발했다.

“다 죽여버린다!!!”

주변으로 폭발하듯 퍼지는 살기.

주변 숲이 술렁거리며 많은 야생동물이 연수가 있는 방향을 등지고 내달리며 멀어졌다.

주변에 무림맹의 무인들이 떠나고 없던 것은 연수에게는 천운이 아닐 수 없었다.

살기를 먹은 뜨거운 내력은 점차 그 열기를 더하며 연수의 경락을 태울 듯 미친 듯 내달렸다.

모든 불순물을 태우는 것도 모자라 경락과 혈마저 상하게 만드는 내력.

겨우 한줄기 남아 있던 연수의 이성은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인지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살아 있는 생물체를 찢어 죽이고 싶다는 마음을 겨우 억누르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는데 불현듯 소림의 노사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불심목. 정사심도. 파정구심. 불변진본. 공불공만-

‘공불심목. 정사심도. 파정구심. 불변진본. 공불공만...’

끊임없이 스무 글자를 외며 살심과 뜨거운 내기를 억누르려 안간힘을 쓰는 연수.

전극공합 내력의 일부분은 그런 연수의 의지와 스무 글자의 정심에 반응하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유수와 같이 도도하게 흐르며 화기에 손상된 경락과 혈을  회복시키기 시작하는 기운.

두 기운은 상반된 기운임에도 점차 균형을 이루며 연수의 새로운 단전으로 모여들었다.

그 기운들을 느끼며 점차 새로운 단전과 전극공합의 내력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연수.

연수의 모공 밖으로는 점차 하얀 정체를 알 수 없는 실이 땀처럼 흘러내렸다. 그 하얀 실 같은 것에 감싸져 거대한 고치 덩어리로 변하는 연수였다.

나중에는 완전한 하얀 고치 덩어리에 싸인 연수의 신형은 점차 땅속으로 조금씩 파고들어 갔다.

기이한 현상은 계속되어 칠 일이 지나자 결국 땅속으로 모습을 감춘 연수의 신형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시간의 흐름도 자신의 상황도 모두 잊고 신비한 전극공합의 내력에 빠져드는 연수.

새로 생긴 하단전이 완전히 자리를 잡자, 서로 균형을 잡은 두 기운을 움직이며 자유로운 내기의 움직임과 두 기운의 성질에 빠져들어 너무나 즐거운 연수였다.

드디어 자신의 이성마저 잃고 무아지경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연수.

그동안 무인으로 살며 쌓여왔던 인지하지 못한 수많은 깨달음이 하나둘 떠오르며 그 무리 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너무나 황홀하여 모든 것을 잊게 만들어 주었다.

땅속 하얀 고치 속에서 겨우 가부좌를 유지하고 있던 연수의 몸은 밝게 빛나며 골격부터 새로이 태어나고 있었다.

끊어진 근맥이 새로이 이어지고 피부가 검게 타며 벗겨지고 머리카락이 푸석해지며 새로운 머리카락이 자랐다.

본인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새로운 육체의 재구성이 이루어지며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여 차오르고 있었다.

땅속 생명의 기운이 약동하자 전극공합의 일부는 그 생명의 기운에 영향을 받으며 새로운 기운으로 탈바꿈되고 있었다.

사람의 육체를 회복시키고 때로는 단단하게 보호하며 수 기운의 보조를 받으면 한없이 자라는 목의 기운.

연수는 새롭게 단전에 자리 잡는 목의 기운을 느끼며 떠올랐던 무리와 목의 기운을 접목했다.

때로는 무자비한 살심에 타오르며 붉은 기운을 더 크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정심한 수기를 받아 크게 자라는 그 성질을 통해 많은 초식과 운용을 심상 속에서 해 보며 새로운 무공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알고 있던 무공을 변형시켜 보기도 했다.

화·수·목 세 기운의 조화로운 균형을 느끼며 안정되어 가는 연수.

그런 조화의 기운이 연수의 깨달음에 반응하며 심장 옆의 명치 부근으로 올라와 새롭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중단전.

지고한 경지로 나아가면 열린다는 중 단전이 열리자 정기와 사기가 합쳐지며 중단전을 가득 채워갔다.

‘아! 나의 본을 보여주는 기운들이구나.’

그 충족감에 또다시 한참을 빠져드는 연수였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심상의 세계는 연수에게 새롭고 흥미 가득한 곳이었다.

그 안에는 그간 보아왔던 많은 무인이 있었고, 많은 무공이 있었다.

또한, 자신이 무인으로 살아왔던 삶이 그대로 녹아있었다.

수많은 무공을 익혀 보고 많은 무인과 싸워 보고 대화해보는 연수였다.

그런 꿈결 같은 시간 속에 점차 자아마저 천천히 잊어갈 무렵 그런 연수의 심상에 강렬한 기운을 내뿜는 무인이 한 명 나타났다.

다짜고짜 일도를 휘두르며 주변에 가득찬 무리와 심상 무공을 모두 베어내는 남자.

주변의 모든 걸 빨아들이는 듯한 그의 일도를 보는 순간 연수의 이성이 깨어났다.

말보다도 몸이 먼저 반응하며 그의 일도를 막아가는 연수.

강렬하게 이글거리며 타오르듯 뻗어 나오는 도강을 막아내자 몸이 뒤로 주르륵 밀릴 만큼 강력했다.

힘으로는 웬만해서 밀려본 적이 없는 연수였다.

그럼에도 남자의 도에는 사람을 밀어내며 찍어누르는 듯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거스르기 힘든 무거운 기운.

세상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이글거리는 기운.

그리고 사람의 정신을 찍어누르는 듯한 기세.

‘성주님!’

입매를 비틀며 자아가 깨어나는 연수.

연수는 그와 동시에 빠르게 두 단검을 놀리며 성주의 도를 쳐냈다.

한 번으로 막기 힘들다면 여러 번 쳐서 기운을 죽이면 그만이었다.

세상을 벨 듯 날아오는 도를 빠르게 쳐내는 신기를 보이는 연수.

성주의 도가 연수의 단도에 막혔을 때는 성주 역시 웃고 있었다.

기이하게 비틀리며 그대로 밀고 들어오는 도.

그런 도에 맺힌 강맹하게 이글거리는 도강은 더욱 커졌다.

성주의 도강에 맞춰 연수의 단검에 맺힌 검강 또한 커지며 기운을 키웠다.

하지만 끝내 연수의 강기를 잘라내며 파고드는 성주의 강기.

연수는 더 강렬하게 내기를 몰아넣으며 강기에 내력을 쏟아부었다.

연수의 강기가 단검 밖으로 두 자가 넘게 튀어나오며 완벽한 검붉은 강기의 모습으로 바뀌자 파고들던 성주의 강기는 결국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콰크그그극

강기의 불꽃이 튀며 사방으로 경기가 몰아쳤다.

그때부터 두 무인의 모든 걸 쏟아붓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쾌와 진을 궤로 하는 연수와 중과 직을 궤로 하는 성주.

연수의 빠른 직접적인 연격을 도를 비틀며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막아내고는 중도를 내뻗는 성주.

그런 성주의 중도를 무겁게 막아내는 연수.

두 사람이 오 백 초식이 넘도록 결판을 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백중세의 싸움을 이어갈 때쯤 주변이 크게 흔들리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쾅!

하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고 싸움을 계속하는 두 사람.

성주의 중도는 한발 한발 걸어나가며 쌓아온 꾸준한 노력이 느껴지는 도였다.

정직하고 지루하지만 그렇기에 무겁고 강력했다.

그런 도를 상대하고 있자 무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이 떠올랐다.

자신도 자주 했던 말이고 무수하게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무에 있어 하루아침이 이루어 지는 것은 없다.

어쩌면 자신은 타고난 재능에 기대어 너무 빠르게 올라오느라 꾸준히 쌓지 못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걸음씩 꾸준히 쌓아서 견고한 성벽 같은 거대한 무를 쌓지 못하고 너무 단기간에 뛰어오르며 놓친 것들이 많은 것은 아닐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무에 의심이 들기 시작하자 백중세를 유지하던 두 사람의 싸움 균형이 무너졌다.

흔들리는 연수의 초식들, 그 빈틈을 놓칠 만큼 성주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연신 위기에 몰리는 연수.

성주의 도는 그런 연수의 코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핏

소리와 함께 살짝 베여 피가 튀는 연수의 코끝.

그와 동시에 실제 육체의 코끝에서 한 방울의 피가 또르르 떨어져 내렸다.

다급해진 연수는 눈을 부릅뜨며 성주의 도에 집중했다.

‘이제 와 부족한 힘이 갑자기 생길 리가 없어.’

부족한 것은 천천히 채우면 그만이었다.

부족한 것을 아쉬워하기보다 자신 있는 장점을 앞세워 싸워가면 되었다.

마음을 먹는 순간 한결같던 성주의 도를 피해내며 단검을 휘두르는 연수. 성주의 주위로 잔상을 남기며 크게 도는 연수였다.

빠르게 움직이며 성주와의 거리를 조절하던 연수가 성주에게 다가가며 단검을 연속으로 휘둘렀다.

-콰콰쾅! 쾅! 꽝! 꽝!

앞으로 나아갈수록 그 힘을 더 키워가며 기세를 키워가는 연수.

마지막 초식은 성주의 도와 비슷한 힘으로 부딪히며 성주의 도를 중간에 막아냈다.

끝까지 도를 뻗지 못하고 중간에 막힌 성주는 처음으로 인상을 굳히며 뒤로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 거리만큼 앞으로 발을 뻗는 연수의 연격이 이어지자 성주는 연신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입매를 호쾌하게 비틀며 그런 연수에게 맞서가는 성주.

두 사람의 싸움이 더 격렬해지며 이천 초식을 넘어가자 성주는 뒤로 훌쩍 물러섰다.

자신의 분신 같은 도가 먼지로 변하며 날아가기 시작하자 성주의 입이 열렸다.

“정신은 차린 것 같구나. 뒤는 맡기고 먼저 가마.”

도의 손잡이와 같이 먼지가 되어 날아가기 시작하는 성주.

점점 그의 육신이 먼지가 되어 주변으로 날아가자 연수가 외쳤다.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성주는 말없이 편안한 웃음을 지으며 연수를 바라보다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성주님!!!”

외침과 함께 번쩍 눈을 뜨는 연수.

깜깜하고 움직이기 힘든 상태에 깜짝 놀란 연수는 잘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온통 시커멓고 어두운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제야 숨이 답답하다는 것을 느낀 연수.

온몸의 모공을 열어 호흡을 대신하고 있음을 깨달은 연수는 벌떡 일어서며 솟구쳐 올랐다.

하얀 눈이 가득 쌓인 땅 위로 솟구쳐 오르는 연수의 신형.

눈밭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떨어져 내린 연수는 자신을 뒤덮고 있던 고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뭐지? 이 고치 같은···.’

자신을 감싸고 있던 고치를 들어 올리는 손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잘 움직임을 확인한 연수는 끊어졌던 근맥을 살펴보았으나 이미 아물어버린 근맥은 피부의 흉조차 남겨두질 않았다.

밖으로 나오자 자신의 몸에 시커멓게 썩듯 말라 비틀어져 붙어있는 가죽이 보였다. 그 냄새가 너무나 지독하여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주변을 돌아보니 눈으로 뒤덮여 그 경치가 많이 변했지만, 자신이 성주와 함께 죽음을 불사하고 혈투를 벌였던 그곳이 분명했다.

‘벌써 눈이 올 만큼 시간이 지난 건가? 대체 얼마나 저 땅속에 파묻혀 있던 거지?’

성주의 시체가 있던 곳으로 가 눈을 치워본 연수는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백골로 변해버린 성주의 시체.

그나마 연수의 살기로 인해 야생동물들이 이 근처로는 발길조차 돌리질 않아 온전히 남겨져 있는 성주의 시체였다.

“배, 백골이라니···. 대체···.”

머리를 흔들며 생각을 지운 연수는 성주의 시신을 잘 수습하여 땅을 파고는 그곳에 묻었다.

제법 큰 바위를 수강으로 댕강 잘라 반장은 넘는 묘비를 세워준 연수.

연수의 손가락이 묘비에 닿자 손끝에 강기가 맺히며 묘비에 글자를 새겼다.

-사파의 희망이었던 사황성주 패천후. 정파의 더러운 암수에 이곳에 잠들다.

마지막 심상 속 성주의 편안한 웃음을 떠올리며 연수는 합장하고는 중얼거렸다.

“그곳에서 편히 지켜보십시오. 세상을 두 쪽 내는 한이 있더라도 이 혈채는 받아낼 테니.”

차가운 겨울바람이 누더기가 되어 몸을 겨우 가리고 있는 연수의 얇은 차림을 흔들고 지나갔다.

성주의 묘를 등지며 걷는 연수의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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