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땅에 발이 닿지 않은채 허공을 박차며 빗살같이 날아가는 연수의 신형.
가뜩이나 썩고 찢겨있던 연수의 얇은 차림이 곧 벗겨질 듯 펄럭였다.
숲의 불규칙하게 자라있는 나무들을 물 흐르듯 피해가며 허공을 날아가는 연수였다.
한참을 이동하니 숲이 끝나며 나오는 관도.
관도에 들어서자 천천히 걷기 시작하자 멀지 않아 덕창현이 나왔다.
현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은 연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바닥에 끌릴 듯 긴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어있고, 옷차림은 시커멓게 타듯 썩고 찢겨 겨우 걸치고 있으며, 냄새는 어찌나 나는지 근처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 질 정도이니, 그런 시선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안 씻었는지 몸에는 때가 꼬질꼬질 껴 있는 그 모습은 보통의 거지가 아닌 사연 있는 상거지 꼴이었다.
현의 중심으로 가다 보니 아낙들이 빨래하는 하천이 보였다. 연수는 하천에 발을 담그며 대충 씻고는 걸어 나오며 옷집을 찾았다.
제법 큰 옷집을 찾은 연수는 그곳으로 곧장 걸어갔다.
가게의 밖에서 옷감을 살피던 주인은 연수가 곧장 걸어오자 제발 자신의 가게로 다가오지 않길 바랐지만, 그녀의 바람과 다르게 연수는 곧장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막 가게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두 팔을 벌리며 연수를 막아서는 중년의 여인.
“적선이라면 다른 데로 가!”
잠시 작은 중년의 여인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던 연수는 고개를 돌렸다. 이 가게의 맞은편에 작은 옷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으로 말없이 발길을 돌리는 연수.
중년의 여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작은 옷가게로 들어서는 연수.
옷가게의 안에는 덩치 큰 사내 둘이 아이를 업고 있는 여인 하나를 두고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들어선 연수를 돌아보는 두 사내는 인상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웬 거지새끼가 적선을 오고 지랄이야? 보면 몰라? 이 집은 우리 돈 갚기도 빠듯하니까 꺼져.”
말을 마치고는 다시 아이를 업은 여인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협박을 계속하는 사내.
“그 애새끼를 돈 대신 가져가기 전에 빨리빨리 갚으란 말이야. 굳이 우리가 여기까지 발걸음을···.”
“옷을 좀 사려고 하는데.”
연수의 말에 말이 끊긴 사내는 한숨을 푹 내쉬며 옆에 사내에게 눈짓했다.
눈짓을 받은 사내는 커다란 몸을 돌리며 고개를 꺾어 목을 풀었다.
“딱 보니까 미친놈이네. 너 같은 놈은 매가 약이라더라.”
-퍽!
사내의 묵직한 주먹이 연수의 이마에 닿는 순간 인상을 와락 굳히며 주먹을 움켜쥐고 뒤로 물러서는 사내.
“으으···.”
부러졌는지 퉁퉁 부은 주먹을 움켜쥔 사내를 보고는 남은 사내는 상대가 보통이 아님을 깨달았다.
“누, 누구시오?”
“너네는 누구지?”
“저, 저희는 흑우방에 무사들입니다.”
“흑우방?”
당최 들어본 적이 없던 연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덕창이 귀주와 가깝다고는 하나 사천이다. 당문과 아미파, 청성파가 있는 사천에 벌써 사파인들이 자리를 잡았다니, 도무지 시간이 얼마나 흐른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모르겠네. 됐고, 꺼져.”
사내는 이 작은 옷집의 여주인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물러갔다가는 앞으로 돈을 받기 더 힘들 듯하여 용기를 내었다.
“우, 우리 흑우방은 사패련의 소속이요!”
사패련에 작게나마 돈을 상납하고 있으니 소속이라면 소속이라 할 수도 있었다.
연수의 고개가 갸웃했다.
“사패련? 거긴 또 뭐 하는 곳이야?”
“사패련을 모르오? 사파인들을 이끄는 사파인들의 하늘 아니오?”
순간 연수의 미간이 모이며 주름이 생겼다.
“사황성은?”
“사황성이 사패련에 밀려 지하로 숨어든 지가 언젠데 이제 와 사황성을 찾소? 그런 패배자들···. 컥!!!”
순간적으로 잔상을 남기며 다가와 사내의 목을 움켜쥐는 연수.
“다시 한번 말해봐.”
무심한 연수의 눈을 바라본 사내는 사지를 벌벌 떨며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그런 사내를 놓아준 연수는 씹어뱉듯 말했다.
“꺼져. 같은 사파인이라고 봐주는 건 이번 한 번뿐이니.”
사내 둘은 바닥을 기다시피 옷가게에서 튀어 나갔다.
홀로 남은 젊은 옷가게의 주인은 등에 업은 아이를 돌려 안으며 두려운 눈으로 연수를 바라봤다.
연수는 빙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꼴이 이렇다 보니 옷을 좀 살까 해서 왔소.”
넝마가 된 품속으로 손을 넣어보니 다행히 전낭이 그대로 있었다.
냄새가 제법 났지만, 전낭을 뒤집으니 금자가 세 냥이나 나왔다.
“적당히 무복 하나만 내어 주시오. 신발도 하나 내어주시면 좋고.”
금자를 하나 내미는 연수를 보는 여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저, 저 죄송하지만, 사정이 좋지 않아 거스름돈이···.”
“잔돈은 되었습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흑도 놈들이 다녀갔는데 푼돈이라도 남아 있을 턱이 없었다.
여인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하, 하지만···.”
“괜찮소. 그보다 무복과 신발을 같이 좀 구할 수 있겠소?”
여인은 서둘러 몇 벌의 무복과 가죽신을 가져왔다.
연수는 그중 얼추 크기가 맞는 회색 무복을 골라 갈아입고 제일 평범해 보이는 가죽신으로 갈아 신었다.
옷과 신을 갈아신고 머리를 질끈 뒤로 묶은 뒤에 긴 머리카락의 중간을 수도로 잘라내니 완전 다른 사람처럼 변한 연수.
“후우.”
머리마저 멀끔하게 정리하고 나니 좀 안정이 되는 연수였다. 아무리 그가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지만 좀 전까지의 몰골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 머리카락과 저 넝마가 된 옷과 신은 대신 좀 버려주시오.”
“예! 그보다 진정 이 큰돈을 다 받아도 될지···.”
“걱정하지 말고 받아 두시오. 그보다 흑우방이라는 곳이 어디인지 아시오?”
깜짝 놀라며 손을 잘게 떠는 여인은 아이를 꽉 안으며 불안한 눈으로 연수를 보았다.
“잠시 그들과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알려 주시오.”
“그들은···.”
옷가게 밖으로 나오는 멀끔해진 연수를 바라보는 맞은편의 중년 여인은 눈을 부릅뜨며 작은 옷가게로 뛰어들어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수는 이제 기울기 시작한 해를 올려다보았다.
“상천루라···.”
옷가게의 주인에게 들은 말을 떠올리며 읊조리는 연수.
그런 연수의 발걸음이 상천루로 향했다.
한참을 걷자 사 층이나 되는 거대한 홍루가 나타났다.
상천루라는 커다란 현판을 내건 주루의 앞에는 헐벗듯 옷을 입은 여인들이 대낮부터 주위에 사내들에게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상천루로 연수가 다가가자 젊은 미모의 여인이 연수의 팔짱을 끼며 달라붙었다.
“어마! 공자님 너무 훤칠하시다. 오늘 이 앵희와 좋은 밤 보내는 거 어때요?”
여인의 젖가슴이 물컹하며 팔에 눌려오자 연수는 무심하게 젊은 여인을 바라봤다.
연수의 칠흑 같은 무심한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자 맨살을 들어낸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비춰져 보였다. 그 모습에 여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문득 이리 사는 삶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록 이 일을 하며 잊었던 부끄러움이 떠오르자 꽉 잡았던 팔의 힘이 절로 풀렸다.
잠시 그런 여인을 바라보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는 연수.
상천루로 들어서자 점소이가 비굴해 보일 정도로 굽실거리며 연수의 앞으로 달려와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저희 상천루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자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찾는 여인이 있으십니까?”
“여인은 되었고, 흑우방의 두목이 여기서 기거한다 해서 찾아왔다. 그를 좀 만나야겠으니 안내를 해 다오.”
점소이의 표정에 순간적으로 싸늘한 예기가 스쳐 갔다.
“따라오시지요.”
연수는 점소이의 변한 태도는 신경 쓰지 않고 그의 뒤를 따랐다.
일 층의 뒤편 주방을 지나자 지하로 가는 바닥 문이 있었는데 그 문을 열자 시커먼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왔다.
점소이의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서니 여러 개의 문이 나왔다. 문들을 지나치며 제일 끝방의 문을 두드리는 점소이.
“누구냐?”
“경팔입니다. 두목을 찾는 놈이 있어 데려왔습니다.”
문이 열리며 신경질적인 사내의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런 제기랄! 아무나 찾는다고 여길 데려와?”
점소이는 움찔했다.
“죄, 죄송합니다. 평범한 놈 같지는 않아서···.”
“평범하지 않으면? 뭐?”
점소이의 뒤에 있는 연수를 노려보며 말하는 사내. 그 사내의 옆으로 얼굴에 잔뜩 멍이 들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내가 연수를 알아봤다.
“저, 저놈입니다!”
“뭐가?”
“그 옷가게 수금을 방해한···.”
-채챙!
사내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도를 뽑아 드는 사내들.
그런 사내들의 제일 끝에 앉아 있는 사내는 눈매를 좁히며 입을 열었다.
“일단 들어와 봐. 뭐 하는 놈인지 얼굴 좀 보자.”
연수는 점소이를 제치며 안으로 들어섰다. 다섯 명의 사내는 도를 꺼내 들고 그런 연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연수에게 주먹이 골절되고 목을 잡혔던 두 사내를 빼고는 죽일 듯 살기를 흘리며 연수를 노려보는 사내들.
잠시 그런 사내들을 훑어보고는 그 끝에 여유롭게 앉아 있던 사내를 바라보는 연수.
앉아 있던 사내는 그런 연수의 시선에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너희 둘은 아까 말했듯 그 옷가게 집 주인년 잡아다가 준비시켜서 삼 층에서 장사하게 해. 생긴 게 곱상하니 손님 좀 받을 거다. 애새끼는 우물에 던져넣든 절에 버리든 하고.”
연수의 눈치를 보며 움찔움찔 걸음을 옮기는 두 사내의 발이 방 밖으로 넘어가는 순간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왔다.
밀폐된 공간에 무슨 바람이 부나 싶은 순간 온몸이 토막 나며 핏물을 토해내며 허물어지는 두 사내.
여유롭게 앉아 있던 사내는 눈을 부릅뜨며 벌떡 일어났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내들은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 말문이 막혔다.
“쯧쯧. 같은 사파인 이라고 봐주는 건 한 번이라고 분명 말했거늘.”
무거운 침묵 속에 연수의 말만이 방안을 울렸다.
도를 들고 있는 사내들을 스쳐 지나가며 무리의 대장 앞으로 다가간 연수.
“비켜봐.”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리를 내주는 사내.
의자에 앉은 연수의 입이 열렸다.
“몇 가지 물을 게 있어서 찾아왔다.”
사내는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이마를 박았다.
-쿵.
“하문하십시요.”
무리의 두목이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박자 도를 꺼내 들던 사내들 또한 도를 버리며 무릎을 꿇었다.
“내가 어디 멀리 다녀오느라 중원의 돌아가는 정세를 전혀 몰라. 그러니까 그 정사 대전이 끝나는 정사 대회가 열린 지가 벌써···.”
“삼 년이 지났습죠.”
“..그렇지···. 벌써 삼 년이나 지났구나.”
“예.”
“그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상히 털어나 봐.”
“그 이후로 말입니까? 그러니까 그 이후로 정사 대전이 끝이 났고, 걱정하던 마교의 중원 침공은 없었습니다. 마교와 내통하던 사황성주와 그가 마교와 함께 키운 암수살성이라는 죽일 놈을 무림맹주가 직접 일벌백계했습니다. 같은 사파인 이지만 사황성의 성주라는 놈이 마교와 내통했다니 놀랄 일이었죠.”
-쾅!
참지 못한 연수가 책상을 내려치자 너무나 신비하게도 책상이 가루가 되어 바닥에 쌓였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그 신기에 장내의 사내들은 눈을 부릅뜨고 입을 쩍 벌린 채 멍하니 가루로 변한 책상을 바라봤다.
“히끅!”
너무 놀라 딸꾹질을 하는 사내 하나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누가 성주께서 마교와 내통했다고 하던가?”
“그, 그게···.”
“말해.”
미간을 구긴 연수의 시선을 받은 사내는 고개를 숙여 연수의 눈길을 피하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무, 무림맹주와 귀형신살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망노!”
씹어뱉듯 말하는 연수의 말에 사내는 말을 끊고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잠시 화를 삭인 연수가 고개를 숙인 사내에게 시선을 옮겼다.
“계속해.”
“그, 그 이후 사황성은 귀형신···. 망노와 성주의 마교내통을 고발한 그의 직계제자들 측과 귀형가주를 중심으로 모인 여덟 가문 측으로 둘로 쪼개져 분열했습니다. 망노를 중심으로 뭉친 사파인들의 세가 훨씬 더 컸고, 또 그들은 무림맹의 인정을 받으며 사패련이라는 이름으로 분리되었습니다.”
“흥! 사파 놈들이 왜 무림맹의 인정이 필요해!”
“그, 그것이···. 휴전과 연합을 맺은 관계로···.”
“그래서 사황성은?”
“그 후에 사황성과 사패련의 치열한 싸움이 있었습니다만···. 사황성은 사패련에 밀려나 지하로 숨어들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소인도 알 수가 없습니다. 사황성의 성주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나타낸 것이 이년 전이었습니다.”
“젠장! 그럼 귀주는 지금 사패련이 있나?”
“사패련은 강서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럼 귀주는?”
“귀주에는 여러 사파들이 남아 있지만, 사황성은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황성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지?”
“그, 그건 저도 잘···.”
“이런 빌어처먹을!”
순간 갈 곳을 잃은 연수는 문득 일행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