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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158화 (158/202)

# 158화

도화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공숙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중얼거렸다.

“그놈만 만나면. 그놈 얼굴만 보면, 나을 거야. 다 나을 거야.

*     *     *

혈개문에서 한동안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연수는 오랜만에 모도산과 도석 가여구를 불러 무공을 지도하고 있었다.

특히나 모도산은 조금만 이끌어 주면 언제라도 절정의 경지에 발을 디딜 수 있을 만큼 훌륭하게 성장해 있었다.

혈개문에서는 사실 누군가에게 무공을 가르치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자질이 괜찮은 어린 무사들은 소개에게 직접 맡기고 싶어 크게 손을 대지 않았고, 그 외에 무사들은 그냥 손을 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정사 대전에서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벌어주고, 남궁세가를 멸문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던 부하들과 시간이 남으니 절로 무공지도를 해 주고 싶어진 연수였다.

“그러니까 상승무공도 좋지만 너는 명상시간을 더 늘리는 게 좋아. 앞으로 네가 가야 할 길은 육체수련은 줄어들고 명상을 통한 깨달음을 갈구하는 길이 될 거야.”

“그런데 막상 명상을 하려 해도 눈을 감고 뭘 해야 할지 잘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연수는 고개를 저으며 모도산의 머리를 탓했다.

“멍청한 놈. 의지를 가지면 마음이 따르고 마음이 따르면 몸이 움직이는 것을. 죽어라. 몸만 혹사한다고 뭐가 되는 줄 알아?”

모도선은 멍청하다는 말에 입을 댓 발 내밀고는 항변했다.

“대장님께서 신체 훈련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고 하셨었잖아요. 그 이후로 죽어라 갈고 닦아 여기까지 온 겁니다.”

“이 멍청한 놈아. 일류의 끝자락까지 왔다는 놈이 명상하나 제대로 못 하고 몸만 굴리는 게 제대로 된 거냐?”

“그럼 명상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면 되지 왜 자꾸 머리 나쁘다 탓하십니까?”

연수는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렸다.

“너나 저 밖에서 수련하는 놈들이나 다른 게 뭔지 통 알 수가 없다.”

“아니?! 대장님 말씀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저 밖에 있는 멍청한 놈들이랑 저랑 비교하시다니요!”

“근데 이 새끼가, 언제부터 나한테 소리를 다 질렀냐?”

“대장님이 자꾸 억지를 쓰시잖아요!”

“억지? 너 오늘 억지 한 번 제대로 당해봐라.”

연수는 짐짓 두 팔을 걷는 시늉까지 해가며 인상을 구겼는데 모도산은 화가 단단히 났는지 콧방귀도 뀌질 않았다.

오랜만에 부하들을 가르치는데 어찌 이리 일이 풀렸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도석과 가여구역시 둘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놈이! 대가리 좀 컸다고….’

연수는 모도산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줄 생각으로 일 권을 내지르며 출수했다.

헌데 가볍게 내지른 일권을 모도산은 눈을 부릅뜨며 막아냈다.

“호오~ 막아?”

“저도 그동안 놀고 있지 않았습니다.”

모도산의 지지 않는 입심에 고개를 저은 연수는 권로를 바꾸며 장괘구권의 초식들을 풀어냈다.

하지만 험한 사파에서 구르며 일류의 끝자락까지 성장한 모도산이었다.

직선적인 연수의 권을 별 무리 없이 걷어내는 도산.

하지만 역시 힘에서 조금씩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 걸음을 밀리면 다음 권격의 힘이 반 배는 더 보태지는 듯하여지자 모도산은 입을 꽉 다물었다.

이대로 계속 밀리다가는 도무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쉬익!

이제는 살벌한 소리까지 대동하는 연수의 일 권이 날아왔다.

모도산은 도무지 막을 자신이 없는 저 일격을 보고는 눈을 부릅떴다.

-퍽!

“호오!”

연수의 입에서는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막을 수 없으면 본능적으로 피하는 것이 무인이다. 한데 눈을 부릅뜨며 권을 맞고는 반격을 펼쳐오는 모도산은 제법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눈앞의 손해를 감수하고 돌파할 판단을 내리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모도산이 물러섰다면 앞으로 두 초식 안에 모도산은 바닥을 구르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고수와의 싸움을 겪어 보았지만, 모도산만큼 빠르게 몸을 던지며 반격을 가해오는 고수를 본 적은 없는 연수였다.

-파팟! 퍽!

“이놈아! 순간적인 판단은 좋은데 그런 허술한 공격을 하면 그렇게 바닥을 구르게 되는…!!!”

힘없는 모도산의 반격을 가볍게 막아내고는 그의 빈 명치에 제대로 일격을 꽂아 넣은 연수였다.

텅빈 곳에 제대로 들어간 주먹이었기에 딱히 내력을 담지는 않았지만 절대 멀쩡히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배를 움켜쥐고 앞으로 기울던 모도산의 신형이 멈칫하고는 부들부들 떨면서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

얼굴을 구기며 기수식을 취하고는 다시 덤벼오는 모도산.

-퍼퍽! 퍽!

살짝 약이 오른 연수의 손속이 조금 더 거칠어졌다.

하지만 연수의 연격을 온몸으로 맞으며 끝까지 손을 뻗는 모도산이었다.

그의 주먹이 연수의 어깨를 살짝 스쳤다.

쓰러질 거라 확신하고 권격을 박아넣은 연수였다. 그런데도 쓰러지지 않고 흔들리는 주먹을 뻗어오는 모도산의 집념에 얼떨결에 연수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이윽고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하는 연수. 무인으로서의 또 앞서가고 있는 고수로서 하수에게 물러섬으로 일어나는 본능적인 분노였다.

-퍽! 퍽! 퍽! 퍼퍼퍼퍽!

이제는 그저 서서는 맞고 버티는 것밖엔 할 수 없는 모도산.

연수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모도산은 시퍼렇게 멍든 얼굴로 버티고 두 팔을 길게 늘어트린 채 떨리는 다리로 버티고 서 있었다.

“헛? 도, 도산아 괜찮냐?”

이성을 찾은 연수는 겨우 서서는 버티는 도산에게 물었다.

“괘, 괜찮고 말고요. 이 정도는 끄떡없습니다.”

말을 끝냄과 동시에 앞으로 쓰러지는 도산.

그런 도산을 받아들고는 툇마루로 옮기는 연수였다.

조심히 눕혀놓고는 맥을 짚어보는 연수.

“허허….”

연수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내상을 입지나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인제 보니 내상은커녕 너무도 활발히 돌고 있는 도산의 내기는 멀쩡해도 너무나 멀쩡했다.

‘대체 어찌 된 몸뚱이가…. 어?’

이미 예전에 임독양맥을 타통 했던 도산이었다. 그 과정에서 진땀을 빼야 했던 연수였기에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도산의 몇몇 혈에는 아직도 믿을 수 없는 양의 기운이 뭉쳐져 있었다.

“너 진짜 뭐냐?”

보통 영약을 먹고 다 흡수하지 못한 기운들은 그걸로 끝인 경우가 많았다.

하여 영약을 복용 할 때는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그런데 모도산의 몸에는 삼 년도 더 전에 흡수하지 못한 기운들이 아직 쌓여 있었다.

그것도 혈에 딱 달라붙어 단단히 굳어있는 기운들의 양이 제법 많았다.

“일단 너는 한동안 맞자. 맞다 보면 다 풀려 흡수가 되든 날아가든 하겠지.”

특히나 모도산의 백회혈에 뭉쳐있는 기운은 그다지 좋지가 않았다. 백회에 잔뜩 뭉쳐 똬리를 틀고 있는 기운으로 인해 총기가 흐려질 수도 있고, 또, 그로 인해 기운의 흐름이 방해를 받게 되면 자칫 주화입마에 빠지게 될 우려도 있었다. 아직 그런 경향은 보이지 않았지만, 무인의 몸에 다룰 수 없는 기운이 끼어있다는 것은 그리 좋을 것이 없었다.

연수는 기절해 있는 도산의 몸을 잠시 더 살피고는 남은 두 무인의 무공을 보아 주었다.

대체로 대련을 통하여 무사들의 부족한 점을 일러 주는 것 만으로도 두 무인은 무공이 늘었다.

아직 일류의 중간을 헤매는 두 무인이다 보니 연수의 지도는 두 무인에게는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한참 무공을 가르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데 혈개문으로 낯선 기척이 들어섰다.

살야림의 사건 이후로 무척이나 예민하게 기감을 넓혀놓고 생활하던 연수의 신형이 사라졌다.

막 혈개문의 문지기들의 허락을 구하고 혈개문안으로 들어서던 준평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쾅!

굉음과 함께 자신의 눈앞으로 바닥에 거대한 구멍을 내며 떨어져 내린 인물이 숨도 쉴 수 없이 기세를 뿜어내고 있자 그저 온몸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냐?”

싸늘한 질문에 어깨를 덜덜 떠는 준평.

“아…. 이…. 으….”

“말해. 누구냐고.”

기세를 조금 누그러트리는 연수.

“저, 저, 저는 하, 하오문에서 나온 주, 주, 준평이라 합니다.”

덜덜 떠는 준평이 겨우 소개를 마치자 씻은 듯 사라지는 기세.

그제야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는 준평이었다.

연수는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었다.

“그랬냐? 난 또 웬 놈인가 했지.”

그제야 굉음에 놀란 돌쇠가 뛰어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별일 아니야.”

“그래요?”

돌쇠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는 수련 중인 무사들을 손짓해 불렀다.

“여기 구멍 메워놔.”

“옛!”

연수는 미안한 표정으로 달려가는 무사들을 잠시 바라보고는 준평에게 시선을 돌렸다.

“따라와.”

“급히 드릴 말씀입니다. 목희 지부장님께서 한시가 급하다고….”

연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준평을 돌아보자 준평의 입이 열렸다.

“정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마교의 인물로 생각되는 무인들이 사천의 파당현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귀주의 인화현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교라…. 근데 그게 왜?”

“그 시점이 공교로우니 꼭 전하라고….”

“뭐가 그리 공교로워?”

준평은 어리둥절하여 연수와 그 옆에 돌쇠를 번갈아 돌아보았다.

“그…. 사황성에서 중요한 인물이 혈개문으로 오고 있다고 하였는데 혹시 연락받은 바가 없으십니까?”

“돌쇠야, 그런 연락 받은 거 있냐?”

“아뇨? 성에서는 아직 연락받은 게 없는데요.”

“누구 올 사람이….”

순간 연수에게서 뜨거운 열기가 솟아오른다 싶은 순간 연수의 신형이 사라졌다.

준평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어느새 다섯 장 밖으로 물러서 있었고, 돌쇠는 주저앉아 입을 벌리고 있었다.

*     *     *

사황성을 떠난 지 겨우 이틀. 도화를 보며 급한 마음에 꽤 강행군한 공숙은 저 멀리 나타나는 인화현을 보며 창문을 열었다.

“오늘은 일찍 쉬어가자.”

복면을 벗어 던진 천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호위대에게 눈짓을 주었다.

“시커먼 복면을 벗어놓으니 저놈도 제법 잘 생겼네. 그렇지 도화야?”

도화는 공숙의 말에 멍한 표정으로 창밖을 잠시 바라보고는 다시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천영은 잠시 그녀의 넋을 놓은 표정을 보고는 한숨을 지었다.

그는 그녀의 얼굴만큼이나 밝고 따뜻했던 마음을 기억하면 마음이 아팠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과 암영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녀의 밝고 아름다운 미소를 꼭 다시 돌려놓고 싶은 그였다.

하지만 그녀의 병증은 쉬이 나을 것 같이 보이질 않았다.

이를 악물고 호위대를 독려한 천영의 신형이 갑자기 사라졌다.

“물러서!”

-콰콰쾅!

무시무시한 무형의 기운이 마차와 호위대를 덮쳐왔고, 말 등을 박차고 나선 아홉의 호위대는 마차의 앞으로 날아가 덮쳐오는 무형의 기운들을 막아냈다.

천영은 호위대의 앞으로 떨어져 내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구냐!”

천영의 외침에 한쪽 숲에서 하늘거리는 옷을 날리며 모습을 드러내는 여인.

“글쎄, 내가 누굴까?”

금을 들고 나서는 여인을 보는 천영의 얼굴이 구겨졌다.

‘고수다.’

힘든 시간을 보내며 단련된 암영대의 대주였던 자신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도무지 앞에 나타난 여인의 무위가 가늠되지 않았다. 특히나 어떤 무기도 없이 금을 들고 나타난 여인이기에 더욱 긴장되었다.

현 강호에 금을 사용하는 무인에 대한 소문은 어떤 것도 없었다.

하면 중원의 무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천영의 머릿속을 스쳤다.

“산필활!”

천영의 입에서 산필활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호위대의 기세가 일변하며 마차를 둘러쌌다.

성주의 그림자로서 죽음을 각오하고 일말의 망설임 없이 산화하라는 명령. 산필활.

그 명령을 받은 아홉 호위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하하하, 제법 각오를 다졌나 보다? 그래도, 고수를 알아보는 눈은 있는 모양이군.”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속속 나타나는 금을 든 무인들.

점점 늘어가는 무인들을 보는 천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도화만은 지켜내야 하는데 앞의 금을 든 여인 뒤로 떨어져 내리는 인영들의 수가 늘어갈수록 천영의 결심이 흔들렸다.

‘지켜낼 수 있을까?’

-따라랑 따안!

여인이 굽힌 무릎 위에 금을 올리고 현을 뜯자 천영의 눈이 커졌다.

“귀를 보호해!”

말을 마치며 내기를 모아 귀를 보호하는 천영.

하나 여인의 얼굴에는 미소가 짙어졌다.

-쇄애액!

천영의 손에 들린 얇은 외날 도가 빠르게 허공을 베어가자 무섭게 날아오던 기파가 갈라졌다.

“감은 좋은 놈이구나.”

-따라라랑 따란~ 딴! 딴딴딴다아아안.

여인의 금소리에 하나둘 합류하며 합주를 시작하는 무인들.

어느새 금을 연주하는 무인들이 이십을 넘었다.

미친 듯이 도를 휘두르며 분전하는 천영의 몸에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합주하는 무인이 오십까지 늘자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도를 휘두르는 천영.

천영의 뒤로 있는 천화대의 호위들 또한 여기저기 베인 상처가 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차에는 조금의 타격도 없는 것은 온전히 호위들의 공이었다.

-따라랑!

끝내 백 명의 무인들이 금을 타기 시작했다.

앞으로 밀려오는 어마어마한 기운을 느끼며 천영이 눈을 질끈 감았다.

‘죄송합니다. 도화 아가씨.’

-쾅!

굉음과 함께 자신의 몸을 가를 듯 다가오던 기파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천영이 눈을 뜨자 엄청난 먼지구름이 가라앉으며 익숙한 그림자가 얼핏 보였다.

그 그림자와 함께 느껴지는 익숙한 살기.

패신살성 고연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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