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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159화 (159/202)

# 159화

음희살 강연비는 온몸을 휘감는 진득한 살기에 입매를 비틀었다.

“대단하군. 온몸을 옭아매며 심령을 뒤흔드는 듯한 이런 살기라니. 웬만한 마인 저리가라구나.”

연수는 눈앞에서 이죽거리는 여인을 무시하고는 천영을 돌아봤다.

“고생했다. 저 마차에 타고있는것은...”

“그분이 맞으십니다.”

천영이 확인을 해 주자 연수의 몸에서 새어 나오던 기세가 더욱 강력해졌다.

지금까지는 연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새어나오던 기운은 작정을 하고 개방하자 천영마저 뒤로 물러서야 할 정도로 숨막힌 기운으로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강연비의 미소가 사라졌다.

-따라랑! 따란따란따란 따다아아안 따라랑!

심상치 않은 살기를 느낀 강연비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녀의 연주에 빠르게 합류하는 무인들.

허나 연수를 향해 쏟아지는 기파들은 연수의 호신강기를 뚫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호신강기를 때리며 소멸되는 기운을 무시한채 한걸음씩 금을 연주하는 여인에게 다가서는 연수.

연수가 다가올수록 합주는 빠르게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오래가지 않아 백명의 합주가 시작되자 연수의 눈썹이 씰룩였다.

-따라란~ 따랑따랑따랑따랑!

내력을 제법 잡아먹음에도 유지하고 있던 호신강기가 흔들리기 시작 한 것이다.

수많은 기파들이 소멸하며 부딪히던 것이 백인의 합주가 시작되자 그 힘이 일변하며 단순한 기파로 끝나지 않고 거대하게 뭉쳐지며 호신강기를 사방에서 몰아치기 시작했다.

연수의 발걸음이 멈췄다.

한참을 몰아치던 기운들에 드디어 연수의 호신강기가 휘어지며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강연비의 얼굴에 다시금 미소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점점더 바빠지는 강연비의 손길.

연수 역시 바빠졌다. 내력을 더 끌어올리며 호신강기를 유지하는데 상당한 심력이 소모되는 중이었다.

‘목생화’

목기를 바탕으로 화기를 키우며 호신강기를 이루자 연수가 가진 화기보다 더 강력한 화기가 일어나며 연수의 호신강기가 굳건해 지기 시작했다.

마치 불길에 휩싸인듯 이글거리며 아지랑이를 피워올리는 연수의 검붉은 호신강기.

그런 연수의 몸을 휘감고 있는 호신강기를 보자 백인의 합주가 강연비의 주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점점 빨라지며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선율.

-따랑따랑따랑따랑따랑따따따따안!

결국 합주가 절정에 오르며 마지막 선율이 강력하게 끝이나자 어마어마한 기운이 연수의 호신강기를 휘몰아쳤다.

-스아아아

기이한 소리가 나며 갈라지는 호신강기.

천천히 밀려나며 갈라지던 호신강기는 순식간에 반토막나며 사라져 버렸다.

강연비의 입에서 호쾌한 웃움소리가 터져나왔다.

“하하하, 입신경이라더니! 별것 아니구나!”

한참을 웃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거짓말 처럼 끊어졌다.

강기를 가르며 휘몰아쳤던 기파로 인해 장내에 날리던 먼지구름이 사라지자 반으로 갈라져 죽었어야 할 패신살성의 모습이 보이지를 않았다.

막 눈에 힘을 주는데, 저 너머로 피투성이가 되어 있던 무인들과 마차가 보이질 않았다.

아차 싶은 강연비의 입이 열리려는데 음살대무인들의 비명이 먼저 튀어나왔다.

“크아악!”

열개의 손가락이 잘린 무인 하나가 바닥에 떨어진 손가락을 주워보려 애를 쓰며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손가락이 없어 손가락을 도무지 짚어올리질 못하는 무인.

그의 주위로 피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모두 산개하며 음진을...!”

말을 하던 음희살 강연비의 신형이 뒤로 물러졌다.

기이한 모양의 단검 두개를 쥐고는, 무인들의 중심에 모습을 드러낸 패신살성으로 부터 믿을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스스슷 파슷!

패신살성의 신형이 흔들린다 싶을 때마다 수십의 무인 목에 혈선이 그어졌다.

이윽고 뿌려지는 피.

“이익!”

이를 악문 강연비의 손가락이 현을 뜯으려는 순간.

“곱게 죽이진 않는다.”

섬찟.

수많은 고수들과 부대끼며 버텨온 강연비였다.

강자존의 법칙속에서 음살대의 대주가 되기 까지 절대 녹록한 세월이 아니었다.

수많은 암투와 다툼속에서 살아남아 이 자리까지 오는 동안 절대 지금과 같은 섬찟함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마기만으로 사람을 짓눌러 죽이는 무인을 본 적도 있었고, 심지어 동남동녀의 혈기를 빨아 마공을 대성한 고수와도 손을 섞어본 그녀였기에 지금의 충격은 더욱 컸다.

그녀의 시야에서 점차 흐려져 결국 사라지는 패신살성의 신형.

하지만 그의 신형이 그 존재감을 강력하게 들어내며 저 앞에 서 있을때부터 그는 이미 자신의 뒤를 잡고 있었음을 잘 아는 강연비였다.

‘쳇!’

각오를 마친 그녀의 손가락이 현을 뜯는 순간.

-따라... 스슷! 투투툭.

떨어져 내리는 열개의 손가락.

그녀의 손가락이 있던 자리에서 열 줄기의 피가 솟구쳐 올랐다.

금을 내던지며 앞으로 달려 나가는 그녀의 뒤꿈치 바로 위에서 피가 솟구쳐 올랐다.

-철퍼덕!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강연비.

그녀를 도우려는 무인들이 현을 튕기며 연수를 둘러싸려 했지만 오히려 시체의 산만 더 높이 쌓을 뿐이었다.

어찌어찌 연수의 근처까지 다가온 무인은 수십조각으로 찢겨 땅위로 떨어져내렸다.

“내가 말이야. 내 사람 건드리는 걸 정말 싫어해.”

한발 한발 다가오는 연수를 보는 강연비의 두 눈에 두려움이 서렸다.

“얼마전에는 어떤 빌어쳐먹을 놈들이 내 사람을 건드려서 모두 시체로 만든 적도 있어. 대략 천 명쯤 되더군. 너도 잘 알지? 살야림이라고.”

강연비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살야림이라면 비밀리에 일월신교와 손을 잡고 지원을 받던 살수 단체였다.

“제갈세가도 그래서 지웠고.”

“...”

“마교, 아니. 일월신교? 니들은 뭐 목에 철판 둘렀어? 그으면 다 피쏟고 죽는거야.”

말을 마치며 덤벼들던 무인하나를 붙잡고 그의 목을 곡월로 천천히 긋는 연수.

-푸슉!

그런 무인의 목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나왔다. 그 무인의 피를 고스란이 뒤집어 쓴 강연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내게 할 말이 생기면 말해. 그 전까지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고통을 느끼게 해 줄게.”

말을 마친 연수의 주위로는 어느새 백 명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고, 땅위로는 진득한 피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연수의 손이 흔들린다 싶은 순간 겨드랑이로 예리한 기운이 스쳐 지나가자 왼쪽팔의 심줄이 끊어졌다.

“아...아...”

그다음으로 오른쪽 팔의 심줄이 끊어졌고, 그다음으로는 무릎의 심줄마저 끊어졌다.

몇 십년간 고련하며 쌓아온 무인의 삶이 무너져 내리자 강연비의 눈으로 눈물 한 방울이 흘러 내렸다.

마인으로서 버렸다 생각했던 감정이 두려움이란 감정으로 인해 하나 둘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허리의 심줄이 끊어지며 앉아 있지도 못하게 되자 강연비의 입이 열렸다.

“죽여라! 차라리 죽이란 말이다!”

“아직 멀었어. 우리 사황성에는 비령곡이라는 곳이 있지. 듣자하니 얼마전 성주가 친히 이 비령곡을 부활시켰다더군. 듣기로는 사람을 고문하는 방법이 샐수도 없이 많다던데... 너 제법 예쁘장하잖아? 게다가 온몸에 심줄은 끊어져서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그곳에 넣어주면 아주 사랑을 많이 받겠어?”

혀를 내밀고는 눈을 질끔 감는 강연비.

하나 연수의 말에 차마 혀를 깨물지 못했다.

“혀 하나 자른다고 죽나? 얼마든지 지혈해 줄게.”

“게다가 이 단전 꽤 든든하군. 단전을 깨부스고 비령곡이나 매음굴에 넣어 주지. 고상한 무인의 삶이나 죽음은 정말 행복하다는 걸 느끼게 해 줄게. 인생의 밑바닥에서 바닥삶을 사는 사내들에게 사랑받으며 살아봐.”

“제, 제발... 제발 죽여주시오.”

기어코 강연비의 입에서 사정의 말이 튀어나왔다.

“너 하는거 봐서. 일단 소속 이름.”

“일월신교의 음살대 대주 강연비라고 하옵니다.”

“누가 보냈어?”

“신교의 암주 강효각이 음살대를 이끌고 나가 패신살성을 죽이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암주? 교주가 아니고?”

“교주는 언제부터인가 교내의 일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대부분의 일을 암주가 보고 있습니다.”

“교주와 암주의 사이가 좋지 않은가?”

“얼마전 교주가 직접 암주에게 나서지 말라며 경고했다 들었습니다.”

연수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다는 말이지. 그럼 마지막 질문이다. 맹주와 암주의 사이는 어떤 사이지?”

“저도 그에 대한 자세한 사정은 잘 모릅니다만, 얼마전 교주와 암주에게만 허락된 천령관에 암주가 독단으로 맹주를 들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천령관? 뭐하는 곳이길래?”

“폐관하는 곳으로 오로지 암주와 교주외에는 그 누구도 발을 들일수 없는 곳입니다.”

“무림맹주가 무림맹을 비웠다?”

연수의 말에 강연비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목이 잘려 그녀의 눈에는 생기가 빠져나가고 있었기에.

잠시 우두커니 서 있던 연수의 머릿속이 바삐 돌아갔다.

다른 자도 아니고 무림맹주였다.

그런 자가 단순히 마교와 결탁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교에 주요 거처를 폐관을 이유로 들어갔다?

심상찮은 일이 분명했다.

“이 빌어먹을 노친네가 무슨 생각으로...”

중원무림인에게는 하나의 선이 있었다. 절대로 넘어서는 안될 선.

정사를 막론하고 중원인으로서 절대 지켜야 할선이 바로 세외세력과의 결탁이었다.

아무리 피가 튀기게 싸우던 사이라지만 세외의 침공이 있을때 마다 정사의 무인들은 하나가 되어 그들과 싸워왔다.

그런데 사파인도 아닌 정파인의 정점에서 정파의 정기를 수호한다는 무림맹주가 마교와 결탁을 했다.

“소림을 찾아가봐야겠구나.”

생각을 정리한 연수는 낮게 혼잣말을 읇조렸다.

그러고는 피의 강이 흐르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잠시 눈을 감고는 기감을 넓혀 일행의 기척을 찾던 연수는 왼쪽에 숲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일행의 기척이 다가올 수록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삼년 하고도 몇 달.

그녀의 밝던 얼굴이 떠오르니 입술이 바짝 말랐다.

정도화.

그립고 그립던 그녀의 이름을 떠올리자 눈앞에 상처를 치유하며 마차를 보호하는 호위들이 보였다.

마차에서 나와 호위들의 상처에 금창약을 바르고 있는 공숙.

“누이.”

연수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 공숙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어느새 다가와 그를 와락 안아주는 공숙.

“이놈아! 살아있으면 진작 기별을 했어야지! 죽은줄 알았잖아. 정말로 이번엔 죽은 줄 알았잖아!”

“미안해요. 걱정 많이 했죠...”

“죽은놈 걱정을 무슨수로해! 그래서... 그래서 더 미안해. 이리 살아있었는데, 이리 멀쩡히 살아있는놈을...”

“이래저래 삼년간 몸을 움직일 여력이 없었어요.”

“그래도.. 더 빨리 찾아오지 않고선...”

“사천의 일이 마음대로 풀리질 않아서요...그런데, 도화는...”

연수의 물음에 눈물을 훔치며 연수를 놓아준 공숙이 마차를 돌아보았다.

무엇에 홀린 듯 마차로 한발 한발 다가서는 연수.

마차 주위에 있던 호위들은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비켜 주었고, 모두들 한가지 염원을 담은 눈빛을 보내며 마차를 바라 보았다.

물론 모두의 머리 한켠에는 그 바람이 헛된 바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절대 그리 쉽게 광증이 나아질 리가 없다는 것쯤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바랬다. 꼭 그리 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래서 패신살성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그 이야기로 인해 도화의 광증이 더 심해졌을때 부터 간절히 그를 기다려 왔다.

그가 나타나 그녀의 광증이 거짓말처럼 씻은듯 나아지기를 바랬다.

연수의 떨리는 손이 마차의 문을 붙잡았다.

차가운 마차의 손잡이를 당기자 문이 열리며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그녀의 옆모습이 연수의 시야에 들어왔다.

울컥.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멍한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파왔다.

“도, 도화야.”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천천히 돌아가는 도화의 고개.

아름다운 그녀의 두 눈과 연수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녀의 멍한 눈이 점차 커졌다.

반쯤 풀려 있던 눈에 힘이 들어가며 커지는 도화의 눈에는 한줄기 빛이 서리는 것 같았다.

“아..아! 아아..”

입을 열어 알수없는 소리를 내는 도화가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가 풀려 제대로 설수 없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시선을 연수의 얼굴에 고정한채 연수를 향해 기어오는 도화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런 도화를 보는 연수의 눈물이 더 굵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짧은 마차의 입구까지 기어오는 길이 마치 천리길 처럼 길게 느껴지는 둘이었다.

연수의 옷자락을 잡으며 몸을 일으켜 연수의 얼굴을 한참 만져보는 도화. 연수는 그런 도화를 와락 안아주었다.

“미안해. 늦어서 미안해.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무서웠지? 많이 무서웠지?”

“아아... 아아아아. 아아.”

마치 벙어리처럼 말을 제대로 못하는 도화의 소리에 연수의 가슴이 더욱 아려왔다.

무언가 전하고 싶은 말을 하는것 같은데 귀로는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아도 그녀의 마음은 정확하게 느낄 수 있는 연수였다.

“앞으로는 절대로... 절대로 혼자두지 않을게.”

“아아아. 아아.”

피투성이의 연수를 꽉 안은 도화는 연수를 마치 영원히 놓아주지 않을 심산인 것처럼 팔에 힘을 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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