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화
서로가 다른 각오를 다지고 생각을 마친 순간 두 사람의 신형이 서로를 향해 늘어지듯 움직였다.
이제는 너무나 거대한 뻥 뚫린 굴이 되어버린 사두봉 안을 달리는 두 사람의 시야에는 서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장관을 만들어 놓고도 한시도 눈길을 주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카카캉! 카캉! 크그그그그그극!
극쾌의 묘리를 담은 오로지 옥현인 밖에는 구현할 수 없는 그의 태극혜검을 상대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곡월을 휘두르는 연수.
부드럽다.
빠르다.
무겁다.
연수가 옥현인의 검을 받아내며 느낀 단편적인 생각이었다.
부드러우면서 빠르고 빠르면서 무겁다.
빠른 쾌검이되 상대를 현혹하는 환검이 아니다.
부드러우면서 무겁다는 것은 무인들에게는 어쩌면 모순의 무리로 다가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대하며 느껴지는 것은 그랬다.
반대로 옥현인은 전혀 다른 생각들이 떠올랐다.
치열하다.
거칠다.
끈질기다.
그의 초식은 거의 직선적이고 단순했다.
또한, 정해진 초식이 없는 듯 자유롭되 그 움직임이 매우 거칠었다.
그러면서도 너무나 끈질겼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 광견처럼 검초 하나라도 허투루 받아내지 않고 조금의 흔들림도 놓치지 않고 물고 들어와 그 틈을 벌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옥현인은 단연코 이런 싸움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항상 정로를 걸어왔고, 거친 싸움보다는 서로를 존중하는 비무를 해왔다.
검을 뽑아 출수하기까지는 모든 명분과 이득을 계산해 왔고, 이득이 없는 싸움은 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섞는 것만으로 함께 진흙탕을 굴러 더럽혀지는 불쾌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한치의 품격도 느낄 수 없는 지독한 실용성.
그에 대한 본능적인 불쾌감.
그렇기에 짜증이 났다.
자신보다 하수와의 싸움도, 고수와의 싸움도 아니었다.
동수와의 싸움. 이 점이 무겁게 마음을 짓눌러왔다.
분명 동수가 확실했는데 심기를 흔드는 짜증스러운 감정과 아직 어린 적과 동수라는 이 상황이 옥현인을 급하게 만들었다.
부드럽게 휘둘리는 애검을 잡은 옥현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찰나 중의 찰나의 순간, 그의 검세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무나 미세하여 그 누구도 눈치챌 수 없는, 심지어 무당파의 장문인이 본다 해도 책을 잡을 수 없을 만큼의 파문이었다.
하지만 코앞에서 목숨을 걸고 그의 검을 받아내고 있는 연수는 그 파문을 읽지 못할 리가 없었다.
깊은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자칫 한순간 집중력이 흩어지면 큰 손해를 보거나 자칫 목이 날아간다.
그런 치열한 순간에 연수의 머릿속에 단편적으로 떠오른 것은 단 하나였다.
‘초조해하는구나.’
그랬다. 매 순간 물 흐르듯 이어지는 무서운 검세로 자신의 목을 칠 듯 검을 휘두르는 상대가 초조해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격돌이 점차 절정을 향해 나아가던 순간.
-콰콰쾅! 쿠궁꽈르르릉쿠와아아아아.
어마어마한 굉음.
너무나 거대한 굉음과 함께 미세하게 흔들리는 대지의 진동에 피가 튀고 육편이 날아다니는 광전의 현장이 멈칫했다.
특히나 무공을 익힌 무인들이기에 그 굉음과 진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지만 그들의 머릿속에는 한가지의 공통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무슨 일이 생겼다.’
그리고 그 일은 무림맹주와 사황성의, 적영대장의, 싸움의 과정임이 분명 했을 것이다.
멈칫하며 잠시 전투의 흐름이 끊기며 서로의 눈치를 보고는 슬금슬금 전열을 가다듬는 순간 누군가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사, 사두봉이 무너져 내렸다!
!!!
순간 장내에 싸늘한 공기가 훑고 지나갔다.
아무리 묏부리가 많고 많은 형산이라지만 하나의 석봉이 통으로 무너진다는 것은 그들로서도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
장내 곳곳에서는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적막을 깨며 퍼져 나왔다.
“크아악!”
적막을 깨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피를 쏟으며 쓰러지는 무인.
순간 조용했던 장내의 시선이 비명이 튀어나온 곳으로 집중되었다.
어깨에 세 치 정도 박힌 부러진 검을 맨손으로 거칠게 잡아뽑는 철가군.
웬만한 사람 머리보다 큰 그의 어깨에 박혀있는 검날이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검날을 거칠게 바닥에 내던진 철가군은 마지막 가는 숨을 내뱉는 무인을 보며 씹어뱉듯 말했다.
“오늘 형산에 오른 무림맹의 무인들은 단 하나도 살려 보내지 않아.”
쇠를 가는 듯한 탁한 저음의 음성은 장내의 공기를 무겁게 만들기 충분했다.
“사부님!!!”
겨우겨우 가는 숨을 내뱉고는 고개를 떨구는 노고수에게 달려와 아직 식지 않은 그의 몸을 붙들고 오열하는 무인.
무당파의 제자인 그는 붉은 눈으로 철가군을 노려 보았다.
-퍼석!
피눈물이라도 흘릴 듯 붉은 눈으로 철가군을 노려보던 젊은 도사의 머리를 한순간에 부숴버리는 철가군.
그 큰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잔상을 남기는 속도에 무림맹의 무사들은 등골이 오싹해 짐을 느꼈다.
“너희의 자잘한 원한도 모두 이 형산에 묻어주마.”
불같이 뜨거운 분노를 토해내듯 무림맹의 무사들과 사기가 등등한 사황성의 무사들이 다시 맞붙었다.
-죽여버려!
-정파의 정기를 위해!
온갖 외침이 사방으로 울리며 중봉의 가파른 산세로 피의 강이 흘러내렸다.
먼지의 안개라고 표현해야 할 만큼의 거대한 먼지구름이 날리며 사두봉이 있던 근처는 시야의 확보가 불가능해졌다.
-후웅 쾅!
살벌한 소리와 함께 순간 먼지구름을 가르며 날아오는 강검을 막아낸 연수의 꽉 다문 이가 절로 갈렸다.
두 눈을 감고 기감과 미세하게 느껴지는 공기의 흐름에 집중하며 옥현인의 다음 검로를 살폈다.
그의 검로를 읽는 순간 번뜩 뜨이는 연수의 눈.
옥현인의 주위로 시야를 가리는 모든 먼지가 빨려 들어가며 순간적으로 시야가 확보됐다.
허공을 박차고 막대한 내력을 소모해 가며 공중에서 초식을 주고받는 두 사람.
-땅!
‘쳇!’
혀를 차는 연수.
옥현인의 검세를 읽기 무섭게 그의 검을 막지 않고, 유려하게 날아오는 검을 향해 마주 곡월을 휘둘렀는데 서로 금기를 뽑아낸 덕분에 엄청난 반발력이 일어나 두 사람의 신형이 반대로 빠르게 밀려나기 시작했다.
-쿠쿵!
옥현인과 연수가 각자 서로 다른 반대편 석봉의 단애 중간에 처박힘과 동시에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허공에서의 격돌의 여파로 사두봉이 무너지며 주변을 매웠던 먼지가 세찬 바람과 함께 날아갔다.
단애의 중간에 등을 붙이고 있는 옥현인과 발을 붙이고 무릎을 굽혀 튀어 오를 준비를 끝낸 연수의 모습이 보였다.
옥현인의 미간이 심하게 구겨졌다.
-쩌적!
잔뜩 굽혀졌던 연수의 다리가 쭉 펴지자 연수가 붙어있던 석벽 주위로 금이 가며 연수의 신형이 빠르게 옥현인에게 뻗어 나갔다.
태극혜검.
무당파에서 전해지는 검법 중 최고의 검법이자 강호를 통틀어서도 수위에 꼽힐만한 검법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런 태극혜검을 천령관에서 얻은 깨달음과 한 걸음 더 발전하여 완성된 오행신공과 함께 쏟아내고 있는데 패신살성과 동수였다.
옥현인의 두 눈이 흔들렸고, 그의 표정이 점차 험악하게 굳어졌다.
-까그그극.
부드럽게 뻗어져 나오는 옥현인의 검을 밀어내며 옥현인에게 바짝 붙는 연수.
그의 검날과 곡월이 마찰을 일으키며 불꽃이 튀었다.
점차 서로의 숨결이 느껴지는 거리까지 접근하는 그 찰나의 시간 처음으로 옥현인이 자의로 인해 뒤로 물러섰다.
왼손으로 허공을 치며 반발력으로 뒤로 물러서 절벽을 거꾸로 타고 뒷걸음질로 올라가는 옥현인.
연수 역시 줄인 거리를 내주지 않기 위해 허공을 박차며 옥현인과 반 장도 안 되는 거리를 유지하며 절벽을 달려 올라갔다.
-까깡! 깡깡깡!
자신의 거리를 붙잡은 연수는 절벽을 달려 올라가는 순간에도 무섭게 곡월을 휘둘렀고, 옥현인은 허리를 뒤로 젖히며 연수의 곡월을 막아냈다.
조금씩 느껴지던 검세의 틈이, 흐름의 비틀림이 점차 커지는 듯 느껴지는 연수.
처음에는 옥현인의 태극혜검의 경지가 너무도 높아 검세를 막아내는 것도 버거웠다. 조금씩 익숙해지자 검격에 맞공격을 할 수 있었고, 지금은 그와 검을 섞으며 그의 검에 빈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흔들림이 느껴진다.’
두 사람의 신형이 절벽의 꼭대기까지 올라가 봉우리 위에 안착하는 순간.
-팅! 스슷!
순식간에 곡월을 휘두르며 옥현인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연수.
아주 잠시 그 상태로 멈춰있다가 서로를 향해 몸을 돌리는 두 사람의 표정은 매우 상반되었다.
-푸슉! 투툭.
뒤로 돌기 무섭게 맹주의 어깨에서 피가 튀어 올랐고, 맹주는 오른손의 검을 역수로 지고 검지로 왼쪽 어깨를 두드려 지혈했다.
구겨질 대로 구겨져 있는 옥현인의 얼굴과 비틀린 입매로 그런 그를 비웃듯 바라보는 연수.
“의기양양할 것 없다.”
맹주의 말에 연수의 비틀린 입매가 더 올라가며 미소가 짙어졌다.
“결국, 넌 도망칠 줄 알고 있었지.”
“흥! 이 정도는 피륙의 상처.”
“글쎄, 경험상 한번 싸움에서 도망친 놈들은 끝내 패배하더라고.”
맹주의 말문이 막혀 버렸다.
연수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봉우리에 올라서는 순간 폭발적으로 달려드는 연수를 향해 숨겨두었던 독침을 쏘아냈다.
지난 삼 년 수련을 거듭한 당가의 비전 일전뢰였다.
너무도 가까운 거리에서 빠르게 달려드는 패신살성이었기에 도무지 피하거나 막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마주침을 쏘아 보내 자신의 독수를 간단하게 막아버렸다.
그러고는 보란 듯이 자신의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그나마 태극혜검의 절초로 급소를 막아낼 수 있었기에 어깨가 찢어졌지, 자칫 그의 기형 단검이 조금만 더 깊게 들어왔다면 목을 당했을 것이다.
옥현인은 가슴이 점점 답답해졌다. 지난 삼 년간 수련하며 더욱더 완벽해진 일전뢰였다. 이 한 수를 위해 계속해서 기회를 보고 노려왔던 옥현인이었다.
그런 수가 막혀버리고 오히려 부상을 당했으니 그의 가슴이 답답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상대가 자신과 동수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완벽한 암습의 순간을 기다려 왔던 자신을 도망친다, 표현하는 패신살성을 찢어 죽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는 옥현인 이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꿰뚫기라도 하듯 연수의 말이 이어졌다.
“패천후 성주가 네놈 암습에 당하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본 나야. 설마 같은 수에 당해주길 바랐던가? 내 전 별호를 잊으면 곤란해.”
“암수일살···.”
옥현인은 자신도 모르게 연수의 전 별호를 이를 갈며 입 밖으로 토해냈다.
“맞았어.”
입을 다물고 검을 크게 휘두르며 검세를 키워가는 옥현인.
그와 맞춰 연수의 곡월을 든 두 팔도 크게 휘둘러지며 기세를 키워갔다.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둘.
-캉! 깡! 쾅! 꽝! 꽈과광!
점차 두 사람의 강기를 두른 무기가 부딪칠 때마다 커지던 파공음이 결국은 천둥이 치는 소리처럼 바뀌었다.
옥현인의 강기의 기운이 뜨거운 화기로 바뀌는 순간 연수의 눈이 반짝였다.
-꽈광! 치이이이익.
옥현인의 얼굴에 순간 당황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동안 같은 기운으로 자랑이라도 하듯 덤벼들던 연수의 기운이 자신의 기운과는 상극으로 바뀐 것이다.
자연히 화마의 기운을 품은 옥현인의 강기는 크게 쪼그라들며 맥을 쓰지 못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옥현인은 한발 물러서며 토기로 바꾸었고, 연수는 한발 따라가며 목기로 바꾸었다.
-꽝! 스아아.
목극토.
앞으로 나가며 커지는 기세와 토기를 양분 삼아 더 커진 연수의 목기를 띈 강기가 옥현인의 강기를 반 이상 파고들며 그의 그를 더욱더 물러서게 만들었다.
순간 옥현인의 얼굴에 당황의 빛이 더 짙어졌다.
흡사 반상의 놀음과 같은 수 싸움이었다.
설마 같은 오행신공을 익힌 동수의 고수와 격돌할 거란 생각은 애당초 해본 적도 없던 옥현인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음이 당연했다.
‘내가 금기를 쓰면 저놈은 이를 예상하고 화기를 쓸 테니···.’
두 걸음을 더 물러서며 수기를 끌어 올려 검세를 잇는 옥현인.
연수가 화기를 쓸 것을 예상한 한 수 앞을 생각한 수였다.
하나 연수의 곡월에는 그대로 강맹해진 목기로 뽑아낸 강기가 그대로 맺혀있었다.
-스아아아.
옥현인의 수기를 띈 강기를 그대로 흡수하듯 갈라버리는 곡월의 강기.
검을 급히 고쳐잡으며 뒤로 훌쩍 물러서는 옥현인.
-쩡!
그의 이마에 미처 막지 못한 강기의 예기가 스쳤고 피부가 벌어지며 피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치만 예기가 더 깊었다면 두개골이 갈라졌을 것이다.
오싹.
등줄기로 올라오는 소름.
그와 동시에 반으로 쪼개지며 떨어지는 옥현인의 치포관.
그의 머리에 썼던 치포관이 반으로 쪼개져 떨어지며 잘 정리되어 있던 옥현인의 머리가 산발이 되었다.
미친 듯 요동치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려 애검의 손잡이를 꽉 쥐는 옥현인.
그런 옥현인에게 달려드는 연수.
자신에게 달려드는 패신살성의 표정을 보는 순간 옥현인은 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
너무나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달려들고 있는 상대가 두려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티티팅! 쨍! 스슷!
“어, 어찌···.”
옥현인의 천계혈을 정확하게 찌르며 곡월을 비틀어 그의 왼쪽팔 근맥을 끊고 지나친 연수였다.
세 발의 일전뢰를 모두 막아낸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옥현인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자신이 개방의 비전을 본떠 만들어 낸 구풍침을 연수가 정확하게 깨부순 것이다.
이 수로 사황성주 패천후를 끝장냈던 옥현인 이었다.
“설마 성주가 당한 그 한 수를 내가 모를까 봐? 너는 역시 그릇이 작아. 분명 말을 했거늘···.”
마음이 급해지니 결국 성공했던 암수에 기댄 옥현인은 허망한 표정으로 왼쪽 손을 내려다보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왼쪽 손.
분명 주먹을 쥐라고 미친 듯 힘을 주고 있지만, 부들부들 떨리며 도통 움직이지 않는 그의 왼손이었다.
“이노오오옴!”
분노의 노성을 터트리며 연수에게 달려드는 옥현인.
-카카캉! 푸슉!
하지만 그 달려들던 기세가 연수와 격돌하기 무섭게 꺾이며 다시금 뒤로 물러서는 옥현인이었다.
그가 물러서며 그의 운문혈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실처럼 길게 허공에 늘어졌다가 바닥에 떨어지며 가는 혈선을 만들었다.
-철그랑.
축 늘어진 그의 오른손에서 그의 애검이 떨어졌다.
오른팔의 근맥마저 깨끗이 잘려버리자 옥현인은 다급해졌다.
흔들리는 눈으로 연수를 향해 시선을 들어 올리는 옥현인.
연수와 눈을 맞추기 무섭게 뒤로 돌아 등을 보이던 옥현인의 신형이 휘청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산발 난 머리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는 옥현인의 얼굴이 피와 흙먼지로 더럽혀져 있었다.
“암수는 이렇게 쓰는 거야. 당하는지도 모르게.”
그의 허벅지에 얇은 세 침이 두 개나 박혀있었다.
“어, 어찌···. 어찌 이리 일방적으로! 분명 동수였거늘!”
“쯔쯧. 너는 성주와 싸울 때 보다 퇴보하고 말았구나.”
“그럴 리가 없다! 나는 더 강해졌다! 오행신공을 완성하고 한층 강해졌단 말이다!”
발악하듯 악을 쓰는 옥현인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연수의 얼굴이 너무나 무덤덤해 옥현인은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치 지독히 까마득한 하수를 내려다보는 듯한 저 표정은 자신이 자주 짓던 표정이기에 더 모욕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오행신공을 완성했다? 넌 오행신공을 완성한 것이 아니야. 오행신공의 성질을 바꾸고 오행마공으로 바꿨을 뿐. 너의 신공이 완성되었다면 나는 진즉에 죽었겠지.”
“그럴 리가 없단 말이다!”
“자신의 경지마저 헤아리지 못하고, 반백 년이 넘게 익힌 검공을 믿지 못해 쓸데없는 암기술에 기댄 네가! 날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
연수의 말에 옥현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제야 훤히 보였다.
지독히도 근시안적이었다.
성주 패천후가 두려워 익혔던 비장의 한 수.
그것이 성공했고, 그것을 맹신했다.
고작 몇 년 익힌 당가와 개방의 비전 암수를 자신이 평생 갈고 닦은 태극혜검보다 맹신해 버렸다.
목숨을 걸어야 할 혈투를 앞두고 자신은 도망쳤다.
평생을 정도를 걸으며 커온 그였다.
그렇기에 변명하고 싶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죽을지언정 저 무덤덤한 표정으로 차갑게 자신을 바라보는 패신살성에게 항변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힌 말문이 도무지 트이질 않았다.
-촤악! 촤악!
소리와 함께 튀어 오르는 핏물.
자신의 다리 근맥이 깨끗이 잘려나가는 걸 멍하니 바라보는 옥현인의 눈동자에 초점이 흐려졌다.
-퍽!
망연자실 앉아 있는 옥현인의 어깨를 거칠게 발길질하는 연수.
그대로 옆으로 쓰러지는 옥현인의 등을 지려 밟으며 땅에 그를 엎어놓은 연수는 곡월로 그의 허리를 천천히 그었다.
살을 저미듯 허리의 근맥마저 잘라버리는 연수였다.
엎어져서 피에 젖은 땅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옥현인.
“카악 퉤!”
그런 옥현인의 뒤통수에 연수의 가래침이 철썩 달라붙었다.
“겁쟁이. 무인이길 포기한 소인배. 상종할 가치도 없는 놈.”
사지와 허리의 근맥이 잘리는 것보다 아픈 연수의 말이 옥현인의 가슴을 후벼팠다.
그런 옥현인의 뒷덜미를 붙들고는 신형을 날리는 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