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화
신교의 암주가 죽었다.
교주 외에는 신교 내에 상대가 없다던 암주가 이리 허망이 죽을 거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던 그들이었다.
비산하는 암주의 시체와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폭삭 주저앉은 그의 거처.
가라앉기 시작한 뿌연 먼지 사이로 연수와 여섯 마인의 시선이 부딪혔다.
손에 땀을 쥐며 앞으로 나서서 입을 여는 마인.
“넌 누구냐! 교인이냐?”
마인은 제발 상대의 입에서 그렇다는 말이 나오기를 빌고 또 빌었다.
당연히 얼마 전 암주의 암살을 시도했다 실패했던 중원의 사파인 패신살성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저 젊은 무인일 것이란 건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물었다.
그리고 바랬다. 암주가 외인이 아닌 교인에게 죽었기를.
암주를 꺾고 새롭게 신진 고수가 신교에서 탄생했기를.
그런 마인과 같은 생각을 하던 다섯 마인이 절로 침을 삼키며 상대의 입에 집중했다.
열리는 연수의 입.
“패신살성, 고연수.”
기어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 여섯 무인이 기세를 끌어 올렸다.
“당신들과 싸울 이유는 딱히 없는데.”
“눈앞에서 적을 보고도 가만히 놔둘 정도로 신교는 만만한 곳이 아니야.”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그들을 지켜보던 연수의 입가로 선혈이 한줄기 내비쳤다.
그 순간 신호라도 받은 듯 여섯 마인이 달려들었다.
그런 마인들을 보는 연수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허공과 동화되어 사라져갔다.
-크아앙!
마치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를 동반한 마인의 장력이 연수가 사라진 빈 허공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제일 먼저 달려오던 마인의 손에 들린 도가 빠르게 빈 허공을 가르며 사방으로 강맹한 도기를 난사했다.
-까깡!
사방을 헤집고 지나가던 도기가 허공에서 쇳소리와 함께 막히자 여섯 마인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집중되며 강맹한 공격들을 퍼부었다.
-콰앙!
여섯 마인들의 공격이 빈 허공에서 부딪히며 굉음을 내었다.
한동안 주변 사방을 향해 막무가내로 공력을 쏟아붓던 마인들이 숨을 몰아쉬며 경계 어린 눈빛으로 주변을 훑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적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놓친 것···. 같은데···.”
한 마인의 말에 도를 휘두르던 마인이 자조적으로 말했다.
“놓친 것인지, 상대가 놓아준 것인지···.”
그 말에 다섯 마인은 입을 다물었다.
장내를 벗어난 연수는 지금 당장이라도 여건만 된다면 주저앉아 명상에 빠지고 싶었다.
마치 안개가 가득 차 코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얼핏 본 그림자를 어설피 따라 한 듯한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초식과 무리를 정리하고 싶은 욕구가 차올랐다.
꿈결 속에 본 것 같은 그 한줄기 무리가 금방이라도 도망갈까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마교의 한복판에 있었다.
게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쏟아부은 싸움 직후였다.
무인으로서의 삶 중 가장 오래도록 호적수와 모든 걸 쏟아부은 격돌의 후유증은 적지 않았다.
‘역시 그곳뿐인가.’
발길을 돌리며 은신한 채 원목 대사가 있는 뇌옥으로 발길을 돌리는 연수.
막 뇌옥의 입구로 들어서자 젊은 마인이 뇌옥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열심이군.’
뇌옥 깊숙이 연수가 들어서자 하나둘 쓰러져 잠드는 죄수들.
갑작스레 잠드는 그들을 지켜보던 원목의 고개가 들렸다.
바닥에 그어지는 원목의 손가락.
-보전환옥.
“대사님 덕분에 큰일을 잘 치러냈습니다.”
신체를 축골 시키며 옥 안으로 들어서는 연수.
그런 연수를 걱정스럽게 보는 원목.
연수의 해진 옷차림과 가슴 섶에 묻은 피가 못내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강적과 마주하여 조금 상했습니다만, 금방 좋아질 것입니다. 일단 운공 좀 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원목.
연수는 옥의 구석에서 은신하고 가부좌를 튼 채 두 눈을 감았다.
목생화,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 처음으로 오행의 순행을 마친 목기를 전신으로 돌리자 상했던 기맥이 순식간에 치유되기 시작했다.
요상을 마치기 무섭게 오행의 순행을 반복하는 연수.
너무나 궁금했다.
순행을 반복하면 과연 얼마나 대단한 기운이 나타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연수의 순행이 정확히 세 번을 마치는 순간 연수의 단전에 있던 다섯 기운이 제멋대로 들끓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순행에 반응하며 점차 들고 일어서는 기운들.
순간 연수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 경지에 오르고도 내기의 수발이 완벽하지 못하단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당연히 위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연수는 마음대로 움직이는 내기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세 번의 순행을 마친 순수한 목기를 중심으로 다섯 기운이 설키기 시작하더니 회전하며 전신의 기맥을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그 압력이 어찌나 대단한지 연수의 은신이 깨어지며 기운이 휘도는 곳의 신체가 부풀어 오를 정도였다.
주천을 마치며 중단전으로 올라가는 기운들.
중단전을 가득 채우고는 새로이 주천하는 기운의 성질이 점차 변질되며 다섯 기운이 하나의 기운으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주천을 마치자 연수의 목이 부풀어 오로기 시작했다.
이제는 완벽하게 하나의 기운으로 합쳐진 기운이 백회로 향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연수는 그제야 기운을 통제하려 해 보았지만, 너무 늦었다.
이미 달리기 시작한 기운은 거칠게 없이 백회를 향해 달려들었다.
-꽈아앙!
연수의 몸이 흔들거리며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원목은 연수가 갑자기 뱀처럼 목이 부풀기 시작할 때부터 연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얼굴이 두꺼비처럼 부풀기 시작하며 시뻘게지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어째 매번 이곳에 와서 운기를 할 때마다 평범하게 하는 법이 없는 연수였다.
지난번에도 눈이 튀어나오게 놀랐던 원목은 이번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백회혈을 때린 기운들은 백회를 열며 그곳에서 소용돌이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백회에 큰 충격을 받았을 때부터 연수의 이성은 날아가, 마치 강제적으로 무아지경으로 빨려들어 오듯 무리의 세상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점차 백회가 열릴수록 더 깊어지는 무리의 바다.
그 깊숙한 바닷속에서 연수는 암주를 죽였던 작은 실마리만 남았던 무리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 초식의 정체와 그것이 가능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이해할수록 연수는 황홀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수많은 무리 속에서 오로지 그 하나의 무리에만 집중하던 중에 강제로 들어왔던 이 무리의 바다에서 연수의 의식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안 돼!’
악을 썼다. 이 황홀한 곳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수많은 무리를 마주하고 이해하고 싶었다. 이제 겨우 하나의 실마리를 풀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연수의 백회에서 소용돌이치던 기운들이 그 격한 움직임을 끝내고 얌전히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연수의 의식은 무아지경에서 빨려오듯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연수의 의식이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오자 백회에 남은 기운과 중단전에 남은 기운 하단전에 남은 기운들이 세 개의 흐름을 만들며 연수의 몸을 휘돌았다.
-우드득! 우득! 꽈드드득!
원목은 눈을 부릅뜨며 놀랐다.
갑자기 흉측한 소리와 함께 연수의 몸이 뒤틀리고 맞춰지며 환골탈태하기 시작하니 그 기사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세상에 환골탈태하는 무인들이 없지는 않았다. 기인이 모래알처럼 많다던 강호였다.
하지만 자신이 예측하기로 눈앞에 젊은이는 그리 나이가 많은 무인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이미 환골탈태를 한번 마친 무인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는 천산에 오를 수 없었을 테니. 그런 젊은 절대 고수의 무인이 또 한 번 환골탈태한다.
이는 자신의 상식으로는 고금을 통틀어 손에 꼽는다는 그 경지에 들어서는 것이라고밖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
원목이 놀라는 와중에도 연수의 신체는 요란하게 꺾이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쏟아내었다.
이윽고 신체의 피부가 붉어지며 엄청난 열기가 연수에게서 쏟아져 나왔다.
원목은 너무나 뜨거운 열기에 철창 가까이 붙어 연수와 최대한 멀어졌다.
후끈한 열기에 뇌옥 전체가 찜통처럼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원목은 땀을 줄줄 흘리며 불안하게 연수를 바라보았다.
마치 이러다 폭발하며 주변을 불바다로 만드는 것이 아닐지 의심될 정도의 열기였다.
뻘겋게 달아올랐던 피부는 시커멓게 타다 못해 말라 부서지고 있었다.
점차 벗겨지는 피부 껍데기들.
그 속으로 맑고 투명한 사내의 피부라고 보기 힘든 속살을 드러내는 새로운 피부.
천천히 그 열기가 가라앉을수록 툭툭 떨어지는 시커멓게 타버린 가죽들.
이미 연수의 몸을 가리고 있던 옷은 해질 대로 해져 겨우 연수의 몸에 걸쳐져 있었다. 마치 바람이 한번 불면 떨어져 나갈 듯 위태롭게 연수의 몸에 걸쳐져 있던 옷이 떨어져 내리는 시커먼 가죽과 함께 떨어져 나갔다.
영롱하게 빛나듯 보이는 그 나신을 드러내는 연수.
천천히 뜨이는 연수의 두 눈.
눈을 뜬 연수는 철창 끝에 붙어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원목을 보고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런 연수를 보며 바닥에 글을 적는 원목.
-혼비백산.
“많이 놀라셨나 봅니다. 저도 너무 갑작스러워 많이 놀랐습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꿈틀거리며 느껴지는 기척들.
죄수들이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연수가 무심하게 그들을 둘러보자 한 줄기 바람이 그들의 근처를 살랑 불며 지나갔다.
그대로 다시 잠드는 죄수들.
막 연수가 뭐라 입을 열려는데 원목이 불편한 듯 시선을 돌렸다.
그제야 자신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난감함에 어쩔 줄을 모르던 연수는 때맞춰 느껴지는 기척에 미소지었다.
이제는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신체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연수가 철창 사이를 빠져나갔다.
“아직 주무십···.”
철푸덕.
소리를 내며 말을 마치지 못하고 쓰러져 잠드는 젊은 마인.
연수는 그런 젊은 마인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속옷을 빼고 벗긴 젊은 무인이 입고있던 황색 무복을 입은 연수가 잠시 젊은 마인을 내려다보고는 원목이 있던 옥으로 들어갔다.
“하실 말씀이 많으시겠지만 일단 가부좌를 틀고 앉아 보세요.”
연수의 말에 원목의 두 눈이 커지며 그 눈에 욕망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잃어왔던 무인이라는 정체성.
이제는 물리적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 무인으로의 삶이 다시 다가오는 듯한 직감에 원목은 자신도 모르게 연수의 팔을 붙잡았다.
연수는 그 눈을 마주 보기만 하고도 원목이 하고 싶은 말을 알 수 있었다.
가능한 것인가?
연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원목에게 말했다.
“장담할 순 없지만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주룩 눈물을 흘리는 원목.
그런 그가 얼른 연수를 등지고 가부좌를 틀었다.
원목의 등에 장심을 가져다 대기 시작하는 연수.
새롭게 변한 연수의 내기가 원목의 등을 통해 그의 전신 기맥을 휘돌기 시작했다.
대맥을 통해 전신의 세맥까지 세세히 살피는 내력.
‘역시 문제는 단전이구나.’
굳이 원목의 몸을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뜨거운 쇠꼬챙이로 단전을 후벼 파 물리적으로 그 단전을 상하게 했을 것이다. 다시는 회복할 수 없도록.
그만큼 원목의 단전은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아예 물리적인 그릇이 깨어진 것처럼 주변 기맥마저 모두 기형적으로 꼬여있었다.
연수의 몸에서 흘러들어오던 기운의 성질이 변하며 원목의 단전 주위 기맥을 회복시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원목의 단전으로 모여드는 기운.
순간 원목의 배꼽 밑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원목은 간질거리는 느낌에 저도 모르게 배꼽 밑을 긁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한 시진이 넘도록 간질거리던 배가 따뜻해진다고 느낀 순간 원목이 각혈을 시작했다.
“쿨럭! 쿨럭! 쿠웨엑!”
새카만 덩어리진 피를 토해내는 원목.
그렇게 한참을 피를 토하던 원목의 두 눈에 생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연수는 자신의 진신 내력 중 극히 일부를 떼어내 원목의 단전에 심어두고는 강제적으로 오행신공의 운기를 통해 그 기운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구르며 마치 눈덩이처럼 덩치를 키워나가는 기운.
흡성신공의 무리를 따와 주변의 기운들을 흡수하듯 빨아들여 강제로 단전의 기운을 키워놓은 연수는 눈을 뜨며 원목의 등에서 손을 떼었다.
그와 동시에 눈을 뜨는 원목.
그의 푸석하던 얼굴에는 생기가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벌떡 일어선 원목이 뒤로 돌아 연수를 향해 절을 하기 시작했다.
놀란 연수는 원목을 말리려 들었지만, 도무지 그만둘 의지가 없는 원목을 보며 난처한 표정으로 마주 절을 했다.
“어찌 이러십니까?”
-자네 덕분에 그간 잃었던 무공을 되찾았거늘 어찌 이정도 인사를 못 하겠는가?‘
중단전까지 회복한 원목은 전성을 보내왔다.
난처하게 웃으며 마주 전성을 보내는 연수.
-당연한 도리인걸요. 원공대사님께 받은 은혜가 적지 않습니다.
-사제의 덕이 돌고 돌아 나에게 왔으니 이 또한 부처님의 뜻이겠지.
반장 하며 고개를 숙이는 원목.
연수 역시 그런 원목에게 마주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