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004. 어라? 단전이 왜?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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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이, 아니, 이정문이 공동산에 돌아온 지 어느새 열흘이 흘렀다.
처음에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둥, 지금이 언제냐는 둥 헛소리를 뱉어대던 정문이었으나 열흘이 지나자 차츰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갔다.
이제는 몸도 제법 회복되어 약왕당 전각 앞마당을 산책도 하는 정문.
약왕당에서 동대(东台)의 연무장을 조용히 내려 본다.
“하앗!”
“허업!”
건장한 몸집의 사내가 시범을 보이자 이내
어린 무인들이 저마다 목검을 들고 사열해 똑같은 움직임을 절도있게 펼쳐댄다.
정문의 기억에 따르면 시범을 보이는 사내는 자신의 막내 사제인 전묵환이 분명했다.
일대제자 중 말석, 우락부락한 덩치, 까무잡잡한 피부가 특히 그를 돋보이게 했다.
사실 사내의 나이로만 본다면, 일대제자라는 말이 어색해 보이나, 정문의 기억 속 공동파는 선대 장문인이 지병으로 급사한 후 급하게 후계 구도를 맞추느라 전체적인 연령대가 어려져 버렸다.
즉, 지금의 일대제자는 다른 문파라면 이대제자, 이대제자는 삼대제자 정도의 연령대라는 말이 된다.
“2년 사이에 많이들 성장했죠?”
정문의 등 뒤로 작은 쟁반에 탕약을 든 여제자가 다가섰다.
“아, 양사매.”
사실 정문은 저들이 성장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른다.
저들의 이전 모습, 수준 정도는 알겠지만, 무공을 익혀본 적 없는 그에게 저들의 수준을 가늠하는 건 쉽지 않았다.
“이제는 존댓말도 안 하시고···, 양사매라고 불러도 주네요?”
처음 정신이 들었을 무렵부터 꾸준히 자신을 보살펴오던 제자 중 한 명이 양사매다.
이정문의 기억을 문자화해 익히기 전에는 거리감 있는 태도로 그녀를 대했지만, 이제는 그녀의 신분, 위치, 관계를 모두 아는 정문.
이전보다는 확실히 그녀가 가깝게 느껴졌다.
“양명화. 감평상단의 여식. 일대제자. 아닌가?”
“뭐에요, 새삼스럽게. 참, 이상해.”
차갑게 뱉어낸 정문이지만 명화는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간만에 자신에 대해 아는 척해 주는 대사형이 반가울 뿐.
“몸은 다 회복 된 거예요?”
“아마도.”
“그럼, 또 예전처럼······”
명화의 입에서 예전이란 말이 나왔다.
얼마나 예전을 말하는 걸까?
떠나기 직전이라면 기억에 없는 데···.
“청유나 다니실 건가요? 수련도 않고.”
처엉유우?
아니, 싯팔, 나름 구파의 대제자 새끼가 청유나 다녔다고?
아무리 공동이 한물간, 아니 한물 온 적도 없던 구파라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처, 청유우?”
“사라지기 직전부터는 수련도 않고 청유만 다녔잖아요. 그래서 다들 사형이 실종된 게 아니라 도망간 거라고···”
“커헙-! 그럴 리가 있나!”
당황하며 헛기침을 해대는 정문.
어쩌다 보니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왠지 더욱 정문의 기억을 들여다보기가 꺼려진다.
“이, 이제는 달라질 거야! 다들 수련도 같이하고, 강호행도 하고 협명을 널리 알려 공동을 빛내야지!”
당황한 정문이 아무 말이나 뱉어내자 명화가 살짝 미소를 보인다.
“풋, 무슨 소리래. 하여튼! 이제는 예전처럼 지내면 안 되는 거예요! 다들 걱정했으니까! 다시 듬직한 대사형이 되어줘요!”
“그, 그럼! 걱정마! 하하하하하.”
“탕약이나 드셔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부르시고요.”
어색한 웃음을 지어대는 정문을 뒤로 한 채 명화가 등을 돌렸다.
그때,
“사매, 필요한 게 있는데.”
“필요한 거요? 뭐에요? 말씀만 하셔요!”
밝게 웃으며 돌아보는 명화에게 정문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폐관···, 한동안 폐관을 해야 할 거 같아.”
!!!
“폐관이요? 갑자기?”
“지난 2년의 기억이 모조리 날아갔어. 그만큼 무공을 잃은 것도 많을 거고. 폐관을 통해 방법을 찾아볼까 해.”
“아니, 돌아온 지 얼마나 되셨다고···”
“스승님께 허락받은 일이야. 준비만 부탁해.”
“얼마나 하시려고요?”
“우선은 한 달 정도. 더 길어질 수도 있고.”
“······. 한 달이면···”
명화는 속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세어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준비해드릴게요. 대신 한 달을 넘기지 말기에요! 꼭!”
무언가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있는 듯 명화는 정문에게 다짐을 받아 내려 했다.
“노력할게.”
“서대 뒤 폐관동에 준비를 해 둘 테니 오늘 밤부터 이용하세요.”
“고마워, 양사매.”
“뭐에요, 새삼스레···. 여튼 열심히 해요! 진사형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까!”
명화는 던지듯 말을 하나 남기고는 총총거리며 모습을 감췄다.
그날 밤, 정문은 서대 뒤의 폐관동으로 몸을 향했다.
***
고요하다.
마치 처음 정문의 기억을 받아들였던 그 물이 가득한 방과 같은 느낌.
‘과연, 무인들이 폐관 수련을 하는 이유가 있었군.’
집중에 집자도 모르는 천방지축을 데려와도 이내 참선에 이르게 할 정도의 고요함이 폐관동 안을 채운다.
원래 이정문의 기억을 모두 문자화한 강찬은 이제 정문의 무공을 체화하려 폐관을 자처한 것이다.
처음 스승과 사숙들에게 폐관 수련을 하겠다 말했을 때 그들 역시 만류했으나, 이내 스승이 살짝
“그것 때문이냐?”
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날리자 고개를 얼른 끄덕여 쉽게 승낙을 받아 버렸다.
“보자, 우선··· 내공부터···”
정문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자신의 단전에 움틀 거리는 기운을 느끼려 애써보았다.
물론, 이전 생에서도 해 본 적은 없다.
사지근맥에 뼈가 박살 난 그가 내공을 쌓을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
다만, 원리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수많은 서책과 정보를 모으며 무림에 누구보다 깊게 발을 담그고 있던 자가 바로 그였으니까.
- 우우우웅
강렬한 기운이 단전을 타고 정문의 몸을 휘몰아 친다.
!!!!
‘이···이거?’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는 정문.
서책과 실전 사이의 괴리감 때문일까?
자신의 계획과 다르게 움직이는 내력에 당황이 앞선다.
물론 자신이 차지한 이 몸의 단전이 두 개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이유도 모르고 다루는 방법도 모르지만, 확실히 그렇게 태어났다는 정보를 머릿속에서 읽었으니까.
다만, 분명히 자신의 스승과 약왕당주인 사숙이 하나의 단전을 단단히 봉해둔 것 역시 알고 있던 정문이다.
헌데, 지금 자신의 단전에서 내력을 뿜어내보려 시도하자 두 개의 커다란 원이 움틀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그였다.
“두 개가 전부 돌아간다고?”
이전 생에서 여러 무학 서적과 의학 서적을 읽은 그였으나, 단전 두 개가 모두 활발히 활동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도 없었다.
본디 단전이란 신체의 선천진기(先天眞氣)와 내력을 담는 곳.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단전의 수가 늘어난다면 좋지 않냐 반문할 수도 있다.
다만, 그릇이 늘어나면 담는 물의 수위는 낮아지는 법.
두 개의 단전이 모두 돌아가려면 일반적인 무인의 내공보다 곱절은 필요할 것이다.
그렇기에 정문의 스승과 사숙은 다른 단전 하나를 임시로 폐하기로 했다.
완전히 박살을 낸다면 선천진기가 흘러나와 몸이 망가지고 폐인이 되겠지만, 임시로 묶어두기만 한다면 선천진기는 유지하며 일반적인 내력 운용이 가능하리라 판단했던 것이다.
그들의 판단은 훌륭했다.
적어도 그들보다 훨씬 많은 의학 지식을 가진 정문의 생각에도 이보다 좋은 대처법은 없었을 테니까.
지금 상황이 그들의 예상과 달랐던 게 문제지만.
“이게 풀려있으면 안 되는데···?”
당황이 얼굴에 아리는 정문.
하지만 이내 다른 위화감 역시 정문을 덮쳐온다.
“풀려있는 것 치고는 또 괜찮은데···?”
실제로 정문의 내기는 주천의 원리를 따라 정확히 순행하고 있었다.
맥을 따라 도는 내력의 줄기 역시 약하지 않았고.
오히려 생전 처음 느껴보는 탓에 맥을 뚫고 달리는 내력의 줄기가 강하게만 느껴졌다.
정문이 잠시 고개를 숙인 채 고민에 빠진다.
서둘러 자신의 머릿속을 훑는 정문.
“이런 경우라면···, 딱 하나겠군.”
결론을 내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력이 넘쳐나는 경우.
답은 하나였으니까.
두 개의 단전을 채우고 뿜어져 나옴에도 충분히 선천진기를 보호할 만큼의 내력이 정문의 몸에 있는 것이다.
“오히려 좋아.”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는 정문.
별다른 이상이 없다면, 이는 당연히 그에게 큰 이득이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
만약 단전 두 개를 채우고 주천을 돌릴 수 있는 내력이라면 이는 이미 한 문파 일대제자의 내력을 훌쩍 뛰어넘고도 남는 것이다.
거기다 공동의 일대제자는······,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고.
다들 일대제자라 불러주나, 그들은 아직 다른 문파라 치면 이대제자 정도의 나이와 무공 수위가 아닌가.
“수상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군. 적어도 2년전 기억에서는 그리 무공 수위가 대단하단 기록이 없었는데···”
이번에도 쉽게 답이 나왔다.
사라진 2년.
그 2년에 해답이 있을 거라고.
“뭐, 지금 당장은 중요한 게 아니니.”
정문은 다시금 가부좌를 틀고 단전에 집중했다.
분명 지금의 몸은 공동의 무공을 익히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그 무공을 직접 자신이 시연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 있을 터.
얼른 무공과 친숙해져야 한다.
“우선은···”
정문은 자신의 몸을 돌던 내력을 갈무리해 단전에 작은 원을 만들었다.
전이 받은 기억 속의 구결들을 차근히 외워간다.
혼원일기공(混元一氣功)
선천진기를 보호하고 내력을 정순하게 만들어주는 공동파의 가장 기초적인 내공심법.
기억에서 문자로 수련법을 익힌 정문은 쉬이 혼원일기공의 기본 연성에 성공했다.
본디 몸이 오랜 기간 혼원일기공을 익혀왔던 덕에 서투른 정문이라도 쉽게 연성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혼원일기공을 이대로 흩뿌리면···, 천뢰복마신공(天雷伏魔神功)이 되는 거군.”
자신의 단전에 형성된 작은 원을 사방으로 흩뿌리는 정문.
그에 맞춰 구결 역시 바뀐다. 조금 더 심오한 내용의 구결이 이어졌다.
그러자 사지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후우우우우우”
뜨거운 한숨이 정문의 입을 타고 뱉어진다.
이내 조용히 눈을 뜨는 정문.
정문의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실제로 몸이 익숙하니 원래 익히고 있던 내공심법은 무공을 익혀본 적이 없던 그였으나 단번에 연성할 수 있었다.
또한, 무재(武才)란 것이 정문에게도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알고 있고 몸이 익히고 있다고는 하나, 문자로 이루어진 이론만 보고 한 번에 연성해내는 것이 무재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이해에도 여러 날이 걸릴 심법을 정문은 단박에 이해하고 적용한 것이다.
이전 생에도 몸이 망가져 무공을 익히지 못한 거지 무공에 대한 열망과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니까.
재능이 있는 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 재주 근처를 서성거리는 법이지 않은가.
정문이 자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미 땀으로 마루가 흠뻑 젖어 앉았던 자리에 자욱이 깊게 새겨졌다.
수련동 깊숙이 자리한 연무장으로 걸음을 옮기는 정문.
“검이라니. 검을 잡는 날이 오다니!”
어느새 손에 날카로운 검을 쥔 정문이 감격한 듯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늘 검을 들고 강호를 유랑하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지 않았었나.
드디어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겨우 추스른 정문이 가볍게 발을 뗀다.
이미 내력을 사지로 보내 경공을 펼치는 방법은 정문에게 아무런 일이 아니었다.
나비처럼 가벼운 경공으로 연무장의 중심에 선 정문은 사방으로 검을 휘두른다.
휘익.
쉬익.
쉭, 쉭!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것 같던 검로가 점점 자리를 잡아갔다.
양기의 흐름에 따라 음을 배제한 채 양으로만 펼쳐나가는 검법, 공동파의 기본검인 소양검(少陽劍)을 정문이 펼쳐보였다.
이어서, 소양의 움직임이 하나의 점으로 빨려 들어간다.
“혼원검(混元劍).”
다시금 공허한 검짓이 펼쳐진다.
“천운검(穿雲劍).”
꽤나 격렬한 검법에도 정문의 표정이 평안하다. 아니, 웃음기가 가득하다.
그의 몸은 마치 이런 움직임이 익숙하기라도 하듯 땀한방울 맺혀 있지 않다.
공허하던 검로가 차츰 패도적으로 변했다.
“현천검(玄天劍).”
검을 자신의 품으로 갈무리하는 정문.
“마지막으로.”
그의 검끝이 미세하게 떨려온다.
어느새 검에 내력을 실을 수 있게 된 정문.
“칠살검(七殺劍).”
이내 패도적임을 뛰어넘은 강렬한 일곱 줄기의 검기가 얽혀가며 정문의 검끝에서 뿜어졌다.
꽈과광!
이내 수련동 한쪽 벽면을 모두 허물고 나서야 정문의 검이 검집으로 들어갔다.
“이게 복마검결(伏魔劍訣)!”
복마검결(伏魔劍訣)이란 공동의 대표적인 검술로 소양, 혼원, 천운, 현천, 칠살의 다섯 검법을 배합해 풀어내는 검법을 말한다.
이는 공동의 가장 기본적인 검법이며 이를 익혀야만 복마검법(伏魔劍法), 복마칠십이검(伏魔七十二劍) 두 무공을 수련할 수 있었다.
허나, 소양, 혼원, 천운, 현천, 칠살의 검은 이대제자의 신분으로도 수련이 가능한 검술.
조금 이르긴 했어도 일대제자인 정문은 아직 하나의 검술을 더 익히고 있었다.
정문이 검을 살짝 말아쥔다.
- 꾸욱.
확실히 정문의 머리로도 다음에 펼쳐낼 광진검(光眞劍)의 검의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왠지 검술을 펼치게 된다면 몸이 무언가 알려줄 것만 같은 기분이 정문을 덮쳤다.
“해보자.”
이내 정문은 다시금 연무장 정중앙에 서서 광진검의 검로를 풀어나갔다.
슈우욱.
후이익.
수이익.
느릿한 검.
그러기에 오히려 더 펼치기 어려운 그 검로를 정문이 차분히 풀어낸다.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정문은 어느새 눈을 꼭 감고 머릿속으로 문자를 읽듯 검로를 미리미리 읽어나갔다.
그럼에도 가슴속에서 무언가 불편함, 즉 이건 틀렸다는 본능이 그를 계속해서 괴롭혔다.
‘뭐지? 뭐가···? 도대체 왜?’
정문은 분명 머리에 보이는 문자와 똑같이 검로를 펼치고 있다.
아직도 무언가 부족함이 계속해서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때.
거진 모든 것을 포기하는 마음가짐으로 감았던 눈을 뜨는 정문.
그러자 그의 앞에는 상상도 못 할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