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009. 그래서, 공동의 검밖에 안 되는 거고.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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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우우.
긴 호흡 소리로 집중력을 가다듬는 사내.
찰랑거리는 긴 머리에 윤기가 가득하고 찢어진 두 눈은 크기가 적당해 얼굴의 만듦새가 헌헌하기 그지없다.
그의 외관만 보자면, 당장에 부채를 펼쳐 들고 시구를 왜야 할 것 같으나 아쉽게도 그의 손에는 험악한 검이 들려 있었다.
공동산 서대 수련장 뒤 깊은 숲.
늘 자신이 홀로 수련할 때면 찾던 곳이다.
- 흡!
고르던 호흡이 멎는다.
이내 사내의 검이 사방으로 흩날리기 시작한다.
쉬이익!
슉-!
사악!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검로가 날카롭게 펼쳐졌다.
사내의 검은 부자연스러운 겉치레를 배제한 오로지 양의 기운만을 가득 담은 소양검(少陽劍)을 펼쳐냈다.
이내 양기를 가득 담은 검로를 갈무리해 한 점으로 파고드는 검, 혼원검(混元劍)이 호쾌하게 공기를 가른다.
사내는 검을 멈출 생각이 없다.
좌상단에서 우하단!
우하단에서 우상단!
우상단에서 좌하단!
직선만을 그리는 현천검(玄天劍)이 패도적인 검로를 발산했다.
- 하앗!
한번 숨을 내쉰 사내는 이어 일곱 개의 혼원기를 검에 두른다.
섬전처럼 파고들어 몸을 틀더니 이내 일곱 개의 검기를 정면으로 뿜어내는 사내의 검.
공동파의 자랑인 칠살검(七殺劍)의 절초 칠살검기(七殺劍氣)가 펼쳐졌다.
- 후우우.
이내 사내는 검을 아래로 향하게 하더니 자신의 마지막 초식을 준비한다.
광진검(光眞劍).
이제껏 펼쳤던 복마검결(伏魔劍訣)의 빈틈을 채워 복마검법을 완성할 마지막 초식이 펼쳐지려던 순간, 사내가 움직임을 멎는다.
펼칠 수가 없다.
아무리 찾으려 해보아도 자신의 검로의 빈곳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가만히 서 심상에 잠긴 듯 눈을 감은 사내.
늘 이런 식이었다.
복마검결을 완결시키는 복마검법의 마지막은 광진검이다.
하지만 사내는 이미 광진검의 검의를 이해하면서도 자신이 배합한 복마검결의 단점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이다.
- 툭.
검이 검집으로 향했다.
위진명의 표정이 또 굳는다.
이틀 전, 자신의 대사형 이정문과 바로 아래 사제인 진사풍의 비무를 두 눈으로 목격했다.
그 비무 속에서 검의를 보거나 벽을 느낀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할 뛰어난 움직임은 없었으니까.
다만, 자신의 사제 진사풍의 움직임은 확실히 이전에 자신이 알던 사제의 무위를 뛰어넘는 움직임이었다.
‘지금 진사제와 겨룬다면···’
자신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결론이 이르자 이내 사형의 모습이 떠오른다.
분명 사형 이정문은 칠살검을 펼치는 와중에 칠상권을 시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조화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어떤 방법을 사용했던 사형 역시 한 계단 성장했다는 것.
진명은, 그러니까 공동의 일대제자 중 둘째인 위진명은 천성이 이러했다.
타인의 성장을 시기하지 않았고 그를 요행이라며 비난하지도 않았다.
그저 타인의 성장 역시 자신의 동기로 삼아 늘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가는 올곧은 무인이 바로 위진명이다.
뒤에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고 올라오는 사제 진사풍, 앞에서는 알게 모르게 한 계단씩 앞서가는 사형 이정문.
둘 사이에 놓인 위진명이 할 수 있는 일은 정진하며 올곧게 나아가는 것.
그뿐이었다.
‘나만 멈춰있을 순 없다. 수인(守一)하여 진일보(進一步)한다. 그게 공동의 무인!’
진명의 눈에서 안광이 발한다.
다시금 손이 검에 닿을 때,
“다시 하려고?”
진명의 움직임을 멈추는 음성이 들려왔다.
조용히 고개를 돌리는 진명.
!!
그의 뒤에는 언제 왔는지도 모르겠는 자신의 사형 이정문이 비스듬히 나무에 기대어 서 있다.
‘이렇게 가까이?’
아무리 검에 집중하고 있었다곤 하나 자신의 바로 뒤까지 다가온 무인의 기척을 읽지 못했다는 사실이 영 꺼림칙한 진명이다.
“언제 오셨습니까?”
“뭐, 조금 전에.”
“수련을 훔쳐보시다니요.”
“아, 혹시 방해될까 봐.”
자신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기우뚱한 자세로 대답하는 정문을 진명이 아래위로 훑는다.
자신의 사형이 2년 전과는 많이 달라진 느낌이다.
이전에는 한없이 자상하고 따뜻한, 아니 그를 넘어 약간은 호구 같은 사람 좋기만 한 사람이 대사형이 아니었나.
“무슨 일이신지요?”
“아니, 그냥. 같이 수련이나 할까 해서.”
낯간지러운 말을 뱉어서인지 정문이 연신 자기 뺨을 긁어댄다.
“일대제자들의 수련은 자율입니다. 각자 수련하면 될 텐데요?”
“뭐, 사형제 간에 서로 도와가며 수련하면 좋잖아? 안 그래?”
“······.”
“막히는 것도 있어 보이던데.”
!!
정문의 마지막 말에 진명이 동요한다.
“무슨 말씀이신지···?”
“광진검.”
!!
“아직 못 찾은 거지? 검로.”
“······.”
정문의 물음이 진명의 정곡을 찔러온다.
마치 칠살검의 검로처럼.
평소 수련이나 무공에 대해 별다른 조언이 없던 대사형이 갑작스레 조언을 건네 온 상황이 낯설게 느껴질 법도 했으나, 너무 정곡을 찔린 탓인지 그런 생각은 진명의 머리를 스치지 못했다.
“사형께서는··· 찾으셨습니까?”
정문의 얼굴을 응시하며 늘 말을 뱉던 진명이었으나 이번에는 정문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스스로 해답을 찾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운 것이다.
“찾았지.”
“어떻게?”
“진짜 알려주길 원해?”
“······.”
“그러니까. 너도 원하진 않을 거고.”
정문의 말처럼, 사형이 답을 알려준다 해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진명도 아니다.
물론 알려준 답이 정답일 거란 확신도 없다.
공동의 검이란 각자의 길로 가는 각자의 검이니까.
“다만, 네가 펼치는 복마검결에 대한 평가는 해줄 수 있지.”
!!
다시금 진명이 고개를 든다.
정문의 얼굴을 바라보는 진명.
이제야 사형의 행동이 평소와 다르다는 게 실감이 난 그였다.
하지만.
“어땠습니까? 제 복마검결은?”
지금 진명의 머리를 꽉 채운 것은 해결하지 못한 검의(劍意)지 사형의 변화가 아니었다.
“아주 패도적이더군. 공동의 검이라 부를 만해.”
호평이 나온다.
좋다.
진명 자신이 늘 바라던 검은 곧은 검.
패도를 바탕 한, 곧은 검이 바로 자신의 검이었으니까.
무언가 사형의 평가에서 자신의 부족한 곳을 찾을 수 있을까 기대했던 진명.
이내 들을 만한 답만 들려오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습니까? 좋은 평가, 감사합니다.”
형식적으로 포권해오는 진명에게 정문이 한마디를 덧붙인다.
“그래서, 공동의 검밖에 안 되는 거고.”
!!!
“무슨 말씀입니까?”
“세상은 넓어. 공동이 다가 아니란 말이지. 진명이 네 검은 해봤자 공동파 내부에서나 조금 먹어주는 검일 거라 이 말이다.”
기대했던 혹평이 튀어나왔다. 다만, 너무 적나라한 탓일까? 반감이 앞선다.
“어째서요?”
이유를 묻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청해 물을 수 있고 따져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 진명의 이성은 지금 상황에서 사형에게는 청해 물어야 하는 것이 확실하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진명은 순간적으로 따져 묻는 말투로 묻고 말았다.
어쩌면 가슴 속 깊이 자리한 자신만의 방어기제일지도 모르겠다.
“흠, 어째서일까?”
“말장난하시지 마시고요.”
여전히 띠꺼운 말투다.
정문이 살짝 차갑게 진명의 눈을 보더니,
“왜 천운검(穿雲劍)은 활용하지 않는 거냐? ”
확실히 진명은 복마검결을 배합하며 소양, 혼원, 현천, 칠살만 배합했을 뿐 천운검은 활용하지 않았다.
사실 패도적인 공동의 여타 무공과 다르게 천운검은 그야말로 뜬구름같은 무공이다.
변초와 허초가 가득하여 공허하게까지 느껴지는 검법, 구름을 뚫으려거든 구름과 같아져야 한다는 검의가 담긴 검법.
그것이 천운검이다.
“변초와 허초, 그 사이를 오히려 다른 직선적인 검으로 채울 수 있다면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진명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자신이 믿었던 길이고 걷는 길이기에 변명이나 항변이 아니다.
그저 설명일뿐.
“그러니까, 변초와 허초는 필요없다. 그냥 닥치고 공격으로 다 이기겠다. 그 말이지?”
“······. 아직 패도를 이기는 변초와 허초를 보지 못했습니다.”
진명이 애둘러 답을 했다.
직접적인 답변을 피하지만, 자신의 뜻 역시 굽히지 않았다.
“이런 헛똑똑이를 봤나. 쯧쯧.”
혀를 차는 정문.
“생각이 다를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지지 않는 진명.
‘올곧다, 올곧아.’
정문의 얼굴에 근심이 아린다.
“뭐, 틀린 지 아닌지는 확인해보면 되는 거고.”
이내 잠시 무언갈 생각하더니 정문이 진명이 수련하던 곳으로 발을 옮긴다.
“?”
“뭐, 이제까지 내가 어땠는지 모르는 건 아닌데. 여튼. 이게 앞으로 내 방식이야.”
- 스륵.
진명의 물음에 정문이 발검으로 답한다.
“비무를 해보자는 겁니까?”
“입씨름은 전생에 많이 해서. 말보단 행동이지. 안 그래?”
“······.”
“괜찮아. 칠상권은 안 쓸 테니까. 그리고, 광진검도.”
!!!
분명 진명이 칠살검과 칠상권을 함께 쓰는 정문의 무위에 대해 걱정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것 때문에 비무를 망설이는 것은 아니었다.
늘 존경하고 따랐던 사형이지만, 방금의 모욕은 진명도 견딜 수가 없다.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 스륵.
마주한 채 검을 뽑아 드는 진명.
검을 눕혀 앞으로 길게 내뻗는 자세를 취하며 단번에 승기를 잡으려는 의도가 눈에 보였다.
그간 자신이 해온 것을 의심치 않기에 위진명의 검에는 망설임이 없다.
- 타닷!
땅을 박차는 소리와 함께 진명의 검이 좌에서 우로 횡을 그리며 정문의 가슴을 향한다.
가만히 선 채 움직임이 없는 정문.
진명의 검은 단박에 치고 나가는 자신의 움직임을 정문이 옆으로 피하지 못하게끔 움직임을 막는 용도에 그치는 일종의 허초였다.
정문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상관없어! 허초따위!’
자신의 허초가 상대를 속이지 못한 것쯤은 진명의 검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검의 진가는 다음부터 펼쳐질 패도적인 검법이니까.
좌에서 우로 횡을 마저 그린 검은 날카롭게 예기를 머금고 정문의 왼쪽 어깨를 향해 찔러 갔다.
- 쉬익!
예리하게 바람을 가르는 검의 속력이 예사롭지 않다.
한 보.
자신의 어깨를 향해 찔러오는 검을 향해 정문이 보였던 움직임은 단 한 보의 걸음이었다.
그저 왼발을 오른발의 뒤로 한 보 옮긴 뒤 몸을 틀어 진명의 검을 피해낸다.
하나 진명의 검은 멈추지 않는다.
찔러가던 검이 정문의 어깨를 관통하지 못한 것을 알아채자 바로 다음 검로를 찾아 베어가는 진명의 검.
어깨를 노리던 혼원검에 이어 현천검의 검로를 그려본다.
이 역시도.
정문에게는 통하지 않았지만.
정문은 여유롭게 검을 들어 진명의 검을 쳐냈다.
이어 정문의 검이 진명의 우수를 향해 뻗어갔다.
서둘러 검을 역수로 쥐어 정문의 검을 막으려는 진명.
순간, 정문이 곧게 뻗은 손목을 틀어 검을 옆으로 뉘어 버린다.
손목을 노리며 찔러오던 검은 어느새 날카롭게 누워 날을 빛내며 진명의 목을 노린다.
하지만 괜찮다. 아직 거리가 조금 있으니.
진명은 역수로 쥔 검을 최대한 몸으로 당겨 방어 자세를 취했다. 검의 옆면으로 정문의 공격을 받아내려는 것이다.
- 꽈앙!
큰 충격이 진명의 전신을 감싼다.
정문의 발이 한껏 몸에 붙은 진명의 검등을 걷어 차버렸다.
진명은 십여보를 날아가 나무에 등을 처박는다.
“컥···!”
힘겹게 고개를 드는 진명의 턱으로 정문의 칼이 예기를 자랑한다.
“졌지?”
의기양양한 표정의 정문이 진명의 앞에 우뚝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