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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공동을 무시하지 마라!-15화 (15/153)

〈 15화 〉 015. 감숙! 감숙! 그놈의 가암숙!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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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뚜벅. 뚜벅.

두 걸음 남짓 걸었을까? 사풍은 다시금 멈춰 섰다. 이미 이런 걸음을 반복한 지는 한참이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황소처럼 자신의 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뚜벅. 뚜벅.

결국에는 마주해야 하는 미래임이 확실했지만, 어떻게든 피하려는 노력이었을까.

그의 걸음이 자꾸만 늦어졌다.

그럼에도 다가올 미래는 다가오는 법.

어느새 그는 삼관궁 최상층, 태상장로들이 기거하는 곳에 닿아있다.

- 똑똑.

자신이 당도했음을 알리는 소리에 이어 무거운 목소리가 문을 타고 나온다.

“들거라.”

아, 이제는 발걸음을 애써 늦추는 것도 소용이 없을지 모른다. 저 문이 열리면 두 걸음만 떼어도 곧 지옥일 테니까.

“일대제자 진사풍이 태상장로님을 뵙습니다.”

무표정하게 붓을 놀리는 공준 도인이 사풍을 맞이한다.

“흠.”

짧은 숨소리와 가벼운 손짓으로 방안을 가리키는 공준.

사풍은 총총걸음으로 얼른 방에 들어섰다.

이미 더는 늦출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문에게 패했다지?”

“······.”

“먼저 찾아가 시비를 걸어놓고도.”

“······.”

정확히 말하면, 시비는 먼저 걸었으나 비무를 먼저 건 것은 사형이었다.

“죄송합니다.”

- 빠악!

찻잔이 날아와 사풍의 옆을 때린다.

분명 자신의 뺨을 스쳐 벽을 때렸음에도 뺨에는 묵직한 고통이 아렸다.

“그런 말을 듣고자 너를 부른 것이 아니다.”

아직도 공준은 사풍을 쳐다보지 않고 있다.

그저 붓과 함께 책 위를 누빌 뿐.

“······.”

“실력으로라면, 바로 위의 사형도 이기지 못하던 네놈이 아니더냐? 기대치 않았으니, 사죄도 말거라.”

분명 꾸짖는 것이 아니란 말이나 왠지 모를 노기가 말에 숨겨져 있다. 날아오던 찻잔에 담긴 내력이 그 노기일지도 모르겠다.

사풍은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것이 아닌 경멸이 숨겨진 말이 더 아프기만 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다시 네게 이런 기회가 올 것은 같고?”

“······.”

“앞으로는 직접 정문을 상대하려 하지 말거라. 이미 실력으로는 뒤처짐을 모두에게 보여버렸으니 애써 이겨봤자니라.”

“하면···?”

“빈틈을 노려야겠지.”

“소손이 아둔하여 뜻을 모르겠습니다.”

“쯧쯧, 무재만 아비를 닮은 줄 알았더니 멍청함은 제 아비를 아득히 넘어서는구나.”

“······.”

“너는 정문에게 도전치 말고 기회를 보기만 해야 할 것이다. 그저 정문이 스스로 엎어질 기회만을 노리거라.”

“허나 그건···”

자신의 손으로 얻는 승리가 아니다. 자신이 쟁취한 자리가 아니란 말을 하고 싶었던 사풍이었으나 이내 말을 삼켰다.

이미 자신의 손으로 그 승리와 자리를 날려버린 자가 바로 자신이 아닌가.

“쯧쯧쯧, 제 손으로 모두 날려버리고도 아집이 남았더냐?”

“아닙니다. 실언했습니다.”

“너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그 기회마저도 내가 줄 것이니.”

“······.”

“못난 놈 같으니.”

“하명을 기다리겠습니다.”

“기억하거라, 너의 모든 것은 내가 내린 것임을. 너의 기회도, 네가 차지할 그 자리도 말이다. 고로 내가 곧 공동이다.”

“······ 예.”

“평량으로 가거라.”

“평량은 왜···?”

“평량에 사파놈들이 숨어들었다. 정문이 제자들을 이끌고 이를 해결하러 평량으로 향했다.”

“태청궁에는 그런 말이···, 어째서 복마대나 태청궁이 아니라 그자가 가는 겁니까···? 이건 절차에···”

앞서 질책받은 실책을 만회하기 위해서였을까? 사풍은 평소보다 많은 말을 쏟아냈다. 지금 그 절차는 잘못되었다. 우리는 그 점을 공략하자. 하는 취지였을 지도 모른다.

하나, 공준의 날카로운 눈빛이 사풍의 뺨을 스쳤다. 드디어 고개를 들어 자신의 손주를 바라본 것이다.

“누구 때문에··· 누구 때문에 이 일이 정문에게 넘어갔는지 모른다는 말이더냐?”

“!!”

“네놈은 그저 내가 시키는 일을 하면 된다. 앞서 말했듯 기회든 자리든 모두 내가 줄 터이니 그저 내 말을 따르란 말이다. 그게 그리도 어렵더냐?”

“······”

“조용히 사형제들의 뒤를 밟거라. 정문이 2년 만에 사문에 돌아온 게 예삿일은 아닐 터. 본디 사문 밖을 나서면 책잡을 일이 있을 것이다. 없더라도. 이번 일을 처리하며 생길지도 모르지.”

“만약의 경우 개입을···”

“만약의 경우! 가 생긴다면. 좋은 일이 아니더냐?”

!!

사풍은 자신이 입 밖으로 내뱉은 만약의 경우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공준, 자신의 조부가 하는 말의 뜻 역시 단박에 알아들었다.

사형제의 죽음을 그저 관망하라는 뜻일 것이다.

공준은 다시금 사풍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마치 그러한 자신의 태도를 사풍의 머릿속에 각인이라도 시키려는 사람 같았다.

“싫으냐?”

“아, 아닙니다.”

“명심하거라. 정문에게, 진명에게! 아무것도 이기지 못하는 네놈이 믿을 것이라곤 이 몸뿐임을 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가보거라.”

- 후.

짧은 한숨과 함께 공준의 방을 나선 사풍이 계단에 몸을 기댄다.

언제부터였을까, 자신의 조부가 자신을 이렇게 경멸하게 된 것이.

아버지가 사문에 남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

사문을 떠났던 아버지가 자신을 공동에 입산시켰을 때?

처음 공동에 입문했을 때는 조부도 곧잘 그를 귀여워했다.

무재와 오성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기에 무공의 습득이 빨랐기 때문이다.

입산 후 3년이 지났을 무렵, 사풍은 누구보다 뛰어난 성취를 자랑했다.

당시의 성취로는 정문도 진명도 감히 사풍에 견줄것이 못되었다.

공준은 그런 사풍을 특히 아꼈다.

당시 구천각 각주였던 공준은 스스로 율법을 어겨가며 사풍을 편애해주었고 사풍은 그런 조부의 관심이 싫지 않았다.

뜀박질을 시작할 나이가 되며 바로 공동산에 보내졌던 사풍이다. 아비의 정, 어미의 사랑 따위 받아보지 못한 그에게 조부의 관심은 유일하게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증거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던 중, 단 한 번의 사건이 모든 걸 망쳐 놓고 말았다.

딱 한 번.

분기별로 제자들의 성취를 시험하는 날, 사풍은 딱 한 번 정문에게 지고 말았다.

일방적인 패배도 아니었으며, 사풍이 자만 한 것 역시 아니었다. 그저 그날 정문의 몸 상태가 좋았고 정문의 일시적인 응용이 더 뛰어났을 뿐이었다.

엉덩방아를 찍은 채 정문이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선 사풍은 정문의 어깨너머로 전해지는 뜨거운 시선과 마주해야만 했다.

바로 조부의 눈빛.

그 작은 실수. 단 한 번의 뒤처짐을 용서할 수 없다는 조부의 눈빛이 사풍의 뇌리에 남은 것이다.

공준은 그런 사풍에게 별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공준의 노기와는 별개로 다른 결과가 사풍을 괴롭혔을 뿐이다.

뇌리에 박힌 그 시선이 잊히지 않아서였을까?사풍은 그 뒤로 정문을 넘어서지 못했다.

뛰어났던 오성과 무재는 곧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잡아먹혀 버리고 만 것이다.

순리처럼, 정문을 넘어서지 못하는 사풍에게 따뜻한 조부는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뭘 하던 자신의 아버지를 들먹이며 사풍에게 혹평을 내놓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사풍은 자신이 다시금 조부에게 인정받으려면 무얼 해야 하는지, 조부가 무엇을 그토록 원하는지 차츰 깨달아갔다.

‘대제자’ 아니, 그를 넘어선 ‘장문인’이 되어야 함을 말이다.

***

높이 뜬 해가 취병봉 뒤로 숨어버린 저녁.

네 개의 그림자가 공동의 문을 넘는다.

조천문과 태청궁마저 굳게 문을 잠근 시간이기에 공동에는, 공동산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담을 조심히 넘은 네 개의 그림자는 흐르는 구름과 같은 신법으로 숲길을 내달렸다.

그리고 그런 네 개의 신형을 쫓듯, 하나의 그림자가 조심스레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나선다.

앞서 달린 그림자는 당연하게도 공동의 대제자 정문을 위시한 일대제자 삼인방이었다.

‘하 공동의 일대제자가 사파인이랑 싸워본 적이 없어?’

바래 마지않던 강호에 드디어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으나 정문의 표정은 밝지 않다.

새롭게 태어나며 정순하고 가득 찬 내공을 받은 것은 좋았다.

익히고 있는 무공 역시 약하지 않았다.

성취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제 실전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은 정문이 제일 잘 아는 일이었다.

무작정 실전에 뛰어드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정문은 그럴 만한 무공과 내공을 지니고 있으니까.

하지만 정문의 성격은 그러지 못했다. 언제나 신중하며 최선을 선택해 도전하는 것이 황궁에서 살아남았던 자신의 방식이 아닌가.

그렇기에 정문은 사제들을 이용하려 했다.

공동파의 일대제자쯤 된다면 악인을 처단한다거나, 다른 사파의 인물들과 무공을 겨룬다거나 하는 일이 많았을 것이 아닌가.

물론 일대제자라는 직위를 받은 지가 채 5년여 정도밖에 안 된 것을 감안 하더라도 이런 경험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아니, 공동산 주변에는 아무리 사파인들이 없다 해도, 강호행을 돌며 사파인들과 부딪히는 일은 있었을 것 아냐?”

“······, 저흰 아직 제대로 강호행을 나선 적이 없는걸요.”

“그니까 왜! 왜! 그런 경험이 없냐고!”

정문과 명화가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진명이 눈치 없이 살짝 끼어든다.

“전 산적을 토벌한 경험이 있습니다!”

아주 자신감에 찬 말투였다.

“아이고 그러셨어요? 산적이요? 사안저억? 우리 위사제 증말 대단하시네!”

“알고는 계시겠지만··· 공동은 감숙 밖에 일에는 무심한 편입니다.”

대답하는 진명의 표정이 어둡다.

그 역시 사문의 이런 소극적인 행보가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란 것을 아는 것이다.

“복마대! 진명이 너랑 묵환이는 복마대 소속이잖아?”

복마대는 복마각에 속한 제자들을 칭하는 말로 공동의 최대 전력이라 할 수 있는 무력 단체를 일컬었다.

“복마대는··· 정마대전 이후로 출격한 적이 없는 단체라···”

아오.

정문의 혈압이 관자놀이를 따끔거리게 했다. 이전 생에서 자신은 황궁에 속해 무림의 정보를 다루는 일을 했다. 당연하게도 무림을 적대적 입장으로 바라봤고, 무림은 자신의 적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위험해 보이며 적대적 행위로 보였던 정문이다.

그런 정문의 시각에서는 무림이 이렇게 평화롭다는 현실적인 감각은 생소하기 그지없는 것이 당연했다.

더 나아가 이놈의 문파는 구파일방의 일각을 차지했다면서도 무슨 산상 은거 문파 정도로 자신들을 인식하는 모양이다.

다른 문파와의 교류도 없고, 그렇다고 눈에 띄게 강호에 뛰어들어 협행을 행하지도 않는다.

그냥 구파일방 딱지도 떼고 공동파 이름도 버리고 은거나 하지 그러냐는 말이 정문의 목을 탔으나 겨우 삼켜버렸다.

이놈의 문파가 가장 열 받는 것은 또 완전히 속세에 관심을 끊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감숙의 일에는 마치 자신들이 무림맹이라도 되는 마냥 팔 걷고 나서는 것이 공동이었다.

감숙! 감숙! 그놈의 가암숙!

“도대체 감숙에 무슨 꿀이라도 발라놨냐? 중원은 저기 아래에서 요동치는 데 왜 공동은 감숙에서 나갈 생각이 없냐고!”

“······. 예전부터 공동이 이랬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예전에는 뭐 강호에 이름 날린 무인이 공동에 있었고?”

“그, 그건 아니지만. 정마대전이나 정사대전 때는 공동이 제법 활약을 했다고···”

“근데 지금은 왜 이렇냐고!”

“전대 장문인과 태상장로님들이 문파의 중진을 차지 한 이후 이렇게 되었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태상장로!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들은 당장에 정문의 앞길을 막는 것을 넘어 한 세대에 걸쳐 자신의 앞길을 막아선다.

꼰대도 그런 꼰대들이 없다.

“걱정마세요! 수련은 게을리 한 적이 없고, 사형제들과 대련으로 실전 감각을 많이 키웠으니까요!”

명화가 밝게 웃으며 정문의 걱정을 덜어주려 했다.

“아니··· 백날 안에서 치고받고 싸워봤자 뭐하냐고··· 다른 무공도 좀 경험해보고 해야지.”

부쩍 ‘아니’라는 말로 입을 여는 경우가 많아진 정문이다.

“평량에 가신 후에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만화대사께서 따로 정보를 알려주신 것이 있습니까?”

쉬지 않고 발을 움직이면서도 진명이 차후의 계획을 물었다.

“아쉽게도 아는 건 없어. 우선 평량에서 동태를 조금 살펴보자고. 산화사괴에 대한 이야기를 최대한 수소문하고.”

“그러면 저희 상단으로 가요! 상단 사람들이라면 도시를 왕래하며 놈들을 마주친 적이 있을지도 몰라요.”

초롱한 눈으로 말하는 명화.

정문은 다시금 명화에 대해 떠올렸다.

명화는 감숙에서 제법 큰 규모를 자랑하는 감평상단의 여식으로 평량에도 상단의 지부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평량 지부에 아는 분이 있어?”

“그럼요! 지부장님이 저를 얼마나 이뻐해 주셨는데요!”

“오랜만에 뵙겠군.”

“가끔 태청궁에 들르셔서 뵙기는 자주 뵈어요. 상단에 들르는 건 거의 처음이지만요!”

“흠···, 믿을 만한 상단이라면 그보다 좋은 소식통도 없지. 좋아. 우선 명화와 진명은 감평상단으로 향해. 묵환이랑 나는 잠시 다른 곳을 들린다.”

“같이 가시지 않고요?”

“정보는 대조가 가능할 때 더 값진 법이지.”

“예?”

의아한 사제들의 표정에 정문이 그저 웃음으로 답했다. 얼버무리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었으나, 어쩐 일인지 요즘은 사형의 저 웃음을 보면 이상하게도 믿음이 가는 그들이다.

“생각이 다 있어. 믿고 상단에서 기다려. 절대 눈에 띄는 행동은 삼가고. 인질이 있다는 걸 잊지 말도록.”

“옙!”

이내 산길을 달려 내려가던 그들의 눈앞에 평량의 모습이 펼쳐졌다.

넷은 조금 더 함께 달리더니 이내 갈림길에서 두 갈래로 찢어져 발을 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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