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018. 그…, 미치셨습니까?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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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숙성 평량 낙호산.
본디 낙호산장이라는 자그마한 산장이 낙호산 전체를 관리하며 조용한 풍경을 자랑하던 곳이었다. 물론 얼마 전까지는.
얼마전, 일꾼 대여섯이 기거하던 산장 건물에 4명의 무인이 들이닥치더니 어느새 그곳은 그들의 소굴이 되어버렸다.
가끔 약탈하러 관도로 내려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그들은 항상 낙호산장에 머물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들처럼.
지금은 어느새 무승이 하나 더 들어와 조금은 상한 몰골로 벽에 매달린 채 함께 생활 중이다.
“공동이 우리 생각대로 움직일까요?”
허리춤에 쌍륜(雙輪)을 찬 비쩍 마른 사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사내는 마당에 장작을 쌓아 불을 피운 채 손을 녹이고 있다.
“그럴 수밖에.”
등에 검을 맨 사내가 퉁명하게 답한다. 그의 얼굴에 수없이 그어진 칼자국이 그의 인생을 대변하는 것 같다.
“대형은 어찌 그리 확신하십니까?”
“우리 형님을 못 믿겠다는 거냐? 당장에라도 다른 곳으로 꺼지던지!”
비쩍 마른 사내의 반문에 다른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헐거워진 가죽으로 쌍도를 겨우 등에 고정한 다른 사내가 말을 받았다. 그의 모습이 얼굴에 칼자국이 많은 사내와 닮아있다.
“그런 말이 아니잖소.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그렇지.”
“흥. 여기까지 살아서 온 게 전부 누구 덕인데!”
“대형 덕이라는 걸 모르는 게 아니잖소!”
둘의 언쟁이 조금 격화되자 칼자국의 사내가 나선다.
“그만.”
근엄한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비쩍 마른 사내와 쌍도를 찬 사내는 당장에라도 병기를 뽑아 서로의 목을 칠거 같던 기세를 얼른 숨겨버린다.
“공동이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이 말이 곧 우리의 계략이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것이지.”
“이 틈에 섬서나 청해로 넘어가 버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굳이 공동과 담판을 벌여야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비쩍 마른 사내는 오랜 시일 한곳에 머무는 자신들의 처지가 불안한 모양이다.
“그건 안되네. 공동이 움직이기 전에 감숙을 벗어난다면, 다른 구파의 추적을 받게 될 거야.”
“구파 놈들이 그렇게 무섭습니까? 그래봤자 고창의 놈들보단···”
비쩍 마른 사내가 신강에서 만났던 무언가에 대해 말을 하려다 삼킨다. 그의 얼굴이 살짝 떨리는 것이 공포에 휩싸인 것처럼 보인다.
“구파가 무서운 게 아니지.”
“허면요?”
“화산과 종남. 그 둘이 무서운 거다.”
“그게 구파 아닙니까?”
“다르다. 구파에서도 엄연히 급이란 게 있는 법이야. 화산과 종남, 소림과 무당은 다른 구파와는 그 급이 다르다.”
“그런 말은 또 처음 듣는군요.”
“흥. 당연하지. 놈들은 죄다 겸손한 척을 해대며 구파는 비슷하다는 논지를 펼치니까. 그게 자신을 스스로 감추는 전략인 것이다.”
“굳이요?”
“그들은 패도적인 강함을 가진 정파인들이다. 정도라는 이름과 패도적인 강함은 늘 불균형을 불러일으키지. 그들은 그 강함으로 군림하려 들지 않아. 오히려. 강함을 숨김으로 자신들에 대한 견제를 피하는 것이지.”
칼자국이 자욱한 사내가 불을 보며 자신의 통찰을 들려준다. 사내는 마치 구파의 인물들과 손을 섞어 본 것처럼 말했다.
“후우. 진당 대형. 그래서 형님은 이제 어쩌실 생각입니까?”
비쩍 마른 사내는 아직도 불안이 가시지 않는 모습이다. 서장에서 쫓기듯 국경을 넘어 감숙으로 내려왔다. 거기서도 안심하지 못해 다시 남감숙까지.
하지만 아직도 안전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를 않는다. 이제는 뒤에서 쫓아오는 호랑이와 주변을 서성거리는 이리까지 함께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린 것이다.
“재군. 걱정 마시게. 만화대사가 공동으로 향한 것까지는 확인을 하지 않았나? 욱수가 정확히 본 것이니 믿어도 될 거야.”
“토벌대가 오면요? 저흰 넷뿐인데···”
“그깟 공동의 토벌대 따위! 산에서 검만 휘두르던 샌님들 따위 이 조진남의 쌍도를 막지 못해! 놈들이 해봤자 고창의 놈들보다 더하려고!”
쌍도를 찬 조진남이 자리를 박차며 소리쳤다. 자신 역시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 그러한 두려움을 떨치려 너스레를 떠는 것이다.
“그럴 걱정은 넣어두어도 좋다. 만화가 이미 공동에 들었음에도 태청궁이 조용해. 이는 직접 토벌대를 보낼 생각이 없다는 뜻이지.”
“그···그러면?”
“둘 중 하나. 처음부터 협상을 요구하거나···, 몰래 만강을 구출한 후 우리를 치거나.”
!!
“만강에 대한 구출이라···. 방비를 철저히 해야겠군요.”
“그 또한 걱정이 없다. 공동의 구출대는 우리에게서 아무것도 얻지 못할 테니까.”
“어째서 그렇습니까?”
“후후. 정파 놈들이란 그런 것들이지. 적을 칠 때도, 누구를 구할 때도! 항렬이니 연공이니를 따져가며 토벌대를 구성하는 것들이 바로 그들이다.”
“허면?”
“우리를 치려 공동의 장로들이 나설 일은 없다는 뜻이지. 아마 일대제자 정도의 문도들이 나올 것이다.”
“허나, 구파일방의 일대제자가 아닙니까? 그들 역시···”
“고수겠지. 다른 구파라면.”
“?”
“이미 공동에 대한 정보를 흑시창에서 구입해두었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나이에 비해 일대제자에 오른 게 빨라. 아직 무르익지 않은 무인들이란 말이다.”
진당의 말에 재군의 표정이 조금 밝아진다.
“그러면···?”
“그래. 이미 놈들이 소수로 오는 것이 확실한 상황이지. 우리는 그 어린놈들을 적당히 손봐준 뒤 인질로 잡는다. 만일 놈들이 먼저 협상을 요청해 온다면 좋겠지만, 나름 정파란 놈들은 그러질 않는단 말이지.”
“협상의 여지가 있다면 어떻게 하시려구요?”
“화산과 종남에 알리지 말 것을 요청할 생각이다. 만약 그게 안 된다면, 일대제자를 인질로 삼아 섬서를 돌파한다. 이후 풀어주면 그만이야.”
“과연!”
“모든 게 저 만강이라는 땡중 덕이다. 혹여 감숙을 벗어나거든 절에 불공이라도 올려야겠군.”
“헤헤, 선지가 가득한 고깃국을 올려야지요.”
이제는 웃음기까지 띄게 된 재군이 섬뜩한 농담을 해댄다.
“욱수는 자나?”
“돼지 놈은 이미 곯아떨어졌습니다. 깨울까요?”
“음. 깨워. 이제부터는 늘 대비를 한 채 대기한다.”
“놈들이 어떻게 쳐들어올까요?”
“우리를 유인하려 하겠지. 아니면 각개 격파를 노리거나.”
“대문을 뻥 차고 들어와 주길 바랬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은 접어두자고. 놈들은 치밀하고도 은밀한 작전을 펼칠 거야.”
“기대가 되는 군요. 놈들만 처리한다면··· 그 무시무시한 고창놈들의 손에서 벗어나겠군요.”
“그래. 섬서를 지나 남하할 수만 있다면···, 걱정은 없지.”
“좋습니다. 욱수를 깨워 대비시키겠습니다.”
말을 마친 재군은 전각으로 발을 향했다. 마당에 남은 첫째 진당의 눈이 깊어진다. 모닥불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회한이 아린다.
‘살았다. 이제 살았어.’
두려움, 공포 그런 감정을 넘어선 해방감이 그를 맞이한다. 이제 잠시면 된다. 딱 한 번의 조우면 그들은 살 수 있는 것이다.
살짝 턱이 들린다.
옅은 미소가 진당의 얼굴을 채웠다.
***
산화사괴를 쫓아 낙호산으로 온 뒤는 모든 일이 쉬웠다. 어둠이 자욱한 낙호산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라곤 낙호산장 하나뿐이었으며, 하늘로 치솟은 연기 역시 그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곳이 확실하군요.”
“어떻게 하죠?”
“꿀꺽.”
진명과 명화, 묵환이 저마다 소리를 낸다.
“흐음.”
고민에 빠지는 정문.
사실 이런 구출이나 토벌은 정문의 전공은 아니다. 보통 납치나 암살, 모략을 계획하는 게 그의 영역이었으니까.
물론 구출이나 토벌을 진행한 적도 있다. 명령만 내리면 알아서 고수들이 가서 구해왔긴 하지만.
흑시창의 자료에는 저들의 무공 수위가 대문파의 일대제자 정도는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진명이나 사풍과 비슷하거나 조금 뛰어난 정도. 명화와 묵환보다는 적어도 한 수 이상의 고수란 뜻이 된다.
자신이 홀로 왔다면 더욱 간단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미 일대제자들과 수련하며 그들의 무공 수위를 지켜본바, 정문은 지금 홀로 진명과 사풍, 명화와 묵환을 모두 상대해도 승기를 잡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지.’
문득 자신이 처음 황궁에 입궁했던 날이 떠오른다. 수보 조숭은 자신을 바로 금의위 서고에 던진 후 다른 이들과 경쟁을 붙였다. 서로 모함해 죽고 죽이는!
정문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전부 알기도 전에 실전을 겪었다.
뭐, 효과는 확실했다.
그 이후 정문이 보여준 행보를 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가.
그렇기에 정문은 실전에 대한 예찬론을 가진 상태다. 그리고 그런 실전 경험을 이번에 자신의 사제들에게 시켜주고자 한다.
“일단, 만강대사를 구한다. 이후 놈들을 친다. 이게 작전이야. 맞지?”
“옙!”
“그럼, 가자.”
“예?”
“뭘 예?야. 그냥 가자고.”
“자, 잠깐만요! 사형! 어떻게 진입하고 대사를 구할지 아직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는데요!”
보채는 정문을 만류하며 명화가 다급히 말했다.
“흐음. 뭘 어떻게 구해. 놈들을 피해서 슥슥슥 해서 구하고 놈들을 팍팍팍 하고 때려잡는다!”
“······.”
정문의 어이없는 설명에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분명 여기 오기 전까지 사형은 누구보다 뛰어난 통찰과 식견을 보여줬다.
그렇기에 이들은 사형이 완벽한 계략을 펼쳐 인질을 구한 뒤 저들을 토벌할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처참히 깨졌지만.
“그···, 미치셨습니까?”
진명이 진지하게 묻는다.
“뭐?”
“미치지 않고서야 그냥 가자는 말이 어떻게 나옵니까!? 인질도 죽이고 우리도 죽으란 말씀입니까?”
이 새끼의 띠꺼움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그···, 내가 한번은 봐준다. 여튼. 그냥 가면 돼. 설명은 못 하겠지만. 가면 돼.”
“안됩니다.”
씁. 새끼야 말좀 들어라. 제발.
이라는 표정이 정문의 얼굴을 채운다.
내가 단전이 두 개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술까지 갖춘 내공 빵빵한 고수다! 아! 다른 문파의 무공도 조금 익혔지! 헤헤헤! 라고 얼른 설명하고 싶은 충동이 정문을 휘감았다.
“후우. 좋아. 작전이라···. 작전 좋지.”
“다른 생각이 있으셨군요.”
“그럼. 있지. 자, 설명할게. 잘 들어. 우선은 놈들이 있는 산장 바로 앞까지 기감을 숨긴 채 접근한다. 이상 있나?”
“없습니다!”
“자, 다음은. 놈들이 산화사괴가 맞는지 확인을 해야겠지. 혹여 헛다리거나 함정일 수도 있으니. 문제없지?”
“없습니다!”
“자, 다음이 중요해. 빠르게 내부의 동태를 살펴 인질의 위치를 파악한다. 이해됐나?”
“됐습니다!”
대답들은 참 잘한다.
“마지막으로 시선을 끄는 동안 안으로 잠입해 만강대사를 구한다. 그게 우선이 되어야 하는 거야. 우선순위 파악했나?”
“옙!”
“마지막으로 놈들을 친다!”
“오오오오!”
하하하. 이 무식한 말코 놈들은 정문이 조금 전 했던 스슥 구하고 파팍 친다는 말을 풀어주니 진짜 작전이나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사실 진명은 정문의 말이 조금 전의 말을 풀어 한 것임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사형이 한 말 자체가 구출의 기본이기에 조금은 더 풀어서 설명해줄 것을 원했을 뿐이다.
‘말씀은 저리하셔도 은밀하게 움직이실 분이다.’
이미 능구렁이같이 자신의 무공과 성격을 숨겨왔던 대사형이다. 조금 전 자신들의 긴장을 풀어주려 간략히 설명했지만, 지금은 또 이렇게 자세히 설명 해주지 않는가.
더 반대해봤자 균열만 갈 뿐이다.
진명은 그저 사형을 믿어보기로 했다.
어느새 낙호산장의 대문까지 다가선 그들.
정문이 손짓으로 준비할 것을 명한다.
사제들의 위치를 확인한 정문이 내기를 끌어올린다.
‘사형의 발에 내력이 모여든다.’
“산화사괴가 맞는지 확인부터 하자.”
정문이 작게 속삭였다.
진명은 그 모습을 보곤 안심하기로 했다. 사형은 발끝에 내력을 모아 빠른 신법으로 안을 살펴보려는 것이 분명했다. 이미 산에서 내려오며 사형의 행운유수 신법이 오성을 이뤘음을 목격했던 진명이다.
기감을 감춘 것 역시 완벽하다.
사형은 조심히 잠입해 내부를 살펴볼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안도감이 드는 진명.
진명은 빠르게 담벼락과 전각, 주변에 자리한 나무들의 위치를 살폈다.
‘음, 담벼락을 밟고 빠르게 나무로 이동, 그리고 전각의 지붕으로 올라서려는 건가.’
이제는 자신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형이 안쪽을 살피는 동안 적들의 동태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 혹여라도 사형이 들킬 염려가 있을 때는 사제들과 함께 개입해 전투를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진명이 검갑을 꾸욱 쥐었다.
‘사형이 자리를 비우면, 내가 사제들을 지킨다!’
사형이 담을 넘는 순간, 모든 힘을 눈에 집중시킨다. 어둠을 뚫고 적들의 작은 움직임 하나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진명이었다.
진명이 최대한 안력에 집중하는 순간.
- 꽈아아아앙!
내력을 잔뜩 모은 정문의 발이 대문을 날려버렸다.
연이어 우렁찬 목소리로 정문이 소리쳤다.
“니들이 산화사괴냐?”
정문의 작전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