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019. 서로 죽여봐.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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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꽈아아아앙!
주변 곳곳을 살피던 진명의 예상을 무참히 깨버리는 잔인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들킨 건가?’
라는 생각이 잠시, 아주 자암시 진명의 머리를 스쳤으나, 이내 진명의 시각이 그를 부정했다.
너무나도 명백하게 산산조각이 난 대문이 그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뻥 뚫린 대문의 크기를 입으로 가늠하기라도 하려는 듯 진명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물론, 명화와 묵환의 입도 함께.
우렁차게 대문을 날려버린 자신의 대사형은 어느새 산장으로 들어가 검을 어깨에 떡 하니 메고는 건달패 같은 자세로 저들의 신분을 확인한다.
사실 놀랄 것도 없긴 하다.
사형이 앞서 전부 설명해주지 않았나.
조용히 접근해 저들이 산화사괴가 맞는지 확인을 하겠다고.
당연히 그 ‘조용히’가 ‘확인’까지 수식하는 거라 생각했던 진명은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산화사괴 맞냐고 묻잖아!”
잔뜩 건달패 같은 말투가 다시금 들려온다.
눈물이 차올라서 고개를 드는 진명.
흐르지 못하게 또 활짝 웃을까 하다 이내 사제들의 표정을 살핀다.
이미 명화와 묵환은 반쯤 의식이 나가버렸다. 너무나도 부럽다. 여기서 맨정신을 유지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운 찰나.
차츰 산화사괴로 추정되는 무리의 표정이 진명의 시야에 들어왔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과 같다.
당연히 외모는 자신이 빼어날 것이다. 다만. 적어도 입을 벌리고 눈을 툭 튀어나오게 한 저 모습은 자신의 표정과 이상하게도 겹쳐 보인다.
“대, 대형! 혹시 공동의···?”
셋째 형제 사재군이 조심히 다가와 첫째 조진당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으음. 그런 것 같군.”
“정말 대문을 차고 들어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 그러게 말일세. 여간 미친놈들이 아닌 거 같군.”
“인질이 있다는 걸 잊은 걸까요?”
“저렇게 들어왔다는 말은 구출은 포기한 것일 테지.”
“바로 칠까요?”
“협상의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니 내가 대화를 나눠보겠네.”
“조심하십시오.”
재군과 진당이 작게 대화를 나누자 문을 박차고 들어온 도사의 표정이 더욱 찡그려진다.
- 빠악!
주변에 널브러진 대문을 다시금 걷어차는 도사.
“산화사괴 맞냐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적어도 구파일방의 한 문파라면.
더욱이 그곳의 일대제자 정도의 중진이라면. 위풍당당한 면모와 예의 바른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당연했다.
진당 역시 정파라는 작자들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는 별개로 공동의 제자들에 대해 나름 가지는 예상이라는 것이 있었다.
헌데, 지금 저 도사의 모습은 흡사 자신들이 수금이나 약탈을 나설 때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
상당히 보기가 흉했다.
속으로 다음번 수금 때는 조금 친절히 대해볼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니, 말이다.
뭐,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이다.
진당이 침을 꼴깍 삼킨다.
“공동에서 오셨소?”
진당의 물음에 앞선 도사가 아닌 뒤편에 선 헌헌한 외모의 도사가 고개를 숙인다.
그래.
그게 가장 큰 문제지.
라는 표정이 헌헌한 도사의 얼굴에 맺혔다.
“너희가 산화사괴냐고 묻는 데 왜 우리 신분을 되묻고 있어? 산화사괴 맞냐고!”
“흠, 실례했소이다. 여기 있는 우리 형제들은 신강 무림에서 산화사웅으로 불리던 형제들이 맞소.”
“그럼 맞는 거네?”
“그렇소! 이제 그대들의 신분을 밝히시오. 공동에서 오신 분들이 맞소이까?”
진당은 젊은 도사의 언행이 다소 무례해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웠기 때문일까 진당은 별다른 시비를 걸지 않은 채 대화를 이어갔다.
“맞대.”
씨익.
정문이 뒤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운다.
아, 저희도 들었거든요?
라는 표정이 사제들의 얼굴에 선명했으나 정문은 개의치 않았다.
‘웃어?’
진당은 어쩌면 일이 잘 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은 분명 자신들을 당황하게 한 후 대처를 보며 대화가 통하는 적인지를 가늠하려는 것이라 진당은 생각했다.
“만강대사는 어디 있지?”
“후후. 성정이 급하시구료. 대사는 안전히 전각 안에 모셔다 두었소. 몸이 크게 상하진 않았으니 걱정 마시오.”
진당은 먼저 들어온 도사와 그 뒤의 도사까지 넷의 움직임을 모두 살핀 후 답했다.
혹여 한 명이라도 모습을 감추는 순간 협상은 결렬되는 것이다.
“그래? 저기 저 전각이란 말이지?”
정문이 손을 들어 안쪽의 전각을 가리켰다.
“그렇소.”
협상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가진 패를 당연히 보여주어야 한다.
물론 보여준다고 해서 저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진당에게 전혀 들지 않았다.
“그렇단 말이지.”
말을 마친 정문이 다시금 씨익 웃는다.
“자, 그럼 이제 협상을···”
정문의 미소가 평화적 해결을 뜻한다 생각했던 진당.
진당은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려 협상안을 내놓으려 했다.
하지만.
- 쾅!
말을 마치지 못한 진당을 향해 강한 기운이 몰아쳤다.
기습이다.
진당 역시 더러운 골목에서 굴러먹던 잔뼈 굵은 사파인이다. 이런 기습에 쉬이 당해줄 인물이 아니란 뜻이었다.
진당은 서둘러 자신의 검을 뽑아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 발차기를 막아냈다.
조금은 뒤로 물러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상은 피할 테니 남는 장사라 생각했다.
- 휘잉
이상하다.
자신은 분명 저 젊은 도인의 발차기를 검등으로 막아냈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왜 자신의 몸이 허공을 날고 있다는 말인가.
‘환술?’
무언가 사술(邪術)을 의심하려던 찰나 자신의 등에 둔탁한 통증이 아린다.
- 퍽!
진당은 십보가 넘는 거리를 날아 담벼락에 등을 처박고 말았다.
입안이 비릿한 것이 내상을 조금이나마 입은 것 같다.
‘말도 안 돼! 이렇게 차이가 난다고?’
분명 자신은 내력을 끌어올려 공격을 막아냈다. 그럼에도 자신의 몸을 이렇게 날릴 정도라면, 자신보다 배가 넘는 내력을 지닌 고수라는 말이 된다.
애써 현실을 부정하려는 진당의 눈앞에 더욱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진당을 발차기 한 방에 날려버린 도인은 마치 구름이 흐르는 것과 같은 신법으로 자신의 둘째, 셋째 형제에게 달려들었다.
그들 역시 대형이 당하는 모습을 보았기에 대비를 한 채 도사를 맞이한다.
그러나.
- 팍!
- 팍!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자신의 옆으로 형제들이 날아왔다.
‘이···이게 무슨?’
형제들을 잠시 살펴보던 진당의 머릿속에 더 중요한 사실 하나가 떠오른다.
“마···만강! 만강을 지켜라! 욱수!”
사력을 다해 소리치는 진당.
분명 넷째 산화력사 유욱수를 향해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욱수는 전각안에 머물며 만강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마당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닿은 덕일까.
정문이 날아든 전각 안이 조용하다.
욱수가 잘 대비한 덕에 서로 대치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제야 진당이 자신의 몸을 살핀다.
‘큰 내상은 아니다. 미미한 정도야. 형제들 역시 마찬가지고.’
얼른 몸을 일으킨 진당은 서둘러 전각으로 뛰어들 준비를 마쳤다.
어느새 몸을 가다듬은 형제들도 서둘러 병기에 손을 올린 뒤다.
“가자! 욱수를 도와 만강을 지켜야 한다!”
진당의 외침에 산화사괴 중 셋이 서둘러 전각으로 신형을 쏘았다.
그때.
“어딜!”
- 채채챙!
매서운 검기와 함께 날아드는 세 개의 칼날.
뒤에서 조용히 사태를 지켜보던 도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산화삼괴의 앞을 막아섰다.
“기습으로 재미를 조금 보더니, 자신감을 얻은 모양이오?”
“그게 기습으로 보였소? 그게 그대들의 한계일 것이오.”
점점 진당의 마음이 급해진다.
서둘러 이들을 제압한 후 전각 안의 욱수를···
- 쾅!
무언가 또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푸웅 하더니 낙호산장의 마당으로 둔탁한 신형이 하나 가라앉았다.
- 퍽!
진당이 잘 아는 크기와 생김새다.
“욱수!”
전각의 문을 침대 삼아 벌러덩 드러누운 욱수의 눈이 까뒤집혀져 있다.
다행히 크게 당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배에 선명히 남은 발자국이 한방에 여기로 날아왔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마당에 병기를 뽑아 든 여섯의 무인이 재빨리 고개를 돌려 전각을 살핀다.
!!!
어느새 만강대사를 어깨에 짊어지고 전각을 빠져나온 정문.
“사형!”
진명과 명화, 묵환의 얼굴에 승리의 환희가 가득했다.
“성공하셨군요!”
명화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 탓!
만강을 들쳐멘 정문은 마당을 한 번 박차더니 이내 전각의 지붕으로 몸을 던졌다.
- 툭.
성의 없이 만강대사를 내려놓는다.
정문의 시선이 마당에 선 산화사괴에게 닿았다. 어느새 유욱수 역시 정신을 차린 채 대열을 정비한 후이다.
그와 맞은 편에는 자신들의 사제들이 잔뜩 예기를 품은 칼날을 빛내며 산화사괴를 견제하고 있다.
“4대3이라···, 쪽수가 안 맞는군.”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을 포함하면 4대 4로 딱 쪽수가 들어맞다.
정문은 왜인지 지금의 대치 상황에서 자신을 배제하며 말을 하고 있었다.
“사형! 괜찮습니다. 만강대사를 지키십시오! 밑은 저희가···”
“진명아. 객기와 용기는 다르단다. 아서라.”
“흥! 정파의 후기지수들 따위! 모두 덤벼라!”
허리에 찬 쌍륜을 예리하게 뽑아 든 사재군이 자세를 잡으며 소리쳤다.
이미 일은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무인들의 대화만이 남은 것이다.
“아무래도. 쪽수가 맞는 게 좋겠지?”
당장에 한 명이라도 달려든다면 이내 전투가 시작될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정문이 짐짓 여유를 부린다.
“내려오시겠소? 그대가 통솔자 같은데. 아까는 한 수 잘 배웠소이다.”
산화사괴의 첫째 조진당은 이미 정문에게 한 번 걷어차이며 정문의 무위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아챈 후이다.
자신들이 최대한 다치지 않고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만강대사를 다시금 입수하는 것. 그뿐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만강의 옆에 떡하니 붙어있는 정문을 떼어 놓아야 할 것이 당연했다.
“뭐, 그것도 재미는 있겠지만 내가 바라는 건 아니라서.”
“허허, 겁이 많으시구료. 내 살살 해드리겠소.”
진당이 계속해서 도발함에도 정문은 심드렁하다.
“그것보다 내가 알맞은 상대를 붙여드리지.”
진당의 도발을 가볍게 무시한 정문이 다시금 날아올랐다.
“대비해라!”
- 챙챙챙!
진당의 외침에 서로 등을 맞대고 병기에 경력을 싣는 산화사괴.
하지만 정문의 신형은 그들이 아닌 지붕의 옆에 무성한 잎을 자랑하는 나무로 향했다.
- 슉!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재빠르게 손을 집어넣는다.
이내
“윽!”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커다란 물체가 마당으로 떨어진다.
하나로 뭉친 산화사괴와 옆으로 선 공동의 제자들 사이로 엉덩방아를 찍은 사람이 몸을 겨우 가눈다.
“진···사제?”
진명이 겨우 알아봤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 어어어? 어!”
명화 역시 확신하고 반응한다.
“왜, 왜 진사형이 여기에?”
묵환도 놀란 것은 당연했다.
“이런 비겁한 놈들! 증원이 있었구나!”
산화사괴의 둘째 조진남의 서러운 외침에 공동의 제자들이 최대한 억울한 표정을 지어본다.
“자, 이제 쪽수가 맞네.”
어느새 지붕으로 돌아와 만강대사의 앞을 지키고 선 정문.
“이··· 이게 무슨 짓이오! 대사형!”
겨우 몸을 일으킨 진사풍이 악에 차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 사풍이. 그냥 구경만 하려고 했던 거니? 사형제들이 칼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 그저 감시하러 온 것뿐입니다!”
“실망이군. 동문들의 뒤나 캐고 말이야.”
“진사형! 우선 대형부터 맞춰요!”
“지, 진사형이 있으면 든든하죠!”
떠들썩하게 인사를 나누는 공동의 제자들.
그 앞에 대치한 산화사괴의 표정은 영 좋지 못하다.
못해도 동수.
인질을 지키려 든다면 자신들이 다수가 되는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특히나 조진당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기척을 읽었다고?’
분명 자신은 공동의 제자들이 대문을 박차고 들어온 후 한 시도 기감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작정하고 감춘다면야 알아챌 수 없는 것이 당연했으나, 적어도 남들보다 늦게 자신이 알아차릴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지붕 위의 저 도사는 어떠한가. 자신의 기감에 잡히지도 않을 정도로 철저히 기도를 숨긴 이를 단번에 알아냈다는 말이 아닌가.
손을 한 번 섞으며 우연이거나 편법이라 생각했던 저 젊은 도인의 무위가 사실은 진정한 실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만약, 저자의 실력이 내가 예상하는 경지라면···’
진당의 팔을 타고 오르는 소름.
자신들이 몸을 피해 이곳으로까지 내려온 이유. 구파일방의 영역까지 치고 들어온 이유가 생각나기 시작하는 조진당.
‘고창의 그놈들과 엇비슷한···’
이내 진당이 고개를 열심히 흔든다.
제 생각을 부정하려는 것이다.
“·········. ·········. 라고!”
“·········. ·········. 하잖아요!”
시끄럽게 떠는 공동의 제자들.
그리고 생각이 많아진 산화사괴.
- 짝!
내력을 실은 정문의 손바닥이 서로를 때리고 지나친다.
“자자자! 집중!”
정문이 장내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떠들던 공동의 무인도, 심상에 잠긴 산화사괴도 모두 지붕 위를 쳐다본다.
“말들이 너무 많아. 그렇지?”
낮은 목소리로 진중하게 말을 이어가는 정문.
“자 이제는 끝을 보자고.”
정문이 잠시 뜸을 들이며
씨익. 하고는 입꼬리를 올린다.
그리고는 던지듯 말을 놓았다.
“서로 죽여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