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021. 선택이었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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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화혈검(散花血劍) 조진당이오.”
“산화혈도(散花血刀) 조진남.”
“헤헤, 산화몽리(散花蒙利) 사재군이올시다.”
“산화력사(散花力士) 유-욱수!”
산화사괴가 차례로 자신의 무명을 밝힌다.
사파인들의 전투에 이런 모습은 낯선 모습임이 분명하다.
다만, 사괴는 최대한 정문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공동 제자 위진명!”
“양명화!”
“저, 전묵환!”
“쳇!”
공동의 제자들은 명문 정파의 제자들답게 헌헌한 모습으로 기수식을 펼쳤다.
진사풍은 빼고.
“지랄들 하네. 대련하냐? 사파놈들이 통성명을 하고 앉아 있네!?”
정문에게 잘 보이려는 사괴의 의도와는 반대로 정문은 심기가 상한 것 같다.
최대한 실전에 가까운 경험을 시켜주고 싶어 이런 판을 벌인 정문이다.
사괴가 정파에 맞춰주는 듯한 모습을 보자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열심히 안 하는 것 같단 말이지.”
정문이 한쪽 눈을 치켜뜨자.
“타아앗!”
깜짝 놀란 조진당이 서둘러 검을 흩뿌린다.
그의 검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진사풍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진당의 기합이 울리자 신호처럼, 나머지 삼괴 역시 기운을 끌어올려 출수하기 시작했다.
조진남의 쌍도, 사재군의 쌍륜, 유욱수의 금쇄봉이 저마다 빛을 번쩍이며 도사들의 목숨을 노린다.
공동의 제자들 역시 검을 다시금 돌려 잡았다.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 챙! 챙! 챙!
- 탕! 쾅! 꽝!
순식간에 낙호산이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 찼다.
이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이 정문의 얼굴에 드리운다.
그래, 이거지!
지붕 위에 편안히 자리를 잡고 앉는 정문.
날카로운 쇳소리들이 그의 귀를 간지럽힌다.
‘자, 한 번 볼까.’
팔짱까지 끼며 완벽한 관전자의 자세를 잡은 정문이 자신의 사제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정문의 예상대로라면.
‘명화겠지.’
자신과 만난 후 가장 자신의 말을 잘 따르던 사제가 바로 명화였다.
정문은 명화의 검술이 섬세함에 치우쳐 강약의 조절이 미흡하다 보았다.
그렇기에 쾌검의 움직임을 가르치며 이를 보완하게 하였다.
종남의 검술을 참고하며.
명화는 진명처럼 의문을 가지지 않았고 묵환처럼 망설이지도 않았다.
그저 정문이 일러주는 방식대로 묵묵히 수련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그렇기에 정문은 사풍도, 진명도 아닌 명화가 가장 먼저 승기를 잡을 것이라 확신했다.
- 티잉!
- 챙!
명화의 검과 재군의 쌍륜이 격렬히 마찰한다.
“계집년이 제법이구나!”
“아가리 닥쳐!”
“입이 걸걸하구나!”
“사파 새끼랑 할 말은 없어!”
상단을 운영하는 집안의 여식인 명화는 사파나 흑도인에 대해 좋은 감정이라곤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무림에서, 강호에서.
사파와 흑도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이들이 바로 상인들이 아닌가.
특히나 감숙과 서장을 오가며 교역하는 상단에게 신강의 사파인들은 그야말로 불구대천의 원수나 다름이 없었다.
거기에.
명화는 사파인에게 자비가 없다는 공동의 제자다. 공동의 제자는 사파인에게 검으로도 입으로도 지지 않는 법이다.
재군이 양손에 든 쌍륜을 이용해 연격(聯擊)을 펼친다.
- 캉캉! 캉캉!
쌍륜을 든 재군이 몸을 최대한 돌려가며 쉴새 없이 명화의 검을 때린다.
명화 역시 지지 않고 그의 잠시간의 빈틈을 노려 최대한 검끝을 집어넣었다.
그야말로 쾌속을 자랑하는 두 무인의 병장기가 쉴 틈이 없다.
격렬한 마찰음이 쉬지 못할 무렵.
재군이 이내 쌍륜을 뒤로 빼며 몸도 함께 물린다.
‘?’
의도를 알 수 없는 명화.
“도망치는 거냐?”
“헤헤헤, 어디 입을 계속 놀려 보거라!”
뒤로 잔뜩 몸을 내뺀 재군은 이내 자신의 명줄 마냥 꽉 쥐고 있던 쌍륜을 앞으로 던져버렸다.
- 휘이이익!
바람을 가르며 명화의 목을 노리는 월륜.
월륜이 명화와 가까워질 무렵, 사재군이 빠르게 명화를 향해 신형을 쏜다.
다행히도 명화는 몸을 한 바퀴 틀며 날아오는 월륜을 피해냈다.
덕분에 조금은 불안한 자세로 자신에게 뛰어오는 재군의 다른 월륜을 맞이한다.
‘막아라. 막아라! 제발!’
명화를 향해 필사의 기력을 실어 뛰어가는 재군의 머리에 울려대는 말이었다.
- 카아앙!
재군이 아래에서 위로 손에 꽉 쥔 월륜을 올려친다.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이를 막아낸 명화.
절묘한 움직임이 강렬한 기운을 실은 월륜을 밀어낸다.
‘걸렸다!’
반원을 그린 명화의 검이 어깨와 수평을 이룰 때.
뒤로 한발 밀려난 재군이 빈손을 품으로 끌어당긴다.
- 휘이익!
명화의 몸 뒤로 날아갔던 월륜이 다시금 돌아온다.
날아갔을 때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은 실이 재군의 소매에서 살짝 반짝였다.
강력한 내공을 실어도 끊어지지 않는 특수한 방법으로 만든 실이 분명했다.
월륜은 크게 울리며 다시금 명화의 목을 노린다.
아쉽게도.
명화는 이를 막지 못할 것이다.
재군은 그렇게 판단했다.
재군은 검격에는 두 가지 움직임이 필요함을 잘 알고 있다.
하나는 격(擊)이오, 다른 하나는 회(回)이니.
바로 공격과 회수의 두 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본디 격으로 나아간 검은 회로 돌아와야 하고 회로 돌아온 검은 격으로 나가야 함이 검술의 기본 이치인 것이다.
그렇기에 쌍륜은.
특히 자신의 쌍륜은 검수를 잡는 것에 특화된 무기였다.
손에 쥔 월륜은 격을 유도해 회를 끌어낸다. 그렇게 회를 끌어내 반격의 여지를 줄이고 던졌던 월륜을 잡아당겨 격이 나오기 전에 끝을 보는 방식.
그것이 재군으로 하여금 수많은 검수의 목을 취하게 만들어 준 필승 방식이었다.
“죽어라앗!”
어느새 남은 월륜도 팽개친 채 양손으로 실을 당겨대는 사재군.
실을 타고 전이된 내력이 월륜에 아린다.
이미 자신의 일격을 막아낸 명화는 회의 동작에 들어섰다. 다시금 격을 펼쳐 공격을 막거나 반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재군이 승리의 미소를 띤다.
“섣불러.”
이를 지켜보며 절레 고개를 젓는 정문.
‘허세는!’
재군은 그런 정문의 반응을 봤음에도 자신의 확신에 변함은 없다.
하지만.
- 꽈과과앙!
이내 들려선 안 되는 굉음이 재군의 고막을 강타했다.
“?”
재군의 돌격을 막으며 분명 격을 펼친 명화의 검이 다시금 뒤를 돌아 날아오는 월륜을 쳐낸다.
그게 끝이 아니다.
월륜을 쳐낸 검이 쉬지 않고, 그러니까 회수의 동작 없이 그대로 재군의 어깨를 베어간다.
공중에서 몸을 틀었기에 조금은 위에서 내려찍는 모양새가 된 공격.
- 취이익!
명화의 검이 재군의 오른쪽 어깨부터 왼쪽 골반까지.
한마디 깊이로 칼자국을 새겨버린다.
현천검(玄天劍)을 활용한 복마검결 잠응비상(潛鷹飛上) 초식이 멋들어지게 펼쳐졌다.
“끄아아아악!”
끝이다.
정문은 확신했다.
이미 자신의 몸에서 뿜어지는 선혈을 목격한 무인은 더는 싸울 의지를 세울 수 없는 것이 당연지사.
거기에 명화의 검은 제법 깊게 들어갔다.
물론 죽지 않을 정도로.
“헉, 헉!”
명화가 숨을 몰아쉰다.
- 툭.
산화몽니 사재군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진다.
땅에 닿기 직전에도 그의 얼굴에서는 ‘어떻게?’라는 의문이 가득했다.
미소가 가득한 정문의 얼굴.
‘잠응비상 초식을 이렇게 활용한다라···!’
정문은 명화의 검에서 부족한 것이 강약의 조절이라 하였다.
이는 곧 쾌(快)에서 쾌(快). 변(變)에서 변(變). 실(實)에서 실(實). 모든 연결에 중간점이 부재함을 의미했다.
명화는 늘 그 연결을 채우려 세심함을 더했으나, 그런 노력은 오히려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정문은 그런 그녀에게 연결을 없애는 검식을 보여준 적이 있다.
격에서 회를 거치지 않는, 동시에 격이 뿜어져 나오는 강쾌(强快)의 검술.
삼십육방위를 모두 점하면서도 한 치의 치우침이 없는 그런 검술을 말이다.
바로 종남의 천하삼십육검(天下三十六劍).
물론 그대로 펼치는 것은 아직 정문에게도 무리였기에 조금은 변형을 시킨 검술이었지만.
효과는 충분했다.
삼십육방위를 향해 동시에 베어나가는 쾌검의 묘리가 명화에게 딱 어울렸다.
이후 명화의 검술에서 격과 회, 회와 격, 그사이에 자리한 망설임이 사라졌다. 강약의 조절이 필요한 그 시점을 지워버림으로써 명화의 세심함은 결국 단점이 아닌 장점이 되어버렸다.
발목을 잡던 그 세심함이 격을 다시 격으로 연결하는 검식을 만든 것이다.
“후우우욱.”
명화가 얼른 자세를 잡고 운공에 들어간다.
아직은 몸이 그 검술에 완벽히 적응하지 못한 것 같다.
“하나는 됐고.”
명화의 승리를 목격한 정문의 목이 돌아간다.
“다음은 분명.”
목과 함께 돌아간 시선이 묵환에게 닿았다.
“저놈일 테지.”
거대한 두 개의 신형이 연달아 부딪힌다.
유욱수의 손에는 쇠구슬이 잔뜩 박힌 쇠몽둥이가 들려있다.
겉모습과 같이 묵직한 공격이 묵환을 강타한다.
- 쾅! 쾅! 쾅!
그와 대비되게도 묵환의 손에는 얇디얇은 검이 들려있을 뿐이다.
본디 그리 얇은 검은 아닐 것이 분명하나, 묵환의 덩치와 어울리지 않아 그 굵기가 더욱 가늘어 보였다.
누가 보아도, 묵환의 검이 욱수의 금쇄봉(金砕棒)을 몇 번 막지 못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자신의 검이 금쇄봉을 상대로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란 걸 묵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묵환은 욱수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내기보다는 투로를 틀어가며 검을 흘려내고 있다.
‘부드럽게! 천운검(天雲劍)으로!’
흘려내야 한다는 생각만이 묵환의 머리에 자리했다.
“쿠쿠쿡.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가는구나!”
“······!”
묵환이 조용히 눈빛만 번뜩였다.
계속해서 욱수의 공격을 피해낸 그였지만 아쉽게도 완벽하게 흘려내지 못했기에 몸 여기저기에는 이미 퍼런 멍이 들어있다.
“언제까지 흘려내나 보자!”
말과 동시에 욱수가 다시금 육중한 몸을 움직였다.
묵환이 하체에 힘을 집중한다.
그리고 기합.
“흘려낸다!”
머리로만 생각하던 것이 입으로 튀어나왔다. 그만큼, 묵환은 지금 한가지 생각만 하는 것이 분명했다.
자신은 공동의 검수다.
공동의 검은 패도적인 검.
그렇지만 부드러움과 변화를 절대 경시하는 검은 아니다.
만약, 부드러움과 변화의 정수를 담은 천운검을 펼친다면 저 강렬한 공격도 모두 흘려 낼 수 있을 것이란 게 묵환의 계산이었다.
‘천운검의 부드러움으로 잡는다!’
묵환이 검을 움켜쥐었다.
- 쿠아앙!
굉음을 울리는 금쇄봉이 밑에서 위로 묵환의 검을 강타한다.
검등으로 겨우 공격을 받아낸 묵환은 서둘러 검을 틀어버렸다.
- 끼긱!
둔탁한 소리와 함께 대각선으로 살짝 틀어지는 금강쇄의 투로.
하지만 힘이 부족해서였을까, 금강쇄의 투로는 크게 비껴가지 않았다.
- 퍼억!
둔탁한 소리가 묵환의 오른쪽 귀와 멀지 않다.
어깨. 바로 자신의 오른쪽 어깨에서 나는 소리다.
오히려 어설픈 비껴냄이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한 것이다.
“크윽!”
붉은 선혈이 묵환의 팔을 타고 흐른다.
자신의 검은 무엇이 부족한가.
왜 저 단순한 공격을 비껴내지 못하는 것일까.
자신은 여기서 죽고 마는 것일까.
대사형은 왜.
왜 이런 시련을 자신에게 주는 것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묵환의 머리를 때렸다.
‘대사형···’
구원을 바라는 것일까.
묵환의 간절한 눈빛이 정문의 얼굴을 향했다.
자신을 구해주진 않을까.
대사형이 날 참 귀여워했었지.
대사형은 강해.
정문에 대한 생각이 가득 찬다.
- 검을 버리거라.
!!!
자신이 지워버린 기억 저편에서 들려오는 정문의 목소리에 묵환이 얼른 정신을 차린다.
‘대사형인가?’
다시금 정문의 얼굴을 본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그제야 얼마 전 공동산에서 자신에게 들려줬던 대사형의 조언이 떠오른다.
검을 버리라던.
자신으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던 그 조언이 말이다.
‘검을 버리고···, 검을 버리고 공동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 콰쾅!
다시금 강한 공격이 묵환의 뺨을 스친다.
묵환은 반사적으로 공격을 흘려내면서도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모르겠다. 정말.’
자신의 뿌리에 대해서 자신도 아는 게 없는 묵환은 그저 자신의 피부색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지금은 기억 속 저 멀리 지워버렸으나, 묵환의 머릿속 깊은 곳에는 공동에 들기 전의 기억이 아련히 자리하고 있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돌.
손가락질. 욕설. 발길질!
그저 피부색! 그저 출생! 그저 태어났음!
‘그저’란 말로 수식할 수 있는 모든 이유가 그들이 묵환을 싫어하는 이유였다.
'그저' 그 이유였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얻어맞아 기절한 후 깨어난 곳이 공동산이었다.
이곳은 다를까.
묵환의 냉소가 얼굴에 번질 무렵.
따뜻한 손이 묵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대사형?’
정문.
자신보다 대여섯살 많다는 대사형의 손이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이 시작이었다.
‘그저’ 그 ‘손’이.
공동의 누구도 묵환을 차별하지 않았고 누구도 묵환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묵환은 더욱 공동의 일원이고 싶었다.
누구보다 이유 없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이들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공동이니까.
그랬기에 묵환은 자신의 피부색과 덩치를 감추기라도 하듯 검에 몰두했다.
공동의 모두가 검을 휘두르니까.
‘그저’ 그 이유였다.
자신이 공동의 일원이 되는 방법은 검수로 인정받는 것 그뿐이라 묵환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 푸우욱!
묵환이 생각에 한창 잠겼을 무렵.
욱수의 금강쇄가 드디어 묵환의 몸을 직접 가격한다.
쇠구슬에 뭉개져버린 복부에서 피가 쏟아진다.
“대사혀어어엉!”
실성이라도 한 것일까?
묵환이 누구보다 강하게 정문을 부른다.
“귀 안 먹었다 이놈아.”
정문이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허억···. 헉. 제, 제게 검을 버리라고 하셨었죠?”
말을 하면서도 묵환은 자신의 복부에 박힌 금강쇄를 애써 떼어냈다.
“그랬지.”
여전히 무심한 대답이다.
“그래도 되는 겁니까?”
“······. 무슨 대답이 듣고 싶은 거냐?”
“그저··· 검수. 검수로 살다 죽으면 안 되냐 이 말입니다!”
묵환의 눈빛에 결심이 아린다.
어쩌면 묵환은 검수로써 명예롭게 죽으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죽는 순간에도 공동의 일원인 채로 말이다.
“안될 것 없지.”
- 후!
정문이 잔뜩 귀를 후비던 손가락을 불며 답했다.
조금은 놀랍지만.
이내 평온한 표정이 묵환의 얼굴에 자리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그 말이 듣고 싶었습니다.”
무언가 결심이 선 것일까.
묵환이 살짝 웃는다.
입에는 선혈이 가득하다.
- 꾸우욱!
묵환이 검을 더욱 강하게 틀어잡았다.
“그런데 말이야.”
당장에라도 튀어 나갈 묵환의 신형을 정문의 말이 끌어당겼다.
“넌 상관없겠지. 근데 말이야. 네가 죽고 난 다음은 생각해봤냐?”
“······. 명예롭게 가겠습니다. 기억해주십시오!”
“아아, 그게 아니라. 내가 한 말 기억 못 해?”
“그게 무슨···?”
“한 놈 끝낸 다음에는.”
정문이 벌떡 일어서 다른 사형들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
“합공해도 된다고.”
!!
묵환의 동공이 잔뜩 커졌다.
“사, 사형들은 이겨 낼 겁니다!”
- 쿠우웅!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욱수의 공격은 계속된다.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는 묵환.
받아내는 것보다는 피하는 게 피해가 확실히 적다.
“그래. 그럼 그래라. 대신.”
정문이 잠시 뜸을 들인다.
“누가 죽거든, 네가 죽인 거야.”
“사형!!”
- 퍼어어억!
다시금 묵환의 허벅지가 잔뜩 파인다.
하지만 묵환의 신경은 온통 정문이다.
“넌 네 이기심에 사형제를 죽인 거야.”
싸늘하다.
비수가 날아와 묵환의 가슴에 꽂힌다.
정문의 말은 모든 것을 아는 자의 말이다. 묵환 역시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정문의 숨은 말뜻이 너무나 명확했다.
자신의 욕심.
소속감을 가지고 싶다는 욕심.
공동의 검수로 남고 싶다는 그 욕심이.
결국에는 사형제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일러주는 말이다.
말을 마친 정문은 다시금 가부좌를 틀고 주저앉았다.
조금은 화가 난 표정이다.
- 후우우웅!
이번에는 묵환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금강쇄.
묵환은 묵묵히 왼팔을 들어 금강쇄를 막아낸다.
- 푸우욱!
선혈과 함께 약간의 살점이 튀어 오른다.
그래도.
묵환의 얼굴에 고통은 없다.
다만.
다른 고통이 자리할 뿐.
사형제.
자신의 소속감과 알량한 욕심에 사형제의 안위를 내던졌었다는 부끄러움이 묵환에게 몰려온다.
왜?
그토록 자신을 사랑했던 공동을.
자신을 차별하지 않았던 공동의 사형제를.
자신은 왜!
한 번도 생각지 못한 것인가.
다시금 묵환의 시선이 정문에게 닿는다.
이내 아래로 떨어지는 고개.
이미 도복은 모두 찢어져 넝마가 되었다.
복부에선 살이 뭉개져 피가 흐르고 왼팔도 너덜하다. 오른쪽 어깨가 조금 시린다.
‘사형제···’
문득 따뜻했던 정문의 손이 떠오른다.
자신의 소속감과 정문의 목숨.
만약 선택의 기로에 선다면, 묵환은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의외로 결론은 간단했다.
- 우우우웅!
묵환의 가슴으로 금강쇄가 날아든다.
- 까가아아앙!
둔탁한 쇠 마찰음이 울렸다.
묵환은 자신의 검을 크게 휘둘러 금강쇄를 쳐냈다.
흘려내거나 비켜 맞은 것이 아닌 맞부딪힘으로써!
당연하게도 묵환의 검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반대로 욱수의 금강쇄는 묵환의 강렬한 힘을 받아 이내 땅에 박혀버렸다.
약간은 몸이 기운 욱수.
- 툭.
땅에 무언가 떨어진다.
검의 손잡이.
이미 날을 잃어버린 손잡이가 아련히 땅에 닿았다.
- 스슥.
그리곤 한발.
딱 한발이 욱수의 몸 앞으로 바짝 붙는다.
묵환이 미끄러지듯 진각(震脚)을 밟은 것이다.
- 쾅!!
분명 미끄러짐과 같은 움직임이다.
허나, 묵환의 무릎이 구부러지자 힘이 들어가며 땅이 둥글게 파여 나간다.
- 후우우우웅!
모래바람이 인다.
일곱 줄기의 바람이 묵환의 몸을 타고 오른다.
- 벌떡!
정문이 몸을 일으켰다.
말은 없다.
그저 기대에 찬 눈빛뿐.
묵환의 오른손이 옆구리로 향했다.
“하아아아.”
작은 내뿜음.
이내 그 내뿜음은 눈에서도 나온다.
묵환의 안광이 더욱 빛나기 시작한다.
너덜해진 왼팔이 욱수의 어깨로 향한다.
- 꾸욱.
피할 틈도 없이 어깨를 잡힌 욱수.
그래도 걱정은 없다.
저놈은 지금 검도 없지 않나.
적수공권 따위야 자신의 건장한 몸을 뚫지 못하리라.
“어설픈 발악을!”
만용이었다.
묵환의 무게 중심이 조금 가라앉는다.
- 부우우웅!
바람을 가르는 강렬한 권풍이 휘몰아친다.
묵환의 몸을 타고 일곱 줄기의 기운이 주먹으로 모여들었다.
- 빠아아아아악!
일곱 줄기의 기운을 휘감은 주먹이 욱수의 가슴에 내려앉았다.
무언가 산산조각 나는 소리와 함께.
‘칠상권(七傷拳).’
하지만 끝이 아니다.
분명 강렬한 소리와 함께 작렬한 일권에도 욱수의 몸에는 아무런 파장이 없다.
괜찮다.
노린 것이니.
묵환은 이내 욱수의 가슴에 닿은 주먹을 돌려 자신의 몸으로 당긴다.
어깨를 잡았던 왼손이 어느새 자신의 허리에 있다.
“석파천경(石破天驚).”
조금의 발돋움도 없이.
묵환은 그저 앞발을 조금 트는 것만으로 가공할 위력의 일권을 뽑아냈다.
묵환의 왼쪽 주먹이 욱수의 중앙에 닿는다.
- 퍼엉!
이내 원형의 기파와 폭발음이 들리며 욱수의 몸이 저 멀리 담벼락으로 날아가 처박히고 만다.
- 꽝!
처박힌 몸은 한번 튀어 오르더니 이내 바닥에 큰 소리를 내며 엎어졌다.
확실한.
아주 값진.
묵환의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