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024. 아니, 왜 그런 내용으로?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
바쁜 하루가 시작됐다.
공동의 제자들은 서둘러 만강을 감평상단으로 옮겼다.
우선은 기력을 회복해야 산을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명화가 상단에 남아 만강을 돌봤고 정문과 진명, 묵환은 반송장과도 같은 사괴를 관아로 데려갔다.
제법 두둑한 현상금을 태청궁으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웠지만, 명성을 쌓는 것에 그치기로 한 정문이다.
“꼭! 제 이름으로 태청궁에 보내주십시오!”
어떻게든 다짐을 받아내고 나서야 정문이 관을 떠났다.
사풍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잠시간의 휴식을 보낸 이들은 다음 날이 밝자 조금은 기력을 차린 만강을 수레에 태워 공동산으로 향한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자신이 정신을 잃은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는 만강은 그저 이들이 자신을 구해냈다고만 알고 있을 뿐이다.
“저희로 말미암아 생긴 일이 아닙니까. 저희가 나서야지요.”
“아미타불, 도기로군요. 역시 공동입니다.”
상체만 겨우 일으킨 모양으로도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는 만강.
꼭 이럴 때는 정문도 정상인과 같다.
헌헌한 대사형의 모습으로 만강과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평소와는 사뭇 다르다.
“다친 곳은 괜찮으냐? 다리와 어깨까지 가장 많은 상처를 입지 않았더냐?”
진명이 묵묵히 수레를 끄는 묵환에게 다가가 묻는다.
“이미 다 나았습니다! 제가 회복력 하나는 공동제일 아닙니까!”
묵환이 한쪽 팔을 굽히며 잔뜩 건강한 티를 내준다.
이민족의 신체는 여전히 신기하다.
“그나저나, 어젯밤에 대사형 말입니다···”
묵환이 마주 보던 진명의 시선을 외면하며 무언가 말끝을 흐린다.
어젯밤 모두가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던 그 순간을 말하는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대사형께서 잠시 외출을 하신 것 같았는데···”
“외출?”
진명은 처음 듣는 소리다.
사실 굳이 알아야 할 필요도 없지만.
“다시 돌아오시지 않았느냐? 잠시 청유나 외출을 다녀오신 것일 테니 걱정말거라.”
“그, 그렇겠죠?”
“흠.”
진명은 확답하지 못했다.
이제는 자신들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대사형의 움직임이 아닌가.
“별일이야 있겠느냐. 모든 일이 잘 풀렸으니, 걱정은 없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요즘 대사형의 행동은 영 알 수가 없어서요.”
묵환이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사형의 안위에 신경을 쓰는 건 좋은 일이다. 다만, 그런 의심으로 사형을 보는 순간 그런 모습만이 보일 것이다. 자중하거라.”
“옙! 사형!”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길이 더욱더 짧은 법이다. 어느새 수레의 바퀴가 공동산의 산문을 넘는다.
수레로 만강을 옮길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묵환이 자청해 만강을 자신의 어깨에 들쳐멘다.
가파른 계단을 지나 태청궁에 이르자, 제자들이 달려와 만강을 약왕당으로 옮긴다.
당장에 법화사로 돌아가는 것보다 공동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정문과 제자들은 곧장 혼원루로 가거라. 장문인께서 기다리시니.”
태청궁주 자명이 잘했다는 듯 힘껏 웃어주곤 사질들에게 말을 전달했다.
이미 공동에도 소식이 닿은 것이다.
혼원루에는 장문인을 위시한 대부분의 장로들, 법화사의 주지 만화가 자리를 함께했다.
조심히 안으로 들어서는 정문과 사제들.
“고생들 많았다.”
자정이 잔뜩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공을 치하한다.
- 벌떡!
“정문 도장! 내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정문의 손을 부여잡는 만화.
일전의 진중하고 차분한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모두 사제들의 덕이지요.”
허허허.
자신이 아니었다면 구출이고 뭐고 없었을 거라던 대사형의 모습이 간데없다.
“그렇지 않아도 들었습니다. 사제분들이 사괴를 막는 동안 만강을 구하셨다지요?”
예?
어떻게 그걸?
아니, 왜 그런 내용으로?
란 표정이 진명과 명화, 묵환을 스친다.
다만, 정문은 이미 알던 것처럼 평온하다.
“그렇습니다. 사제들이 틈을 만들어 주어 겨우 구해냈습니다.”
정문이 손을 들어 뒤를 향하자, 만화가 떨리는 손으로 다른 제자들의 손을 부여잡는다.
“진명 도장! 그 심오하다는 광풍참절도법(狂風斬絶刀法)을 파훼하여 산화혈도를 무찔렀다 들었소이다! 과연 헌헌한 공동의 검수시구료!”
“예···? 어···, 아, 아닙니다. 그저···”
심오요?
그거 그냥 난도질이던데···
만화의 몸이 명화 앞으로 움직인다.
“명화 도장! 산화몽리의 멸사쌍륜참(滅死雙輪斬)을 초식의 응용으로 막아냈다지요? 과연 하늘이 내린 무재입니다!”
“멸사···뭐요? 네? 그게···”
멸사쌍륜참? 며얼사아쌍륜차암?
“묵환 도장! 일권에 산을 날려버린다는 그 주먹이 이 주먹이외까!!! 흡사 신장(神將)과도 같다는 그 산화력사를 일권에 날려 버렸다더니!”
만화가 신기한 듯 묵환의 손을 더듬는다.
그의 눈이 마치 신물(神物)을 만난 무인과도 같다.
“예? 아···, 그, 일권은 아니고···”
제자들의 눈이 서로 부딪힌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허허, 그래도 가장 강했다는 그 산화혈검을 무찌른 진도장이 보이지 않아 아쉽습니다.”
‘진사형이 있던 것까지 안다고?’
사제들의 의문이 더욱 깊어간다.
“모두 정문 도장의 안배였다 들었습니다.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는 법이지요(狡兎三窟). 암요.”
“부족한 책략이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정문이 겸양을 떤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때에 사제를 불러들여 산화사괴 넷의 발을 모두 묶다니요! 대단합니다.”
만화가 승려답지 않은 태도로 말을 뿜어댄다. 원래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제자들을 스친다.
누가 좀 말려줬으면 하는 눈빛이 이들의 눈에 아렸다.
허나, 제자의 성취와 공, 명성은 곧 윗사람들의 기쁨인 법이다.
장로들과 장문인은 이런 만화의 공치사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자신에 대한 칭찬이라도 되는 듯 턱까지 올려 들고 음미하는 장로들.
“만강대사를 한 번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제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자 정문이 나선다.
“아! 맞습니다. 만강! 만강을 보러 가야지요.”
“약왕당으로 모셨으니, 지금 가시면 바로 뵐 수 있을 것입니다.”
만화는 몸을 틀더니 합장하며 자정에게 크게 인사했다.
“아-미-타불! 만강이 몸을 일으키거든 다시금 인사하러 오겠습니다!”
“빈도는 괜찮으니, 천천히 하십시오. 허허허.”
자정이 세상 여유로운 모습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만화가 문을 나서도 아직 진명과 명화, 묵환이 얼떨떨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정문아.”
자정이 정문을 부른다.
“예, 스승님.”
“사풍이는 언제 불러둔 것이더냐?”
!!
다른 제자들의 눈이 살짝 떨린다.
분명, 진사풍은 정문이 부른 것이 아니라 했다. 감시하러 왔다고.
“스승님께 명을 듣고는 곧장 진사제를 찾았습니다. 옳게 와주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 그래. 옳은 안배였다. 옳아!”
복마각의 각주 자공이 크게 소리쳤다.
그간 사문 내의 후계 구도에 크게 관여치 않는 그였지만, 사질들이 반목하며 관계가 틀어지는 모습에는 내심 불만이 가득한 것 역시 그였다.
“진명은 눈이 좋아졌구나. 강한 이를 사제에게 양보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사형께서···”
진명이 자신에게 몰리는 관심에 얼른 진실을 말하려 하자, 정문이 치고 나온다.
“위사제는 늘 그렇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렇지. 그렇기에 진명이다!”
자산이 손뼉을 치며 반응한다.
진명의 됨됨이야 누구나 아는 것이 아닌가.
“묵환이 놈은 내 늘 생각했었지, 네 놈은 검이 아니라 권이라고!”
자공이 연신 손을 흔들어가며 말했다.
하하, 근데 왜 말을 안 해줬데?
하는 표정이 정문의 얼굴에 살짝 스친다.
“몇 대만에 공동권수(崆峒拳手)가 나오겠습니다. 허허허.”
자준의 너스레에 크게 웃는 자정.
“모두 장로들이 잘 이끌어준 덕이 아니겠소?”
“도기로군요. 도기!”
“정문이 돌아오더니, 공동에도 다시 도기가 내리는 것 같습니다. 허허허.”
얼떨떨해하는 제자들을 세워두고는 중진들은 한동안 더 떠들어댔다.
외부활동이 적은 공동에게 더더욱 외부에서 명성을 떨칠 기회가 적던 시기가 아니었나.
그렇게 한참을 부끄러운 소리를 듣고 나서야 제자들이 혼원루를 나선다.
- 휙!
동시에 정문을 향해 돌아가는 고개.
“뭡니까?”
여전히 띠꺼운 진명의 말투가 정문의 귀를 때린다.
“사형이 한 거죠?”
명화 역시 양손을 허리에 두고는 씩씩거린다.
“이, 일권이라뇨!”
묵환도 제법 목소릴 낸다.
“뭐! 왜!? 틀린 말 있어? 소문 잘 났구만!”
“소문도 소문 나름이지요! 이건 허구가 아닙니까?”
“에이, 허구는 아니다.”
“쓰읍!”
“뭐···, 그냥 소문에 살을 조금 보탰을 뿐이야. 원래 소문은 살이 붙기 마련이고.”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소문이 난단 말입니까?”
“강호에는 눈이 없는 곳이 없단다.”
“사형!”
“뭐, 우리가 산화사괴를 잡고 만강대사를 구한 건 사실이잖아? 다들 즐기라고. 어른들이 저렇게 좋아하는데, 가서 초 칠래?”
“끄응···.”
“좋게 넘어가자! 응!?”
더는 할 말이 없다.
이제 와 아 그건 과장입니다.
하기에도 애매한 것이 사실이었다.
사실대로 고한다고 해도.
지금 사문의 어르신들 반응으로는···
- 아이구. 우리 제자가 이렇게 겸손합니다!
하며 한동안 또 부끄러움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정문은 전날 밤, 사제들이 쉬는 틈을 이용해 다시금 흑시창에서 운영하는 기루를 찾았다.
물론 아직 자신이 찾는 일은 마무리되지 않았음은 알고 있었다.
대신 정문은 새로운 거래를 제안했다.
자신들의 공적을 널리 알릴 것을.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바로 지재상인이 정보를 팔기만 할 것이란 사실.
지재상인은 강호 전체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모으는 자들. 그렇다면 반대로 그 소식을 조작하고 퍼트리는 것 역시 가능하단 말이 된다.
황궁에서 정보를 다루던 정문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정보를 역으로 퍼트리거나, 말도 안 되는 낭설을 일급 정보인 것처럼 팔아넘겨 적을 실각시킨 경험이 다분한 정문이었다.
정문의 생각대로 흑시창이 나르는 소문은 발이 없는 말처럼 빠르게 퍼졌다.
소문이 자신들보다도 공동산에 먼저 도착한 것이 그 증거가 아니겠나.
정문이 속으로 웃으며 발을 움직인다.
“진사제는 괜찮을까요?”
진명의 말이 스리슬쩍 자리를 피하려는 정문의 옷깃을 잡았다.
“뭐, 별일이야 있겠어?”
“그래도···, 분명 태상장로님의 명으로 몰래 우리를 감시하러 왔었을 겁니다. 하는 말로 보아 개입하지 말란 지시도 있었을 거고요.”
실로, 진명의 통찰은 가끔 쓸만하다.
“진명이, 그새 우리 사풍이랑 정든 거니?”
정문이 장난스럽게 물음에도 진명은 진지하다.
“가끔은 진사제가 불쌍하다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올곧아, 오올곧아. 불편해! 아주 불편해!’
정문이 기겁하는 표정으로 살짝 물러선다.
이런 분위기가 불편한 것이다.
“맞아요. 가끔은 진사형은 뭐랄까···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 있지.”
“그러니까요!”
진명과 명화가 진지하게 사풍을 걱정한다.
“뭐, 사풍이 놈도 애가 아니니 알아서 하겠지. 집안일에 너무 참견하는 것도 안 좋아.”
정문이 서둘러 그런 분위기를 끊어낸다.
“결국 선택은 그놈이 하는 거니까.”
“······. 맞습니다. 제가 괜한 걱정을 했군요. 그저 옳은 선택을 하길 기도할 수밖에요.”
무어라 주저리 거리는 진명을 뒤로한 채 정문이 발을 옮긴다.
‘진사풍···’
다시 생각해봐도 아까운 인재다.
곁에 두고 싶은 놈이다.
오랜 기간 사람을 다뤄본 정문에게는 너무도 명확했다.
최고의 인재라고.
진명은 너무 올곧다.
명화는 너무 밝다.
묵환은 너무 소심하다.
사풍은.
적당히 유동적이며 적당히 어둡다.
적당히 대범하며, 적당히 선이 있다.
때로는 밝으며 때로는 소심하다.
지금 정문이 함께하는 사제들이 복마검결이라면 사풍은 광진검이 될 것이다.
“뭐··· 결국 선택은 그놈 몫이겠지만.”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정문이 마저 걸음을 나선다.
새로운 바람이 취병봉을 훑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