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029. 토벌하는 거니라.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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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챙!
- 서걱!
- 캉!
공동산에서 무위로 향하는 길은 거칠지 않다. 감숙성 자체가 산과 사막이 많은 지형이나 오랜 기간 상인들이 발로 닦은 넓은 관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닷길이 통하기 전에는 서역으로 향하는 길이라곤 비단길이라 부르는 이 관도가 전부였기에 왕조에서도 특히 이 길을 중히 여겨 관리해왔다.
그렇기에 보통이라면.
정말 보통의 상황이라면.
무위를 향해 속가행을 나서는 공동의 제자들은 무위에 닿기 전에는 검갑에서 검을 뽑을 일이 없다는 말이 된다.
대공동의 제자가 사문의 일로 길을 나섬에 누가 감히 그들을 먼저 건드리겠나.
아쉽게도 지금 길을 나서는 이들 중에는 ‘보통’이나 ‘평범’으로 포장되지 않는 도인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건 미친 짓이야! 미친 짓!”
삼 일을 참고 참던 진사풍이 결국 터져버렸다.
“엇, 진사형! 칼 날아와요!”
- 쉬웅!
사풍의 옆으로 널따란 박도가 바람을 가른다.
- 서걱!
겨우 몸을 돌려 박도를 피해낸 사풍의 검이 상대의 복부를 찢었다.
“헉··· 헉··· 헉.”
숨을 몰아쉬는 사풍.
아직 상대해야 할 적들이 너무도 많다.
“벌써 지친 건가? 체력이 약하군. 훗.”
진명이 산적 서넛을 달고는 괜스레 사풍의 옆으로 지나가며 그들을 상대한다.
찌릿.
진명을 한 번 노려보다니 다시금 검을 휘두르는 사풍.
“하앗! 탓! 탓!”
명화의 쾌검이 동시에 넷이나 되는 산적들의 팔을 베고 간다.
“아자잣!”
- 쿵!
묵환의 진각과 추운권(追雲拳)이 산적들을 모두 땅에 눕혀 버린다.
이들은 벌써 삼 일이나 되는 강행군에도 지쳐 보이는 기색이 없다.
어찌 이리들 열심인지.
이들의 순종적인 태도는 사풍에게 별 상관이 없다. 가장 열 받는 것은 따로 있으니까.
“우리 사풍이, 체력이 영 부실하구나? 어째, 사형이 좀 길러줘?”
가장 열 받는 것은.
당연하게도 대사형 이정문!
관도를 따라 조용히 무위로 향하면 될 길을 수많은 산맥과 사막이 가득한 길로 틀어버린 이가 바로 그였다.
“이런 젠장! 허억··· 헉···”
사풍의 숨이 점점 가빠온다.
오늘만 벌써 두 개의 산을 탔다.
산채는 세 번째 습격이고.
“이, 이놈들! 누가 감히 백은산(白銀山)의 태호채를 건든단 말이냐!”
내력이 잔뜩 실린 노성이 뿜어져 나온다.
“허어. 드디어 채주가 나오시나? 도망이라도 간 줄 알았는데.”
목 뒤로 검을 걸친 정문이 성큼 걸어 나간다. 언제 보아도 건달패와 같은 모습이다.
- 쿵!
노성을 뿜은 산적이 집채만 한 거월부(巨鉞斧)로 땅을 누른다. 제법 내력이 실려 바람마저 일으키는 모습이다.
“이 방만님이 지키는 태호채를 습격하고도 살아갈 생각은 아니겠지!?”
자신을 방만이라 소개한 산적이 거월부를 연신 휘두르며 위협을 가한다.
“방만? 혹시 성이 한씨냐?”
“두씨다!”
“그래? 오늘부터 한씨해라!”
정문의 발이 땅을 찬다.
질전보(疾電步)의 반탄력을 이용해 순식간에 방만의 앞으로 다가가는 정문.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죽어라!”
방만의 거월부가 정문의 정수리를 노리고 내려온다.
- 슈우우우웅!
거칠게 바람을 가르는 거월부.
방만의 거대한 덩치와 어울려 흡사 산이라도 쪼갤 기세다.
“죽어라아아아아앗!”
- 빡악!
“컭헉!”
검갑에서 뽑히지도 않은 정문의 검이 방만의 갈빗대를 찍어 누른다.
충격이 커서였을까.
잔뜩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르던 그의 거월부가 멈춰버렸다.
- 덜덜.
거월부를 쥔 방만의 손이 떨린다.
그의 고개와 전신도 함께.
조금 벌어지는 입.
무언가 혈색이 조금 섞인 액체가 그 입으로 새어 나온다.
- 쿵!
‘한’방만의 신형이 땅으로 향했다.
“자! 채주 방만은 이미 쓰러졌다! 더 해볼 놈들이 있느냐!”
기세를 놓칠세라 진명이 검을 높이 들고 이목을 집중시킨다.
“어··· 어···?”
“항복하겠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저마다 한마디를 뱉은 산적들이 무기를 버리며 투항한다.
이제는 이런 모습이 익숙한 공동의 제자들.
“자자! 이제 뒤처리를 하자구요!”
검을 갈무리한 명화가 손을 털며 자리를 잡는다. 동시에 묵환 역시 하나, 둘 쓰러진 산적들을 한 곳으로 모은다.
- 툭!
쓰러진 방만의 몸을 발로 차버리는 정문.
“얘도 치워야지. 손맛은 제일 좋을걸?”
“앗! 양보해주시는 거예요?”
정문의 말에 묵환의 눈이 반짝인다.
“뭐, 이전 산에선 내가 했었잖아?”
“야호! 들으셨죠? 사형! 사저! 요놈은 제겁니다?”
“아휴, 그래! 그래! 너 다해라!”
“······.”
귀엽다는 표정으로 묵환을 대하는 명화와 달리 진명은 말이 없다.
“저··· 위사형?”
“아이참! 철없이 뭐 하는 거예요! 산채는 내일도 털 건데! 그냥 양보해요, 좀!”
진명이 축 처진 어깨로 고개를 끄덕였다.
“묵환, 저들이 다시는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확실히 부수거라!”
“옙!”
묵환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이런 그들을 바라보는 사풍의 표정이 넋이 나간 것과 같다.
“자, 진사형은 귀 막고 고개 돌려요. 또 울면 어떡해요?”
“운 적 없다! 헛소리를······!”
- 빠가아아악!
“흐이익!”
단전이 깨지는 호쾌한 소리에 사풍의 몸이 움츠러든다.
“그러게 얼른 귀 막으라니까···”
- 빠각!
“이얏!”
“대사형! 숫자를 나눠서 처리해야지요!”
진명이 얼른 정문이 서 있는 곳으로 날아든다. 조금 전 싸울 때보다 몸이 더 잽싸다.
사풍을 제외한 정문과 진명, 묵환이 차례대로 산적들의 단전을 부순다.
당연히.
칠상권으로.
- 빠각!
- 빠아아아악!
- 빡!
산적 졸개들의 단전을 부수고 나서야 방만에게로 향하는 이들.
묵환이 허공에 연신 주먹질을 하며 연습한다.
- 훙!
- 슝!
- 훙!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살벌하다.
진명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방만의 뒤로 향해 그의 몸을 들어 올린다.
“갑니다!”
- 꽝!
뇌진보(雷振步)와 함께 묵환의 몸이 거칠게 튕겨 나간다.
일곱 줄기의 내력이 묵환의 전신을 타고 흐른다.
- 슈우우웅.
이내 묵환의 안광이 발한다.
“하아앗!”
칠!七!
상!傷!
권!拳!
- 뿌아아아아아아아가아악!
- 툭.
단전이 박살 나다 못해 가루가 되어버린 ‘두’방만의 몸이 땅으로 떨어졌다.
아련한 떨림이 묵환의 손을 타고 올라온다.
‘아···아!’
눈을 뒤집고는 고개마저 들어 올리는 묵환.
감촉을 최대한으로 느끼려는 움직임이다.
아아! 하는 묵환의 입이 살짝 열린다.
“죽인 건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딱, 안 죽을 만큼만 팼어요! 도사가 살생이라니요!”
허허.
장하다. 우리 사제들.
도사란 자각은 있구나.
그래, 그럼 된 거지.
정문의 표정이 만족스럽다.
“자자, 진사형! 끝났어요. 뚝. 착하지 뚝!”
오늘도 사풍을 달래는 건 명화의 몫이다.
끝났다는 말에 사풍이 얼른 고개를 쳐든다.
정문을 노려보는 사풍.
“이게 매번 무슨 짓입니까!”
“또 뭐가?”
“왜 멀쩡한 관도를 두고 산으로 다니며 선량한 산채를 터냐 이 말입니다!”
산채가 선량하진 않지, 인마.
“허허, 대 공동의 장문인을 노린다는 녀석이 이리 협의심이 없어서야. 쯧쯧.”
“당신이 할 말은 아닌 듯한데요!”
사풍의 말처럼 정문 역시 협의심으로 산채를 터는 것은 아닌 게 분명했다.
협의심으로 턴다기에는···
“전부 다 수련이니라. 수련! 실전 감각을 쌓는 좋은 수련이 아니더냐? 허어, 통재(痛哉)로다. 사형의 마음을 이리 몰라주다니···”
“이···!”
사풍의 입이 꽉 다물어진다.
이가 조금 어긋나는 소리가 들리지만 다들 모른 척하기로 한다.
“그렇다곤 해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하루에 산을 두 개씩 타는 건 그렇다 쳐도 산채를 세 개씩 털다니요!”
“사풍아.”
“뭐!”
“터는 게 아니라, 토벌하는 거니라.”
“그럼 비고라도 건들지 말던가!”
“허허, 양민들을 위함이니라.”
“아오!”
사풍의 얼굴이 잔뜩 뻘게진다.
혈압이 이미 최고치로 닿은 것이다.
내가 왜 이 새ㄲ··· 아니 이 사람을 속가행에 포함시켰을까 문득 지난날 자신에 대한 살심이 치밀어 오르는 사풍이다.
“대충 끝났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밤을 보내시죠. 내일 날이 밝는 대로 관아에 넘기고 길을 나서면 될 듯합니다.”
산적들의 사지근맥을 끊고 손발을 묶은 진명이 손을 턴다.
“쳇! 다들 알아서들 쉬시든가! 난 산이나 돌아보고 오겠소!”
잔뜩 뿔이 난 사풍이 동문들을 두고 산으로 뛰어들었다.
진명이 슬쩍 뒤를 밟으려 했지만, 정문이 만류한다.
“시간을 좀 주거라. 삼일이면 자신도 깨달은 게 있을 테니.”
“······, 이대로 괜찮은 거겠지요?”
“뭐가? 그냥 성격이 조금 모난 사제랑 동행하는 거뿐이야. 그렇게 생각하자고.”
“예, 사형.”
이럴 때면 또 묵직한 사형으로 변모하는 게 정문이다.
진명은 그런 정문의 말을 감히 거역하지 못한다.
태호채가 위치한 곳에서 멀지 않은 숲.
사풍이 모든 내력을 소비하려는 듯 무서운 속도의 행운유수를 펼친다.
‘아! 아! 아아아아!’
끝없는 절규가 사풍의 가슴에 울린다.
더는 밟고 날아갈 나무도 없다.
어느새 물가에 닿은 사풍.
폭포가 조용히 내려치는 한적한 곳이다.
“이런 젠장-!”
사풍의 검이 빛을 발한다.
- 팡!
날카로운 검기가 폭포를 가른다.
다행이다.
소리는 그리 크지 않다.
누가 알아챌 일은 없단 뜻이다.
사풍은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왜! 왜! 왜!’
분명 산화사괴와의 조우가 있기 전까진, 자신의 무공이 나머지 셋에 밀린다는 느낌은 없었다.
무려 저 괴물, 이정문 역시 인정하지 않았는가?
위진명이 아닌 나 진사풍이 산화사괴의 첫째 산화혈검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날도!
아무리 산화사괴 사이에 무공의 차이가 있다곤 하나 자신은 가장 늦게 그를 처리했다.
그날, 몸에 가장 많은 생채기를 가진 것도 자신이었으리라.
사문 내에서 자신과 비견될 검수라곤 정문과 진명이 끝이라 생각했던 사풍이다.
이제는 따라갈 엄두조차 나지 않는 정문, 승패를 확신할 수 없는 진명, 어느새 발밑까지 쫓아온 명화, 무지막지한 신체의 묵환까지!
불과 넉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못 했던 결과다. 예상이 아니라 상상도 말이다.
오늘은 어떠했는가?
자신이 숨을 몰아쉬며 겨우 산적 몇을 눕히는 동안 저들은 숨 한 번을 몰아쉬질 않았다.
굴욕감.
자신이 항상 앞서가는 것으로 알던 이가 뒤를 돌아 쫓아 오는 이들을 보려 했을 때, 이미 그들이 뒤가 아닌 옆에 선 모습을 본, 그런 굴욕감이 사풍을 채운다.
속가행을 나서기 전까지는 설마설마했던 일이다. 자신이 이번 속가행을 통해 정문과 저들에게 확인하고 싶었던 것.
그중에는 분명 저들의 성취 또한,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빨리 피부로 체감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으아아아!”
- 팡팡팡!
사풍이 날린 예리한 검기가 폭포에 파묻힌다.
- 챙.
검을 집어 던지는 사풍.
이내 몸을 움직여 절벽으로 다가서더니 주먹질을 시작한다.
- 쾅! 쾅! 쾅!
칠상권! 추운권! 복마권!
자신이 익힌 모든 권법을 벽에다 풀어낸다. 이미 양손은 피로 범벅이다.
“헉, 헉, 헉.”
전신의 힘을 모두 쏟고 나서야 사풍이 정신을 차린다. 양손은 모두 피로 범벅에 옷은 땀으로 축 처진지 오래다.
“꼴이 말이 아니군. 쳇.”
툭툭!
약간의 먼지가 퍼진다.
자신 역시 뒤따르는 사제들, 앞서가는 사형들을 보며 언제든 쫓기며 쫓는 위치에 놓인 무인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그렇기에 지금 더욱더 큰 굴욕감과 부끄러움이 사풍을 채우는 것이다.
“크크크크! 수련?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지!”
잠시 멈춰 옷을 털던 사풍이 고개를 들며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한다.
“크크크, 그래. 그래. 어디서 이상한 검식과 타문의 내력을 익힌 게 분명한 거야! 크크크, 성장? 웃기지도 말라지!”
이제는 얼굴을 감싸며 혼잣말까지 곁들이는 사풍.
- 뚝.
갑자기 그의 웃음이 싸악하고 멎어 버린다.
잠시간의 망상 후 찾아오는 현실감.
그 현실감이 자신을 덮친 것이다.
사풍 역시 알고 있었다.
정문이 저들에게 가르친 것들이 공동의 검, 그 범위 안에 속하는 것들이란 사실을.
사풍은 또 알고 있었다.
저들의 수련이 지금 성과를 나타냈기에 자신이 이리도 비참하게 느낀다는 것을.
자신의 조부 공준에게 사풍은 정문과 그 사제들에게서 ‘확인’할 것이 있다고 말을 했다. 과연 사풍이 이번 속가행에서 확인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그가 확인하고픈 것을 그도 아는 것일까?
사풍의 눈이 무겁다.
달빛이 어깨에 나려 자신을 누르는 것만 같다.
던져 둔 검을 집어드는 사풍.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복마검결을 풀어내며 땀을 흘린다.
조금 전 아무렇게나 휘두르던 검로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래, 이건 수련.
수련하는 무인의 모습이 확실했다.
멀리서 그런 사풍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정문. 그의 손에 들린 두 병의 호리병이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사풍을 뒤로 두고 정문이 발을 돌린다.
사풍의 검로가 유난히도 슬픈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