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038. 부순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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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됩니다!”
양팔을 좌우로 벌린 미공자가 도관의 대문을 막아선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에 헌헌한 외모.
하늘거리는 도포까지.
좌우로 벌린 팔과 길쭉한 신형이 열십(十)자의 형상을 이뤄 거룩하기 그지없다.
“좋은 말로 할 때 비켜라.”
오늘은 어깨에 검 대신 곡괭이를 걸친 정문이 잔뜩 불량한 표정을 지으며 진명을 압박했다.
“사형, 나와요.”
늘 자신의 편을 들어주며 같은 길을 가는 것만 같던 귀여운 사매도 저 마귀의 속삭임에 넘어가 곡괭이를 들고 있다. 점점 불량한 자세마저 닮아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모, 모시겠습니다!”
건장한 이민족의 마귀가 자신의 허리를 부여잡는다.
“못 간다 했다! 하압!”
- 파팡!
진명이 무릎을 조금 구부리며 양다리에 내력을 집중한다. 천근추(千斤錘)를 사용해 몸을 땅에 고정하는 진명.
“사, 사형. 움직이질 않습니다!”
묵환이 조금 당황하며 정문을 돌아본다.
“후, 너 정말 이럴래?”
지난날 비무장을 나서는 고력강을 떠보며 도관에 무언가가 있음을 알게 된 정문.
그는 다시금 도관을 살펴보며 이내 도관과 어울리지 않는 ‘마상(馬像)’에 시선을 던졌다. 뇌대(雷台)에 도관을 처음 짓던 날, 삼청관(三淸館) 터에 땅을 파던 도중 나왔다는 마상.
다른 모든 것은 평범한 도관이다. 그렇다면, 저 마상이 정문을 ‘물건’으로 안내해줄 유일한 단서임이 분명했다.
정문은 서둘러 사제들을 모아 달콤한 말을 던졌다. 도관의 아래에 숨겨진 보물이 있을 거라고.
명화와 묵환은 쉽게 넘어왔다.
원래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사제들이 아닌가. 보물을 찾는 모험을 기대하는 눈치들도 조금 보였다.
사풍은.
무시했다.
멍청한 짓이란 일갈을 한 번 뱉고는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중이다. 멀리 가지 않고 주변을 서성이는 것을 보니, 그도 궁금은 한 것 같지만.
진명은.
입에 거품을 물었다.
“안 됩니다! 도사가 재물에 눈이 멀어 도관을 허물다니요! 천존(天尊)께서 노하실 겁니다!”
“야, 도관 주인인 한관주도 허락한 일을 네가 뭔데?”
“도사니까요!”
진명의 눈이 반짝였다.
다른 누구보다 현재 진명에게는 자신의 모습이 더없이 멋지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도우란 말은 안 한다. 방해만 하지 마라.”
“안됩니다! 가도(假道) 짓도 적당히 하셔야지요! 공동의 제자가 도관을 허물다니요!”
“다시 고쳐 놓으면 되잖니? 응?”
“허물겠다는 마음이 문제인 겁니다! 차라리 저를 베고 가십시오!”
굳은 결심의 진명이 안광을 밝혔다.
순교자의 결연한 표정이 진명의 얼굴을 빛낸다.
- 스릉.
“호오? 그렇게 쉬운 방법이?”
정문이 슬쩍.
검갑에서 검을 반쯤 뽑아 들었다.
- 꿀꺽.
진명의 눈에 조금은 망설임이 생겼다.
사형이라면···, 베고 갈 사람이다.
진명의 고개가 슬쩍 내려갔다.
“······마 ······령”
“?”
검을 뽑다가 그대로 멈춘 정문.
고개가 슬쩍 기울어진다.
“쟤 뭐라니?”
“글쎄요, 뭐라 말을 하는 것 같긴 한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사형제의 반응에 진명이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린다.
곧바로 검지와 중지를 모아들고 앞으로 내밀더니,
“구축병마(驅逐病魔)! 급급(急急)! 여율령(如律令)!”
주문을 외기 시작한다.
“저, 저거?”
정문이 충격받은 표정으로 명화를 돌아본다. 연신 눈을 크게 뜨는 것이 맞지? 맞지? 하고 묻는 것만 같다.
“그···, 잡귀를 몰아내는··· 주문이죠···, 예.”
“사형의 몸을 돌려다오, 이 마귀야!”
한쪽 손은 자기 이마에 대고 있는 것이 진명이 진지한 상태임을 증명했다.
총명한 자신의 대사형이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을 거라 확고히 믿은 것이다.
“구축! 병마! 그읍···끄읍···?”
- 픽.
- 철푸덕.
주문을 열심히 외우던 진명의 몸이 앞으로 쓰러진다.
진명의 복부에 커다란 주먹이 닿아있다. 조금은 새까만, 묵환의 주먹이.
“사, 사형을 지키려는···겁니다!”
묵환이 벌벌 떨며 정문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곳에는.
진짜 마귀(魔鬼)가 칼을 뽑아 들고 서 있었다.
“워워워. 비켰잖아요! 맞죠? 그쵸?”
명화가 서둘러 팔을 잡고 정문을 달랜다.
“자자, 머리카락 내려요, 얼른! 눈에 안광도 지우고! 어서! 검도 집어넣고!”
- 탁!
“후우우우.”
검을 집어넣은 정문이 한숨을 크게 쉰다.
“내가 이제 잡귀 취급까지 받고···, 끄응.”
그러게 가도 짓을 적당히 했어야죠. 라는 말이 명화의 목에 걸렸으나, 우선은 자신도 함께하는 중이니 말을 삼킨다.
“자자, 얼른 들어가서 시작합시다. 묵환아. 너는···, 저 도사님을 나무에 묶어두렴.”
“예, 사저!”
속수무책으로 기습을 당한 진명은 굵은 나무에 몸이 묶여버리고 말았다.
오늘도 복마(伏魔)에 실패한 진명이다.
- 깡!
- 꽝!
- 탕!
둔탁한 소리가 도관을 채운다.
도인들이 연신 곡괭이로 도관을 내려치는 덕이다.
그렇게, 반 시진이 넘도록 도관을 부수고 땅을 파는 작업이 계속되었다.
“허허, 다들 힘드시겠습니다.”
연신 비지땀을 흘려대는 도사들에게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금 박살 나고 있는 도관을 직접 세운 주인, 한수량이 아들과 이들을 찾아온 것이다.
“도장님들! 참 드시고 하세요!”
소관주 한강이 쟁반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쟁반에는 적당한 음식과 술병이 조금 놓여 있었다.
“이걸 다 준비해 온 거예요? 감동이에요!”
명화가 잔뜩 밝은 얼굴로 달려갔다.
묵환도, 입가에 묻은 침을 닦으며 따라나선다.
“먹고 와. 난 좀 더하고 있을게.”
애초에 진명까지 넷이서 할 일을 셋이 나눠 하고 있으니 진척이 조금 느린 감이 드는 정문이다. 쉴 시간을 쪼개 땅을 더 파겠다는 의지가 결연했다.
- 쾅!
정문의 곡괭이가 땅을 때린다.
이제는 삼청관의 건물은 모두 허물었고 땅만이 남았다.
“좀 돕지, 그래?”
잠시 허리를 피고 땀을 닦아낸 정문이 뒤로 말을 던진다.
소나무가 만든, 담벼락 주변 작은 그늘에 사풍이 기대고 서 있다.
“흥! 그런 바보짓 따위!”
“뭐 나와도. 넌 안 준다. 말했다. 안 준다고. 달라고 하지 마.”
- 쾅!
정문은 사풍을 보지도 않고 연신 땅만 때리며 말을 던졌다.
“다, 달라고 한 적 없습니다!”
- 까앙!
“그럼, 왜 알짱거리는데?”
- 후우우.
춘삼월이 지나고 태양이 조금 기세를 부리자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정문이 다시금 땀을 닦으며 물었다.
“······, 어제 말입니다.”
- 스윽.
돌아보는 정문.
“어제 왜?”
“그··· 파훼 있지 않습니까. 창식.”
“서하오창식?”
“뭐, 여튼. 그거.”
“그래, 그게 왜?”
자신을 돌아보며 대답하는 정문에게, 사풍은 여전히 시선을 주지 않는다.
“나한테는 왜 가르친 겁니까? 난 또 당장에 놈들이랑 한바탕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 픽.
정문의 입에서 실소가 새어 나온다.
다시 돌아서서 땅을 때리는 정문.
- 쾅!
“익혀둬라. 나중에 꼭 쓸 일이 있을 테니.”
- 쾅!
정문이 사풍에게 하는 말은 진심이다.
적어도 감숙에 있는 공동은, 언제든 서하인과 마주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왜 하필 나한테 가르쳤냐는 말 아닙니까? 둘째도 있는데!”
- 쾅!
정문이 답이 없다.
- 쾅!
조금은 일그러진 표정의 사풍이 묵묵히 대답을 기다린다.
“너 장문인 할 거라며.”
!!!!!
- 쾅!
정문의 입에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말이 뱉어졌다. 자신이 분명 대제자와 장문인의 자리를 노리는 것은 맞지만, 정문이 그런 것을 양보할 인물은 아니지 않나.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 쾅!
“‘과정’이라더니, 포기했냐?”
- 쾅!
사풍의 동공이 떨린다.
진심을 들려줘야 하는 것인지, 적당히 맞춰줘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흥! 포기는 무슨! 할거요! 대제자! 장문인!”
- 툭.
정문이 곡괭이질을 멈춘다.
땀을 한 번 닦고는 돌아서는 정문.
“그러니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네가 장문인이 될지도 모르잖아?”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입니까?”
정문의 눈이 조금은 무겁게 사풍의 얼굴을 향한다. 나올 이야기가 더 무겁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네가 장문인이 되었을 때도, 파훼를 아는 사람이 공동에 한 명은 있어야지.”
“그때 가서 사형이 알려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사풍아.”
“?”
“내가 대제자랑 장문인 자리까지 뺏기고 네 밑에서 장로질 하리?”
!!!!
“진명이도, 사제 밑에서 장로질 하려 할까?”
“······.”
사풍이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한다.
다시 돌아서서 땅을 때리는 정문.
일부러 사풍의 표정을 못 본 척해주려는 정성이다.
사풍은 늘, 대제자를 노리며 살아왔다.
아니, 그 너머에 있는 공동의 장문인을 노리며 말이다.
자신이 장로가 되는 모습과 사문을 떠나는 모습도 상상해본 적이 없던 사풍.
마찬가지로 자신이 장문인이 된 이후.
정문과 진명이 장로가 되거나 사문을 떠나는 것 역시 상상해본 적이 없는 사풍이다.
“혹시라도, 그렇게 되면. 명화와 묵환이는···, 거둬줘라. 그래도 사제들이잖냐.”
- 쾅!
대답 없는 사풍에게 정문은 자신이 할 말을 모두 전한다.
여전히 아무. 답도 할 수 없는 사풍.
주먹이 저절로 쥐어진다.
화도 함께 올라온다.
자신이 목표만을 보고 달려가는 순간에도 저 사형이란 작자는 그 이상을 바라보며 앞서 나가는 것만 같다.
그래, 지금의 화는 자신에게 나는 것.
자신의 좁은 시야에 화가 나는 것이다.
점점 더 쨍해지는 햇빛.
소나무의 그림자가 조금은 길어져 사풍의 얼굴을 가린다.
사풍은.
그런 그림자를 피하지 않고 얼굴을 묻었다.
지금 자신의 표정을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 캉!
- 꽝!
둘 사이에는 더는 대화가 없다.
그저 곡괭이 치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 대앵!
“?”
정문이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곡괭이를 내려친다. 방금 들린 소리가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 대앵!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이, 이거!”
“뭐예요?”
“차, 찾았습니까?”
달려오는 사제들.
어느새 밧줄을 끊어버린 진명도 고개를 들이밀고 함께 정문의 곡괭이 끝을 바라본다.
“철문···?”
한수량의 표정이 처음 보는 물건을 대하는 표정이다. 이전 도관을 짓는 공사 때는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정문의 곡괭이 끝에는.
육중한 철문이 두께를 뽐내고 있었다.
“이거 제대로 찾은 거 같은데?”
- 씨익.
정문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철문이 제법 두꺼운 것이 안에 있는 것들의 가치를 올려주는 것만 같았다.
“열 수 있겠어요?”
명화가 침을 꿀꺽 삼키고 정문을 바라본다.
얼른 고개가 끄덕여지길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고개를 흔드는 정문.
“여는 건 무리야. 너무 오래됐어.”
“그러면···?”
“부순다.”
- 휙, 툭.
정문이 곡괭이를 멀리 던져버렸다.
- 스릉.
검갑에서 빠져나오는 예리한 정문의 검.
“다들 물러서.”
정문의 말이 떨어지자, 다들 걸음을 다섯 보 이상씩 물리기 시작했다.
“후우우우.”
숨을 고르는 정문.
이내 검끝이 윙윙거리며 경력이 실리기 시작한다.
‘무, 무슨 내력이 저리···?’
정문이 제대로 내력을 운용하는 것을 처음 본 한수량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당장에 저 두꺼운 철을 잘라내고도 남을 내력이 정문의 검에 서린 것이다.
- 탓!
정문의 머리 뒤로 검이 젖혀진다.
크게 휘두르려는 심산이 분명했다.
아무런 초식도 없이.
그저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정문의 검이 두꺼운 철문을 가른다.
- 까가가가가강!
- 쩌억!
불똥이 튀며 거칠게 찢어지는 철문.
다행히 뒷공간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무언가 상한 것은 아니다.
벌어진 틈으로 서둘러 고개를 들이미는 사제들.
“계단인데요?”
“계단이군요.”
“화, 확실히! 계단입니다.”
갈라진 철문 사이로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열어!”
정문의 명이 떨어지자, 손끝에 내기를 모은 사제들이 양쪽으로 달라붙어 철문을 뜯어낸다.
“끄으응! 차!”
“여어어엉! 차!”
한참을 끙끙거리고서야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틈이 생겼다.
서로를 바라보는 이들.
“함정은 없겠죠?”
“위, 위험해 보입니다!”
“천존의 벌이 기다릴···”
- 텁.
다행히, 묵환의 손이 빠르게 진명의 입을 막았다.
“내가 먼저 간다. 다들 따라와.”
정문이 믿음직한 자세로 뛰어들자, 이내 사제들도 용감히 따라나선다.
“자, 와요! 한관주! 소관주!”
얼른 따라오라 손짓하는 명화에게 한수량이 고개를 흔든다.
“밖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따뜻하다.
자신의 토지에서, 자신의 도관에서 나온 것임에도 한치의 욕심이 느껴지지 않는 태도다.
한수량은 그저 이것은 공동의 것이니 자신이 가지 않겠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이다.
도인들의 얼굴에 퍼지는 미소.
“야, 넌 뭐하냐? 안 오냐?”
정문이 멀찍이 서서 멀뚱히 바라보는 사풍에게 손짓한다.
“나, 나 말이요?”
“거기 너 말고 또 누구 있어?”
사풍이 잠시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핀다.
따스한 표정의 한수량과 한강이 입구를 알려준다.
“감시하러 가는 겁니다. 감시!”
한마디를 퉁명스럽게 남기더니, 이내 사풍의 몸이 안으로 향했다.
어두운 계단만이 공동의 도인들을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