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043. 사문을 말하시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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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공동?”
“그래, 공동! 이번 논검회에 공동이 참여한다더군.”
“허허, 자신들이 무슨 산상 은거 문파라도 되는 것처럼 굴더니···”
“에이, 그건 아니지. 저번에 평량에서 사파의 악적들을 토벌했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는가?”
딱 검문첩이 돌고 논검회의 준비가 한창일 시기가 되면, 화산이 있는 화음을 시작으로 주변 도시는 모두 논검회와 관련된 이야기로 가득하다.
“허허, 그래서 그 사파의 악적들이 누구라던가?”
“그··· 뭐였더라? 무슨 사괴였는데?”
“보게. 자네 같은 무림통도 이름을 모르는 악적이 아닌가. 감숙의 조그마한 흑도방파 하나 없앤 걸 가지고 그리들 호들갑을 떠는 걸 게야.”
일전에 평량에 숨어든 산화사괴를 토벌한 정문은 흑시창을 찾아가 이를 널리 알릴 것을 요구했다.
물론 흑시창의 일 처리는 완벽했다.
공동의 일대제자들이 산화사괴라는 악적들을 토벌한 이야기는 널리 퍼져 나갔으니.
다만.
서역 무림은 중원과 멀리 떨어져도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산화사괴가 악명을 떨쳤던 곳은 서역 무림과 감숙의 경계선.
비록 이름은 그럴싸할지라도 그들을 모르는 중원인의 뇌리에는 깊이 남지 않은 것이다.
“흠. 확실히. 그리 유명하지 않은 놈들이었으니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것이겠군. 자네 말이 맞네.”
“설령 그들이 제법 이름난 사파의 악적을 토벌했다곤 해도 중원의 정도 문파들과 겨루는 것은 다른 차원이 아니겠나.”
“그런가? 공동 역시 구파의 일각이 아닌가. 손속이 매섭다는 소문 역시 있으니 그들의 무공이 그리 약하진 않을 텐데?”
“허허, 손속이 매서우니, 무공이 강하다? 자네 소림의 손속이 어떤지는 아는가?”
“소림이야 대자대비하지.”
“그렇지. 소림은 손속에 정이 많네. 불가의 가르침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실력이 뛰어나니 악적들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것이 아니겠나? 손속이 매섭다? 그건 악적을 여유롭게 제압하지 못하는 자들이 애써 포장하는 말이지.”
“호오?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새로운 주장을 맞이한 논객의 자세가 참신하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수용하는 자세가 참된 논객의 자세였다.
“자기 지역에서 나오지 않는 이들은 모두 이유가 있는 걸세.”
“음, 곤륜이나 공동 같은?”
“점창도 있지.”
“점창은···, 이야기하지 마세.”
“······. 내 실수했네.”
이야기를 주고받던 두 사람이 이내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신의께서는 아직도 그 일을 마음에 두고 두문불출하신다지···.”
“어쩌다 그런 병에···.”
잠시 숙연한 분위기가 이어질 때.
그들이 앉은 객잔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아니. 놔봐. 진짜. 안 죽일게.”
넷 정도 되는 도인에게 다른 한 도인이 붙들려 있는 기이한 광경도 함께 펼쳐졌다.
“워워워. 진정해요. 진정. 여기 객잔은 많잖아요? 아니면 장원으로 먼저 돌아가서 밥을 먹던가!”
“차, 참으십시오!”
“모르고 한 말입니다! 넘어가셔야 합니다.”
“이런 제엔장! 무슨 힘이!”
한 명의 젊은 도사를 양팔과 목, 그리고 허리까지 부여잡은 도사들이 겨우겨우 그를 말려 댄다.
‘허허, 별의별 놈들이 다 모이는군.’
창가에 앉아 대화를 주고받던 사내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분명 도사의 복장을 한 이들은 맞으나, 하는 행동이 영 도사답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의 눈이 빠르게 도사들의 소매와 가슴으로 향했다.
아무런 문양도, 글자도 없다.
‘천하(天下)도, 매화나 태극도 아니군. 그렇다면 청성쯤이려나?’
종남도, 화산도, 무당도.
저마다 자신들의 도복에 상징을 수놓아 목표하는 바를 되뇌곤 했다.
그런 상징이 없다는 말은.
우선은 3대 도문은 아니란 뜻이다.
“쯧쯧쯧. 강호가 어찌 되려고.”
사내가 혀를 차며 술을 들이켰다.
순간.
- 빠악!
무언가 강한 물체가 날아와 사내의 머리를 정통으로 맞춰버렸다.
“?”
“강호가 어찌 되긴 새꺄. 일단 니 걱정부터 해.”
“?”
어안이 벙벙한 사내.
분명 조금 전까지 저 아래에 있던 도인이 어느 순간 사내의 앞까지 올라와 있었다.
절로 고개가 가로 기울어지는 순간.
- 꽈악!
도인의 허리로 굵은 팔뚝이 둘리며 이내 도인의 신형이 공중으로 향한다.
- 쿠웅!
이층의 높이에서 그대로 머리를 찍은 도인.
이를 모두 지켜보던 사내는 지금 일어난 상황이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이, 이게 대체 무슨···?”
“괜찮으십니까?”
사내에게 다가서는 다른 도인.
조금 전 아래에서 넘어가야 한다며 연신 저 막무가내의 도인을 설득하던 다른 도인이다.
긴 생머리를 올려 묶어 헌헌한 턱선이 돋보이는 도인이 얼른 사내의 안위를 살핀다.
“이···이게 다 무슨 일이오?”
“죄송합니다. 저 도인이 조금 다혈질이라···.”
“다혈질···? 아니, 선량한 사람에게 이리 해를 가해놓고, 다혈질이면 다란 말이오?”
“그···, 죄송합니다. 도사 위진명이라 합니다. 제가 사죄드리겠습니다.”
진명은 차마 사문의 이름을 입에 담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자신들이 보여주는 모습도 문제지만 이들이 조금 전 나눈 대화를 자신도 분명 똑똑히 들었기 때문이다.
“허어? 어찌 강호의 법도가 이리 흘러간단 말이오? 사문도 밝히지 않고···.”
“제가 안 밝히는 것이 서로에게 득이 될 것 같아···”
진명이 연신 저자세로 나가자 사내는 이제는 제법 당당한 태도로 진명에게 따지고 나섰다.
“사문을 말하시오!”
“진짜···, 괜찮으시겠습니까?”
“허어, 하늘 아래 내가 두려워할 문파는 없소! 나 천담일설(千膽溢說) 석경이요! 내 담은 천 개란 말이외다!”
석경이라 자신을 소개한 사내는 진명이 연신 사문의 이름을 말하길 망설이자, 별 볼 일 없는 문파의 출신이라 지레짐작했다.
“······동입니다.”
“뭐라?”
석경의 눈이 거칠게 꿈틀거렸다. 아직은 진명의 목소리가 작은 걸 보니, 작은 문파일 거란 확신이 더욱 강해진 것이다.
“공···동···입니다.”
“그래, 공동? 내 어디서 이런 들어보지도 못한···? 잠깐, 뭐라고···?”
석경은 서둘러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다른 논객, 주철을 바라봤다.
이미 넋이 나간 주철의 표정을 보니 저 도인이 말한 그 ‘공동’이 조금 전 자신이 신랄하게 까대던 그 ‘공동’이 맞는 것 같았다.
“······저, 그. 음. 죄송합니다?”
“죄송은 됐고, 죽어.”
- 퍼억!
분명 이층에서 정수리부터 바닥으로 떨어졌던 도인이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다시금 뛰어올라 석경의 얼굴에 발을 들이밀었다.
“끄억!”
“히이익!”
뻥 하고 나가떨어지는 석경의 모습을 보며 주철이 사시나무처럼 떨어대기 시작한다.
“저···, 저는 아무 말 안 했습니다.”
“가만히 계십시오. 눈에 띄면 더 맞는 법입니다.”
사과하러 올라왔던 진명이 조심스레 조언해준다. 확신에 찬 태도가 경험담임이 분명했다.
- 퍽! 퍽! 퍽!
“어떠냐? 실력이 모자라 매서운 손속이!? 자비는 없다! 실력이 모자라서어어!”
- 퍼억!
계속되는 정문의 발길질.
“그만하십쇼!”
날카롭게 생긴 눈매의 다른 도인이 몸을 날린다.
서둘러 정문의 허리춤에 팔을 감는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
“호오? 이제 한 놈 늘었네?”
연이어 덩치가 큰 도인이 뛰어들어 정문의 겨드랑이로 두꺼운 팔을 집어넣었다.
“묵환, 잡았느냐?”
“예, 삼사형!”
“좋다. 이대로 달린다!”
“하나, 둘, 세엣!”
묵환이 구령을 외치자, 사풍과 묵환이 동시에 힘을 쏟으며 정문을 들고 쌔앵하며 날아갔다.
이미 혼절해버린 석경.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대작하던 친구의 얼굴이 만신창이다. 주철은 그저 얼른 이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그···, 죄송합니다.”
허리를 직각에 가깝게 숙여 사죄하는 진명.
“아, 아닙니다. 입을 잘못 놀렸으니, 응당 벌을 받아야지요.”
“의도하고 하신 말씀이 아님을 잘 압니다. 주변에 공동이 있을 거라 예상하신 것도 아니고요. 본도들의 잘못입니다.”
“거, 걱정 마십시오. 본디 강호에 떠도는 풍문으로 먹고사는 호사가들입니다. 이, 이런 일이야 흔한 편이니. 허허허.”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드시는 술상은 저희가 내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어찌 그런···”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그래야 저희가 면이 삽니다.”
“허허, 그, 그러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저 친구 역시 조금이나마 무공을 익힌 자이니 걱정은 거두시지요.”
단 한 번의 반항도 못 하고 나가떨어졌긴 하지만 석경 역시 협명이란 것을 얻은 무인이었다.
‘허허, 어찌 저자가 저리 쉽게···’
“그럼, 안녕히 계시길.”
“우리도 화음으로 향할 것이니, 또 보겠지요. 조심히 가십시오. 무운을 빕니다. 허허, 사제분 덕에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만.”
주철은 괜스레 분위기를 풀어보려 마지막 말을 붙여봤다. 다만, 그다지 분위기는 풀어지지 않는 것 같다.
“···형입니다.”
“예?”
“······, 아닙니다. 그럼 이만.”
진명은 치고 올라오는 양심상 저 사람이 대사형이다, 저 남자가 내 사형이다. 말을 하고 싶었다.
다만, 그의 어깨에 짊어져 있는 사문의 명예란 짐이 너무도 무거웠기에 되묻는 주철을 말을 애써 무시하며 발을 돌렸다.
“가···, 갔나?”
정신을 잃은 척하며 버티던 석경이 얼굴을 매만지며 일어섰다.
“갔네. 원, 사람. 조심 좀 하지.”
“입놀림이 어디 조심한다고 되는 일인가. 호사가는 매밥으로 사는 거지. 퉷.”
석경이 침을 한 번 뱉자 시뻘건 핏물이 섞여 나온다.
“어찌, 손속은 맵던가?”
- 키득.
주철이 잔뜩 웃음을 머금고 말을 묻자,
“아주 매섭네. 조금 전 말은 취소함세.”
“허허, 그러게 들리지 않게 말을···?”
주철의 고개가 가로 기운다.
문득 저들이 서 있던 아래와 이곳의 거리를 다시 살피는 주철.
‘여기서 하는 대화를 저기서 들었다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개념이 주철의 머리를 스친다. 지금 자신들이 있는 이곳은 제법 층고가 높은 객잔.
자신들의 목소리가 그리 크진 않았기에 아래층에서 목소리를 듣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였다.
“허허, 공동의 도사들이 생각보다 내력이 심후하구만.”
“이거 다음 동네에서 풀 설(說)은 조금 고쳐야겠군.”
“그래야겠어. 허허. 공동이라···.”
맞은 곳은 아렸으나 새로운 소재를 얻어 기뻐하는 호사가들이었다.
* * *
“아, 왜 말려!”
“사문 망신도 적당히죠!”
“그걸 듣고 가만히 있는 게 망신이야! 공동을 무시하잖아!”
“내가 본 사람 중에 공동을 제일 무시하는 건 대사형이거든요? 가만히 좀 계시죠?”
“아니···, 나는 애증의 표현···”
“쓰읍!”
“끄응···.”
그래도 명화의 말이 조금은 먹혀들어 다행이다. 요즘 유일하게 정문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명화였다.
“저거 통천패부터 뺏읍시다. 한 열 정도 달라붙으면 될 것도 같은데.”
나무에 몸을 기대어 숨을 돌리던 사풍이 진명을 보며 말했다.
“열다섯이 적당하다. 제자들이 많으니, 구룡복마진을 펼치자.”
“차, 찬성입니다.”
제대로 된 일을 할 때면 더없이 믿음직한 사형이 정문이다. 다만, 그 순간들을 제외하고는 늘 믿음직스럽지 못한 것도 정문이었다.
“휴···. 다른 사형들이 이 꼴을 못 봐서 다행이지. 안 따라나섰으면 어쩔 뻔했어요?”
“화음에 닿기도 전에 사고를 쳐서 본산으로 향해야 했겠지. 음.”
진명이 덤덤히 어두웠을 수도 있는 미래를 그려본다.
지금 이들이 머무는 도시는 섬서성 대려(大荔).
화음에서 반나절이면 닿는 곳으로 아직 정확히 말하면 화산의 영역은 아니었다.
예상보다 빠르게 내려온 공동의 도인들은 바로 화산이 있는 화음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 화음의 바로 옆, 대려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주인공(主人公)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니까.”
통천패를 가진 누군가의 한마디 덕이었다.
그렇게 대려에 적당한 장원을 하나 빌려 머문 지가 이틀. 아직은 논검회까지 이레나 남았다.
“다른 사형들은요? 다들 어디 갔어요?”
“다들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한 것 같더구나. 떨리는 것이겠지. 논검회는 그 아이들도 처음이니까.”
“마음 정리는 개뿔. 떨리면 칼을 한 번 더 휘둘러야지. 이것들이 아직 정신머리가 덜 됐네.”
어느새 기운을 차린 정문이 고개를 쑥 집어넣고는 말을 이었다.
“너희도 아까 보니까 한방에 날 제압하지 못하더라? 아직 수련이 부족한 증거야.”
아니죠.
당신도 계속 수련을 하니까요.
라는 표정을 얼른 지어보는 명화다.
“안 되겠어. 수련이 필요해.”
“지, 지금이요?”
“뭐, 내가 복수하려는 그런 거는 아니야.”
“그런 거 같은데?”
“비무를 대비하려면, 대련이 좋겠지?”
“복수 맞는데···?”
“자, 다들 따라와.”
사제들의 다양한 반응에도 정문이 이를 무시하며 걸음을 옮긴다. 이럴 때는 또. 거부할 수 없는 것이 정문의 명령이다.
“하···, 그냥 빨리 이레가 지나가라.”
“사, 사저···”
“가자. 어차피 맞을 매라면 빨리 맞는 것이 좋다.”
이미 본산에서 정문의 수련을 받으며 학을 뗀 적이 있던 사제들이 혀를 내두른다.
정문의 수련은 내공을 모두 소모하게 하고 본신의 체력을 끌어다 써야 할 정도이기에 그 강도가 늘 상상을 초월했다.
“끄응···”
죽는 소리를 내며 발을 옮기는 진명과 명화, 묵환.
그런 그들을 사풍이 나무에 기댄 채 말없이 바라본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때.
“야, 넌 안 와? 아까 넌 없었던 척하네? 개인 교습 한 번 해줘? 칠상권? 빠악?”
“다, 닥치시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잔뜩 과장된 손짓으로 칠상권을 치는 흉내를 내는 정문. 그를 향해 사풍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지른다.
“그러니까. 빨리와. 수련하러 가자.”
“······.”
사풍의 동공이 잠시 떨리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때.
“으차.”
묵환의 어깨가 사풍을 살포시 들어 올린다.
!!!
“뭐, 뭐냐!?”
“가, 강제로 가시는 겁니다!”
꿈쩍 않는 사풍의 몸을 묵환이 번쩍 들어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 아무 말 마세요! 강제로 가는 거니까!”
그렇게.
사풍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수련하는 곳까지 ‘끌려’갔다. 강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