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는 공동을 무시하지 마라!-46화 (46/153)

〈 46화 〉 046. 완승이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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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화산의 산문은 참으로 거대했다.

백색의 상아로 지어 올린 것만 같은 높은 산문이 공동의 제자들을 맞이했다.

“와아.”

탄성만이 나오는 자태에 공동파 제자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드시지요.”

백경은 아무렇지 않게 씽긋 웃고는 산문을 넘을 것을 권했다.

“산문이 참으로 멋들어집니다. 허허.”

“도문에겐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저 후원자 중 한 분께서 만류함에도 지어주신 것이라 들었습니다.”

다른 이들이 하는 말이라면 믿지 못할 겸양이었다. 다만, 말하는 백경의 눈빛이 진심으로 부끄러움을 품고 있어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동의 제자들이 산문을 넘는다.

산문에서 조금 더 발을 옮기자, 이내 화산의 자랑스러운 절벽들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정문이 가만히 고개를 들어 그 산세를 하나하나 눈에 담는다. 조금은 눈이 감기며 들어 올려지는 정문의 고개.

“정문 도장?”

백경이 걱정되는 표정으로 정문의 안위를 살핀다.

“괜찮으십니까?”

계속해서 아련함을 품은 정문의 표정에 백경이 걱정을 표한다.

“······괜찮습니다. 산세가 너무도 아름다워 그만.”

“허허. 화산이 산세가 좋긴 좋지요. 공동의 산세 역시 웅장하기 이를 데가 없다더군요. 꼭 가보고 싶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모시겠습니다.”

자신을 배려하는 백경의 말에 정문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백경이 조금 앞서가며 길을 안내한다.

어느새 정문의 뒤로 붙은 진명.

“사형. 혹여 강호를 떠도실 적에 화산에도 와보신 적이 있습니까?”

너무도 아련한 표정을 짓는 정문에게 진명이 물었다. 일전에 화산의 검을 본 적이 있다던 정문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응? 아니. 화산은 처음이야.”

정문은 이전 생을 살 때도 화산에 와본 적은 없다. 화산에 대한 정보야 매일 전해 들었으나, 직접 방문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화산의 검을 봤다는 정문의 말도 거짓은 아니었다. 금의위 비밀 서고에서 비급을 본 것 외에도, 정문은 실제로 펼쳐지는 화산의 검을 본 경험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진한 매화향이 나는 화산의 검을.

“화산에서 보는 건 또 다르겠지.”

정문이 또 잔뜩 아련한 표정을 짓는다.

“누가 보면 본산에 온 사람인 줄 알겠어요.”

명화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나갔다.

연이어 다른 사제들도 정문의 옆으로 길을 지나간다.

“빨리 오십쇼, 사형.”

“두고 갈 겁니다.”

“화산파 대제자 하시죠.”

“지금 공격하면 통하겠는데?”

“통천패는 두고 가십쇼.”

하나씩 농담 섞인 말을 던지고 가는 사제들.

“흥, 아주 감상에 빠지셨군요.”

마지막으로 사풍이 지나갈 때까지 정문은 그저 고개를 들고 화산의 봉우리들을 바라본다.

“그래, 가야지. 이제는.”

정문이 와당탕 뛰어가더니 이내 사제들을 앞질렀다. 조금은 장난스러운 얼굴이 얼른 정문에게 돌아왔다.

* * *

보통 중원의 소문은 무릇 과장되는 것이 당연했다. 태산이 하늘만큼 높다는 사람도 있고 누구는 무당산에 용이 산다는 말도 전한다.

다만.

화산의 산세만큼은 중원의 풍문도 그 발끝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산세가 이리 험함에도, 귀한 걸음을 해주셔 감사합니다. 화산의 일대제자, 운양입니다.”

정갈한 차림에 기름진 수염이 잘 어울리는 도인이 공동을 맞이한다. 공동의 장문인 자정과 엇비슷해 보이는 또래의 중년 도사였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동의 일대제자 이정문입니다. 스승님께선 사문의 일로 함께 오시지 못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제자들을 보내주셨으니, 더욱 감사드릴 뿐입니다. 드시지요.”

듣던 대로 도기가 가득한 도인이다.

화산의 일대제자, 매화고검(梅花高劍) 운양.

그의 명성이야 이미 황궁에서 지내던 시절에도 누누이 들었기에 잘 아는 정문이다.

보통 타문파의 사절들이 방문하면, 당연히 장문인이 나와 이들을 맞아야 한다.

다만, 화산의 경우는 달랐다.

이는 화산의 지위와 명성의 문제가 아닌 한 사람의 고집 덕이었다.

바로 자하검존(紫霞劍尊) 여백.

무당의 전대 장문인 진암과 소림 방장 공초와 더불어 정도(正道) 무림의 삼존(三尊)이라 불리는 기인. 그의 변덕 덕이었다.

그는 이미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장문인의 자리를 제자에게 넘기지 않고 은거에 들어갔다. 아무도. 그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에 대해 알지 못했다.

황궁에서 지냈던 정문조차.

한 기인의 변덕 덕에 무림의 배분이 꼬여버렸다.

이미 무당과 종남, 청성을 비롯한 다른 구파의 장문인에 오르고도 남을 나이의 운양이 여전히 일대제자에 머물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운양을 그저 일대제자로 대하지는 못했다.

이미 수년간 그가 화산의 모든 집무를 관장했고, 그의 영향력이 여타 문파의 장문인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운양의 안내에 따라 공동의 도인들이 도관으로 들어섰다.

“중봉(中峯)에 객청(客廳)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공동이 논검회에 처음 참석함에도 이리 대접해주시니 어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문은 그저 배려에 감사하다는 뜻에서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냈다.

다만.

“?”

운양의 고개가 조금 기울어진다.

정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왜 그러시는지요?”

“처음이라 하셨습니까?”

“예, 그간 공동이 워낙에 폐쇄적으로···”

“허허, 공동의 대제자께서 잘못 알고 계신 듯합니다.”

“예?”

“자정···, 아니. 장문인께서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는지요?”

“금시초문입니다.”

“허면, 외인이 제가 감히 말씀드리진 못하겠군요. 허나, 공동은 논검회에 처음 참석한 것이 아닙니다. 허허허.”

“?”

이번엔 정문을 비롯한 다른 공동 제자들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다들 웅성거리며 서로 아는 것이 있는지 정보를 교환한다.

결론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운양은 무어라 말을 더해주지 않았다.

그저 안내만 착실히 수행했고 화산과 논검회에 대한 설명만을 이었다.

“논검회는 내일부터 열릴 것이니, 오늘은 편히 화산을 둘러보시지요. 금제(禁制)가 둘린 곳을 제외하고는 편히 보실 수 있도록 해두었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허허. 공동의 무운을 빌겠습니다.”

적당한 안내를 마친 운양이 고개를 숙이며 작별을 고했다. 편히 쉬란 배려였다.

공동의 제자들이 막 객청에 발을 들여놓으려던 그때.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제법 얇은 목소리가 공동의 발을 멈춰 세웠다.

“?”

일제히 돌아가는 고개.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푸른색과 하얀색이 섞인 도복의 무인들이 무리 지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 청록색 장포를 걸친 중년인이 수염을 매만지며 공동파 제자들과 시선을 맞췄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저 중년인이었다.

‘청성···?’

청성은 공동가 교류가 있던 곳이 아니다.

사는 지역 역시 사천과 감숙이기에 맞닿은 곳도 아니고.

그런 청성이 먼저 공동을 보며 아는 척을 하니 다들 의아해한다.

“청성파 도인들이십니까?”

“하하하. 맞소이다. 나, 청성파 장문인 좌세경이올시다.”

“반갑습니다. 공동의 장문 대리, 이정문입니다.”

정문은 부러 자신을 장문 대리라 소개하며 인사를 건넸다. 조금은 짧은 좌세경의 어미 때문이었다.

또한.

‘성정이 비굴하고 약은 구석이 많은 자라 들었지.’

정문이 이미 좌세경에 대해 알고 있기도 했고.

“하하하. 대제자께서 장문 대리로 이리 오셨구료.”

“스승님께서 바쁘시기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정문은 끝까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허허. 자리야 어떻든, 감숙 내에서 위명이 자자한 공동을 실제로 뵈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허허허, 아닙니다. 사천 내에서 당문, 아미와 함께 명성이 자자한 청성을 뵈니 저희가 더욱 반갑습니다.”

정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분명 좌세경과 정문 모두 웃는 얼굴이다. 다만, 무언가 그들 사이에서 강렬하게 부딪히는 기운이 주변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와, 저거 기싸움이죠?”

명화가 사풍의 옆에 달싹 붙어 똘망한 눈으로 물었다.

“······? 그걸 왜 나한테 묻느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묻는 사풍.

“아니, 원래 이런 거 잘하는 사람은 저치인데 없으니까 이인자한테라도 물어야죠.”

명화의 말에 주변 다른 제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평가가 제법 객관적인 덕이다.

“······. 살벌하긴 하군.”

사풍은 명화가 답을 듣기 전에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가볍게 답해줬다.

“저게 다 무슨 뜻이에요?”

“음···, 저쪽이 한 말은 감숙 안에서만 놀던 놈들이 뭐 주워 먹으러 기어 나왔냐는 뜻이다.”

사풍의 말을 들은 공동파 제자들이 웅성거린다.

“헐. 대사형이 그걸 듣고 참은 거에요? 대단하네.”

“대사형은. 사천도 셋이서 나눠 먹는 놈들이 어디서 지랄이냐는 말을 하더구나.”

“오. 역시. 밖에서는 헌헌하군요.”

다른 제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존경의 눈빛으로 정문을 바라봤다.

“······공동의 대제자께서 아주 총명하고 예법에 바르시니 공동의 미래가 기대됩니다.”

“아닙니다. 청성이 귀감(龜鑑)이 되어주시니 함께 발전해나가는 것이지요. 허허허. 다른 곳보다 심적으로 가까운 청성이 아니겠습니까?”

“저건요?”

다들 기대에 찬 눈빛으로 사풍을 바라본다.

“어린놈이 어디서 싸가지 없이 따박따박 말대꾸냐? 나중에 잘 되나 지켜보겠다. 라는 군.”

“오, 일문의 장문인이라고 나름 치는데요?”

명화의 반응이 좋자 사풍이 연달아 말을 이었다.

“사형은 너 같은 놈들 보고 배운 거다. 청성이나 공동이나 거기서 거기 거늘 어디서 텃세질이냐. 라고 말하는 것 같고.”

“오오?”

공동파 제자들의 얼굴엔 웃음이, 청성파 제자들 얼굴엔 일그러짐이 동시에 올라왔다.

“······그렇습니까? 허허. 모쪼록 첫 출전에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허허. 말씀 감사합니다. 다만, 결과보다는 경험이 중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저 참가에 의의를 두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허허. 산을 오르느라 고생하셨을 터이니 그럼 이만. 쉬십시오.”

“가시지요.”

끝까지.

둘 모두의 고개는 한 번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저 눈빛만 주고받으며 포권하는 손은 올렸지만, 고개만큼은 절대 부동이었던 둘이다.

“마지막은요?”

“첫 출전 주제에 뭘 할 수 있겠느냐? 라고 말하니 사형께서 너흰 결과 보고 참전하냐? 이 세속적인 가도(假道) 놈들아. 우린 그런 문파가 아니다. 라고 전하셨다.”

“우리 사형이 이긴 거네요?”

“저치가 지고 올 이는 아니지. 완승이다.”

“오오오오오!”

공동파 도인들이 다시 한번 술렁였다.

- 툭툭툭.

가볍게 손을 털며 돌아오는 정문.

“별것도 아닌 게 입심 따지기는.”

잔뜩 입을 삐죽이며 승리를 자축한다.

한쪽 눈을 찡긋하며 사제들에게 웃어 보이는 모습이 헌헌하기 그지없다.

“고생하셨어요, 사형!”

“이, 이기고 오실 줄 알았습니다!”

“흥, 저 정도는 해줘야지.”

사제들이 저마다 정문의 승전을 축하한다.

반대로, 조금은 의문이 돋는 진명.

“흠, 청성과 원수진 일이 없는데 왜 저러는 겁니까?”

진명은 청성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투로 정문에게 물었다. 이전에 만났던 화산의 도인들은 모두 친절히 공동을 대해주었기에 청성이 저리 나오는 이유를 모르겠는 진명이다.

정문은 쉽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생각해봐. 우리 없을 때는 쟤들이 적어도 4등이었다고. 화산이나 무당, 종남이 3등까지 다 먹어도 쟤들이 그나마 해남, 청해는 찜쪄먹었단 말이지. 구파 자존심에 4등이라도 해야겠는데 우리가 오니 불안한 거지. 우리도 나름 구파니까.”

“그럼 우릴 견제하는 문파는 주로 청성이겠군요?”

“뿐만이 아니지. 해남과 청해의 견제도 만만치 않을 거야.”

“어째서 그렇습니까?”

“어떻게든 구파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 하는 둘이야. 만만한 게 누구겠어? 아예 참가 안 하는 애들은 몰라도, 처음 참가하는 구파 정도는 밟아주려 하지 않을까?”

“감히 말이지요.”

진명이 눈에 불을 켜며 답했다.

“그래. 감히.”

정문이 한 번 싱긋 웃어주더니, 객청으로 입장했다.

화음에서 지내던 장원보다야 당연히 작은 크기였지만, 공동의 제자 스물 정도가 머물기에는 충분했다.

“비무에 나설 사제들은 정하셨습니까?”

논검회에 모든 제자가 나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동은 총 열 명이 비무에 나설 수 있게 배정받았다.

“응. 녀석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준 덕에 쉽게 정했어.”

정문은 대려에서 머물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제자들의 성취를 하나하나 가늠했다. 사제들이 무작정 달려드는 와중에도 그들의 성취를 모두 확인한 것이다.

“나중에 방을 붙일 테니 차차 확인들 하고. 너무 서러워도 말고.”

말을 마친 정문은 사제들에게 자유시간을 선물했다. 자유롭게 화산을 돌아보며 구경하고 와도 좋다는 뜻이었다.

정문 역시.

꿈에 그리던 화산을 구경하기 위해 객청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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