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는 공동을 무시하지 마라-56화 (56/153)

56. 건방지잖아.

“미친···건가?”

사결개(四結丐) 승환의 보고를 받은 오봉학의 첫마디였다.

“······.”

“미친게지, 암. 미친게야.”

오봉학은 감히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당장에 자신을 한 번 보겠다고 줄 서서 기다리는 이가 청성의 장문인이다.

만약 자신이 보길 청한다면, 화산의 운양도 무당의 충산도 감히 이를 거절치는 못할 것이다.

이를.

공동이. 그것도 장문도 아닌 대제자가 해냈다는 사실을 오봉학은 믿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대로 두셔서는 안 됩니다.”

사결개 승환이 빠르게 오봉학의 눈치를 읽는다.

지금 오봉학의 얼굴은 노기가 가득한 것이 분명했다.

“가만두지 않으면?”

“제자들을 보내 끌고라도 와야 합니다.”

“개방이 무슨 사파나 흑도 집단이더냐? 공동을 무슨 명분으로 끌고 온다는 말이더냐?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

“또, 지면? 제자들을 보냈다가 오히려 지면 어쩔 것이냐? 개방이 무리해 공동을 핍박하다 망신을 당했다, 그 중심에 철면노개가 있다, 그런 말을 원하느냐?”

“······아닙니다, 노개. 허면, 대려로 가심은···?”

“쯧쯧쯧. 네놈이 그래서 오결을 달지 못하는 것이다. 어린놈이 오란다고 가면, 내 체면은 무엇이 되는고?”

“······.”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을 잘못 봤어.”

오봉학이 거칠게 일어서며 혀를 찬다.

당장에 소리치고 혼을 내는 것도 눈앞에 있을 때나 가능한 일.

자신의 앞에 이정문이란 도인을 세우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오봉학의 현실이었다.

개방이 공동에게 가할 보복이라곤 혹여 공동이 개방에 도움을 청하거나 정보를 요청했을 시 매몰차게 거절하는 것. 그뿐일 것이다.

오봉학 역시 이런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공동이라는 문파가 감히 이렇게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은 오봉학 역시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강호의 다른 이들은 개방을 두려워한다.

거지라는 존재가 어디까지 막 나갈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개방 역시 하나의 정도 문파.

그들 역시 행동에는 제약이 있음이 분명했다.

‘정말 여기까지 생각을 하고 저런 말을 뱉은 것이란 말인가?’

오봉학의 눈이 빠르게 거리를 좁힌다.

애초에 화음에 드는 순간 개방이 붙을 것을 알아챈 사람이 이정문이다.

그런 통찰이라면, 당연히.

이번 일도 계산된 반응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흑시창과의 관계는 거의 확실하군.’

심증은 굳었다.

개방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 찬 행동은 분명. 흑시창을 염두에 둔 계산일 거라 오봉학은 생각했다.

다만, 물증은 없다.

오봉학은 그저 정문을 불러 이런 물증을 대신할 자백을 받을 생각이었다.

헌데, 앞에는 커녕 근처에도 오질 않으니, 방법이 없는 것이다.

정보를 다루는 자는 본디 변화와 알지 못함을 경계해야 하는 법이다.

지금 개방에게 공동은.

큰 변화와 알 수 없음이라는 난제를 동시에 주는 상대.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함이 마땅했다.

- 스윽.

오봉학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총타에서 온 거지들은 모두 들거라.”

밖을 향해 나지막한 말만 뿌리는 오봉학.

잠시 후.

오결에서 육결까지 제법 매듭을 묶은 거지들이 모두 오봉학의 집무실에 들어왔다.

“섬서 분타에서의 일은 마무리한다.”

!!

“벌써 말입니까? 아직 무당과 종남이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청성 역시 계속 화음에 머뭅니다.”

“됐다. 그쯤이면 섬서 분타주가 오면 될 일이야.”

“총타로 돌아가려 하십니까?”

귀환하냐는 오결개의 질문에 그저 고개를 젓는 오봉학.

“총타의 인원들은 모두 짐을 싸거라. 우리는 공동에게 간다.”

!!!!!!!!!

“노, 노개!”

“안 됩니다! 젊은 놈이 하는 말에 그대로 따라서는 아니 됩니다!”

“맞습니다. 만나더라도 놈이 직접 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확실히 사결개보다는 나은 말들이 이들의 입에서 쏟아진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오봉학이 방도들을 돌아본다.

“대려로 가려는 것이 아니다.”

“허면···?”

“내 언제 이정문을 보러 가겠다 하더냐?”

!!

“설마···?”

오결개의 깜짝 놀라는 반응에 오봉학이 눈에 힘을 주며 말을 뱉는다.

“평량으로 간다. 그곳에 분타를 열 것이니 다들 준비하거라.”

!!!

오봉학의 입에서 분타를 연다는 말이 나왔다.

감숙은 이미 분타가 있는 곳. 비록 평량이 아닌 난주에 분타가 있긴 하지만, 새로이 평량 분타를 연다는 말이다.

“감숙 분타주는 흑시창 감숙 단주를 이기지 못한다. 내가 가서. 직접 지휘하겠다. 모두들 짐을 챙기거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중원이 감숙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 * *

“사형, 진짜 그냥 가도 되는 거예요?”

“뭐가?”

명화의 물음에 정문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을 한다. 무엇을 묻는지 알면서도 되묻는 것이다.

“개방 말이에요! 개방! 이대로 무시하고 가도 되는 거냐구요.”

공동은 화산의 산문에서 개방 제자를 만난 후 제법 모욕적인 말을 들려주고 발을 돌렸다.

당장에 제자에 대한 모욕은 아니라도 이를 듣는 개방 장로 철면노개 오봉학이라는 자는 모욕을 느낄 것이 분명했다.

“괜찮다니까.”

“개방이 그냥 넘어가진 않을 텐데요?”

진명 역시 걱정이 되는지 슬쩍 말을 보태 본다.

“아, 그럼 그냥 갔어야 했나?”

정문은 아무런 걱정이 없다.

개방이 지금 공동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미.

모든 수를 전부 비교해본 뒤 행동에 나섰던 정문이다.

“그건 뭐···, 근데 왜 안 간 거예요?”

“건방지잖아.”

명화의 물음에 정문이 너무도 해맑게 답한다. 아무런 꾸밈 없는 해맑은 웃음이라 사제들이 답할 기력마저 잃어버렸다.

“잠시 보고 가라는 게 그렇게···?”

“내가 누군지 잊은 거야?”

“논검회 우승···?”

명화가 제법 재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애써 답을 하려 하자, 정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정문은 슬쩍 허릿춤을 내밀고는

- 하아! 하아!

- 뽀득! 뽀득!

그곳에 달린 석패를 연신 닦아대기 시작한다.

“······공동의 장문 대리이시죠.”

“맞아. 한 문파의 장문인과 같은 위치라고. 적어도 지금은.”

“흠···, 그런 사형을 일개 장로가 오라 가라 할 순 없다는 말이군요.”

“물론. 그것도 사결개의 입을 통해서? 꿈도 꾸지 말라고 해.”

“다만, 오봉학은 정도 무림의 선배입니다. 혹여 뒷말이 나오거나 하면···, 그래도 연장자이니 말입니다.”

“진명아.”

“예, 사형.”

“장유유서(長幼有序) 따지기 전에 사농공상(士農工商) 먼저 따지라 해. 어디서 거지 새끼들이 감히.”

“······.”

“난 거지들이 싫다.”

“예?”

“거지를 왜 싫어해요?”

“정확히 말하면 개방의 거지가 싫다.”

정문은 거지는 물론이고 개방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이다.

흔히들 강호에서 많이 하는 가장 큰 착각이 있으니, 바로 개방이 협의지문(俠義知門)이라는 것이다.

정문은 이런 자들을 향해 당당히 외친다.

‘엿까는 소리하지 말라고.’

자신이 황궁에서 일하던 때.

정문은 정보를 이용한 여러 공작에서 개방과 부딪혀야만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정문이 목격했던 것이 바로 개방의 본 모습들. 그런 모습을 목격한 정문이 내린 결론은 확고했다.

‘개방은 협의지문이 아니다.’

“개방 너무 믿지 마. 쟤들 믿을 애들 못되니까.”

정문이 진심을 담아 사제들에게 충고했다.

“뭐, 사형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사형의 말씀이라면 믿습니다.”

“미, 믿습니다!”

사제들은 정문을 향해 한없이 깊은 믿음을 보내준다. 다만, 다른 사제들은 어떤 반응일지 조금은 궁금한 정문이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정문이 아예 몸을 돌리고 사풍과 함께 오는 다른 사제들에게 말을 물었다.

“뭐, 다른 건 몰라도 예법에 맞지 않게 사형을 부른 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풍의 곁에선 청익이 눈을 빛내며 말을 받았다.

“조금 건방지긴 합니다. 어디서 거지 놈들이 감히 오라 가라 질인지.”

청익의 뒤에선 금모 역시 같은 반응이다.

“맞습니다. 공동을 아래로 보니 저렇게 나오는 게 아닙니까?”

마지막으로 태평의 입이 열리자.

공동의 모든 제자들이 눈에서 불을 켜기 시작한다.

“이 거지 새끼들이?”

“어? 열받네?”

“아까 그 새끼 어디까지 갔어?”

최근 논검회로 사문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그들에게 사문을 무시하는 처사는 역린과도 같은 것들이다.

정문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돌아선다.

사제들이 점점 잘 크는 것만 같다.

그렇게 공동의 도인들이 대려(大荔)의 입구에 닿았다.

화음 바로 옆에 있는 대려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도시였다.

고즈넉하고 조용한 도시이기에 이전에 공동이 쉬어가기도 했던 대려. 그런 대려가 오랜만에 떠들썩한 분위기로 제법 들떠있는 지금이다.

“고, 공동의 무인들이다!!”

대려의 입구에서 누군가 소리를 치자 금세 수많은 인파가 길가를 채운다.

“공동? 논검회에 우승한 그 공동?”

“누가 이정문이야? 누가? 무정검(無情劍)은 어딨나?”

“위진명 도장이 그렇게 잘생겼다며? 누가 위진명이야?”

확실히.

처음 논검회를 향해 행진하던 때와는 다른 반응들이 공동의 무인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또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아이고! 반갑습니다! 제가 이정문입니다!!”

“저는 양명화예요!!”

이제는 이런 관심을 즐기는 공동의 도인들.

그들은 제법 이런 반응에 익숙해진 것이다.

다들 살짝 손을 흔들며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대려의 시내를 가로지른다.

이전에 방문했을 때는.

자신들의 돈을 주고 장원을 빌렸던 공동의 도인들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저희 장원으로 가시지요!”

“독채로 드리겠습니다!”

“식사와 술도 있습니다! 도장들!”

저마다 공동과 연을 한번 이어보려는 상인들이 알아서 장원을 싸 들고 찾아오는 지금이었다.

처음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

* * *

공동은 그저 적당한 상인 하나를 부여잡고 장원을 안내받았다.

특별히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태청궁에서 일하는 사제들과의 대화 몇 마디가 그 대가였을 뿐이다.

상인에게는 이 역시.

이득이 될 것이다.

잔뜩 만족한 상인은 공동의 장원에 술과 음식을 잔뜩 보내줬다.

공동의 장원은.

오늘도 주연이 한창이다.

“사형, 왜 혼자 나와계십니까?”

떠들썩한 장원의 뒤뜰로 청익이 내려서며 말을 건다.

그의 앞에는.

사풍이 홀로 달을 감상하며 심상에 빠져있다.

“청익이냐?”

“예, 사형.”

“그저, 생각을 좀 정리하고 있었다.”

사풍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청익의 어깨를 두드리고 지나간다.

“사형.”

청익이 돌아가는 사풍의 옷깃을 잡는다. 그저 두 글자의 말이지만, 묵직한 무게감이 사풍의 옷깃을 당긴다.

“말하거라.”

살포시 돌아서서 청익의 눈을 맞추는 사풍.

역시 청익은. 자신을 너무도 잘 아는 사제였다.

“이제 이레면 공동에 닿습니다.”

“그렇겠지. 그리 멀지 않은 길이니.”

“정하셨습니까?”

!!!

“······.”

청익의 제법 노골적인 질문에 사풍의 입이 닫힌다.

사풍은.

청익이 무엇을 묻는 것인지 단번에 알아들은 것이다.

“무엇을···말이냐?”

“아시지 않습니까?”

“······.”

“힘드셔도 곧 선택해야 할 순간이 올 겁니다.”

청익은 모든 걸 아는 사람처럼 말을 뱉었다.

청익 역시.

눈치가 없는 도인은 아니었다.

“후우우. 선택···.”

“솔직히 다른 사제들의 의중은 저도 모릅니다. 다만. 저만큼은. 사형께서 어떤 선택을 하셔도 따를 것입니다.”

“훗.”

사풍의 입이 웃음을 머금는다.

“참으로 낯간지러운 말이군.”

“때로는 이런 말들도 필요한 법이지요.”

“다들 이상해졌어. 이상해진거야.”

“특히 이번 일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둘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런 변화의 중심에 누가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청익아.”

“예, 사형.”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따르겠다 말을 했느냐?”

“그렇습니다.”

“어째서?”

“제 선택은 사형입니다. 선택에 결과 역시 제가 감당해야지요.”

“역시 그래야 하는 거겠지?”

“아닙니까?”

“그런 말이 아니다. 내 정말 몰라서 네게 물어본 것이다.”

“모르신···다니요?”

“가끔은···, 아무것도 선택해보지 못한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게 사형이란 말씀입니까?”

“그렇게 보이진 않더냐?”

“저는 잘···”

“됐다. 이 정도면 충분하니.”

사풍은 가볍게 말을 일축하며 다시금 웃음을 지었다.

아주 오래간만에.

자신을 대하던 평소의 사풍과 같은 표정이었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아직은 모르겠다. 해서. 내 어디를 잠시 다녀와야겠다.”

“모시겠습니다.”

청익의 충직한 말에 사풍이 절레 고개를 흔든다.

“그저 혼자 다녀오면 충분하다.”

“······.”

“내일 정문 사형이랑 말을 나눌 것이니 걱정 말고 들어가거라. 누구처럼 갑작스레 사라지진 않을 테니.”

“예, 사형.”

청익은 조금은 불안한 눈빛을 남겼지만, 사풍을 믿고 안으로 발을 옮겼다.

그저 조용히.

조용히 뒤뜰에 남은 사풍만이 고개를 올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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