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무정검 이정문.
세간(世間)의 풍문은 시간이 흐를수록 탄력을 받는 법이다.
이는 인파(人波)가 퍼져나가며 말이라는 것이 날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논검회가 끝난 지 이레가 지났다.
중원 전역에서 모여들어 논검회를 구경한 관객들이 각자의 고향에 닿았을 충분한 시간이 지난 것이다.
이 말은.
이제야 중원의 곳곳에 논검회 소식이 본격적으로 닿기 시작했다는 말일 것이다.
안휘성에 위치한 한 세가에도 드디어 논검회의 소식이 닿는다.
“공동?”
삐죽하게 기른 수염이 잘 어울리는 무인이 말을 되묻는다.
“예, 가주님.”
“흠···, 무당이나 화산이 아니라, 공동이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전해진 소식지를 보던 가주의 얼굴에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공동이 이렇게 활약한다는 말은 또 처음 듣는군.”
“워낙에 폐쇄적인 문파였습니다. 감숙에서 나오질 않았으니까요.”
“흠···.”
가주의 시선이 옆에 선 자신의 아들에게 닿는다.
“어찌 생각하느냐? 공동의 제자와 검을 섞는다면? 그 역시 강검(强劍)을 주로 사용한다는구나.”
“······검식을 본 적이 없어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창천(蒼天) 아래 본가의 강검을 이기는 검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흐뭇한 미소가 가주의 얼굴에 아린다.
“그렇지. 논검회라 해봤자 도사들끼리 투닥거리는 게 전부인 대회가 아니더냐?”
“맞습니다. 본가를 두고는 최강의 검문이란 말을 누구도 논할 수 없습니다.”
말을 뱉는 소가주의 얼굴에 자부심이 그득하다.
- 착!
소식지를 한 방에 접어버리는 가주.
“이런 글과 종이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수룡! 무사들을 이끌고 공동으로 가거라.”
!!
“가···, 가주님?”
“쯧. 당연히 전쟁은 아니다. 축하 사절을 보내야겠다. 가서 공동을 만나보거라. 또한, 기회가 된다면! 검도 한 번 섞고 오너라.”
“굳이 공동에 그런 정성까지 보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가신은 가주의 결정이 못마땅한 듯 충언으로 딴지를 한 번 걸어본다.
“논검회의 의미야 어떻든, 강호에는 새바람이 부는 것이 확실하다. 떠오르는 신흥 강자를 탐색해둬서 나쁨이 없음이야.”
“옳은 말씀입니다.”
같은 강검이란 말에 흥미가 동한 것일까, 소가주는 가주의 말을 넙죽 받아 든다.
“다녀오거라. 가서, 공동을 가늠하고 오거라.”
“예, 가주.”
젊은 소가주의 얼굴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안휘를 스친 소식은 더 나아가 사천까지 닿는다.
“뭐? 좌세경이 쪽을 팔았다고?”
“그렇습니다.”
제법 나이가 있어 보이는 총관의 보고에 가늘게 생긴 중년의 남성이 대소를 터트린다.
“푸하하하하! 그것참 유쾌한 일이로구나!”
“제자들 역시 모두 몸이 상해 자존심이 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 얼마나 상했다더냐?”
중년의 사내는 젊은 무인들의 몸이 상했다는 말에도 얼굴에 미소만을 띄우고 말을 묻는다.
제법.
성정이 잔인할지도 모르겠다.
“두영해는 턱이 완전히 빠져버렸고 다른 제자들 역시 검상에 내상에 말이 아니라 합니다.”
“하하하하하! 오랜만에 좋은 소식이로다.”
“모두 공동에게 당했다고 합니다.”
“그래, 우승자가 공동의 이정문이라지?”
“그렇습니다.”
“무정검(無情劍)이라 불린다고?”
“두영해를 상대한 손속을 보고 그런 별호가 붙었다 합니다.”
“더욱 마음에 드는지고.”
“손속이 제법 매섭다더군요.”
“그 또한, 같은 취향이로다. 흐음···. 축하 사절을 보내야겠다. 더없이 감사한 곳이니.”
“공동과는 어찌, 연이 있으십니까?”
“이제부터 만들면 될 일이 아니냐? 논검회에 우승한 문파에 연을 댄들, 누가 손가락질을 하겠나!”
“옳으신 말씀입니다.”
“사절을 보내겠다! 선물을 준비하라!”
“예. 가주.”
“또한. 청성에는 위로···풉! 여튼! 위로 선물 비슷한 그런 걸 보내거라! 내 이름으로! 당(唐)자를 크게 박아서! ”
말을 뱉는 사내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하다. 아무래도 사내는. 청성과 썩 좋은 관계에 있진 않아 보였다.
사천을 스친 논검회 소식은 마지막으로 한 절간을 향해 날아갔다.
중원인들의 자부심이라 불리는 오악(五岳)의 하나이자 천하의 공부(功夫)가 나왔다는 소림사(少林寺)에는 오늘도 웅장한 불경이 울려 퍼진다.
그런 웅장한 소리의 중심, 대웅보전(大雄寶殿)에서 정좌한 노승이 홀로 침전하며 입을 읊조린다.
아마도.
금강경(金剛經)인 것 같았다.
“방장···! 방장!!”
- 뚝.
일시에 불경을 끊어내는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음성에 노승의 눈이 떠진다.
소림 방장, 공초.
백미권존(白眉拳尊)이란 별호답게 기다란 흰 눈썹이 잘 어울리는 공초가 뒤를 돌아본다.
“고암. 어찌 절간에서 이리 큰 소리를 낸단 말이더냐?”
“다, 다름이 아니오라···, 논검회 소식이 닿았습니다! 정리한 서찰을 가져왔습니다. 한 번 보셔야 할 듯합니다!”
소식을 접하자마자 달려온 듯 고암이란 승려가 숨을 몰아쉬며 말을 겨우 전했다.
그가 내미는 서찰을 그저 바닥에 두고 공초가 입으로만 말을 묻는다.
“누가 우승했다더냐?”
“공동입니다.”
“···공동?”
부동을 유지하던 공초의 얼굴에 조금의 떨림이 생긴다. 이는 당황의 표시임이 분명했다.
“예, 감숙의 공동파가 우승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허.”
나지막한 탄성만이 공초의 입에서 나온다.
“참으로 놀랄 일이구나. 감숙에서 움직이지 않던 공동이 어쩐 일로 논검회에 참석했으며 어찌 단번에 우승까지 한단 말인고.”
“뿐만이 아닙니다. 본선에 총 세 명의 제자를 올렸다고 합니다.”
“아미타불. 축하할 일이구나. 구파일방에 새로운 바람이 부는 것이야.”
“예, 방장.”
“해서, 우승자의 이름이 무엇이라더냐?”
“공동의 대제자, 이정문이라 합니다. 따로는 무정검(無情劍)이라 불린다고 합니다.”
“무정검 이정문이라···.”
“예, 방장.”
“패도적인 별호로다.”
“손속이 매섭다는 말이 늘 붙습니다.”
“흐음···, 화산에서 무엇을 받아갔는고?”
“···그것이··· 조금 독특합니다.”
“독특하다?”
공초의 되물음에 고암이 입을 조금 우물쭈물한다.
“······화산의 속가를 감숙에 내어달라 했답니다.”
!!
공초의 백미가 가운데서 부딪힌다.
주름이 태양혈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그런 표정이 공초의 얼굴에 스쳤다.
“허허허, 감숙을 열겠다? 재미난 지고.”
“개방도 공동을 주시한다는 말이 떠돕니다.”
“개방이 말이더냐?”
“예, 방장. 오봉학이 감숙으로 간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철면노개라···, 흐음.”
“사절을 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감숙을 한 번 살펴보라 이르겠습니다. 곧 준비하는 일이 완성되면, 어차피 지나야 할 길이 아닙니까?”
고암이라는 승려는 본디 성격이 철저해 같은 것도 두어 번을 확인하는 심성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가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것은 속으로도 몇 번을 검토한 말임이 분명했다.
“고암아.”
“예, 방장.”
“네가 직접 다녀오거라. 공동으로.”
“!!”
“가서, 공동을 살피거라. 이정문이라는 도인도 살피고, 개방도 살피거라.”
“예, 방장. 다녀오겠습니다.”
“화산이 속가를 개파 하는 것까지 보고 오는 것이 좋겠구나.”
“그리하겠습니다.”
고암은 가볍게 반장(半掌)하고 뒤로 돌아섰다. 방장의 명에는 되물음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감숙이라···, 중원이 또 변화를 맞이하는가.”
공초의 백미가 서서히 가라앉는다.
노구의 승려에겐 잠깐의 정무도 고단한 것이다.
“아미타불.”
짧은 진언만이 소림의 대웅보전을 울렸다.
* * *
말(言)은 공평한 법이다.
이는 말이 누구에게든 전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공동이 논검회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이 비단 정도 문파에만 전해진 것은 아니란 말이다.
장강 이남으로 사람들이 발을 옮기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사파 무림에도 공동이란 이름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공동이 우승했다고?”
- 씨익.
저마다 얼굴에 굵은 칼자국이 난 무인들이 같은 반응을 보인다.
“화산이나 무당은 몰라도···”
“음, 확실히.”
“공동 정도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해볼 만한데?”
사파 무인들의 입에 비릿한 미소가 걸린다. 누가 봤으면 당장에 단전이 깨져나갈 그런 미소였다.
정파의 무인이 이름을 날리는 방법은 제법 한정적인 법이다.
강호를 돌며 협행을 쌓고, 그런 협행이 중인들의 입을 타야 결국엔 명성을 크게 얻는 법이다.
아니면.
지금 공동파처럼 중원에서 열리는 제법 성대한 행사에서 이름을 날리는 경우도 가끔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파의 무인들이 이름을 날리는 법은 훨씬 간단하고 명료했다.
유명한 무인을 죽이는 것.
조금 더 자세히 말해보자면.
유명한 정파의 무인을 죽이는 것.
그것 하나면 사파 무인의 악명이 중원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는 충분할 것이다.
특히나.
논검회 같은 후기지수의 대회에서 우승해 이름을 알린 정파 무인은 너무도 좋은 먹잇감이다. 아직 여물지 않은 후기지수란 점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논검회는 약관에서 이립 사이의 무인들이 나오는 대회.
그렇다면.
우승자는 많아도 이립이 되지 않는 나이란 말이다.
사파 무림에서 살아남았다는 말은 이미 노련한 실전의 전문가라는 뜻. 그런 사파 무인들에게 이립도 되지 않은 정파 무인은 자신의 악명을 널리 떨쳐줄 좋은 재료로 보일 것이 분명했다.
사파 무인들의 눈이 저마다 빛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머릿속에 무정검 이정문이라는 이름이 똑똑히 새겨진 순간이었다.
* * *
“푸···, 풉!”
길을 걷던 명화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터트린다.
그와 동시에.
“푸하하하하!”
“우하하하하!”
“무···무정검!”
사제들의 웃음도 함께 터진다.
“······.”
이를 꽉 깨무는 정문의 반응에도 사제들의 웃음은 멈출 줄 모른다.
“예? 무정검 대협? 소감이 어떠십니까?”
“제발··· 그만···.”
“무정검 대협께서 그만하시란다!”
“푸하하하하!”
“아이참, 무정도 하셔라!”
“무, 무정합니다!”
제법 정색하며 뱉는 정문의 말에도 사제들의 놀림은 멈출 줄을 모른다.
눈을 까뒤집고 머리칼이라도 띄워볼까 했지만, 무정검이라는 소리만 들으면 온몸에 힘이 빠져버리고 마는 정문이었다.
“······.”
간만에.
사제들이 정문을 놀릴 건수를 잡은 것이다.
정문은 논검회 예선에서 청성의 도사 두영해의 턱을 날려버렸다.
공동에서야 손속에 정이 많다며 핀잔을 들은 그였지만, 중원인들의 시선에는 매섭다는 말이 나오기 충분한 손속이었다.
“청성 도사 잡고 얻은 별호잖아요? 맞죠?”
“······.”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정문.
뭐, 별호가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얻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아니, 그러면 무정검갑(無情劍匣)이 별호여야 하는 거 아니에요? 검갑으로 잡았잖아요! 풉!”
명화는 잔뜩 볼에 바람까지 넣어가며 정문을 놀리는 데 열중한다.
“무···무정검갑!”
“작품이다! 작품!”
“거, 검갑이 맞습니다!”
“다정검객 아닌 게 어딥니까? 푸하하하!”
계속해서 놀려 대는 사제들의 말에 정문이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한다.
진명도 명화도, 묵환도. 그리고 사풍까지.
모두 정문을 신나게 놀려대고 있었다.
어쩌다.
어쩌다 자신의 신세가 이렇게 되었나 조금은 슬퍼지는 정문이다.
‘멋지게 팼어야 하는데···’
후회가 밀려온다.
조금은 멋들어지게 팼다면, 다른 별호가 붙었을까 하는 생각이 정문의 머리를 스쳤다.
정문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보며 걸었다.
눈만 마주쳐도 웃음을 뿜는 사제들 덕에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평량에 거진 다 닿았을 무렵.
“사형.”
사제 중 누군가 정문을 부른다.
- 휙!
혹여 또 자신을 놀리나 싶어 얼른 고개를 돌리는 정문.
하지만.
장난스럽게 웃던 사제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모두의 시선이 앞을 향한다.
그곳에는.
한 여인이 면포로 얼굴을 가린 채 공동의 무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