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공동의 영역은 감숙이 아닙니다.
존경을 먹고 자란 다섯의 노인이 성난 표정과 함께 축하연 현장에 나타났다.
그들은 당연히 공동의 태상장로이자 감숙의 영웅인 공동오로(崆峒五老).
공준, 공산, 공명, 공환, 공군의 다섯이 바로 그들이었다.
자정이 가볍게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런 말도 없이 시선만 던지는 것이 할 말을 먼저 하라는 뜻으로 보였다.
“정문을 벌해도 모자랄 판에 치하라니요! 장문인! 사문의 법도가 어찌 그리 간단 말씀입니까?”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공산이었다.
적당히 막무가내에 적당히 논리적인 그가 우선은 포문을 연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기다린다.
그저 자정이 먼저 입을 열기를.
정문이 도대체 무얼 잘못했기에 벌을 내리냐 그렇게 입을 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는 이들의 오래된 화법이며 그들이 속으로 가지고 있는 시선의 발현일 것이 분명했다.
“······아직도 그리 나오시는 겁니까?”
!!
자정의 반응이 평소와 다르다.
한없이 자신들을 향해 굽혀오는 것이 자정이었다.
얼마 전 논검회에 제자들을 보내기 위해 공준과 크게 부딪혔던 자정이지만, 자정은 그런 모습을 다른 문도들이 있는 곳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 법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공동오로는 사문 내에서 많은 존경을 먹으며 지내온 자들.
실제 이들이 사문 내의 일에 어떻게 관여하고 어떤 사상으로 사문을 끌고 가려는 지는 몰라도 우선 이들을 존경하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특히나.
일대제자들의 경우 공동오로에 대한 지지는 상당한 편이었다.
이전까지 그래도 공동이 어깨 펴고 살 수 있었던 이유가 공동오로가 닦아 온 길 덕임은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공동오로는 지금 모습을 나타냈다.
장로 회의를 찾거나, 개인적으로 정문과 자정을 찾는 것이 아닌, 모든 문도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키우려는 것이 공동오로의 목적인 것이다.
“···장문인! 감정적으로 나설 일이 아닙니다!”
조금은 강하게 나오는 자정의 반응에도 공산이 계속해서 몰아친다.
“화산의 속가를 감숙에 열다니요? 또한! 개방이 평량에 들어선 것을 아십니까? 정문이 처신을 어찌했기에 개방이 평량까지 온다는 말입니까?”
준비해온 말이 분명하다.
정문은 그렇게 생각했다.
저들은 분명 나타나는 순간과 몰아칠 말, 그리고 선동할 단어까지 하나하나 준비했음이 분명했다.
“사숙조. 타문의 속가를 감숙에 여는 것은 물론 문제가 아니며 구파일방이 있는 곳에 개방이 분타를 여는 것 역시 당연한 일입니다. 그게 어째서 잘못입니까?”
대답은 자정이 아닌 더 밑에서 들려왔다.
무정검(無情劍) 이정문.
공동의 일대제자이자 대제자인 그가 처음으로 공동오로의 말에 반박하고 나섰다.
공산은 정문의 말에도 대답이 없다.
감히 말을 섞지 않겠다는 표정이 확실했다.
공산은 대신 눈빛을 자정에게 보낸다.
감히 일대제자가 어찌 사숙조에게 저런 태도를 보이냐는 일종의 질책이 자정의 얼굴에 닿은 것이다.
“······.”
자정은 입을 다물었다.
이는.
정문과 해결하라는 일종의 표시일 것이다.
“······!!”
공산의 얼굴에 조금의 노기가 아린다.
이는 계산되지 않은 노기임이 분명했다.
“정문의 어디서 배워먹은 예의더냐? 내 장문인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중이거늘 어찌 이리 방자하게 끼어든다는 말이냐!?”
공산의 저 말을 듣는 순간 정문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며 절대 이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왜 안 됩니까?”
정문이 한치의 밀림도 없이 즉답으로 받아친다.
“뭐라?”
“왜 안 되는 거냐 물었습니다.”
“사문 내의 법도가 그러하다.”
공산은 자신의 주장에 자신이 있었다.
적어도 방금 그 말을 뱉으며 지은 표정만큼은 확실히 그러했다.
사문의 법도.
좋은 말이다.
특히나 실권은 없고 그저 높은 배분과 존경을 먹고 사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말일 것이다.
그렇기에.
태상장로들은 일전에 자정과 크게 부딪혔을 때도 자명의 사문 내 법도를 지키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여야 했다.
실권이니 논리니 하는 그런 말이 통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문의 법도가 통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자신들이 지켜야 존경이 생기고 그래야 자신들이 저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법도라 하셨습니까?”
“정문은 자꾸 말을 이어가지 말라.”
공산은 승기가 자신에게 기울었음을 확신하며 위엄있게 정문의 말을 무시했다.
“좋습니다. 사숙조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사문의 법도를 지키신다는 말씀이군요.”
- 씨익.
정문의 머리에 사악한 생각이 스친다.
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법도란 말이 어찌 자신들을 옭아매는지 정문은 똑똑히 보여줄 생각이다.
“그렇다. 그게 공동의 무인이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정문이 공산을 향해 무언가를 내민다.
하얀 석패에 멋들어진 필체로 ‘통천패(通天牌)’라는 글이 적혀있는 물건이었다.
!!!
정문이 통천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던 공동오로였다.
다만, 자신들을 향해, 그것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렇게 당당히 이를 내밀 거라곤 그들도 예상하지 못했다.
“노각!”
정문이 구천각에 속한 일대제자 노각을 부른다.
“예, 사형.”
감은 듯 작은 눈에 두꺼운 턱을 가진 노각이 살짝 읍하며 앞으로 나선다.
“지엄한 공동의 율법에 따르면 통천패를 본 공동의 제자는 어떻게 해야 하지?”
“통천패는 장문령부에 준하는 신물. 당연히 고개 숙여 존경을 표해야 합니다.”
!!
노각은 이런 사내다.
정치적 상황과 순간적으로 변하는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고 늘 자신이 아는 율법을 행하는 제자. 그게 노각이다.
“흐음. 배분에 따라서 율법이 다르게 적용되나?”
“아닙니다. 장문인 이하는 모두 같습니다.”
정문의 입이 꿈틀거린다.
당장에 통천패를 가진 사람은 정문 자신.
자신을 향해 고개 숙이는 공동오로의 모습은 꽤나 매력적일 것이다.
공동오로의 시선이 일제히 자정을 향한다.
말리지 않냐는 묵직한 무언의 압박이 자정을 누르는 것이다.
하지만.
자정은.
아무런 말이 없다.
철저히 옆면으로 공동오로의 시선을 외면하며 정문을 바라볼 뿐이다.
“······.”
“뭐, 당장에 인사를 받진 않더라도, 말 정도는 사숙조와 섞어도 되지 않겠습니까?”
정문이 숨구멍을 틔워준다.
정문도 그리는 그림은 따로 있는 것이다.
통천패는 그저 수단일뿐.
당장에 자신이 말을 못 하게 막는다면, 통천패를 향해 고개 숙이게 만들겠다는 압박이면 충분한 것이다.
“······공산. 중한 일일수록 대화로 풀어야 하는 법이다. 대제자 입을 막지 말거라.”
이상하게 흘러가는 분위기에 공준이 나선다. 적어도 공준은. 선동과 세력을 이용해 정문을 누를 수 있을 거란 믿음에 입 정도는 열게 해도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문은 편히 말하라.”
“이제는 답해주십시오. 화산의 속가를 감숙에 여는 것과 개방이 평량에 들어온 것이 어찌 잘못이라는 겁니까?”
“본디 사문을 생각하는 이라면 사문의 것을 타문에 양도할 생각은 할 수도 없는 법. 정문은 어찌 감숙이라는 공동의 영역을 타문에 내어주려 하느냐?”
말을 뱉는 공준의 미간이 좁혀진다.
슬슬.
결정타를 날려볼까 공준은 고민하는 것이다.
‘중원도모(中原圖謀).’
공준은 오랜 시간을 들여 공동의 제자들에게 말해왔다.
중원을 도모하는 것은 큰 것이 아니라고.
그저 시선.
그저 시선과 관심이 중원을 향하는 순간, 수많은 견제와 시기가 공동을 향할 것을 모르는 공준이 아니다.
그는.
이미 몸으로 겪었으니까.
몸으로 겪었기에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준은 중원도모란 말이 정문의 폐부를 찌를 최후의 검일 것이라 확신했다.
논검회에서 정문이 우승한 것은 공준이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하지만.
오히려 우승 소식을 들었을 때, 공준은 환호를 불렀다.
‘다른 아이들. 다른 아이들은 좌절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공준의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이는.
경험에서 나온 생각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공준은 확신했다.
지금 이곳에서 중원도모라는 화두를 던진다면. 저들이 좌절했을 그 무언가를 정문이 그토록 바란다는 말을 꺼내기만 한다면.
모두는 정문을 향해 칼 같은 시선을 보낼 것이라고.
결전의 순간은 그때일 것이다.
자신의 손주이자 충실한 일대제자인 사풍이 변화하는 여론 속에 목소릴 높일 것이다.
사풍이 본선에 올랐다 해서 변심했을 거란 생각 따위 공준의 머리를 스치지도 못했다.
일전에 공준이 말했던 것처럼.
사풍은 아무것도 제 손으로 선택하지 못할 것이다.
그저.
자신이 시키는 대로.
공동이 가야 할 길을 자신이 알려주는 대로 이끌어갈 그런 인물이 사풍이니까.
공준의 입이 움틀거린다.
이쯤에서.
정문에게 화두를 던져볼까.
자신이 물은 말에 눈을 깊게 감았다 뜨는 정문을 보며 공준이 마지막 수를 준비한다.
하지만.
“공동의 영역은 감숙이 아닙니다.”
!!!
정문의 입이 먼저 열린다.
“뭐라?”
“공동의 영역은 감숙이 아니라 했습니다.”
너무도 당당히 말을 뱉는 정문의 태도에 공준의 눈이 껌뻑인다.
안 된다.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스스로 그 말을 먼저 꺼낼 일은 없지만, 혹여라도 그 말을 먼저 꺼내게 만들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공준을 치고 간다.
“정문은 혹여 중원을···”
“공동의 영역은!”
서둘러 자신이 먼저 말을 뱉으려던 공준의 목소리를 정문이 삼켜버린다.
내력이 가득 실린 정문의 목소리.
모두의 시선은 이미 공준이 아닌 정문을 향한 지 오래였다.
확신에 찬 태도.
믿음이 가득한 태도가 정문을 감싼다.
저건.
말이나 논리 같은 것에서 나오는 믿음이 아닌 자신이 이루어 놓은 무언가에서 나오는 믿음일 지도 모른다, 공준은 그렇게 불안해했다.
‘제 입으로 뱉으려는 것인가···? 왜···?’
이뤄보지 못한 자는.
이룬 자의 자신감을 알 수 없다.
공준은.
오로지 중원의 벽을 몸으로 느껴야 했던 공준은.
정문이 저토록 확신에 찬 태도로 자신의 말을 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문의 입이 열린다.
그리고.
“공동의 영역은 중원입니다.”
!!!!!!!!!!
모두의 눈동자가 각자의 견해를 대변했다.
분노로 좁혀지는 태상장로의 눈빛들.
만족으로 가득해지는 장문인과 장로들의 눈빛들.
그리고.
다채로운 일대제자들의 눈빛들로.
“······.”
공준은 노련하다.
적어도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노련한 요설가(妖說家)는 이런 상황에서도 주도권 싸움에 열중해야 한다.
“정문은··· 중원을 도모하겠다는 말인가!?”
적당한 노기.
자신의 배분과 나이를 의식한 적당한 노기에 꾸짖음을 더한 말투가 공준의 입을 탄다.
“제가 아닙니다.”
“궤변이다!”
“공동이. 공동이 중원을 도모할 것입니다.”
!!!
미친 거다.
미친 게 분명하다 공준은 확신했다.
‘중원도모’란 말은 공동파, 그것도 일대제자 중 사풍의 파벌 내에서는 금기되는 단어임이 분명했다.
이를 직접 자신의 입으로 내뱉는다는 것은.
그들을 설득할 생각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중원을 도모하던 수많은 문파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정문은 정녕 모른단 말인가!”
공준의 뒤에서 공명의 목이 노성을 뿜는다.
방금은.
잘한 것이다.
반격할 순간을 놓치면, 말은 힘을 잃는 법이다.
“그들은 원래 사라질 문파였습니다. 공동은 그들과 다릅니다!”
“헛소리! 어찌 공동이 그들과 다르단 말인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보았다라?”
“예, 보았습니다.”
“······.”
너무도 맑은 눈으로 자신의 말에 즉답하는 정문을 보며 공준은 이어질 말을 망설였다.
분명 무엇을 보았냐고. 그게 네놈의 허황한 상상이 만들어낸 환상은 아니냐고 소리치고 싶었던 공준이다.
다만.
정문의 눈이 흡사 불패(不敗)를 장담하는 이의 눈빛만 같아 감히 덤비질 못하는 것이다.
개전(開戰)은.
정문이 알렸다.
“저는 보았습니다! 공동의 검수들이 중원과 부대끼며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입니다!”
뱉어버렸다.
K22
공준이 그토록 듣기 싫었던 말을 정문이 뱉었다.
“오만이다. 만용이고! 네놈은 승승장구하겠지! 허나, 다른 이들은? 좌절감에 취해 나날이 땅으로 꺼질 것이다. 아느냐?”
공준은 조금은, 아주 조금은 정문이 말을 알아 들어주길 바라며 설득조의 꾸짖음을 내린다.
너무도 간절한 마음이 담겨 공준의 외침이 조금은 슬프게도 들리는 정문이다.
‘못난 영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받아들일 수 없는 정문이다.
“어찌 그리도 사문의 문도들을 믿지 못하십니까?”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보는 것일 뿐!”
“저는 믿습니다. 공동의 이름이 중원 제일을 대표하는 그날을 말입니다.”
“불가(不可)하다.”
“가능합니다.”
“오만은 이럴 때 내비칠 것이 아니니라! 방도가 없는 자신감은 오만이고 만용이다!”
“방도를 압니다.”
“뭐라?”
“제가 이끌면 됩니다. 그렇게 되도록 제가 공동을 이끌 것입니다.”
!!!
분명.
분명 오만이 그득한 말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너무도 자신감이 넘쳐흘러 믿고 싶은 감정조차 조금은 불러일으키는 말임이 확실했다.
“공동을 여기까지 이끌어 주신 것을 압니다.”
“······헛소리. 네놈은 모른다.”
“허나, 여기까지 밖에 이끌 수 없었던 것은···. 분명 이유가 있겠지요.”
!!!
공준을 비롯한 공동오로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들의 어깨마저 떨린다. 자신들이 이룬 모든 것을 부정하는 말이 까마득한 사손뻘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감히···감히···!”
“공동은 분명 여럿의 만남이 이룬 곳입니다. 허나. 뛰어난 자가 있다면, 그 여럿이 함께 뛰어날 수 있는 곳 또한 공동일 것입니다.”
공준은 바보가 아니다.
그러니까.
정문의 저 말뜻을 모르지 않는 것이다.
“기사멸조(欺師滅祖)다! 전대 장문인을 욕보이고도 네놈이···!”
잔뜩 화가 올라 말을 내뱉던 공준이 말을 멈춘다.
조금은.
조금은 이상한 모습이 그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다.
- 스윽.
내려가는 정문의 고개.
“······?”
“사숙조. 그간 애써오신 것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방금 네놈의 입으로···”
“정말. 정말 공동을 위하신다면, 이제는···.”
공준의 악에 찬 답에도 정문의 자세는 굳건하다. 말은 이미. 정문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정문이 묵묵히 입을 열었다.
“용퇴(勇退)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