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큰 걸음입니다.
논검회에 참석했던 제자들이 귀환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새롭게 바뀐 공동파의 모두가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대제자 정문은 그중에서도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정문의 하루는 스승인 자정과 통천신공을 수련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아직 누군가에게 제대로 무공을 전수받은 경험이 없던 정문에게 이는 새로운 경험이었으며 설레는 순간이었다.
정문은 매일 구결을 되새겼고 몸속에 품은 천뢰복마신공(天雷伏魔神功)의 기운을 서서히 통천신공의 기운으로 바꿔갔다.
같은 문파에서 나온 상위의 심법이기에 이를 치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정문은 다른 이들과 달리 단전이 두 개인 몸. 그런 몸 전체의 내공을 바꾸려면 남들보다는 두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말 그대로.
몸이 두 개는 필요했던 그런 고된 수련이었다.
통천신공의 수련이 끝나면 정문은 자연스레 동대로 몸을 옮긴다.
동대는.
공동의 이대제자들이 기거하며 수련하는 곳으로 요즘 정문이 매일 들르는 곳이다.
언젠가는 자신의 제자가 될 아이들이 검 휘두르는 모습을 바라보는 이 순간이, 정문에게는 가장 평온한 시간일 것이다.
이대제자의 수련을 봐준 정문은 다시금 바삐 발을 옮긴다.
서대 뒤에 있는 울창한 숲속.
원래라면 따로 흩어져 수련해야 할 일대제자들이 요즘은 한곳에 모여 땀을 흘린다.
물론, 정문과 함께.
사제들 앞에 선 정문의 표정이 어둡다.
정문은 요즘.
사제들과 수련하는 것이 퍽 즐겁진 않았다.
자신의 제자가 될 아이들을 위해 사제들을 단련시키려던 정문이다. 하지만, 사제들의 성장이 점점 빨라지며 이제는 조금은 버거운 순간도 늘어가고 있었다.
“준비하시죠?”
어깨에 검을 걸친 사제들이 건들거리며 턱을 움직인다.
참으로.
불손한 자세가 아닐 수 없었다.
“······.”
“오늘은 무사히 못 돌아갈 겁니다.”
“가, 각오하십쇼!”
“흥, 칼자국 한 줄 길게 남겨드리겠습니다.”
진명과 사풍, 명화와 묵환을 제외하고도 열에서 열다섯 정도의 사제들이 매번 수련에 참여한다.
다들 소속된 각과 궁에 일이 있으면 수련을 빠지고 여유 있을 때는 또 수련에 참여하는 그런 체계가 점차 잡힌 것이다.
“······이제는 다들 개인 수련을···”
“어림도 없는 소리! 암!”
명화가 검을 겨누며 정문의 말을 자른다.
“혀가 생각보다 기시군요. 준비하시죠.”
중립의 상징과도 같던 구천각의 노각까지.
확실히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공동파였다.
“끄응···.”
정문이 축 처진 어깨로 검을 뽑아 든다.
그런 정문을 조심히 둘러싸는 사제들.
잠시간의 시선 교환이 이루어지더니 이내.
- 콰앙!
하는 진각과 함께 사제들의 신형이 날아든다.
- 챙! 챙! 챙!
우선은 세 명.
소양검(少陽劍)을 멋들어지게 풀어내는 셋이 정문을 향해 검을 찔러갔다.
정문은 이전처럼 가볍게는 받아내지 못한다.
“2조! 돌입!”
사제들을 지휘하는 진명의 입이 떨리자, 이내 곡선으로 정문을 포위하는 사제들.
천운검(天雲劍)이 양옆에서 정문의 옆구리를 노려간다.
“에라이!”
갑작스럽게 변하는 검로에 당황한 정문이 서둘러 몸을 앞으로 숙인다.
나려타곤(懶驢打滾).
무인의 수치와도 같은 나려타곤을 펼치고야 정문이 이들의 공격을 피해낸 것이다.
“제대로 해보자 이거지?”
정문이 옷에 묻은 흙을 조금 털며 안광을 빛낸다.
“이제는···! 무섭지 않습니다!”
사풍의 오른팔, 청익이 용기를 낸다.
“복마구룡진(伏魔九龍陣)을 펼쳐라!”
연이어 진명의 호령이 떨어지자, 사제들이 서둘러 각자의 방위로 날아가 자리를 잡는다.
안광을 밝히며 머리칼을 띄우는 정문.
분명 두 달 전만 해도 이런 모습을 보이면, 사제들이 두려움에 온몸을 벌벌 떨기 일쑤였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적응하는 동물.
이제는 정문의 저런 악귀 같은 모습에도 내성이 생긴 사제들이다.
복마구룡진은 칠성(七星)의 일곱 방위에 외문(外門)의 두 곳을 더 점해 완벽히 적을 가두는 검진. 자신을 둘러싼 사제들의 사이에서 정문이 갈 곳은 없어 보였다.
“같은 공동의 무인에게 복마구룡진이라···?”
건방지다.
정문은 그렇게 생각했다.
검진이란 한 곳의 방위만 흐트러져도 이내 기세가 풀리고 마는 것이다.
특히나 검진의 원리를 아는 무인이라면 그런 검진을 탈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정문이 검을 고쳐잡는다.
- 탓!
가벼운 진각과 함께 정문이 천권성(天權星)을 향해 몸을 날린다. 천권성은 복마구룡진의 출구를 담당하는 방위.
천권성을 맡은 사제를 쓰러트린다면, 쉬이 검진을 깰 수 있을 것이다.
- 깡! 깡! 깡!
연달아 세 번을 내려치고야 겨우 천권성이 뚫린다. 외문에 서 있던 다른 사제가 지원하러 날아올 것이 분명한 순간. 정문은 빠르게 땅을 박차고 몸을 검진 밖으로 날렸다.
“아, 안 돼!”
“돼!”
- 부웅!
정문은 다시금 나려타곤을 펼치고 나서야 검진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서둘러 검진을 풀고 다음을 준비하는 사제들.
그런 사제들에게 정문은 갑자기.
등을 돌린다.
“······?”
“······?”
사제들이 당황하는 순간.
정문이 행운유수를 펼치며 부리나케 도망가기 시작한다.
“자···잡아라!”
“쫓거라!”
누군가의 외침이 들리고 나서야 사제들도 서둘러 정문의 뒤를 쫓는다.
공동은 혼자의 강함이 만든 곳이 아닌 여럿의 만남으로 만들어진 곳.
이런 심오한 말의 뜻이.
“합공인 줄 누가 알았겠냐고! 싯팔!”
부리나케 도망가는 정문의 발이 보이지 않는다.
표정이 진중하고 손발이 바쁜 것이 진심으로 도망치는 것이 확실했다.
분명.
사제들은 성장했다.
하지만.
그 성장이 개인적인 성장보다는 합공 쪽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게 어쩌면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무슨··· 정파의 무인이란 놈들이 밥 먹고 합공 연습만···’
죽기 싫으면 합공하라며 사제들을 협박하던 도인의 머리에 스친 생각이었다.
쉼 없이 달리던 정문의 앞에서 숲이 끝나간다. 이제 저곳만 벗어나면, 연무장이 나올 것이다.
숲을 벗어난 연무장에서는 대대적인 합공이 어려울 터. 정문은 그것만을 믿고 쉼 없이 달려온 것이다.
하지만.
“기, 기다렸습니다!”
거산과도 같은 신형이 정문의 앞을 막아선다. 사제들은 이미 정문의 수를 예측한 것이다.
“무, 묵환?”
“가, 갑니다! 사형!”
- 후우우웅!
거창한 바람 소리와 함께 강대한 권풍이 정문의 얼굴로 몰아친다. 달려오는 정문의 기세를 그대로 이용한 공격이다.
칠상권(七傷拳).
그것도 최대 공력을 뽑아낸 칠상권이 정문의 면전에 날아든다.
‘이···미친놈들이···?’
- 슈우웅! 쾅!
겨우 뒤로 몸을 누여 주먹을 피해낸 정문.
묵환의 주먹은 정문의 얼굴을 지나치고 뒤에 선 나무에 박혀버렸다.
얼른 몸을 일으키는 정문의 코에서 한 줄기 핏물이 흘러내린다.
‘코피···?’
기습이지만, 묵환의 주먹이 정문의 코를 스친 것이다. 이는 큰 성과일 것이다.
“묵환! 성공했나?”
“시, 실패입니다!”
“!!!”
“세, 세 번째 작전!”
정문을 향해 달려오던 다른 사제들이 서둘러 작전을 변경한다.
교토삼굴(狡兎三窟).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는 법이다.
사제들은 이제 제법.
영리해진 것이다.
“일시에 몰아쳐야 해요!”
명화의 말이 전해지자, 사제들의 검에 검기가 아린다.
이는 칠살검(七殺劍).
칠살검이 분명했다.
“절초를 한 방에 부어야 하는 법이다!”
“집중하거라!”
진명과 사풍 역시 연달아 소리치자, 사제들의 칠살검이 일시에 정문을 향한다.
- 슈우욱!
- 슈우욱!
- 슈우욱!
- 콰과광!
굉음이 울리며 흙먼지가 일시에 시야를 가린다.
그리고.
“해치웠나?”
들려선 안 될 말이 들려오고야 만다.
서서히 걷혀가는 흙먼지.
그 사이로 조금씩 공동의 제자들이 시선을 던져본다.
그들이 덮쳤던 그 흙먼지 속에는.
- 위이이잉.
울어대는 검을 든 악귀가 서 있었다.
“······!!”
“젠장! 이것도 안 통하다니!”
“다, 다음 작전을!”
“없어! 이미!”
“부, 부적을!”
“그건 저번 주에 해봤잖아!”
사제들의 얼굴에 당황이 아린다.
“다, 다시! 다시! 복마구룡진을···!”
서둘러 처음의 작전을 실행하려는 진명의 눈에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들어온다.
정문의 검으로 미세하게 휘감기는 흙먼지들.
흡사 돌풍과 같은 모습이 정문의 검에 맺히고 있었다.
“······.”
사풍의 눈에도 두려움이 아린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사풍은 분명 저런 조화에 대해 들은 기억이 있었다.
- 털썩!
사풍의 몸이 땅으로 향한다.
조금은 어두운. 그러니까,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검정 기운이 정문의 어깨에서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마, 말도 안 돼! 벌써 체화를 했다고?”
다리에 힘이 풀린 사풍이 손으로 땅을 밀어낸다. 어떻게든 도망치려는 모습이 분명했다.
“사풍. 왜 그러느냐?”
“저···저거···!”
다급한 사풍의 손이 정문을 가리킨다.
하지만.
진명의 눈에는 그저 평소의 악귀 같던 사형으로만 보일 뿐이다.
“피해야 하오! 피해야!”
사풍은 일전에 자신의 조부로부터 저 검은 기운이 피어나는 무공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오로지 공동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공동 제일의 절세 신공에 대해.
물론, 지금은 공동을 노리고 있지만, 분명 그 무공일 것이다.
“말을 하거라. 왜 그러느냐?”
진명이 사풍에게 다가가 몸을 일으키려 할 때.
“나도 정말 이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았다고.”
정문의 입이 열린다.
어느새 검정 기운은 정문의 어깨를 타고 내려와 검까지 휘감은 다음이다.
“마···마기(魔氣)···?”
진명은 너무도 이질적인 기운을 보며 마기를 먼저 떠올렸다. 사형을 생각하면 ‘마(魔)’라는 글자가 먼저 떠오르는 모양이다.
정문이 고개를 흔든다.
“잘 느껴봐.”
진명이 기감에 집중한다.
그러자.
!!!!
천뢰복마신공의 기운이 정문에게서 뿜어지는 기운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즉. 같은 기운의 일종이란 말이다.
“서···설마···?”
- 씨익.
정문의 입꼬리가 제 자리를 되찾는다.
정문의 입은 저런 위치가 가장 잘 어울리는 법이다.
“통천신공.”
정문의 마지막 말과 함께.
- 솨아아아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제들은 모두 정신을 잃고 말았다.
대략 삼 일쯤.
그쯤이 지나고 나서야 약왕당에서 눈을 뜬 사제들이었다.
* * *
“다들 모였느냐?”
어느새 화산의 속가 개파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중대의 가장 큰 연무장에 모인 일대제자들과 이대제자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공동의 장문인 자정이 우직하게 그들을 바라보고 서 있다.
“흠···, 이번 화산의 속가 개파에 모두가 참석지 못하는 것이 아쉽구나.”
같은 감숙 안에서 열리는 행사라곤 해도 모두가 공동산을 비울 수는 없다. 태청궁도 돌아가야 하며 사문을 지킬 이들 역시 필요하다.
눈물을 머금고 인원을 추려야만 했다.
정문은 거기에 이대제자들을 데려갈 것을 자정에게 건의했다.
공동의 변화는.
배분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일대제자 스물에 이대제자 스물.
장로 셋에 장문인 자정까지. 총 마흔이 넘는 인원이 공동을 떠나 난주(兰州)로 향하기로 했다.
일대제자는 논검회에 참석했던 제자들 위주로 선별되었으며, 이대제자는 정문이 보았을 때 성취가 남달랐던 아이들을 위주로 선별하였다.
장로는 무공을 담당하는 복마각주 자공과 재정을 담당하는 성모각주 자경, 약왕당주 자준이 함께하기로 했다.
오십에 가까운 도인이 조천문을 나선다.
처음 보는 광경에 사무에 치이는 다른 제자들도 잠시 밖에 나서 이 모습을 구경하기 바쁘다.
사문 내에서 오랫동안 봉문에 가까운 생활을 했던 공동이다. 그런 공동의 제자들에게는 공동이 스스로 깃대를 세우고 당당히 문을 나서는 모습이 신기한 것이다.
행렬이 태청궁에 닿자, 태청궁주 자명이 나서서 자정을 배웅한다.
“장문인, 본산은 걱정마시고, 당당히 다녀오십시오.”
고개를 숙이며 진심으로 말을 뱉는 자명.
자정이 자리를 비운 동안은 자명이 본산의 사무를 총괄하게 된다.
“자명, 자네만 믿겠네.”
“예, 장문인.”
태청궁의 배웅을 뒤로 공동의 무인들이 산문으로 향한다.
소박한 산문.
공동산에는 조천문이 따로 있기에 화산처럼 화려한 산문은 없다.
그저 산이 시작됨을 알리고 도관이 있음이 표시된 소박한 산문이 이들 앞에 나타났다.
“흠.”
가볍게 신음을 토한 자정의 뒤로 제자들이 눈빛을 빛낸다.
제자들을 돌아보는 자정.
이전보다는 훨씬. 헌헌해진 정파의 무인들이 자정을 향해 이채를 보낸다.
앞으로 나서는 정문.
“스승님. 큰 걸음입니다. 당당히 나서셔야 합니다.”
정문이 가볍게 고개 숙이며 충언을 뱉자, 자정이 따뜻한 미소로 화답한다.
“나도 아느니라. 그래서 더욱 망설여지고.”
자정은.
이렇게 문도들을 이끌고 공식적으로 산문을 나선 경험이 아직 없는 장문인이다.
이른 시기에 장문인을 맡았으며 사숙들과의 알력 다툼에 휘말려 공동은 자유롭게 강호를 왕래하지 못했다.
이제는.
자정도 장문인에 적당한 나이가 되었고 공동의 산문을 가로막던 태상장로라는 거산마저 사라졌다.
공동파 장문인 자정자로서 강호에 내딛는 첫걸음이 이제 시작되는 것이다.
‘이게 뭐라고···.’
조금은 입술이 마르는 자정.
그런 자정을 문도들은 묵묵히 기다려 준다.
- 후우우우.
숨을 한 번 고른 자정이 턱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가자.”
그저 아무도 없는 앞만 보고 말을 뱉은 자정이 발을 움직인다.
그렇게.
공동은 처음으로 장문인과 문도들이 함께 산문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