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는 공동을 무시하지 마라-65화 (65/153)

65. 난화무관(兰花武館).

난주(兰州)는 감숙에서 제일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도시이다.

크게 굽이치는 황하(黃河)가 난주를 끌어안으며 감숙에서 볼 수 있는 녹토(綠土)마저 난주가 끝일 것이다.

북감숙과 남감숙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이며 청해와도 면을 대고 있어 성을 이동하기도 편한 곳.

그곳이 바로 난주였다.

그래서 공동의 성모각은.

새로이 개파될 화산의 속가를 난주로 점찍었다.

공동이 난주를 정해 화산에 통보하자, 화산의 중진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서둘러 장원을 구입하고 공사에 착수했으며 새로이 속가를 맡을 인물 역시 수배했다.

이 모든 것이.

석 달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공동과 화산, 두 문파의 협업이 일의 완성을 앞당긴 것이다.

‘난화무관(兰花武館).’

새로이 지어진 대문에는 제법 멋들어진 필체의 현판이 걸려 있다.

현판의 옆으로 매화가 그려져 있는 것이 누가 보아도 화산의 속가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현판이 잘 나왔구나.”

“특히 신경 썼습니다.”

제가 백경의 보고에 화산의 장문 대리 운양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마음만 같아서는 공동산을 들렸다 난주로 향하고 싶었던 운양이지만, 속가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먼저 난주로 향해야만 했다.

친우와의 재회가 잠시 미뤄진 것이다.

“별다른 신경 쓸 일은 없는 것이고?”

“난주는 괜찮습니다. 기존에 있던 문파들 역시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흠···, 무언가 난주에도 선물을 주어야 할 텐데.”

운양이 넌지시 던지는 말에 백경이 눈을 빛낸다.

본디 한 문파가 개파하기 전에는 지역에 도움이 되기 위해 주변에 악적이나 흑도, 산적들을 미리 토벌해두고 개파식에서 공적을 발표하곤 했다.

운양이 말하는 선물은 그런 것을 뜻함이 분명했다.

“···저··· 그것이···”

조금은 말을 망설이는 백경을 운양이 이상하게 바라본다.

“어찌 그러느냐?”

“······, 저도 믿기진 않습니다만···”

“?”

“주변에 산적이 없습니다.”

“뭐라?”

“······.”

운양의 되물음에도 백경이 아무런 답을 하지 못한다. 자신이 이미 몇 번이나 확인했음에도 그랬기 때문이다.

“흐음···, 감숙이라 그런 것인가···?”

운양의 눈이 감긴다.

감숙은 중원 대륙에서도 변방에 속하는 곳.

빈곤을 꼽으려면 운남과 함께 선두를 다투는 지역이 감숙일 것이다.

“산적마저 털어갈 것이 없다는 말이겠지···”

“······저, 스승님.”

“왜 그러느냐?”

“그게 아닙니다.”

“?”

백경은 자신도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겨우 답을 이었다.

“근처에 백은산(白銀山)이라는 큰 산에 태호채라는 산채가 있었고 주변 산채들을 총괄하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산적들이 있었다?”

“예.”

“조금 전에는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 정문 형님이···”

“무정검 말이더냐?”

“···예.”

“무정검이 왜?”

“일전에 속가행을 나서며 산적들의 씨를 말려버렸다고···”

백경이 조금은 머뭇거리며 말하자, 운양이 대소를 터트린다.

“하하하! 과연! 과연 무정검이로다.”

논검회에서 명성을 날리기 전부터 이런 협행을 쌓아왔다니. 새삼 그의 행적이 새롭게 보이는 운양이다.

“허나, 씨가 말랐다는 말은 과장일 것이다. 산적들은 그리 쉬이 소탕되는 이들이 아니니. 늘 토벌해도 금세 다시 생기는 것이 산채가 아니더냐? 조금은 과장된 소문일 터. 백경은 다시금 조사하라.”

“······.”

스승의 명에도 백경이 부동을 유지한다.

“어찌 그러느냐?”

“두세 번 확인한 일입니다.”

!!

“뭐라?”

“확실히 주변 산에 산채는 없습니다.”

“······.”

운양의 입이 닫힌다.

본디 산적들이란 토벌을 맞이해도 맞서 싸우다 도망치고 이내 남은 잔당들이 다시금 산채를 차지해 다시 세를 불리는 이들이다.

문파와 다른 점이 바로 이것.

그들은 패배할지언정, 멸문하지는 않는 법이다.

“어찌··· 어찌했길래 그리되었단 말이더냐?”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항복한 산적들까지 모두 단근참맥(斷筋斬脈)을 실시하여··· 재산을 몰수하고··· 집기를 모두 팔고···산채를···땔감으로···”

“그만.”

“······.”

흡사 사파인들이 민가를 털었을 때와 같은 보고 내용이 들리자, 운양은 귀를 닫기로 했다.

“허허허.”

헛웃음이 나오는 상황.

“무정검이란 칭호가 과연 잘 어울리는 무인이로고.”

이미 정문에 대한 좋은 인상이 가득한 운양은 저런 말에도 그저 좋은 평가만을 내릴 뿐이다.

“허면 주변에 딱히 민생에 해를 가하는 이들은 없는 것인가?”

“딱히 없습니다. 주변에는 소도시들 뿐이고 사흘 거리에 청해성 서녕(西寧)이 있으나···, 서녕은···”

“사파의 영역이지.”

“맞습니다.”

“흐음. 전쟁까지 감수해 협행을 쌓는 것은 무리니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번 속가 개파는 협행 없이 시작한다. 그리들 알고 준비하라 이르거라.”

“예, 스승님.”

운양은 무리해서 협행을 만들어내는 그런 인위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 무인이다.

그저 주변에 악인이 없다면, 다행으로 여기고 넘어가면 그만인 것이다.

“스승님!”

백경과 대화를 마친 운양에게 멀리서 백경의 사제 백준이 소리친다.

서둘러 시선을 돌리는 두 화산의 무인.

“공동이 옵니다!!”

* * *

“자정!”

“운양!”

중년의 두 무인이 장포를 휘날리며 신형을 겹친다. 이는 전투가 아닌 그저 손을 맞잡음이었다.

아련한 두 친우의 눈빛이 가운데서 만난다.

“이게···, 이게 얼마 만이란 말인가!”

“자네가 대제자가 된 이후로는 처음이지! 처음!”

“반갑네, 이 친구야! 반가워!”

둘은 서로의 손을 꼭 맞잡고 계속해서 그리움을 표하는 중이다.

“이리도, 이리도 쉬이 만날 수 있는 것을!”

“그러게 말일세! 그러게!”

둘의 아련함은 한동안 더 지속되었다.

뒤편에 선 제자들이 조금은 기침 소리를 내고 나서야 화산의 장원에 이들이 들어설 수 있었다.

“정문 도장.”

장원에 들어선 운양이 포근한 표정으로 정문을 바라본다.

“내 말을 편히 해도 되겠소?”

“스승님의 친우분이십니다. 편히 하십시오.”

“고맙네. 무정검. 고마워.”

운양이 살포시 정문의 손을 부여잡았다.

운양 역시 공동파 사문 내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미 전해 들은 것이다.

“약속드리지 않았습니까? 공동산에 모신다는 말은 못 지켜 마음에 걸릴 뿐입니다.”

“허허, 그 무슨 간단한 일을. 개파식이 끝나고 같이 산으로 향하면 그만인 것을.”

“좋은 말씀입니다.”

운양은 웃으며 다시금 자정의 곁으로 돌아갔다.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것이 지금 운양의 심정일 것이다.

“정문 형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리는 정문.

그곳에는 백경과 백준이 예의 바른 자세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보내왔다.

“어···, 어! 백경, 백준···!”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형님!”

아직도.

이들의 형님 소리는 적응이 되지 않는 정문이다.

백경과 백준은 차례대로 공동의 장문인과 장로들에 인사를 건넸다. 화산의 제자로서 한 번, 그리고 정문의 의제로서 한 번.

총 두 번의 인사를 건네고야 만족하는 그들이었다.

“백경과 백준이 공동의 도장들을 안내하거라. 객청이 아닌 본당에 거취를 둘 것이니 그리 알고.”

“예, 스승님.”

운양은 공동의 숙소를 객청이 아닌 본당 쪽으로 배정해 두었다. 이는 공동이 이번 속가 개파식의 객이 아닌 주인 중 하나라는 은근한 표현.

운양 역시 이번 속가 개파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말을 남긴 운양은 자정과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레 사라졌다. 두 친우간에 쌓인 말들이 많은 것이다.

장로를 비롯한 다른 도인들 역시 안내에 따라 본당에 짐을 풀고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주인 된 예우로 모신다고는 하나, 개파식은 어디까지나 화산의 행사.

공동의 도인들이 직접 나설 일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빠르게 흘러 개파식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 * *

개파식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각 문파에서 보낸 사절들이 속속들이 난주에 닿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화산의 장원에 찾아온 이들은 가슴에 창천(蒼天)이라는 글을 품은 무사들이었다.

“남궁에서 온 수룡이라 합니다. 화산의 속가 개파와 공동의 논검회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왔습니다.”

조금은 차가운 인상의 청년이 딱딱한 어조로 첫 인사를 건넨다. 그의 뒤로는 대략 열 정도의 무인들이 손에 물건을 잔뜩 품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신뇌검(新雷劍)이셨구료. 반갑습니다. 공동의 장문, 자정입니다.”

“오랜만입니다. 신뇌검. 운양입니다.”

자정과 운양은 나란히 대문에 서서 객들을 맞이한다. 이번 행사가 두 문파의 공동 개최라는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다.

“아버님께서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본가의 일로 직접 오시지 못한 것을 많이 아쉬워하셨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안휘에 따로 감사의 연통을 넣겠습니다.”

운양은 자연스레 객들을 맞이하며 여유를 보인다. 반대로 자정은 조금. 어색해하며 겨우 운양을 따라 하는 중이다.

남궁수룡이 장원의 안으로 든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마치 누군가를 찾는 것 같았다.

“화산의 일대제자, 백경입니다. 안내를 돕겠습니다.”

“아, 남궁수룡입니다. 감사합니다.”

백경과 인사를 나눈 후에도 계속해서 남궁수룡의 고개는 쉬질 않는다.

“무얼···찾으십니까?”

조금은 이상한 그의 행동에 먼저 말을 묻는 백경.

“그···, 무정검께서는 자리에 계시지 않는 겁니까?”

“아, 정문 형님 말씀입니까? 형님께서는 아마, 공터로 수련 가셨을 겁니다.”

“······형님이요?”

“예, 제 의형 되십니다. 무정검 이정문 도장께서요.”

당당히 말을 뱉는 백경의 얼굴에 정문의 의제란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렇군요. 혹여 언제쯤 오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글쎄요, 아마 해가 지고는 돌아오실 겁니다. 기별을 넣어 둘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남궁수룡은 애초에 목적이 이정문이라는 검수를 보는 것이었다.

공동에 대한 가늠이야 가주의 명이니 당연히 하겠지만. 그의 진정한 목표는 논검회 우승자 무정검 이정문과 검을 섞어 보는 것이었다.

잔뜩 아쉬운 표정의 수룡이 백경을 따라나선다.

남궁이 입장하고 잠시 뒤, 녹색의 무복을 걸친 무인들이 난화무관의 대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고 이들을 맞은 운양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다, 당가주!”

“오랜만입니다. 운양 도장.”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당가주가 운양에게 인사한다.

“어찌 직접 오셨단 말씀입니까?”

보통 속가 행사 같은 작은 일에는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쯤 되는 곳의 수장이 직접 오진 않는 법이다.

성도와 난주가 가까운 거리도 아니기에 당가주의 방문은 운양 역시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보고 싶은 게 있으면 봐야 풀리는 성미가 아닙니까! 내, 공동이 보고 싶어 이리 왔습니다!”

당가주는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호탕한 목소리로 직설적인 말을 뱉었다.

몇 마디의 대화가 오갔을 뿐이지만, 자정은 당가주의 성정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찾아주셔 감사합니다. 공동의 장문, 자정입니다.”

“오! 자정 장문! 반갑습니다. 당문 가주, 당천정입니다!”

당천정은 잔뜩 밝은 미소를 연달아 자정에게 보낸다. 무언가 친근함이 느껴지는 것이 조금은 어색한 자정이다.

“내 공동에는 아주 빚이 많습니다. 좋은 것들을 잔뜩 준비했으니, 차차 말씀 나누시지요.”

“빚 말씀입니까?”

“크흐흐! 그런 게 있습니다! 따로 차나 한잔하시지요!”

가볍게 웃음만 남긴 당천정이 장원에 들어섰다. 운양이 직접 안내해주겠다는 말을 손사래 치고는 백준과 함께 당천정이 객청으로 향한다.

“백준 도장이라 하셨소?”

“예, 당가주. 이대제자, 백준입니다.”

“무정검은···뭐하시나?”

고개를 살짝 틀며 웃음기 가득한 표정으로 당천정이 말을 묻는다.

“정문···형님 말씀입니까?”

“형님이라?”

“아, 제 의형 되십니다.”

“오! 무정검의 의제라!”

“예, 제 사형이신 백경 도장 역시 그분의 의제입니다.”

“크으으! 호걸들이구먼! 호걸들이야! 아주 좋아!”

손가락까지 뻗어가며 잔뜩 과장된 몸짓으로 당천정이 감탄을 내뱉는다.

“형님은 수련 가셨습니다. 해가 지고야 돌아오실 겁니다.”

“수련이라! 크으으으! 무정검은 들을수록 멋지구먼! 장원에 들거든, 내 찾더라 말을 좀 남겨주시구려.”

“그리하겠습니다.”

가벼운 발걸음에 춤까지 곁들인 당천정이 객청에 들어섰다. 생각보다 많이. 가벼운 사람인 것 같았다.

해가 슬쩍 지려고 할 무렵.

마지막으로 화산의 대문을 다섯의 승려가 두드린다.

소림의 철견권승(鐵肩拳僧) 고암과 나한승 넷을 마지막으로 난화무관의 문이 닫힌다.

고암 역시 문을 들어서며 정문을 찾았지만, 아쉽게도 정문은 아직 귀환 전이었다.

아마도.

정문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자신을 찾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계속해서 난주로 정문을 찾는 이들이 모여든다.

상인과 무인,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까지.

그중에는 분명.

달갑지 않은 손님도 있을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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