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당문이 한 짓이오?
굳은 표정의 정문이 무성에게 날아든다. 입가에 묻은 거품을 닦아 자신의 코로 가져가는 정문.
!!!
비릿한 향.
비린 향이 정문의 코를 찌른다.
그리고 비릿함과 함께 퍼지는 특유의 향은.
정문이 아는 것이었다.
정문이 서둘러 무성의 혈도를 누른다. 우선은 독의 진행을 막아 두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문양혼산(二門兩混散)입니다! 다들 기혈을 살피시길!”
정문은 독의 향과 무성의 발작.
그리고 쓰러진 순간을 보며 독의 이름을 유추해냈다.
혹여 다른 음독자는 없을까 경고까지 더하며.
내원에 모인 모두가 자신의 기혈을 살핀다.
이문양혼산에 중독되면 량문(梁門)과 충문(衝門), 두 혈도에 독기가 쌓이며 서서히 중독증상이 나타난다.
장성한 무인의 경우 량문과 충문이 충분히 확장되어 있기에 독기가 오르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이문양혼산의 위험성은 바로 이것.
장성한 무인에게 중독증상이 나타날 때는, 이미 늦은 다음이란 말이다.
“괘, 괜찮소!”
“독기는 없소이다.”
“멀쩡하오.”
내원에 모인 다른 무인들은 독수를 피한 것 같다. 정문 역시 자신의 기혈을 살폈지만, 중독의 전초는 보이지 않았다.
정문이 사제들을 둘러본다.
“괜찮나?”
“이상 없습니다.”
“스승님과 사숙들은?”
“모두 괜찮으신 것 같습니다.”
일대제자들이 웅성거리며 무성을 둘러쌀 때.
“나오거라! 얼른!”
약왕당주 자준이 사질들을 헤집고 나타난다.
“이···, 이건···?”
“이문양혼산입니다.”
“나, 나와 보거라! 내 살필 터이니!”
정문과 교대하려 팔을 걷어 올리는 자준.
누가 뭐라 해도 공동에서 약학에 대한 지식은 자준이 최고일 것이다.
하지만.
“이문양혼산을 해독하실 수 있겠습니까?”
정문은 여전히 손을 떼지 않고 자준에게 말을 물었다.
이는.
해독할 수 없다면 자신이 계속 나서겠다는 뜻임이 분명했다.
“······도학과 더불어 약학을 이십 년이 넘게 공부했다.”
“압니다. 사숙. 해독, 가능하십니까?”
“······불가하다. 진행을 멈추는 게 전부일 것이다.”
자준은 객기를 부리지 않았다.
자신의 객기가 곧 사손 뻘 되는 아이의 명줄과 관련이 있질 않은가.
“제가 하겠습니다.”
“······.”
말려야 한다.
이건 분명했다.
약학에 대한 기초가 없는 무인이 혈도만을 가지고 독을 누르는 것에는 한계가 있음이 분명했다.
정문은 자준이 무어라 말을 더 뱉기도 전에 무성의 몸에 손을 올리고 진기를 도인하기 시작했다.
자준의 눈이 좌우를 왕복한다.
생각과 지식. 머릿속에 든 모든 것을 활용하려 애쓰는 자준.
그때.
자준의 머리에 빛이 스친다.
“다, 당가주!”
독에 있어서 천하제일이라 꼽히는 독나찰 당천정의 얼굴이 자준을 스친 것이다.
자준의 간절한 외침에 인파가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한다. 당천정이 있는 곳까지 길을 넓히는 사람들.
그 길의 끝에 무거운 표정의 당천정이 정문과 무성을 바라보고 서 있다.
“도, 도와주십시오! 당가주! 혹, 이문양혼산의 해독을 아십니까?”
당천정을 찾는 자준의 목이 울리자.
“휴우우.”
“맞아, 당문이 여기 있었군.”
“당문의 의술 역시 천하제일이지.”
“해독은 말해 뭐하겠나?”
안도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당천정이 앞으로 나선다.
“이문양혼산이 분명하오?”
우선은 멀리서 무성의 상태를 지켜보는 당천정.
“······.”
정문은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다. 진기도인(眞氣導引)에 모든 신경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답을 듣지 못한 당천정이 무성의 입가에 묻은 거품을 훑어 코에 가져간다.
!!
이문양혼산이 분명하다.
당천정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
“당가주. 무리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를 도와주십시오.”
공동의 장문인 자정마저 나서 당천정에게 부탁을 전해 온다.
당문으로서도 공동에 빚을 지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 당문이 손을 빌려주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안합니다만. ···불가합니다.”
!!!!
“그···그게 무슨···?”
“···미안합니다.”
당천정은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해독을 모르시는 것이오?”
“아는지 모르는지 묻는 것이라면···, 압니다.”
!!!
“헌데, 어째서 안 된다는 겁니까?”
“······미안합니다.”
자준의 계속된 물음에도 당천정은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해서 반복했다.
“다, 당문이 한 짓이오?”
인파에 숨은 누군가가 단체의 힘을 빌려 말을 던진다.
!!
- 휙!
날카롭게 돌아가는 당천정의 고개.
그의 눈빛에 제법 살기가 충천하다.
“누구요?”
장난기 가득하며 친근함이 좋던 무인 당천정의 모습은 간데없다.
그저 나찰(羅刹).
독나찰(毒羅刹)의 표정을 한 당천정이 말의 출처를 물을 뿐이다.
“아미타불. 당가주. 우선은 진정하시고···”
“진정 말입니까? 소림이 저런 소리를 들었어도 권승(拳僧)께서는 진정하셨겠습니까!?”
‘아, 아. 이것인가.’
고암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당문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어쩌면 독으로 누굴 해치는 것보다 더한 위협이 이곳을 찾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고암을 스쳤다.
“아미타불···, 다들 억측은 삼가심이···”
고암이 조심스레 공동의 눈치를 살핀다.
여기서 공동이 발끈한다면, 일이 커지는 것이다.
“부탁을 강요할 순 없습니다. 또한, 당문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
다행히 자정은 발끈하지 않았다. 그저 무거운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말만 뱉는 자정.
“사형!”
“그만두거라, 자준.”
“어찌···”
“부탁은 강요가 아니다!”
버럭 하는 자정의 목소리. 그 역시 감정적으로 안정된 상태는 아니었다.
“다만, 당가주께서도 알아주셔야 합니다. 만약 살리실 수 있음에도··· 손을 놓으시는 거라면. 제가 이해한 맥락이 맞는 거라면···”
옆을 보던 자정의 시선이 당천정의 얼굴로 향한다. 조금은. 오싹해지는 당천정이다.
“공동은 이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
‘아미타불···’
우려하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고암은 그렇게 생각했다.
화합의 장이 되리라 예상했던 화산의 속가 개파식. 그런 자리에서 결국은 오대세가와 구파일방. 사천과 감숙이라는 큰 세력에 속하는 두 개의 문파가 충돌하고 만 것이다.
“자정···아니, 장문인···, 우선 진정하시고···”
“맞습니다···, 당 숙부께서도 우선은 연유를···”
화산의 운양과 남궁세가의 남궁수룡이 서둘러 둘의 앞으로 튀어나온다. 혹여나 격화될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당천정은 그저 고개를 숙이며 공동에게 사과할 뿐이다.
“그렇게 미안하면! 해독법이라도 알려주면 될 것 아닙니까!!? 내가 하겠소! 내가! 내가 한단 말이오!”
눈시울이 붉어진 자준이 크게 소리친다.
이는 절규.
사손 뻘 되는 제자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자의 절규가 울려퍼졌다.
“······, 그 또한···, 불가합니다.”
당천정은 말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자신도 이 상황이 괴로운 것이다.
“신단(神丹)이면 안 되겠습니까? 화산에 연통을 넣어 자소단(紫霄丹)을···”
“소림 역시··· 대환단(大還丹)을 수배하겠소.”
운양과 고암은 어떻게든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후의 수단을 꺼냈다. 신단을 내주고라도, 둘의 충돌을 막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몸이 버티지 못할 겁니다.”
!!
“가주···!”
고암의 작은 눈이 크게 떠진다.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지 않냐는 뜻이다.
결국, 자준이 폭발한다.
“정도의 무가라는 곳이 어찌···!”
분명 당천정은 이문양혼산을 해독할 수 있다.
자준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르는 자준이다.
“무가(武家)이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당천정은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이 모습을 보고.
고암의 눈빛이 조금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독나찰의 고개가 이리 가벼웠던가?’
독나찰, 사천당문(四川唐門) 가주, 당천정.
손속이 매섭기로 원조는 사천이다.
거기에 특기는 독공과 암기술.
강호에서 매정하고 무정하기로는 사천당문을 따를 자는 없을 것이란 말이다.
그런 당문의 가주가 고개를 숙인다.
이는 그저 외면이나 다른 의도가 아닌 무언가가 있음이 분명했다.
“아미타불···, 당문 역시··· 사정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
당천정은 침묵을 지킨다.
상황을 지켜보는 이들 사이에도 조금은 숙연한 침묵이 자리할 즈음.
“···숙.”
사질의 몸에 손을 올리고 삐질 땀을 내던 정문의 입이 힘겹게 열린다.
!
“저, 정문아!”
자준과 자정은 서둘러 몸을 돌려 정문에게 향했다.
진기도인을 하며 입을 여는 것은 금기.
혹여 도인 하는 자의 기혈이 뒤틀릴 수도 있는 상황임을 이들이 모르진 않았다.
“···괜···찮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 씨익.
조금은 미소를 억지로 지으며 정문이 힘겹게 말을 뱉었다.
“안다. 말하지 않아도···”
단전이 두 개라서 괜찮다. 정문은 필시 이 말을 전하려 한 것이라 자정은 그렇게 생각했다.
자정이 따스하게 정문의 등을 쓸어내린다.
조금은 격렬한 내력의 울림이 자정의 손에 전해졌다.
‘두 개의 단전으로도 힘든 것인가.’
이대제자는, 그것도 배분이 조금 이른 공동의 이대제자는 내력이 완숙하지 못하다. 그렇기에 이를 진기도인 하는 정문의 내력이 곱절은 더 든다는 것을 자정은 모르지 않았다.
정문이 아닌 다른 이가 나섰다면, 이미 상황은 끝났을 것이다.
당연히.
무성의 죽음으로 말이다.
“···당···가주님을···, 당가주님을···”
자정이 고개 숙인 당천정을 올려본다.
“당가주···, 혹여 잠시 괜찮으십니까?”
“해독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든지요.”
정문의 곁으로 무릎을 꿇고 다가서는 당천정.
“무정검···, 하실 말이 있으신가?”
“······요독단···, 요독단이 있···으십니까···?”
!!!
“이, 있네. 요독단이라면 있네만?”
“요독···단 정도···는 괜찮으시지요···?”
!!
“자네 설마···?”
입을 벌리며 큰 눈으로 말을 묻는 당천정에게 정문이 힘겹게 고개만 끄덕인다.
이는.
해독법을 안다는 뜻일 것이다.
당천정이 서둘러 자신의 소매를 뒤진다.
당가의 장포는 신물에 가까운 것. 그의 소매에서 제법 크기가 있는 찬합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찬합 안에는 요독단이 가득이다.
“요독단(療毒丹)···?”
자정과 자준의 고개가 가로 기울어진다.
요독단(療毒丹)은 귀한 영약 같은 것이 아니다.
그저 요상단(療傷丹)에 해독 작용하는 일부 재료를 더한 것. 당장에 발품을 팔거나 무관을 뒤져도 나올 것이 요독단일 것이다.
물론, 당문의 인물은 늘 지니고 있겠지만.
“혹시 몰라 말을 하네만. 이 요독단은 당문의 신단이 아니네. 그저 독기로부터 몸을 조금 지켜줄 뿐. 또한, 당문의 비전 같은 것도 들어있지 않고.”
당천정은 마치 다짐을 받아내는 사람처럼 정문에게 말을 뱉었다.
너무도 구체적으로 뱉는 말에 조금은 의아한 표정이 사람들의 얼굴을 장식했다.
정문이 힘겹게 입을 연다.
“압···니다···.”
“그래···, 내 오늘 이 말을 많이 하네만, 미안하네···. 고생하시게. 그리고 꼭. 꼭 성공하시게.”
정문은 당천정이 건네준 요독단을 입에 넣고는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한 알은 이미 무성의 입으로 밀어 넣은 지 오래다.
- 꿀꺽.
요독단을 삼킨 정문이 다시금 입을 닫고 집중한다. 그의 어깨와 등으로 어두운 기운이 스물 피어나기 시작한다.
!!!
“마기(魔氣)···?”
누군가 정문을 보며 뱉는 말에.
“아미타불-. 절대 아닙니다. 이리도 정순한 기운이라니···.”
“태을무극···. 본도 또한 장담합니다. 이는 절대 마기가 아닙니다. 도기(道氣)··· 도기가 흐르는군요.”
소림의 권승(拳僧) 고암과 화산의 고검(高劍) 운양이 서둘러 반론을 펼친다.
정순하기로는 무림에서 둘째가라는 그들의 말이니 더는 마기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지금··· 정문이 무얼 하려는 것인가?”
자정이 불안한 눈빛으로 자준에게 물었다.
“······독기를 도인으로 밀어내려는 것 같습니다.”
!!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독이 퍼지는 순서, 독의 배합, 독의 재료, 독과 혈도의 원리까지. 전부 알아야 가능한 것입니다.”
“······.”
이미 시작된 일은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다.
자정은 그저 제자를 믿고 가만히 기다리기를 택했다.
어느덧 반 시진, 그리고 한 시진.
시간이 흐르며 난화무관의 내원에는 침묵만이 자리했다.
안절부절못하는 자준이 손톱을 조금 깨물며 발을 동동 구르는 그때.
- 파파파팟!
정문의 주위로 일시에 기파(氣波)가 퍼지며 기운이 뚝! 하고 끊기는 느낌이 전해져 온다.
“끝인가?”
- 후우우우우.
정문의 입으로 독기가 가득 뿜어져 나온다.
“이···미친놈이! 독을 자기 몸으로?”
정문은 그저 독을 밀어내는 것이 아닌 자신의 몸으로 독기를 옮겨 해독해 낸 것으로 보였다. 요독단을 먹었을 때 이미 각오한 것이다.
“사숙! 무성을 얼른 의원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선 정문의 첫마디였다.
“그, 그래! 여기 의약당이 있소?”
자준은 서둘러 무성을 안아 들고 주변을 살핀다.
“갑시다! 내가 안내하겠소!”
서둘러 앞장서며 길을 트는 운양.
자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각으로 발을 움직였다.
자리에 우뚝 선 정문을 사람들이 말없이 바라본다. 이는 경외와 찬사의 눈빛이 분명했다.
그런 정문에게 뿌듯한 표정으로 다가서는 당천정. 당천정이 정말 기쁜 표정을 지으며 정문의 얼굴을 바라본다.
“잘했네, 무정검! 정말 잘했어! 대단한 해독이네! 어디서 의술을 배운 건가?”
부채감에 사로잡혀 있던 당천정의 얼굴에 밝은 빛이 연신 감돈다. 그 역시 결과가 진심으로 기쁜 것이다.
“······.”
닫힌 입과 함께 그저 시선으로 당천정을 향하는 정문.
“······.”
계속되는 침묵에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도 있나, 당천정은 그렇게 정문을 이해하려 했다. 자신도 입을 열지 못한 일이 있었으니.
그런 생각이 떠오를 즈음.
“······, ······네.”
정문의 입이 조금은 떨리며 무어라 말을 뱉는다.
“뭐라?”
당천정은 입을 여는 정문을 향해 귀를 기울인다.
“독··· 진짜···, ······네.”
“독 진짜 네?”
독이란 말에는 칼같이 반응하는 당천정의 귀.
그런 당천정을 향해 정문이 온화한 미소를 띤다.
그리고.
힘겹게, 떨리며 떨어지는 정문의 입.
“독···, 진···짜···, 좆같이··· 만···드네···”
- 터얼썩!
당문에 대한 극찬과 함께 정문의 몸이 바닥으로 향했다.
“무, 무정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