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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공동을 무시하지 마라-68화 (68/153)

68. 공동은 행동에 나서겠습니다.

“정신이 드는가?”

흐릿한 시야 속에서 정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당천정이다.

“······?”

정문은 왜 니가 여기 있냐는 눈빛을 누워서 연신 보내준다.

“흡흡. 의원이 필요하기에···”

다시금 갸웃하는 정문의 고개.

“무···성이는···?”

“자네의 사질 말인가? 예후가 괜찮네. 독이 말끔히 해독되었더군. 진기도 멀쩡하고. 자준 도장께서 직접 살피고 계시네.”

- 후우우.

안도의 한숨과 함께 정문의 손이 이마로 향한다.

“제가 얼마나 쓰러져 있었습니까?”

“세 시진 정도. 해가 져버렸다네.”

“······, 범인은···?”

별다른 수식어가 없는 말임에도 의미 전달에는 충분했다. 당천정의 눈이 빠르게 가라앉았으니까.

“아직.”

“······.”

짧은 당천정의 대답에 정문의 입도 함께 닫힌다.

“개방이 움직이고 있네. 곧 윤곽이 잡힐 걸세.”

심각한 표정이 두 인물의 얼굴을 오갈 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온다.

- 드르륵.

들어서는 인물은 자정과 자준.

둘 모두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병실에 들어선다.

“정문아!”

눈을 뜬 정문의 얼굴을 보고서야 표정이 풀리는 두 도인.

정문의 곁으로 두 도인이 날아든다.

“괜찮으냐? 어디 상한 곳은 없고?”

“이놈아, 독기를 흡수하다니! 그게 무슨 짓이란 말이냐!”

상반되는 태도의 말이나 둘 모두 정문을 걱정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괜찮습니다. 스승님. 사숙. 그저 잠시 체력이 떨어져···”

“내 당화단(唐火丹)을 자네 입에 넣어 놨네.”

체력이 떨어졌다는 정문의 말에 당천정이 서둘러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한다. 조금은 공동과 냉랭한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것이다.

자준은.

아직 당천정을 바라보는 눈빛이 곱지 않다.

자정과는 이미 서로 사과를 주고받은 뒤.

자정은 아이들의 상태가 호전되자 이내 자신이 무례했음을 당천정에게 고개 숙여 사죄했다.

당천정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 그저 정문을 돌보며 자신의 성의를 최대한 보일 뿐이다.

“정문아, 이게 다 무슨 일이냐? 어찌 된 일인지 너는 아느냐?”

자정이 정문에게 사건의 정황을 물어본다.

다들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저 이문양혼산에 공동의 이대제자가 중독되었다는 사실. 그것이 이들이 아는 전부였다.

반면.

정문의 대처는 빨랐다.

깔끔했고 적절했으며 결과까지 만들었다.

이는 정문이 무언가 아는 것이 있음이 분명한 일이다.

“아마 처음에 노린 것은 저였을 겁니다···”

!!!

“어째서?”

“제가 무성을 제 옆자리에 앉혔지 않습니까? 제 식기를 무성이에게 건넨 것이 화근인 것 같습니다···.”

말을 뱉는 정문의 표정에 후회가 가득하다.

무성이라는 어린 사질이 중독된 것이 자신의 탓만 같은 정문이었다.

“허어, 어찌 그런 일이···”

“대체 누가 너를 노린단 말이냐? 짐작 가는 바가 있느냐?”

“···딱히 없습니다.”

정문은 슬쩍 자신의 머리를 스치는 붉은 머리칼이 떠올랐으나, 이내 그를 부정하기로 했다.

그는 이렇게 대담하게 움직일 위인이 아니었다.

“이문양혼산···, 이문양혼산은 어찌 아는 것이냐? 해독도 그렇고···”

자준의 물음에 정문이 시선을 다른 곳에 던진다. 그가 시선을 던진 곳은 다름 아닌.

당천정이었다.

“괜찮겠습니까?”

“······내 입을 통해 나오는 것만 아니면 상관이 없네.”

당천정은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정문의 물음에 답해준다.

무언가 정문이 꺼내려는 말이 당문과 관련있는 것은 분명했다.

“이문양혼산은···, 당문의 독입니다.”

!!!!

“······.”

“······!”

자정과 자준이 동시에 입을 벌린다.

자정은 당황을. 자준은 조금 더 분노를 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손을 놓으셨단···”

“사숙.”

무언가 버럭 하려던 자준의 말을 정문이 자른다.

“그런 게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당문은···, 사용자를 모르는 당문의 독을 해독해서는 안 된다는 가규(家規)가 있습니다.”

!!

“어찌 그런 가규가···”

“아마, 당문의 오랜 비사와 관련이 있을 겁니다.”

“···비사?”

당천정의 눈치를 한 번 더 본 정문이 말을 이어간다. 당천정이 딱히 제지하는 모습이 없었기에 허락한 것이라 생각한 정문이다.

“당문의 무인이 쓴 독을 다른 당문의 무인이 해독해 가문이 갈라질 뻔한 적이 있다 들었습니다. 백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요.”

“자네···. 당문에 대해 잘 아는군.”

당천정의 입에서 긍정하는 말이 나온다.

부정도 긍정도 직접 뱉진 않았지만, 이는 긍정하는 말임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강호를 떠돌던 때, 당문을 떠난 기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

오랜 시간 고민한 정문의 결론이었다.

이게 최선이라고.

물론 정문은. 그런 기인을 만난 적은 없다. 그저 지금 자신이 뱉는 말은 모두 황궁 서고에서 읽은 기밀사항.

이런 형식이 아니고는 지금을 벗어날 수 없기에 정문은 은거 기인이라는 여느 문파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를 가져온 것이다.

“그런 것인가···. 허면··· 이문양혼산의 해독을 아는 것도 말이 되는군.”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괜찮네. 비겁한 술수로 알아내지 않았으면 그만. 오히려 당문이 무정검에게 도움을 얻었음이야.”

당천정은 덤덤히 자신들의 모든 것을 아는 정문을 이해한다.

당가타는 말년에 떠나는 인물들이 많은 곳.

오랜 시간 독과 시름 하던 무인들이 결국 가문마저 등지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정문이 쓰러지면서까지 당문에 극찬을 아끼지 않은 이유도.

어쩌면 당문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이 있음을 필사적으로 표현하려 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당천정을 스쳤다.

조금은.

공동을 더 따스하게 바라보게 된 당천정이다.

“당가는 최선을 다해 배후를 쫓겠습니다. 무엇이든 협조할 터이니 말씀만 하십시오, 장문인.”

“감사합니다, 가주. 곧 다른 분들과 회의가 있을 것이니 이를 차근히 토의해 봐야겠지요.”

“예···, 그리합시다. 이는 공동만을 노린 것이 아닌 당가 역시 노려진 것. 당가는 이를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공동과 당문을 이간하려는 계책이 분명합니다. 공동 역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두 무인의 눈이 무겁게 빛난다.

한 문파가 공격을 당했다는 것은 쉬이 넘어갈 수 없는 일.

대대적인 보복이 뒤따를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정문은 서둘러 몸을 회복하거라. 아직은 거동이 불편한 것 같구나.”

자정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정문의 하반신을 보며 말을 뱉었다.

“예, 스승님.”

“그리고 회복이 끝나면. 반드시 움직여야 할 것이다.”

자정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는 발을 움직였다. 이번 일을 다룰 회의에 참석하러 가는 발걸음이 분명했다.

홀로 남은 정문.

조용히 병실을 돌아본다.

이제야.

차근히 그의 몸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다.

‘아파하던 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명하다.’

정문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직접 사질의 맥을 전부 뚫은 정문이다.

그런 사질이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 내적인 신음을 정문은 오로지 혼자 들어야만 했다.

누가 됐던.

일의 배후가 되는 놈은.

반드시 응징하겠다는 정문의 의지가 두 눈에 아렸다.

* * *

“혈영문(血嶺門)입니다.”

오봉학의 입이 열린다.

축하연은 거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밖에서 따로 술을 즐기던 오봉학이다.

설마 안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그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혈영문이라면···, 서녕에?”

“맞습니다.”

“아미타불. 난주에 들어서는 정파를 견제하려 함인가?”

“······서녕이면 여기서 닷새. 빠르면 사흘에도 닿는 곳이 아닙니까?”

“그 전에. 혈영문은 확실한 겁니까?”

오가는 말 중 오로지 진실을 확인하려는 자정이 날카롭게 말을 물었다.

“맞습니다. 장문인. 이문양혼산을 근 십 년 내에 사용한 곳은 혈영문이 유일합니다. 녹안독와(綠眼毒蛙)라는 독마(毒魔)가 즐겨 쓴다고 전해집니다.”

“이문양혼산의 배합이 강호에 퍼진 것이 잘못입니다. 당문이 책임을 통감합니다.”

“당 숙부는 말씀을 거두십시오. 그런 논리라면, 대장간은 검에 죽은 모든 이들에게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맞습니다, 당가주. 고개를 드시지요.”

당천정은 이번 일로 너무도 많이 고개를 숙이게 된다. 당가주 인생에 이런 날은 손에 꼽을 것이다.

“······공동은 행동에 나서겠습니다.”

!!!

진중히 듣던 자정이 선언하듯 뱉었다.

“장문인. 함께 움직이시지요.”

소림의 고암이 차분한 말로 자정을 달래본다.

“이번 일로 공동은 직접 피해를 보았습니다. 사문의 아이들이 당하고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누가 공동을 존중하겠습니까?”

“옳은 말씀입니다. 허나, 청해는 곤륜파가 있는 곤륜산을 제외하고 모두가 사파의 영역입니다. 공동이 홀로 토벌에 나서는 것은 위험합니다.”

남궁의 소가주 남궁수룡이 냉철한 판단을 내놓는다.

“······.”

“당문이 함께 하겠소.”

!!

“아미타불. 당가주···. 자칫 정사대전으로 번질 수 있는 일임을 모르시는 겁니까?”

“해도! 당문은 당한 일에 열 배를 갚아주는 법입니다. 이번 일에 최종 목적이 이간에 있었음을 다들 모르시는 겁니까?”

“······.”

“또한, 당문의 독이 저리 사용되고 있는 것은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입니다. 해독법을 알릴 순 없으나, 처리는 가능한 일. 당문이 나서겠습니다.”

당천정의 외침에 모두가 침묵한다.

당연히.

이번 일로 가장 피해를 본 이들은 공동이다.

당장에 이대제자는 생사를 헤맸고 대제자인 무정검은 기력을 쏟아부었다. 원래 노려진 목적 또한 대제자인 무정검.

어찌 되든 공동은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자칫하면 공동에 이어 당문마저 큰 피해를 볼 뻔한 것도 사실이다.

당문은 무림인들의 손가락질을 받았을 것이 분명했고 어쩌면 공동과 전쟁을 벌였을지도 모른다.

무정검이.

이정문이라는 도인이 해독에 실패했었다면 말이다.

“화산 역시···, 참전하겠습니다. 기뻐해야 할 속가 개파식이 눈물로 번질 뻔했습니다. 이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입니다.”

“아미타불···”

운양까지 나서니 고암의 눈에 근심이 더욱 깊어진다.

어쩌면 강호를 떨게 했던 정사대전의 악몽이 다시금 펼쳐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토벌의 범위는 어디까지로 하시렵니까?”

“관련된 모든 사파인. 당문은 끝까지 쫓겠습니다.”

“공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화산도 그렇습니다.”

“흐음···.”

고암이 옅은 신음과 함께 지혜를 짜낸다.

어떻게든 당장에 있을 충돌을 막아보려는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무엇을 말입니까?”

“당장에 청해로 진격하기에는··· 이곳에 모인 무인의 수가 많지 않습니다.”

“······.”

“대사의 말씀이 옳습니다.”

재빠르게 고암의 눈치를 읽은 오봉학만이 맞장구를 친다.

“사문에 지원을 요청하시지요. 그리고 행동에 나서셔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

정론이다.

하지만.

당장에 불이 붙은 투쟁심에는 제법 찬물을 끼얹는 말임도 분명했다.

‘아미타불···, 분노는 시간이 감에 따라 줄어드는 법. 이들은 머리를 식힐 시간이 필요하다.’

고암은 이들이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지지부진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말을 짜낸 것이다.

“대사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는 김에 제대로 해야지요. 화산은 본산에 매화검대(梅花劍隊)를 청하겠습니다.”

“제대로란 말에는 동의합니다, 당문 역시 독행단(毒行團)을 부르겠습니다.”

“공동은 난주에서 멀지 않습니다. 복마대(伏魔隊)가 닷새면 난주에 닿을 것입니다.”

고암의 말이 어떻게 먹힌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들이 정말 저 병력을 모아 청해로 진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청해로 뛰어드는 것만큼은 확실히 막았노라. 그렇게 고암은 만족하기로 했다.

“그럼, 우선은 오늘 회담은 이렇게 마무리하도록 하시지요.”

오봉학이 서둘러 상황을 정리한다.

당장에 청해로 쳐들어갈 기세의 공동과 당문, 화산을 잠시 멈춘 것만으로 얻은 건 많은 회담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중진들은 서둘러 사문이 머무는 곳으로 돌아갔다.

제자들에게.

다른 장로들에게.

회의에서 정한 말을 전달하는 움직임이 분주했다.

그렇게.

정파의 분노가 청해를 겨누려 준비하는 순간이었다.

* * *

정문은 계속해서 병실을 서성거린다.

어느새 하반신에도 힘이 돌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은 독에는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 그저 사질을 도인하며 체력이 너무 소모된 것. 그게 문제였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며 당화단의 기운이 돌자 차츰 이전과 같은 몸 상태가 돌아왔다.

이제 정문은.

서둘러 몸을 움직여 응징을 가할 생각이 가득할 뿐이다.

“스승님이 늦으시는군.”

소식이 궁금한 정문.

계속해서 문 앞을 서성이며 자정이 오는 소리를 기다린다.

하지만.

“잠시 괜찮겠습니까?”

자정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익숙한 목소리가 문이 아닌 창문을 통해 들려온다.

!!!

이 목소리는.

분명 자주 듣던 소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선명히 기억에 남은 말투와 목소리.

분명 오늘도 들었던 목소리가 분명했다.

“들어와.”

정문이 고민 끝에 답을 내린다.

그러자.

- 스슥.

창문을 통해 한 사내의 신형이 정문의 병실로 들어왔다.

정문의 앞에 선 사내는.

붉은 머리에 굽이짐이 선명한 서역인의 외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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