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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공동을 무시하지 마라-69화 (69/153)

69. 선물을 드리러 왔습니다.

“고력강?”

당당히 정문의 병실에 들어선 서역인은 무위에서 만났던 그 고력강이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안부 물을 사이는 아닌 거 같은데?”

“뭐···”

고력강은 어깨만 으쓱하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잘됐네. 안 그래도 의심하고 있었는데 제 발로 와주고?”

“아닌 것도 아시지 않습니까?”

“내가 안다고? 어째서?”

“총명하시니.”

사실이다.

정문은 처음에는 중독이 일어나자 고력강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곳에 모인 이들 중 자신과 부딪힌 경험이 있는 이는 고력강이 유일하다. 거기에 정문만 없어진다면, 저들이 지우려던 무위에서의 흔적 역시 말끔히 지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정문은 이내 머릿속에서 고력강의 얼굴을 지웠다.

무위에서도.

그리고 이곳 난주에서도.

고력강은 대담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마치 무언가를 꾸미지만 그 무언가가 작은 일은 아니라는 듯 조용히 움직이는 것이 고력강이었다.

‘분명 위에 다른 이들이 있는 것 같았는데···’

고력강이 눈치를 보는 상위 세력이 있다. 그것이 정문의 결론이었다.

정문은 말장난이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왜? 왜 왔어?”

“선물을 드리러 왔습니다.”

“선물?”

“독을 탄 범인은···, 아직 모르시겠지요?”

“······뭐.”

“혈영문입니다.”

!!

“혈영문? 서녕의?”

“예. 서녕의 혈영문.”

이자가.

그러니까 무위에서 자신과 충돌했던 고력강이라는 자가 이런 말을 전하는 의도를 정문은 알 수가 없다.

“···개방이 알아내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도착은 제가 먼저 하지 않았습니까?”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

믿을 수는 없다.

자신과 고력강이라는 자가 좋은 관계를 맺어봤자 서로에게 득이 될 것은 없기 때문이다.

노림수가 있을 것이다.

그게 정문의 판단이었다.

“정파인들이 회의에 들어갔다. 곧 결론이 나오겠지. 순리에 따라. 혈영문은 지운다.”

“언제쯤 말씀입니까?”

!!

고력강의 말이 제법 날카롭다.

당장에 피해를 입은 공동과 당문, 화산은 제외하고라도 소림과 남궁이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또한.

정문은 다른 정파인들의 성향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전쟁을 반길 놈들이 아니지.’

정파라는 협의심이 아닌.

그저 자신들에게 피해.

대대적인 전쟁으로 번질까 하는 그런 걱정.

어떻게든 소림과 남궁, 개방은 다른 문파들을 진정시키려 출정을 미룰 것이 분명했다.

“그전에.”

“말씀하시지요.”

“네놈이 저런 정보들은 어떻게 아는 거지?”

너무도 당연한 질문.

당연히 의심해봐야 할 질문이 이제야 나온다.

“······, 꼭 아셔야겠습니까?”

“상당히 의심스러운데.”

“뭐···, 관련이 있습니다.”

!!

“야.”

짧게 뱉는 음절의 뒤로 정문의 스산한 살기가 방안을 가득 채운다.

‘무슨··· 도인의 살기가?’

“아직 단전이 다 여물지도 않은 이대제자가 당했다. 내가 이걸 계산 때려가며 흥정 질이라도 할 줄 알았나?”

- 저벅.

고력강을 향해 한 발짝 내딛는 정문.

고력강은 정문의 살기에 조금은 몸이 얼어붙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혈영문이 선을 넘은 겁니다. 우리와 작은 관계가 있었지만 절대 지시를 내린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공동을 공격해 얻을 게 무에 있겠습니까?”

일을 완성을 위함일까, 살려는 의지일까.

고력강은 재빠르게 말을 쏟아낸다.

“······.”

납득은.

납득은 가는 말이다.

서역 세력이 공동을 지금 건드려 좋을 건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혈영문과 모종의 관계는 맞으나 이번 일은 그들의 독단이다?”

“정확하십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선을 긋는 겁니다. 우린 상관이 없다는.”

“아까부터 우리, 우리 거리는 데. 네가 말하는 우리는 누구지?”

“······아시지 않습니까?”

“모르겠는데?”

“저도 무정검에 대해 조사는 했습니다만···, 고창에 관심이 많으시더군요.”

!!

“고창에 생긴 세력이···”

“맞습니다.”

정문의 입이 닫힌다.

이렇게 된다면.

이전에 있었던 일들이 모두 설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무위에서 고력강이 그냥 돌아갔던 이유도.

산화사괴라는 이들이 평량까지 내려왔던 이유도 전부 말이다.

“위쪽 눈치를 많이 보고 있군?”

“뭐···, 고창에서는 중원과 충돌을 바라지 않습니다.”

“혈영문과는 무슨 관계였지?”

“이번 일. 이번 일과 관련된 말만 하시죠.”

“······.”

고력강은 적절한 정보를 던져주면서도 필요치 않은 접근은 철저히 차단한다.

오히려 그의 이런 태도가 그의 말에 신뢰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정리하자면. 네놈들은 혈영문 덕에 덤터기를 쓰고 싶지 않다. 이거네. 맞나?”

“비슷합니다.”

“선물이라기에 너무 빈약한 거 아닌가?”

“닷새. 닷새 뒤에는 혈영문이 서녕을 떠납니다.”

!!

“뭐?”

“고창으로 가는 겁니다.”

“그걸···”

그걸 말이라고 하냐.

그런 말이 정문의 목에 걸렸다.

“고창에 닿으면···, 그들은 죽습니다. 우리 손에. 그것도 괜찮으시다면···, 기다리시는 것도 좋지요.”

고력강이 말하는 선물이 무엇인지.

정문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공동의 손으로 복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그게 바로 고력강의 선물인 것이다.

“과한 선물은···찝찝한데.”

“조건은 당연히 있습니다.”

“모른 척하라는 거겠지. 고창의 그 세력은.”

“역시.”

역시 정문은 말이 잘 통한다.

고력강은 그렇기에 정문에게 이렇게 선물을 가져온 것이다.

이미 무위에서 있었던 일을 정문은 완벽하게 덮었다. 이 정도라면.

아직은 이른 중원과의 조우를 막아주는 방파제로 딱 적당할 것이란 게 고력강의 판단이었다.

“우리 손으로 복수를 하느냐···, 남의 손에 맡기고 정파 연합이 허탕을 치느냐로 군.”

고력강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판단은 직접 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답을 해야 하나?”

너무나도 무거운 얼굴의 정문을 보며 고력강은 답을 듣지 않아도 될 것이란 판단을 내렸다.

“정하셨군요.”

“······적어도 놈들 몸에 내가 칼을 박아야겠어.”

“공동을 움직일 수 있으시겠습니까?”

“혼자 간다.”

“적절한 판단이길.”

고력강은 정문의 말에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다.

정문의 이런 반응을 예상한 것이다.

“선물은 받은 거로 하지. 그만 가봐.”

“궁에 대한 언급은···”

“없다. 대신. 궁이 당장에 감숙으로 쳐들어오지 않는다는 확답은 필요한데.”

“당연합니다.”

- 씨익.

거래가 완성에 가까워지자 고력강은 잔뜩 기쁨의 미소를 짓는다.

“개방에···들리십시오. 아무래도 혈영문에 대한 정보는 공식적으로 얻는 것이 되어야 할 테니.”

“······그러지.”

“그럼 이만.”

고력강은 끝까지 정문의 일을 완성시켜 주고야 자리를 나선다.

고창에 자리를 잡았다는 세력.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문은 아직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극도로 중원과의 충돌을 꺼리고 있으며 자신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 역시 기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세력의 중추인 저 고력강이라는 자가 자신을 거래 상대로 정했다는 것.

이게 전부일 것이다.

‘당장에 감숙만 무사하다면···’

거래를 피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자신의 사질이 겪은 고통의 열 배, 백 배를 돌려주고 싶은 그런 분노가 정문 속에는 가득했다.

정문이 구석에 놓인 자신의 검을 챙긴다.

기감을 펼치는 정문.

주변은 여전히 한산하다.

다들 난주를 뒤지고 범인을 쫓고 있을 것이다.

정문이 기감을 거둔다.

그리고 이내.

창밖으로 회색 도포가 휘날렸다.

* * *

난주는 감숙을 대표하는 도시이다.

중원과 서역을 잇는 교역로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중원의 대도시.

위로는 무위, 장액, 돈황 등의 중간 거점 격 도시들이 있지만, 이들 모두.

난주만큼의 대도시는 아니란 말이다.

그렇기에 개방은.

난주에 감숙 분타를 두었었다.

이제는 평량에도 따로 분타가 생겼지만, 그전까지 감숙을 총괄하던 분타는 난주였다.

부가 몰리는 곳은 거지들 역시 얼굴색이 고운 법.

천막이 전부인 평량의 분타와 달리 난주의 개방 분타는 판자로 제법 건물다운 모습을 올려놨으며 담벼락까지 둘러 흡사 장원과 같은 모습을 만들어 놓았다.

상행의 거점지인 난주다운.

그런 개방의 분타였다.

난화무관에서 정파 연합 회의를 마친 오봉학이 난주 분타에 들어선다.

대문이라기에는 초라하지만 그럴듯하게 만들어놓은 나무문을 넘어서는 오봉학.

그런 오봉학의 살갗에.

제법 저릿한 기운이 스치고 간다.

‘흐음.’

익숙한 기운이라, 오봉학은 그렇게 생각했다.

- 끼이이익.

문을 열고 들어서는 오봉학.

“무정검.”

“오셨습니까.”

“주인도 없는 곳에서 뭘 하나.”

오봉학은 평소와는 달리 조금은 무거운 표정으로 정문을 응시한다. 아무래도 분타에 홀로 들어와 있던 것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기다릴 수가 없어서 말이지요.”

“몸은 괜찮고?”

“멀쩡합니다.”

“스승님께서 가셨을 텐데.”

“장로 회의에 가셨다고 합니다.”

“뭐, 자네도 곧 알게는 되겠지.”

“어딥니까?”

처음에는.

무정검이 이렇게 찾아온 것이 다른 의도가 있진 않나 의심했던 오봉학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물음들이 하나같이 아무것도 모름을 표하기에 오봉학은 안심하며 정문과 대화를 나눈다.

“혈영문일세.”

“흠.”

크게 놀라진 않는다.

지금 무정검은 극도로 냉정하고 차분한 상태. 어쩌면 그게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오봉학은 그렇게 판단했다.

“정파가 연합해 청해로 갈 걸세. 자네도 함께 가야겠지.”

“혈영문이 그 정도 문파는 아니지 않습니까?”

“전쟁은 그리 쉬운 게 아닐세. 구파일방에 속한 공동이 움직인다면, 주변의 견제 역시 만만치 않을 걸세.”

“청해에 든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겠지요.”

“물론이지. 오늘이 지나거든, 공동이 공격받았다는 소문 역시 난주를 벗어날 걸세. 저들 역시 대비를 할 것이 분명하지.”

“해서, 뭉쳐서 들어간다?”

“그게 답이라네. 혈기는 아네만. 참으시게.”

말은 정문을 진정시키는 말이지만, 진심은 담겨있지 않다. 아무리 무정검이라도 홀로 청해에 가지는 못할 것이라 오봉학은 그렇게 생각했다.

“시간이 걸릴 겁니다···, 해서 저들이 도망간다면 어찌합니까?”

“중원 끝까지 쫓을 걸세.”

오봉학의 패기로운 대답에 정문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봉학은 이를 수긍으로 이해했다.

정문은 역시 그렇냐는 실망으로 표현했고.

오봉학은 중원 끝까지라는 말을 썼다.

중원 너머라는 말은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다.

‘고창으로 넘어가면···, 끝일 테지.’

정문의 얼굴에 결심이 아린다.

“알겠습니다.”

“때를 기다리시게. 맘껏 날뛸 판이 준비될 걸세.”

“물론입니다.”

정문은 평소 같지 않은 예의 바른 모습으로 오봉학에게 읍하고 분타를 나섰다.

‘흐음···, 무정검이 제법 분노한 모양이군.’

평소와 다른 정문의 모습에 오봉학은 그저 사질이 다쳐 화가 난 모습일 거라 여겼다.

차분히 앞에 놓인 서류를 펼치며 다시금 혈영문에 대해 살피는 오봉학.

그때.

- 어디입니까?

정문이 처음 물었던 말이 오봉학의 머리를 스친다.

‘분명 어디냐고 물었지.’

보통 이런 음독 사건이나 암살이 일어나면, 제일 처음 묻는 말은 어디냐는 말이 아니다.

누구냐.

누구를 먼저 묻는 것이 아마 순리에 맞을 것이다.

‘설마?’

불안한 생각이 떠오른다.

‘알고 온 것인가?’

오봉학이 서둘러 판자집을 박차고 나선다.

번을 서는 둘 정도의 거지들.

“무정검. 무정검은 어디로 갔느냐?”

“무정검 말씀이십니까?”

“어디로 갔녜도!”

“곧장 문을 나가 난화무관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확실히 걸어 갔느냐?”

“예, 인사까지 나누고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기우일까.

왜 인지 모를 찝찝함이 오봉학의 가슴에 남는다.

하지만.

자신의 추측만으로 무언가를 할 수 없는 것도 오봉학이다.

당장에는 인력도, 시간도.

모두가 부족한 것이 난주 분타의 현실.

‘그래, 기우겠지···, 설마 홀로.’

무정검이 그리 무모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오봉학은 스스로를 위해 그런 생각을 애써 떠올렸다.

* * *

- 탓! 탓! 탓!

정문의 발이 빠르게 땅을 건넌다.

보폭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 서두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제 닿는 곳은 난주의 끝.

아마 이곳은 정파의 무인들이 길을 봉쇄하고 있을 것이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통과한다.’

결심이 서린 정문이 기력을 끌어 올린다.

어떻게든 그들을 다치게 하지 않고 봉쇄를 뚫을 생각인 것이다.

고력강은 정문을 향해 혈영문이 서녕을 떠나기까지 닷새의 여유가 있다고 했다.

난주에서 서녕까지는 딱 닷새의 거리.

이는 무림인이 아닌 자들의 걸음으로 걸리는 시간이다.

무인이.

그것도 상승의 경공을 익힌 무인이 마음을 먹고 달린다면.

이틀.

이틀이면 족할 것이다.

이미 화음과 평량사이 이레 거리를 사흘 만에 주파하는 것을 개방이 보여주지 않았나.

거기에 정문은 홀몸이다.

만약 서두른다면. 어쩌면, 더 빠르게 닿을지도 모른다.

‘이미 하루를 잡아 먹었다. 적어도 사흘 안에는 꼭 닿아야 한다.’

정문은.

자신의 사질을 다치게 한 혈영문을 곱게 고창으로 보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 탓!

다시금 정문의 발이 땅을 찰 때.

- 스스스슥.

정문의 앞으로 수십의 신형이 모습을 나타낸다.

!!!!

- 탁.

정문의 발이 멈춘다.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무인들은.

정문의 사제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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