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말 잘 듣는 사제들은 아닙니다.
난주의 서쪽 외곽.
이대로 쭉 달린다면 서녕이 닿을 그 길 위에 정문과 그의 사제들이 대치하고 있다.
“우연이네. 너희가 하필 여길 지키고 있었다니.”
가볍게 웃으며 평소처럼 말하는 정문.
그런 정문의 앞으로 진중한 표정의 진명이 다가선다.
“조금 전 교대했습니다.”
“우연인가?”
“이곳으로 오시는 걸 알았으니까요.”
!!
예상은 했다.
하지만, 방법은 정문도 몰랐기에 슬쩍 떠본 것이 제대로 들어맞았다.
“어떻게?”
대답은 정문의 뒤쪽에서 나왔다.
정문이 달려온 길.
개방의 분타에서 난화무관까지 한 번 가는 척을 하고 다시금 돌아선 그 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서당 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습니다. 사형의 행동 예측쯤이야.”
“허.”
정문의 입에서 바람이 샌다. 표정은 기특함과 재밌다는 표정이 함께였다.
“어디서부터 쫓아 온 거냐?”
“개방 분타에서 사형을 기다렸습니다. 개방은 당연히 들를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자신의 행동을 모두 예측한 것도 놀랍다.
그리고, 더 기특한 것은.
번번이 자신에게 기척을 들키던 사풍이 이번에는 완벽하게 기척을 감추고 정문을 쫓았다는 것.
정문은 사풍의 발전이 기특하기만 하다.
“제법이야.”
항상 사제들은 정문을 보며 말했다.
정문은 예측이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중요한 때가 되어서는 결국.
그런 말을 했던 사제들만이 정문의 행동을 예측한 것이다.
정문이 사제들을 바라본다.
“그래서···, 막으려고?”
“막으면···, 멈추시는 겁니까?”
“아니.”
정문의 즉답이 떨어지자, 사제들이 조금 몸에 힘을 주기 시작한다. 눈에도 투기를 끌어 올리는 사제들.
“쉽게 뚫리진 않을 거란 말이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정문에게.
“따르겠습니다.”
!!!
사제들이 굳은 결심의 결과를 들려준다.
“······뭐라고?”
“같이 가겠다고 했습니다.”
“······.”
사풍이 자신의 뒤를 쫓았다는 것은 방금 들었다. 하지만, 사풍은 정문이 개방 분타에서 나눈 이야기와 병실에서 고력강과 나눈 대화에 대해서는 모를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이들은 지금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저 정문을 따르겠다는 말임이 분명했다.
“어딘지는 알고?”
“어딥니까?”
곧바로 되묻는 말에 살기가 서려있다.
사제들 역시. 사질이 당한 일에 적지 않은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혈영문.”
!!
“그래서 이 길을···.”
“그래, 청해까지 넘어가야 하니.”
“사파의 영역으로 말이군요.”
“곧 정파 연합이 모여 청해로 진격한다. 그때를 기다려 함께 와. 오늘은 나만 간다.”
정문은 사제들을 데려갈 생각이 없었다.
차후 정파 연합이 청해로 진격하는 것은 사실이기에 이를 핑계로 사제들을 두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게 안 될 걸 아셔서 사형이 움직이는 거 아닙니까?”
!!!
정곡이다.
사제들은 이미 정문의 사고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정문이 나서는 이유, 나서는 순간까지 모두. 이제는 사제들에게 예상 가능한 것들이다.
“······.”
“우릴 너무 무시하지 마요!”
“마, 맞습니다!”
“흥, 언제까지나 속는 바보는 아닙니다.”
그래, 이건.
정문의 실책이다.
사제들이 언제까지나 자신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할 것이라는 정문의 오만이자 실책.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스승님도 그렇고, 정파 연합 내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고.”
정문은 덤덤히 자신들이 진격하고 난 후의 일을 말해본다.
자정에게 알리지 않은, 그리고 정파 연합의 결정에 반하는 일을 자신들이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사형.”
옅게 웃으며 정문을 바라보는 진명.
“저희는 그런 거 모릅니다. 공동이 언제부터 그런 거 신경 썼습니까?”
“······.”
“맞아요. 뭐, 스승님께는 벌 좀 받고. 다른 정파들이야 뭐. 언제부터 우리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았다구요?”
“마, 맞습니다!”
“이런 일도 제대로 해결 못 한다면, 차라리··· 중원은 잊는 게 나을 겁니다.”
진명과 명화, 묵환, 그리고 사풍이 연달아 뱉는 말이 모두 옳은 말이다. 정문은 그렇게 생각했다.
또.
“우린 그저 사질이 당한 것에 대한 복수! 그거만 하면 됩니다!”
“누가 감히 공동을 건드려?”
“사형이 그랬잖습니까? 공동을 무시하지 못하게 만들자고!”
다른 사제들 역시 이들과 같은 생각인 것 같이 보인다.
“너희가 다칠 수도 있다. 그건 알고 하는 말들이냐?”
“무인은. 언제나 검을 휘두를 준비도. 언제나 검을 맞을 준비도 되어야 하는 것. 사형은 어찌 우리를 자꾸 보호하려고만 하십니까?”
대앵 하고 무언갈 때리는 소리가 정문의 머리에서 들려왔다.
정문은 분명 사제들을 가리켜 함께 강해져야 하는 이들이라 말했다. 이는 함께 무언가를 해나가는 이들이 되겠다는 뜻.
하지만.
정작 정문은 계속해서 사제들을 보호하고 지켜야 하며 자신이 성장시켜야 하는 존재로만 바라봤다.
이는.같이 걷는 이들에 대한 자세가 아닐 것이다.
수보 조숭에게 마지막 일격을 당했던 일.
한방에 자신이 준비한 모든 이들을 잃었던 일.
그런 일들이 어쩌면 아직도 정문을 옥죄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두고 가신다면, 맞서서라도 따라붙겠습니다.”
“······.”
사제들의 눈에는 분노와 결심, 그리고 결연함이 동시에 자리한다.
정문의 어떤 말들도.
이들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말 잘 듣는 사제들은 아닙니다.”
“누가 그렇게 키웠으니까요.”
“배, 배운 겁니다!”
“흥, 고맙다고 말이나 하십쇼.”
저마다 한마디를 뱉는 사제들을 보며 정문의 표정이 풀린다.
그래, 이제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좋다. 같이 가자.”
!
“대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녕으로. 쉬지 않고 달린다. 시간이 얼마 없어. 놈들은 곧. 서녕을 떠날 거거든.”
“거점을 버린다는···?”
“아마도. 확실한 정보니, 믿을만해.”
“서둘러야 겠군요.”
“낙오자는 두고 간다. 혹여 낙오하거든, 차후 합류를 준비해라.”
정문은 방향이 정해지자, 냉정히 자신들이 가야 할 방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건 비무나 대련 같은 것이 아니다. 손속에 정을 두는 순간. 옆 사람의 목이 날아간다. 이점을 꼭. 명심하고.”
“다들 명심해라, 손속에 정은 지운다.”
진명의 한 번 더 일러주는 말에.
“그건 자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굽니까?”
“청성 놈들이라 생각하고 조져야죠.”
“단전 딱 대라 하십쇼.”
살벌한 말들이 잔뜩 오간다.
“좋다. 마지막으로.”
정문이 사제들과 일일이 눈을 한 번 맞춘다. 다른 어떤 말보다 강렬한 응원임이 분명했다.
“죽지 마라.”
장엄한 정문의 말에 사제들이 소리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정문의 마지막 말에서야 사제들은. 자신들이 전쟁을 치르러 간다는 사실을 실감한 것이다.
“서녕으로 간다.”
정문의 말과 함께 이십이 넘는 무인들의 발이 땅을 때렸다.
* * *
“문주님! 문주님!”
한 무인이 서둘러 혈영문의 주 전각으로 뛰어든다.
“무슨 일이더냐?”
“나, 난주에서! 난주에서 녹안독와(綠眼毒蛙)의 전서가 왔습니다!”
“성공했다더냐?”
혈영문의 문주이자 혈수살검(血手殺劍), 사문성이 서둘러 말을 묻는다.
“그, 그것이···”
“어서 말하거라!”
“실패했다 합니다!”
!!!
“실패?”
“무정검이 마셨어야 할 잔을 그 사질이···”
!!
“사질이라면···, 이대제자?”
“예, 문주.”
"죽었느냐?"
사문성은 당연히 독을 마셨으니 죽었을 것이라 예상했다.
이문양혼산은 당문의 독이기에 그 자리에 있는 당문이 해독을 도왔을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살았답니다."
!!
"어째서?"
"무정검이 직접 해독했다고 합니다."
"허."
짧은 탄식만이 사문성의 입을 탄다.
일이 꼬였다.
애초에 독을 먹고 죽었어야 할 무정검은 살았고, 이간의 씨앗이 되야 할 독은 그 무정검에 의해 해독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꼬인 것은.
독수에 당한 것이 바로 어린 무인이라는 것.
어린 무인에 대한 공격은 강호에서도 금기시되는 행동.
거기에.
독살까지 곁들였으니, 정파들의 분노가 상상을 초월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방방 뛰고들 있겠군.’
곧 닥쳐올 정파의 거대한 보복에 비해, 혈영문주 사문성의 반응은 여유롭다.
이미 혈영문은 고창으로 떠날 준비를 마쳐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창으로 가기 전, 무언가 작은 선물이라도 가져갈까 하는 마음에 노린 것이 바로 무정검의 목.
지금 강호에서 가장 떠오르는 후기지수의 목 정도면 고창에 생겨난 새로운 세력 역시 자신들을 대접해 줄 것이란 게 사문성의 판단이었다.
그렇기에 사문성은 당황하지 않는다.
어차피 정파의 보복이 서녕에 닿을 때가 되면.
자신들은 이미 고창에 도착해 떵떵거리는 후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진행한다. 달라질 것은 없음이야.”
“예. 문주님.”
“지원한 병력이 모이려면 적어도 보름은 걸릴 터. 우린, 닷새 뒤에 고창으로 떠난다.”
무정검의 목을 가져가는 것은 실패했다.
하지만 다른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게 사문성의 판단이다.
애초에 일이 실패해도 자신들이 받는 피해가 없도록 설계한 계획이었다.
고창으로 가는 것은 훨씬 더 전에 정해진 일.
이를 이용해 한 번 공을 세워보려 짠 계획이니 피해가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고창에 생겨난 새로운 세력의 품으로 들어가기만 한다면 정파 놈들이 자신들을 쫓을 수 없을 것도 확실했고 말이다.
“쯧쯧쯧. 미리 공을 세워 고창 내 다툼에서 유리한 수를 가져가려 했더니···”
아쉽다.
성공했다면 좋았겠지만, 실패해도 상관없는 일.
그게 바로 이번 일이었다.
그저 그렇게 생각한 혈영문은 떠날 준비에만 다들 심혈을 쏟았다.
* * *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공동의 무인들이 사라졌다니요?”
뒤늦게 소식을 들은 당천정이 서둘러 난화무관으로 들어온다.
이미 난화무관 안에는. 소식을 들은 여러 인물들로 복잡한 상황이다.
“······미안합니다. 장문인. 이 모든 게 내 불찰입니다. 어젯밤, 무정검을 그리 보내선 아니 되었던 것을···”
“무정검이요? 무정검까지 사라졌다는 말씀입니까?”
뒤늦게 도착한 당천정은 돌아가는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다.
“당숙부. 지난밤, 무정검이 개방을 다녀간 후 행방이 묘연합니다. 또한, 서녕 방향에서 번을 서던 공동의 무인들 역시 행적을 알 수가 없습니다.”
!!
“그렇다면···, 설마?”
“아마 그 설마가 맞는 것 같습니다.”
남궁수룡은 당천정을 한 번에 이해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이제는 지금 상황을 모르는 이가 이곳에는 없는 것이다.
“모두 이 늙은 거지의 잘못입니다···. 찝찝한 것을 알면서도···”
“노개의 잘못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한 본도의 잘못입니다.”
자정은 자신을 향해 고개 숙이는 오봉학을 일으켜 세웠다.
“혈영문의 세력은 얼마나 됩니까?”
자신과 눈을 맞추지 못하는 오봉학을 바라보며 차근히 말을 묻는 자정.
“적지는 않습니다. 허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청해를 빠져나오는 겁니다. 공동이 단독으로 들어간 사실을 안다면···, 다른 문파들이 가만있지는 않을 겁니다.”
오봉학의 말을 들은 자정의 얼굴이 무겁게 내려 앉는다. 차근히 일어날 일을 고민해 보는 것이다.
“저도 서녕으로 가야겠습니다.”
!!!
“아미타불. 장문인.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지원이 도착하면···”
“그때는. 늦습니다.”
고암의 말을 받아치는 자정의 태도가 단호하다. 이는. 절대 의지를 꺾지 않겠다는 뜻임이 분명했다.
자정이 뒤를 돌아 장로들을 살핀다.
“자준. 따르거라. 부상자가 있을지 모르니 너는 함께 간다.”
“예, 장문인.”
“자공. 남거라.”
“사형!”
“남아서 다른 제자들이 도착하거든, 네가 이끌고 청해로 진입해야 할 것이다.”
“······예.”
너무도 단호한 장문인의 말에 자공이 반박을 포기한다. 이런 장문인이자 사형의 모습은 자공도 오랜만에 보는 것이다.
“개방이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크게 다르진 않으나 빠른 길이 분명 있을 겁니다.”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무정검을 보낸 것은 개방의 실책. 응당 따라야지요. 본개 역시, 함께 하겠습니다.”
오봉학은 자신이 그냥 보낸 정문을 생각하며 최대한 지원을 약속한다.
거기에.
“나도 가겠습니다.”
!
“당가주!”
그저 눈만 커지는 고암.
이게 다 무슨 소리들이란 말인가.
“무정검이 독을 해독하지 못했다면, 당가는 지금처럼 지내지 못했을 겁니다. 은혜를 갚아야지요. 당가는 움직일 겁니다.”
독나찰이라 부르는 당천정은 고집이 여간 고집이 아니다. 그가 결심하면, 누구도 말리지 못하는 법이다.
“화산 역시 돕겠습니다. 무정검을 이리 보낼 순 없습니다.”
끝이다.
소림의 철견권승(鐵肩拳僧) 고암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미 철면노개(鐵面老丐) 오봉학과 독나찰(毒羅刹) 당천정의 개입만으로 이는 전쟁이라 불러도 될 움직임이다.
거기에 매화고검(梅花高劍) 운양까지 나선다면 이는.
전날 회의에서 언급했던 즉시 청해로 진격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결과임이 분명했다.
‘아미타불. 일이 이렇게 되는가···’
고암의 눈이 감긴다.
여기서는.
소림과 남궁만 빠진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을 것이다.
정파란 이름을 내건 무인에게는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폭두(爆豆)···, 정녕 무정검은 폭두인가···'
고암의 머리로 폭두란 말이 스친다.
솥에서 홀로 튀어 올라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콩, 폭두.
고암은 무정검 이정문의 행동을 보며 그런 폭두를 떠올린다.
'아아, 무정검이 폭두인가···, 아니면 공동이 폭두인가···'
조금은.
공동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진 고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