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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공동을 무시하지 마라-73화 (73/153)

73. 믿기진 않으나, 사실입니다.

“무정···검···?”

당천정의 고개가 갸웃한다.

분명 멋진 등장이었다.

당천정은 그렇게 생각했다.

저 멀리서 가장 호화로운 장원을 향해 달리던 정파 연합의 무인 중에서도 가장 경신술이 빠른 당천정은 제일 먼저 장원의 담벼락을 넘었다.

양손에는 각종 독이 발린 암기를 손가락 마디마다 끼우고 양팔을 교차해 언제든 공격할 준비까지 마치며.

아마.

조금 후회되지만, 아마도.

- 혈영문은 당문의 은원을 받아라!

같은 멋들어진, 아니 멋들어져 보인다고 생각했던 말도 뱉으며 착지했던 것 같다.

그런 당천정의 앞에는.

익숙한 도복을 걸친 무인들만이 이건 뭐냐는 표정을 하며 당천정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뭐 하십니까?”

“······.”

지금 자세를 서둘러 풀면 이상할까.

그런 생각이 당천정을 스칠 즈음.

- 꽈아아앙!

아, 안돼!

라고 당천정이 소리치기도 전에.

혈영문 장원의 대문이 큰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그리고.

“이 악적 놈들!”

회색 도포를 날리는 공동의 장문인과

“아미타불-! 내 오늘 살계를 열겠소이다!”

금빛 권광(拳光)의 승려가 장원 안으로 멋들어지게 들이닥쳤다.

당천정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저들이 느낄 감정을 미리 느껴보는 중이다. 민망함을 말이다.

“하아.”

잔뜩 투기를 머금은 자정과 고암을 비롯해 오봉학, 운양, 남궁수룡 등의 무인이 장원으로 들어선다.

이미 검들은 모두 검갑에서 나온 뒤며 다들 기력을 잔뜩 뿜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반기는 것은 혈영문의 악적들이 아닌.

공동의 도인들이었다.

“스승님?”

무인들이 들어선 장원의 내부에는.

아무런 전투도 벌어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평화로이 휴식을 취하는 공동의 도인들만이 벙찐 표정으로 이들을 구경하는 중이다.

“이···게 무슨?”

분명.

분명 자정과 다른 무인들은

- 빠가가가가가가가각!

하는 소리와

- 끄어어어억!

하는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온 참이다.

그들은 아직 전투가 치러지고 있을 거라 그렇게 믿었다.

“저, 정문은? 정문은 어디 있느냐?”

대충 전투는 없다는 사실을 눈치챈 자정이 서둘러 정문을 찾는다.

“여기 있습니다. 스승님.”

자정의 앞으로 날아가 무릎을 꿇는 정문.

헌헌한 대제자의 모습이 정문의 몸을 감쌌다.

“사제들은? 모두 무사한 것이냐?”

“모두 무사합니다.”

“몸은? 사지를 잃은 자는 없느냐?”

당연한 걱정이다. 전쟁이란 언제든 사지 하나쯤은 날아갈 수도 있는 것이니까.

“없습니다. 멀쩡합니다.”

“하아.”

- 툭.

자정의 몸이 바닥으로 향한다.

손에 들렸던 통천검도 바닥에 흩뿌린 지 오래다.

“되었다. 되었어···.”

이제야 안도하는 자정.

“죄송합니다···, 스승님···.”

“무사하니 다행이다. 다행이야···!”

자정은 당장에 정문은 만나면 크게 호통을 치고 엄벌을 내릴 생각이었다.

대제자의 신분으로 사제들을 사지로 내몰다니. 이는 율법에 따라 크게 벌해야 함이 마땅했다.

하지만.

큰일을 겪고도 모두 살아남았다는 말을 들으니 정문을 벌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 자정이다.

“자준.”

“예, 사형.”

“아이들의 몸을 살피거라, 혹여 모르니 유심히 보거라.”

“예, 사형.”

자준이 서둘러 침과 약, 붕대를 챙겨 사질들에게 다가선다. 다들 몸에 검상이 자욱하지만, 큰 중상은 없어 보였다.

그제야 장원 안을 살펴보던 오봉학이 무겁게 닫힌 입을 연다.

지금 장원에는 그저 공동의 도인들뿐.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혈영문은? 혈영문은 어디 있는가?”

처음든 생각은 분명.

혈영문이 공동의 도인들을 정파 연합이라 착각해 도망간 것이다.

그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옆 장원에 모아뒀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단근참맥(斷筋斬脈)해 한곳에 가둬두었습니다.”

너무도 담담히 답하는 정문의 말에 이내 그의 발이 서둘러 옆 장원으로 향한다.

머쓱하게 옆에 선 당천정과 고암, 그리고 운양과 남궁수룡.

그들은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미 교전이 끝난 겁니까?”

용기를 내어 정문에게 말을 묻는 남궁수룡.

“예, 끝났습니다.”

“결과는···”

“이제 혈영문이란 문파는 없습니다.”

!!!

정문의 선언과도 같은 말이 터지자, 이내 모여든 정파 연합 무인들의 표정이 크게 변한다.

“무, 문주. 혈수살검(血手殺劍)은 어찌 되었소이까?”

고암이 작은 눈을 최대한 크게 뜨며 정문에게 다가선다. 처음 장원에 들어서던 웅장한 모습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옆 장원에 있습니다.”

정문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발을 박차는 고암. 자신의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지 않으려는 것이다.

“자네도 많이 다쳤군.”

“쉬운 적은 아니라서요.”

처음으로 정문의 몸을 살피는 당천정.

그 역시 의원이기에 상처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해도, 치료는 꼭 받으시게. 당문의 의원들은 실력이 좋은 편이네.”

“정리가 끝나면 치료를 받겠습니다.”

당천정은 옆 장원이 아닌 전각으로 시선을 던진다. 당문 특유의 후각이, 아직 전각 안에는 시신이 남아있음을 알아챈 것이다.

“전각 안은?”

“아직 정리가 덜 됐습니다.”

“흠···, 저긴···”

“모두 죽었습니다.”

- 턱.

당천정의 손이 정문의 어깨에 올라간다. 마치 무언가 위로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당천정.

“처음에는 그럴 수 있네. 안은 당문에게 맡기시게.”

당천정은 정문이 살생이 처음일 거로 생각해 위로의 말을 던진다. 마치 그의 눈이 다 안다는 듯 따뜻함을 품고 있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장단에 맞춰 고개 숙이는 정문을 지나쳐 전각으로 향하는 당천정. 그의 뒤로 당문의 인물들이 따른다.

옆 장원으로 발을 옮긴 고암과 오봉학은 감히 입을 닫을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들의 입이 계속해서 아래로 향했다.

“이···이게 전부···?”

처음에는 분명.

혈영문 내에 모든 무인이 없었을 것이라 예상했던 둘이다.

한 문파의 장원에 무인 모두가 머무는 경우는 드문 법이다. 고수들 역시 장원을 비우는 경우가 허다하고.

하지만.

공동이 잡아 놓은 무인의 수는 혈영문의 전체 전력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는 숫자였다.

거기에.

“자, 장응혈조(扙鷹血爪)다!”

“혈영쌍살(血影雙殺)도 있다!”

“배, 백달!”

사파 무림에서 제법 이름난 고수들까지 모두 단전이 깨진 채 포승줄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말은.

공동의 저 일대제자 스물이 혈영문과 전면전을 벌여 살아남았음을 뜻할 것이다.

거기에.

“확실히 혈수살검이 맞소이다!”

일전에 혈수살검을 마주한 적이 있는 고암의 증언까지 터져 나온다.

이건.

공동의 완전한 승리가 분명했다.

“대사···, 이게 말이나 되는 겁니까?”

“아미타불-. 눈으로 보았으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을 뿐이지요···.”

당장에 혈영문을 지우려면 개방의 분타 몇 개가 움직여야 할까. 오봉학은 그런 생각을 먼저 떠올려 본다.

고암 역시.

소림이면 얼마나 필요할까 그런 생각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눈을 크게 뜨고 사태를 살피는 이는.

남궁수룡이었다.

‘······.’

남궁수룡은 분명 같은 후기지수로서 무정검에 대한 호기심이 넘쳤던 자였다.

가능하다면 이번 조우에서 검도 한 번 섞어볼까 그런 생각을 했던 남궁수룡.

지금은 남궁수룡의 머리에 감히 정문과 검을 섞는다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 순간이다.

‘나는···, 나는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 생각이 수룡의 머리를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물론, 가능할 수도 있다.

창천검대의 빵빵한 지원을 받아 당당히 들이닥친다면, 혈영문이야 남궁세가의 상대가 되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일대제자 정도의 무인들.

아직 이립을 넘지 않은 무인 스물을 대동한 채로 이런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거라곤 남궁수룡은 절대. 장담하지 못했다.

“허허허. 이거 상황이···”

예상보다 좋다.

그런 말을 운양이 실수로 뱉을 뻔했다.

당연히 좋은 건 사실이다.

공동은 누구 하나 잃지 않았고 누구 하나 몸도 크게 상하지 않았다.

거기에.

사파의 악적인 혈수살검을 죽이고 장응혈조를 비롯한 제법 이름난 악인을 붙잡았다.

좋다는 말보다 더 이 상황을 설명할 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도인 된 자로서 이런 말을 뱉어선 안 됨을 운양은 잘 알고 있었다.

어쨌건 공동의 이대제자가 몸이 상해 벌어진 일. 이는 제법 묵직한 교훈을 주는 그런 혈사(血事)로 기록되어야 함이 분명했다.

“이 짐들은···?”

장원에 감도는 무거운 침묵은 오봉학이 깬다.

공동의 무인들이 모아 놓은 혈영문도들 옆으로 여러 대의 짐 마차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쳇···.”

그런 오봉학의 귀로 누군가의 바람 새는 소리가 들린다.

이를 놓치지 않는 오봉학.

- 꽈악.

오봉학이 아직 정신이 멀쩡한 혈영문도 하나를 잡아, 짐 마차로 데려간다.

“이건 무엇이더냐? 어찌 짐 마차가 여기 있단 말이냐?”

“쳇. 조금만 늦었어도···!”

- 쫘악!

말을 늘리는 사파인을 향해 오봉학의 좌장이 향한다. 아무런 내력도 없이 그저 뺨을 갈기는 오봉학.

“거지의 인내는 옅은 편이다. 얼른 말하거라!”

“······혀령무는···서녕을 브리려 해씁니드”

좌장에 이가 날아간 문도가 어눌한 발음으로 겨우 말을 뱉는다.

“혈영문이 서녕을 버리려 했다?”

고개를 서둘러 끄덕이는 사파의 잡졸.

“어디로 가려 했단 말이냐?”

“몰읍이다···”

- 쫘악!

다시금 좌장을 후려치는 오봉학.

“서역···,”

- 푹.

혈영문도는 서역이란 말만 남기고는 정신을 놓아 버린다.

“······.”

굳게 닫히는 오봉학의 입.

만약 이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파 연합이 준비를 마치고 서녕에 향했을 때는 이미, 혈영문은 자취를 감춘 뒤였을 것이다.

여기 쌓인 짐 마차와 한자리에 모두 모인 혈영문의 무인들을 보면 이는 쉬이 알 수 있었다. 이들이 빠른 시일에 이곳을 뜨려 했다는 것을 말이다.

‘무정검이 이를 알았단 말인가···? 어떻게?’

오봉학은 바로 정문이 이 일을 알았을 것이라 단정했다.

이미 정문을 몇 번 겪은 오봉학이기에 정문은 당연히 일을 알고 벌인 것이라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흑시창은 아닐 것이다.

개방과 흑시창의 정보가 그렇게 차이나는 품질은 아니니까.

이는.

조용히 무정검에게 물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장원의 마당이 거의 정리가 되어가자, 전각 안의 움직임도 분주해진다.

당문은 의원들이 많은 문파.

시체를 다룸에도 다른 이들보다 훨씬 능숙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당문의 인물들은.

시체를 보며 그들의 사인과 죽음 과정을 밝히는 것에도 능함이 분명했다.

“가주님. 여기를 좀.”

제법 나이가 있어 보이는 의원이 당천정을 부른다. 무언가 보여줄 게 있는 것이다.

“왜 그러느냐?”

“이들을 한 번 보셔야겠습니다.”

다가오는 당천정에게 쓰러진 시신을 보여주는 의원. 그들의 얼굴을 본 당천정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짓는다.

“서영···삼흉?”

“예, 서영삼흉(西影三凶)이 확실합니다. 사천에서도 유명한 이들이 아닙니까?”

“······무정검인가?”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허어. 허면, 서영삼흉을 뚫고 혈수살검을 잡았다는 뜻이 아닌가?”

“······저 역시 믿기진 않으나, 사실입니다.”

“······.”

당천정의 입이 닫힌다.

이미 무정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후한 평을 내렸던 당천정이다.

하지만 이는.

조금 과하지 않은가.

당천정이 머릿속으로 정문의 상처를 떠올린다.

분명 혈수(血手)에 당한 허리와 크게 베인 가슴, 얼굴에 조금 남은 생채기가 전부였던 것이 선명히 떠올랐다.

‘적당한 상처긴 한데···, 너무 적당한 것도 사실이로다.’

그런 의심이 조금 들 무렵.

“이것 때문에 가주님을 불렀습니다.”

의원이 서영삼흉의 시신을 뒤집으며 당천정을 부른다.

의원이 보여주는 상처를 살피는 당천정.

이내 그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 버린다.

“이건···?”

“한 수에 셋의 목을 모두 베고 나갔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쉿.”

연달아 말을 뱉으려던 의원의 입을 당천정이 막는다.

“······?”

지금 밖은 상당히 어수선한 상황.

공동이 해낸 일들은 겉으로만 봐도 큰 파란을 불러올 것이 뻔했다.

당천정은.

거기에 더한 말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본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다른 무엇보다 더 큰 파란을 불러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일수에 죽인 것부터는 잊게나. 그저 셋 모두 무정검에게 당한 거로 끝. 일수는 지우고··· 또, 그 뒤에 뱉으려 했던 말도 지우게. 이건 가주의 명일세.”

“······예, 가주님.”

“다른 이들이 상처를 보고 알아챌 가능성은?”

“의원이 아니라면 없습니다.”

“그럼 됐네. 나가보게.”

“존명.”

의원의 입을 막은 당천정이 무거운 표정으로 전각을 나선다.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계속해서 머리로 계산하는 것이 분명했다.

밖에는.

잔뜩 무거운 표정을 한 정파 무인들이 몰려 있다.

저들 역시.

‘믿기 힘든 것이겠지···’

자신만 하겠냐 만은, 저들 역시 눈으로 본 것을 모두 믿진 못할 것이 분명했다.

“전각 안은 어떻습니까?”

밖으로 나온 당천정에게 오봉학이 다가선다.

“서영삼흉이 죽어있었습니다.”

!!

이제는 놀랄 표정도 말도 모두 소진한 무인들이 그저 깊게 호흡만 내쉴 뿐이다.

“허면···?”

“예, 무정검이 서영삼흉을 뚫고 혈수살검을 쳤습니다.”

“하.”

“허.”

짧은 숨소리.

하지만 그들이 느낀 감정을 표하기엔 충분헀다.

그저 깊은 침묵만이 가득할 때.

화산의 장문 대리 운양이 입을 연다.

“본 것이 모두 놀라운 것은 사실입니다. 허나, 아직 눈으로만 본 것뿐. 공동의 입을 통해 다시금 사정을 청해 듣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당연한 일이다.

사실 무엇보다 우선시 되었어야 하는 일은 이것임이 분명했다.

그저 상황이 너무도 좋았기에, 또 너무도 예상치 못했기에 다들 눈으로 먼저 확인하려 들어 아직 공동과는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지 못한 이들이었다.

“차후의 일도 논의할겸 그리하시지요.”

“맞습니다. 아직 해결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습니다.”

운양이 물꼬를 트자, 이내 무인들의 의중이 한 방향을 향한다.

“잠시 휴식을 가진 후, 제가 무정검과 자정을 불러오겠습니다. 전각에서 뵙는 걸로 하시지요.”

“좋습니다.”

큰 전투는 없었다지만 이틀을 달려온 무인들이다.

다들 휴식이 필요함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대화가 끝나자, 각자 함께 온 무인들의 곁으로 가 휴식을 가진다.

운양은 무거운 걸음을 움직여 함께 웃고 떠드는 공동의 도인들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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