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난주를 향해.
정파 연합은 잔뜩 긴장하며 서녕을 나섰다.
언제든 사파인들이 자신을 습격해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며 말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절대 이런 티를 낼 수 없었다. 그들은 당당히 깃대를 내걸었고 어깨마저 넓게 펼쳤다.
허장성세(虛張聲勢).
말로만 듣던 허장성세를 정파의 무인들이 잔뜩 펼쳐 보이는 것이다.
서녕에서 하루를 걷는 동안은 아무런 인기척도 이들의 주변을 스치지 않았다.
다들 멀리서.
그저 이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것이라 중진들은 그렇게 판단했다.
이틀이 지나고 도시를 하나 건너자, 이내 기척이 느껴질 거리에 사파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직 시비를 건다거나, 습격을 준비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들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정파 연합의 무인들은 더욱 걸음을 당당히 했다.
정문의 말이 틀리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흘이 지났을 무렵.
이제는 정파인들도 이런 움직임이 점점 몸에 붙기 시작했다.
사파인들은 수가 늘었지만, 감히 다가오는 이는 여전히 없는 중이다.
나흘 지났을 때.
이제 정파인들은 감숙과 청해를 나누는 경계, 대통강(大通河)을 건널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정파 연합을 바라보는 사파인들의 눈이 조금 깊어졌다.
만약 저들이 저 강을 편히 건넌다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란 게 사파인들의 중론이었다.
물론 용기를 내는 이는 없다.
그저 말로만. 말로만 저들을 막자는 주장이 계속 허공을 오갈 뿐이었다.
정파 연합의 무인들이 강을 향해 발을 뻗는다. 도하를 시도하는 무인들. 이제는 정말 안전한 땅을 향해 저들이 나아가는 것이다.
“그냥 눈 딱 감고 칩시다.”
“안 되면 도망가면 그만이잖소?”
“옳소이다!”
실제 전쟁에서도 도하 하는 상태는 딱 기습을 받기 좋은 상태.
한 무리의 사파인이 눈을 딱 감고 정파인들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냥 보내지 마라!”
“정파 놈들을 청해에서 내보내지 마라!”
“와아아아아아!”
수는 대략 오십 정도.
숫자만 보면 적지 않은 숫자지만, 저들 중 고수의 수는 한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군중의 심리란 오묘한 것.
저들을 따르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마지막 기회를 놓치기 싫은 욕심조차 사파인들에겐 공존했다.
“에이! 나도 모르겠소이다!”
눈을 딱 감은 다른 사파인들마저 소리치며 앞선 이들의 뒤를 쫓았다.
이럴 때 운 좋게 유명 무인이라도 하나 잡으면 상상치도 못할 명성을 얻을 게 분명했다.
- 쉬이이익!
- 챙! 챙! 챙!
- 깡! 깡!
쏟아지는 사파인들 사이에서 후미에 남은 정파 무인들이 겨우 공격을 막아낸다.
정파 연합 역시 도하 중 자신들을 노리는 이들을 예상한 것이다.
“막아라! 도하를 방해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남은 이들은 최선을 다해 강으로 향하는 사파인들을 막아 낸다.
조금 이상한 점은.
이들의 눈에 별다른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었다.
- 다다다다다다다다!
후발대로 출발했던 사파인들이 더욱 몰려든다. 이제는 하나의 군세와도 같은 사파 무인의 숫자.
남은 정파의 무인은 고작 십여명이 전부.
반대편에서 검기나 권풍을 날려도 이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일 게 분명했다.
사파인들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검을 뿜으려 할 때.
-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반대편에서 방금과 같은 소리가 다시금 지축을 울린다.
“뭐··· 뭐냐?”
고개를 갸웃하는 사파의 무인들.
그들은 당황하지 않는 정파의 무인들과 강 반대편을 번갈아 쳐다볼 뿐이다.
- 솨아악!
- 서걱!
- 서걱!
사파인들은 도하 중 당황하는 정파 무인을 도륙하는 그림을 그렸다.
허나, 반대로.
당황한 것은 자신들.
오히려 여유로운 정파 무인들의 검에 사파인들만이 갈려 나갈 뿐이다.
‘어째서? 어째서 당황하지 않는 거냐?’
조금은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이들이 지어갈 때.
반대편 강변에서 한 무리의 인파가 모습을 나타낸다.
!!!!!
회색 무복.
이제는 강호에서 모르는 이들이 없는 무복을 입은 이들이 제법 많은 수로 모습을 나타냈다.
저들은.
공동의 도인임이 분명했다.
“건너라! 그리고, 저들을 쓸어버리거라!”
풍채 좋은 중년 도사의 목청이 울리자, 이내 회색 도복의 도인들이 반대로 물살을 헤치고 강물을 건넌다.
이제 수는.
더이상 사파의 장점이 아니다.
- 착! 착! 착! 착!
분명 강변에서 머물던 정파의 무인들은 조금 지친 기색이 있었다.
허나 이제 물을 건너오는 저 공동의 도인들은. 아주 쌩쌩한 체력 그 자체였다.
“어디서 감히!”
“이 사파의 악적 놈들!”
매서운 검로가 무자비하게 사파인들을 베어나간다.
후미를 막던 정파의 무인들은 이미 강에 뛰어든 지 오래였다.
이제는 새롭게 모습을 나타낸 공동의 무인 수십이 사파인들을 도륙한다.
이건.
사파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다.
“퇴, 퇴각하라! 퇴각!”
“물러나라! 얼른! 해동까지 물러간다!”
사파인들 사이에서 퇴각 명령이 울려 퍼진다.
공동은 이런 사파인을 쫓아가진 않았다.
그저 강변을 막고 퇴로를 열어주는 공동의 무인들. 본래의 목적이 정파 연합의 도하임을 잊지 않은 것이다.
“사숙. 모두 도하한 것 같습니다.”
“음. 사파인들이 완전히 물러간 걸 확인하고 우리도 돌아간다.”
강을 건너 사파인들을 친 도인은 공동의 복마각주 자공이었다.
자정이 난주에 남겨두며 지원을 데려오라 명했던 자공이 적시에 도착해 정파 연합을 구한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도.
정문의 계산 범위 안이었다.
- 도하 때 적들이 기습할 겁니다. 확률은 반반이지만, 저는 올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 허면, 어찌해야 하는가?
- 서둘러 척후가 강을 건너고 불을 피워 사람을 부르십시오.
- 사람을? 부를 사람이 누가 있다고···?
-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강 건너가 어딥니까?
!!!!
강 건너.
청해에서 대통강을 건너면 나오는 곳은 분명 감숙이다.
그리고 감숙은.
공동의 영역이다.
정문은 당연히 자신들의 사숙이 대통강 유역까지 마중 나와 있을 거라 예상했다.
자공의 불같은 성정에 난주에 앉아서 기다리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임을 잘 아는 것이다.
그리고 자공은.
그런 정문의 기대처럼 대통강 유역에 진을 치고 정파 연합을 기다리고 있었다.
봉화가 오르자 서둘러 발을 옮긴 자공.
중간에 만난 한 거지가 도하 중 공격받았다는 말을 전하자 이내 섬전처럼 달려와 적을 요격한 것이다.
서녕에서 감숙까지.
모든 일이 정문의 손안에서 이뤄진 것만 같았다.
사파인들이 완전히 퇴각한 것을 확인하자 이내 자공도 다시 강을 건넌다.
건너편에서 정파 연합이 망을 봐줬기에 편히 건널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정파 연합은 꿈에 그리던 감숙에 모두 발을 들였다.
“가, 감숙이다!”
“살았다!”
“싯팔, 사파놈들!”
“도하 중 다친 사람은?”
“아, 없어! 아무도!”
이제는.
이제는 걱정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온통 이들의 머리를 채웠다.
감숙은 확고한 정파의 영역.
그것도 구파일방인 공동의 영역이다.
이곳에서 다른 구파일방을 습격할 용감한 무리는 청해보다 훨씬 적을 게 분명했다.
“자공!”
자정이 강을 건너오는 자공을 맞이한다.
조금 위치가 바뀐 것 같은 둘이지만, 뭐 어떤가.
“사형!”
“자네 덕에 살았네! 자네 덕일세!”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요.”
당장에 자공의 지원군이 없었다면 후미는 전혀 도하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적들이야 어찌저찌 물리친다 해도 남은 이들은 상처 입었을 것이 불 보듯 뻔한 일.
더군다나 후미를 맡은 이들은.
“아오, 사숙! 진짜 살 빼고 경신술 수련 좀 더 하십시오! 기다리다 죽을 뻔했습니다!”
정문을 비롯한 공동의 아이들이 아니었나.
“아미타불-. 또, 무정검에게 신세를 지는군요.”
“맞습니다. 이거 서녕에서부터 모두 무정검의 예상이 그대로 맞아떨어졌습니다. 허허.”
반장하며 정문을 새롭게 보는 고암과 정문이 활약해 기쁜 운양이 연신 정문을 칭찬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무정검. 덕분에 무사히 도하했습니다.”
후미에 남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남궁수룡도 정문에게 인사를 건넸다.
열등감과 별개로, 감사는 꼭 전해야 성미가 풀리는 게 남궁수룡이다.
“실로 신기한 자일세. 신기해.”
당천정도 흥미로운 표정으로 정문을 바라본다. 그는 정문에 대해 다른 이들보다 아는 게 많은 사람이다.
도하 후 대열을 정비한 정파의 무인들이 난주로 향한다. 이제는 높이 솟은 깃대도 없이 조금은 가벼워진 걸음으로.
그리고 이들의 주변을.
공동의 도인들이 호위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그림이라, 자정은 그렇게 생각했다.
감숙에 들어선 정파 무인들의 면면하며 그들을 더러 공동이 지킨다니.
몸이 조금 편안해지니 이제는 이런 것도 자정의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서녕을 향해 검을 향했던 정파의 무인들이 무사히 난주에 들어섰다.
공동이 난주를 뛰쳐나간 지 열흘 하고도 이틀이 지난 날이었다.
* * *
“흐음.”
조금은 찰랑거리는 머리의 사내가 서찰을 쓰다듬는다. 들리는 턱과 함께 만족스러운 미소까지 그의 얼굴을 가득 채웠다.
“제법 설치는 검인가 보구나.”
“거칠면서도 때로는 부드러운 검이랍니다.”
그런 사내에게 앵두 같은 입술의 여인이 교태롭게 답을 들려준다.
“흐음···, 나이가···, 나이가 조금 수상하긴 하다만···. 뭐. 그분의 의중이야 내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분께서는···?”
여인은 사내의 말에 조금은 조심스럽게 질문을 붙여본다. 이는 민감한 사안을 묻는 것이다.
“······확실히, 돌아가셨더구나. 시신을 찾느라, 시간이 걸렸다.”
“애도를 표합니다.”
“뭐 당장에야 수보놈을 내 손으로 찢어 죽이고 싶지만···. 참아야겠지. 그분께서 남기신 다른 검이 있다면 말이다.”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흠. 뭐가 좋을까.”
“예?”
“선물 말이다. 선물. 그래도 같은 검끼리 만나는 것은 처음인데, 선물이라도 주면 좋아하지 않겠느냐?”
사내는 새로 만나게 될 인물이 기대되는 듯 연신 들뜬 말을 내뱉는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랍니다. 직접 뵙고 판단을 하시는 게···.”
여인은 사내의 들뜬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려 해본다. 혹여 그들이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라면, 실망마저도 그만큼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아닐 수도 있겠지···. 아니, 아닐 가능성이 더 크려나? 허허, 헌데. 정말 재밌구나.”
“뭐가 말씀이신지요?”
“이 풍진 강호에 내가 모르는 게 있다니. 신기하지 않으냐? 이런 건···, 정말 오랜만이구나.”
보통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기분이 나쁜 법이다. 반대로 사내는 자신이 모르는 것에서 환희를 느끼는 표정을 짓는다.
“······, 사라진 2년은 조직을 모두 동원해도 알 수가 없었답니다. 속하는 이걸 그분의 손이 닿은 일이 아닐지, 그렇게 의심했습니다.”
“일리가 있더구나. 그래, 그분의 손길이라면 가능한 일이지. 나도 모르게 말이야.”
말을 마친 사내가 앞을 향해 손을 뻗는다. 자연스레 다가가 사내를 부축하는 여인.
“무공도 제법에···, 머리도 제법 돌아간다는 말이지. 이런 인재를 그분께서 놓쳤을 리도 없을 거다. 이런 생각도 들더구나.”
“인재를 아끼셨던 분이라 들었습니다.”
“당연한 말을. 내가 그분의 곁에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지. 하하하.”
사내는 여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걸음을 옮긴다.
조금은 푹신한 침상에 몸을 내리는 사내.
그의 모습이 창백해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인다.
“어디···, 강남의 사파라도 몇 개 쓸어가면 좋아하려나?”
“너무 과격합니다, 창두.”
“흐음. 아니지. 강남은 감숙이랑 너무 머니. 청해! 청해에 사파를 모두 쓸어버리자! 어떻느냐?”
“청해는 우리의 주 고객이란 점도 잊지 마셔요.”
“그럼 무얼 줘야 옳단 말이냐?”
“소녀를 찾으셨을 때는 새외에 관심이 있으시더군요. 새외의 정보는 어떠신가요?”
!!
“호오! 감숙이니, 서역의 정보도 좋은 선물이로다. 과연!”
사내는 드디어 답을 찾았다는 듯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곳에 대한 정보라면···, 개방도 아직 알지는 못하겠지. 그걸로 할까?”
“선택은 창두의 몫이랍니다. 소녀는 그저, 조언자지요.”
“흐음···, 애매하구나. 애매해.”
“선택은 창두가 하셔요.”
여인은 사내를 침상에 누이고 이불마저 고이 덮었다. 사내의 거동이 그리 편한 건 아닌 모양이다.
“이제는 곧 정해야 할 텐데···”
“아직은 여유가 있답니다. 창두의 몸이라도 쾌차하고 그분을 보셔요.”
“그래, 그래야지. 이런 상태로 만나기에는··· 너무 아쉬우니.”
사내는 벌써 그리던 이를 만나기라도 한 듯 밝은 미소를 그리며 눈을 감았다.
이제 얼마 후면, 무정검 그자와 만나리라, 그런 행복한 꿈을 기대하며 사내가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