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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공동을 무시하지 마라-78화 (78/153)

78. 복용하거라.

- 퍼엉!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솥뚜껑과 비슷한 무언가가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잔뜩 담은 솥 안의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터져 버린 것이다.

- 까가가가강.

거칠게 튕기며 땅으로 떨어지는 솥뚜껑.

그리고 그런 솥뚜껑이 솟아 오른 곳에는.

옷이 반절 정도 뜯겨 나간 한 도인이 차분히 뚜껑이 날아간 솥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흐음.”

턱을 매만지며 사흘을 공들인 일을 자세히 살피는 정문.

분명 진기를 불어 넣는 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균일하게 이루어 졌다.

단지 그가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것은.

‘마지막에 추가한 재료들이 잘 조화가 되야 할 텐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때때로 하지 않을 실수 역시 욕심으로 인해 발생한다.

계산은 완벽하게 해보고 넣은 재료지만, 그래도 원래 알던 배합과는 다른 방식.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지독한 향이 스물거리며 정문의 코를 간지럽힌다.

양약(良藥)은 고어구(苦於口)나 이어병(利於病)한 법.

오히려 이런 향과 지독한 맛이 더할수록 몸에 좋을 것이란 걸 정문은 모르지 않았다.

무쇠로 된 두꺼운 솥.

그리고 안에는 한 가득 진득한 약재 끓인 반죽이 있는 솥을 정문이 번쩍하고 들어 버린다.

이제는 안으로 옮겨 이를 식힌 후 단약의 모양으로 빚어 말리기만 하면 모든 과정은 끝나는 것이다.

천선단.

지금은 은둔한 신의라 불렸던 이가 처음 배합했다고 알려진 이 단약은.

대환단은 물론이요 자소단과 천뢰단까지.

강호에서 이름난 신단에 비해도 전혀 효력이 모자라지 않은 영단임이 분명했다.

거기에 더 좋은 것은.

신의는 천선단을 함부로 연단하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박애야 넘쳤던 신의였지만, 그는 늘 반골적인 사상이 머리에 가득 찬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천선단을 무림인들이 복용해 내력을 증진시키는 걸 절대 좌시하지 않았다.

그저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딱 그 정도로만 연단되는 게 천선단이었기에 이를 내력 증진용으로 얻은 이는 강호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 것이다.

물론.

어제까지는.

“신의 양반 이거 알면 억울해서 은둔도 깨고 나오시겠네. 크크크큭.”

반죽이 굳지 않게 주걱을 휘저으면서도 웃음이 떠나지 않는 정문의 얼굴.

천선단이 당장에 절대고수를 만들어주는 그런 영약은 아니다. 다만, 지금쯤 사제들이 만났을 작은 벽.

그런 벽 하나쯤은 넘을 수 있게 도와줄 기특한 물건이 천선단임은 분명했다.

정문의 주걱이 돌아간다.

연신 입꼬리도 함께.

이제는 방 안에 자리를 턱, 잡고 한 알, 한 알 단약을 빚어가는 정문의 모습.

그의 뒷모습이.

어깨로 웃고 있었다.

* * *

“복용하거라.”

정문의 근엄한 말이 떨어지자. 이내 사제들의 손이 입으로 향한다.

정문은.

전날 빚었던 천선단을 완성했다.

스승을 찾아가 이에 대해 보고했고, 또 사연 역시 구구절절이 지어내 둘러대었다.

이미 난주에서 당천정과 나눴던 당문의 은거 기인 이야기를 조금 더 풀어내니, 이내 자정의 고개가 끄덕여진 것이다.

정문은 스승과 장로들의 몫을 몇 개 올리고 나머지를 모두 일대제자들에게 풀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이대제자들 역시 복용시키고 싶었으나, 아직 그들의 단전이 영단의 기운을 받지 못할 것이란 게 정문의 계산이었다.

- 텁.

- 텁.

- 텁.

연달아 입에 작은 영단을 넣는 사제들.

그들의 표정이 오만상을 그리며 느리게 영단을 씹어간다.

물컹한 느낌의 영단.

그런 영단이 도인들의 치아와 맞물리자, 이내 힘없이 뭉개져 간다.

조금씩 영단이 모양을 풀었을 즈음.

입속의 침이 나오며 영단과 만나자.

- 사르르르르.

이내 영단이 모두 녹아들며 입안에서 목으로 빠르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흐읍!”

커지며 힘이 들어가는 도인들의 동공.

엿 같은 맛에 이어, 무언가 굉장한 기운이 그들의 몸을 쓸고 가는 것이다.

“놓치지 마라! 그 기운을 잡아 혈맥을 돌려야 한다!”

몰아치는 기운에 그저 평소와 같이 몸을 맡기려던 사제들이 정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지금 자신들이 해야 할 것은.

평소처럼 주천을 돌게 두는 것이 아닌, 자신의 특성에 맞게 직접 주천을 돌려야 하는 것임을 정문이 알려준 것이다.

‘잡아야 한다!’

제일 먼저 기운이 몰아치던 진명이 눈에 힘을 준다. 평소보다 배가 넘게 요동치는 기운을 잡기 위해 그가 집중하는 것이다.

‘잡았다!’

그런 노력의 결과.

결국에는 잡고 마는 요동치는 기력.

그런 기력을 잡은 진명이 자신의 몸속 막힌 곳을 구석구석 찾아가며 뚫어가기 시작한다.

‘황유에서 중완으로, 다시 단극으로.’

거침없이 자신의 기맥을 뚫어가는 진명.

연신 표정을 찡그리는 것이 다른 사제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끄아아아악!”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온다.

기맥을 뚫는 것은 그만큼의 고통 역시 동반하는 법이다.

그렇게.

비명과 신음이 울려 퍼지는 사제들의 고군분투가 두 시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어느새 그들의 주위에는 장로들이 나와 호법까지 서는 중이었다.

- 픽!

쓰러지는 한 사제의 몸.

그는 기운을 모두 돌리고 이내 체력이 다해 몸을 누인 것이다.

그리고 신호처럼.

연달아 다른 사제들의 몸이 하나, 둘 바닥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 픽!

- 픽!

- 픽!

몸에 기운을 품는 것 역시 체력이 필요한 일. 영단이 가진 기운을 흡수하는 범위 역시 몸이 기운을 버틸 수 있는 만큼일 것이다.

영단을 복용한 지 약 세 시진이 흐르자.

이제 가부좌를 틀고 버티는 도인은 진명과 사풍, 명화와 묵환, 그리고 청익과 노각이 전부였다.

조금은 비틀거리는 청익.

그간 연신 괴로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억울한 표정과 함께 정신을 잃고 만다.

평온한 표정의 노각 역시 마찬가지.

이제는 진명과 사풍, 명화와 묵환의 정문 직속 사인방만이 그대로 자세를 잡고 기운을 흡수하는 중이다.

“흠···, 어쩌면···”

어쩌면 전부 흡수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정문을 스쳤다.

세 시진도 넘어 이제는 네 시진에 가까워질 시기.

평온함을 유지하던 네 도인의 얼굴에도 점점 괴로움이 쌓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 픽!

명화의 몸이 쓰러진다.

여린 몸에 여성치고는 제법 오래 버틴 것이다.

다음으로.

- 투욱!

거대한 묵환의 신형도 쓰러진다.

아마도 묵환과 명화까지는.

기운을 전부 흡수하지 못했을 거라, 정문은 대충 그렇게 어림잡았다.

이제는 둘만 남은 진명과 사풍.

둘은 계속해서 경쟁하듯 전신의 혈도에 기운을 넣고 돌리는 중이다.

둘을 바라보는 정문의 눈이 깊다.

이번 고통만 잘 참아 낸다면.

둘 모두 능히 벽을 부수고도 남을 무인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어느덧 해도 넘어가고 다섯 시진을 향해 시각이 달릴 무렵.

- 픽!

- 픽!

두 무인의 몸도 모두 바닥으로 향했다.

이미 주변 사제들은 몸을 약왕당으로 옮긴 지 오래. 두 무인은 마지막까지 기운을 흡수하고 체력을 다한 것이다.

정문이 둘의 신형을 나란히 들어 올린다.

마지막까지 버틴 사제들.

천선단의 기운을 기어코 모두 흡수한 사제들을 마지막으로 공동의 연무장이 텅 비게 되었다.

* * *

진명이 눈을 뜬다.

그의 눈앞에는 분명 약왕당의 풍경이 복잡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 내가 정신을 잃은 건가?”

“모두가 그러셨습니다, 사숙.”

가볍게 진명의 이마를 닦으며 수발을 드는 이대제자.

이미 모든 일대제자들이 정신을 잃었기에 이대제자들이 약왕당에 와 이들을 보살피는 것이다.

“······다른 사제들은?”

“이미 정신을 차리신 분들은 모두 처소로 돌아가셨습니다. 딱히 이상이 있으신 분들은 없었습니다.”

“······.”

당장에 실감은 나지 않는다.

자신이 영단을 복용했고 그를 통해 기맥을 여러 번 뚫었다는 사실도 모두 말이다.

“거동에 불편함이 있겠느냐?”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으십니다.”

“······그래, 내 이제 되었으니 가보거라.”

“예, 사숙.”

그저 자신의 몸에 별다른 변고는 없나 확인한 진명은 이내 아무런 변고가 없음을 확인하자,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 후욱.

휘청거리는 진명의 몸.

이는 별다른 이상이 있어서라기보다, 몸이 너무 가볍게 느껴져서라는 말이 더욱 맞을 것이다.

‘······?’

진명이 다시금 걸음을 내디뎌 본다.

확실히.

몸을 움직이는 것이 이전보다 몇 배는 가벼운 진명이다.

‘······이것 참···’

적응되지 않는다.

처음 든 생각은 당연 그것이었다.

조심스레 한 발짝씩 내딛는 진명.

그가 약왕당의 전각을 모두 벗어나고 나서야 어색한 걸음걸이를 지우고 일상처럼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진명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조금은 익숙하지 않은 몸을 이끌고 처소로 돌아가 쉬는 것이 응당 이치에는 맞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진명은 무인이다.

무인은 그에 걸맞은 욕심마저 있는 법.

진명은 당장에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욕심보다는 변화된 자신의 상태를 무공으로 확인하고 싶은 욕심이 가득했다.

가벼운 진명의 몸이 그대로 서대로 향한다.

서대의 뒤, 늘 수련을 하던 그 숲에 진명이 도착했다.

그리고.

- 쩌어어어어엉!

- 쓔이이이이이익!

- 쿠아와아아아아앙!

이내 굉음들이 힘겹게 도착한 진명을 맞이한다.

‘이건 또, 무슨···?’

익숙하지 않은 굉음.

평소라면 수련하는 이들이 숲속 곳곳에 있을 것이기에 처엉! 하거나 슈욱! 하는 소리 정도는 들려도 저런 굉음은 들리지 않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진명은 자신의 몸이 허해져 조금은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라 그렇게 생각하며 검을 쥐었다.

‘확실히 몸은 가볍다.’

어쩌면 무공이 한 단계 더 진일보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검을 뽑는 진명의 손에 조금은 힘이 들어갔다.

- 스르응!

평소보다 더욱 날카롭게 뽑히는 검.

진명은 기대와 불안감이 반반 섞인 상태로 이내 검로를 펼쳐 본다.

- 쉬이이이이익!

평소와 같이 천운검을 펼치는 진명.

그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검로를 그리는 것임에도 무언가 묵직한 촉감이 손을 타고 전해진다.

‘······?’

이런 감촉은 어딘가 검이 걸릴 때나 느껴지는 감촉. 이는 몸이 무겁거나 자신의 검로가 잘못되었음을 뜻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스쳤다.

‘영단에 너무 기대한 것인가.’

- 픽.

실소.

약간의 실소를 지으며 자신의 마음을 진명이 다잡으려 하는 그때.

- 성! 성! 성!

- 성! 성! 성!

이미 검을 긋고 돌아선 진명의 뒤로 검로가 지났던 자리에 있던 나무들이 모두 토막나기 시작한다.

!!!!!

이제야.

진명은 자신의 손에 걸리던 감촉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실제로 베여진 것.

저 쓰러지는 나무들의 감촉이 검기를 타고 진명의 손에 전해진 것이다.

새로운 경지가.

진명의 손에서 펼쳐졌다.

- 쿠꽈아아아아앙!

한창 감상에 빠진 진명의 뒤로 다시금 굉음이 울려 퍼진다.

이제는 확실하게 들린 굉음.

이제 진명은.

저 소리가 들려오는 원인을 모르지 않는다.

‘주먹이면···, 묵환인가?’

자신의 사제들 역시 자신과 똑같은 연유로 처소가 아닌 이곳을 향해왔다, 그게 진명의 결론이었다.

“허허.”

그저 웃음만 나는 상황.

이 추측이 맞다면, 조금 전 숲 입구에서 들었던 소리는 모두 사제들이 내는 소리란 말이 아닌가.

자신 역시 이제야 한 번 내어본, 검 휘두르는 경쾌한 소리를 말이다.

이제야 진명의 얼굴에 안도감이 찾아온다.

그리고 기대감도 함께.

진명은 들려오는 소리를 배제하고 그저 홀로.

차분히 새롭게 얻은 것 같은 몸에 무공을 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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