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진짜 신의라도 만난 건가.
이건 뭔가 잘못됐다.
“아니···”
일단 정문의 입에서 ‘아니’란 말이 나온 이상, 무언가 자신의 생각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왜?”
갸웃까지 하는 정문의 고개.
그는 지금 일어나는 조화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정문은 이미 며칠 전 사제들에게 천선단을 모두 복용시켰다.
스승과 사숙들이야 이미 경지를 이뤘기에 알아서 복용하면 될 일이고, 이제 남은 것은 자신뿐일 것이다.
그간 밀린 수련과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무공을 정리할 필요도 있었기에, 천선단을 든 정문은 스스로 폐관동에 들었다.
천선단은 분명 수련과 무공 정리 둘 모두에 도움을 줄 것이라 그렇게 믿으며 말이다.
하지만.
정문을 기다리던 결과는 꽤나 가혹했다.
가부좌를 틀고 눈에 결심까지 굳히며 천선단을 삼킨 것도 잠시.
- 쿠오오오오.
하는 작은 소리만 들리더니, 이내 정문의 몸은 아무런 변화도 마주하지 못했다.
“······?”
분명 사제들이 복용했을 때는 몸 밖에서 관찰하던 자신의 귀에까지 들릴 정도로 요동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헌데, 지금은.
방금 그게 전부였다.
“쿠오오오오? 끄으으읕?”
정문의 표정이 뒤틀린다.
이건, 계획은커녕, 상상도 못한 일이다.
“아니···, 뭔··· 영단이 복불복인가?”
모든 영단이 최상품일 수는 없다.
자신이 빚은 수많은 영단 중 한둘은 불량도 있어야 인간미가 있지 않나.
정문이 다시금 소매를 뒤진다.
분명 감춰 둔 영단이 하나 정도는 더 있을 것이다.
강호에서야 한 번 보기도 힘들다는 천선단이지만, 이제 공동에는 오히려 이를 보지 못한 이가 드문 것도 천선단이다.
이를 만든 정문이 여러 개를 가지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 스윽.
소매에서 새로운 영단이 하나 나온다.
이번에는 질감도, 색감도 모두 겉으로 보기에는 최상품에 가까워 보이는 그런 영단이다.
‘이번에는··· 꼭!’
다시금 눈에 힘을 준 정문이 손을 들어 영단을 입에 밀어 넣는다.
- 텁.
엿 같은 맛과 고약한 냄새가 다시금 정문을 크게 치고 간다.
- 우걱, 우걱.
겨우 이를 참아내며 턱을 움직이는 정문.
그런 그의 입속에서 침이 새어 나오며 이내 영단을 녹여 목으로 이를 흘려보낸다.
이제, 곧.
헉 소리가 나오는 기운이 자신의 몸을 몰아칠 것이다.
‘와라!’
이를 악물고 어깨에 힘까지 주며 정문이 기운을 기다리던 그때.
- 쿠오오오오오.
하는 소리가 다시 들리더니, 이내.
기운이 멈춘다.
‘???’
눈만 껌뻑거리는 정문.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다.
‘끝?’
분명 이번 영단은 불량이 아님이 확실했다.
아무리 자신이 전문가가 아니라지만, 정해진 배합에 따라 만든 영단이 연속해서 두 개나 불량이란 말은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건, 천선단이 정문의 몸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란 말이 된다.
‘왜?’
정문이 머리를 쥐어 잡는다.
동공은 그저 좌우를 왕복하며 상황을 파악하려 무단히도 애쓸 뿐이다.
“단전이··· 두 개라서?”
라는 가설은, 이미 천선단을 두 개나 복용했기에 무참히 논파가 가능하다.
“내 기운이 들어가서?”
라는 논리면, 한 문파의 단약 중 자기 문도들에게 쓰일 단약이 몇 개나 남겠나.
- 벌떡.
정문이 몸을 일으킨다.
서둘러 몸에 내력을 돌려보아도, 별다른 변화가 없음이 분명했다. 조금. 아주 조금 내력이 늘어난 느낌은 있으나, 단전이 두 개인 정문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정문의 머리.
그래, 이건.
“···이미 먹었네.”
한 번, 이미 한 번 천선단을 복용한 상태이기에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이 분명했다.
“······진짜 신의라도 만난 건가···”
사문에 돌아오기 전 2년간의 행적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자신도 그렇고, 흑시창도, 개방도 말이다.
“······.”
안 되는 걸 어쩌겠나.
방법이 없다.
다른 영단을 만들기에는 재료가 없고, 남은 영단을 모두 때려 박아 조금의 공력이라도 올리기에는 천선단이 너무 아깝다.
때로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
이번 수확은 그저 사제들의 내력을 증진 시킨 것에 두기로 한 정문이 몸을 일으켜 짐을 꾸린다.
‘아···, 자신 있게 폐관한다고 했는데···’
폐관동에 들어 온 지 두 시진.
역대 가장 짧은 폐관 수련을 마치고 조금은 뻘쭘하게 정문이 밖으로 향했다.
* * *
요즘은.
그러니까, 천선단을 복용한 뒤인 요즘, 사제들은.
정문과 잘 어울리지 않고 있다.
뭐, 따돌림이나 심각한 상황인 건 아니고, 그저 지금은 각자가 개인 연공에 힘을 쏟을 시기란게 그 이유였다.
천선단의 기운을 품은 사제들은 정문과 대련하며 무공을 다지는 것이 아닌, 스스로 수련하며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로 했다.
성취란 타인이 이끌어 줄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또, 스스로 넘어야 할 부분도 있다.
지금 사제들이 마주한 부분은 후자에 가까운 부분일 것이다.
정문 역시 이러한 사실을 알기에 별다른 말 없이 사제들을 보내줬다.
“기대하십쇼.”
“끝나면, 각오하시고.”
“그때는 꼭! 한 방 그을 겁니다?”
“목 닦고 기다리십쇼.”
살벌한 말과 함께 성취를 다짐하는 사제들.
말투가 더욱 거칠어진 것이 천선단의 영향인지 내재된 본성인지는 정문도 알 수가 없다.
“걱정마십쇼, 폐관한다고 말해 놓고 두 시진 만에 나오거나 그러진 않을 테니까.”
“허허허, 사형, 그런 사람도 있습니까?”
“······.”
이게 한둘이면 몰라도 수십의 사제가 저렇게 정문을 대해버리니 일방적으로 골려주던 정문과 사제들의 관계가 조금은 대등해져 가는 것만 같다.
그렇게.
사제들이 저마다 홀로 자리를 잡고 수련을 시작한 지 두 달이 흘렀다.
혈영문에 대한 이야기마저 조금은 잠잠해지고 공동을 바라보던 시선들도 차츰 누그러지려 하던 그때.
정문은 한창.
심심해하던 중이다.
정문이 할 일이 뭐가 있겠나.
그저 후계자의 사무는 성장이 전부.
수련 외에는 사제들의 수련을 봐주는 게 일이던 정문은 가끔 사질들을 봐주는 거 말고는 할 게 없는 요즘이다.
그래서, 정문은.
매주 산을 내려가, 평량으로 향했다.
“오, 온다!”
“무, 무정견, 삼호!”
마치 정해진 신호가 있는 것처럼.
공동산에서 평량으로 향하는 길, 그 길목에서 구걸하던 거지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분타로 달려간다.
쪽박마저 내던진 채 발을 재촉하는 거지들.
이제는 반년이 넘도록 이곳 평량에 머물며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개방의 분타가 비상이 걸렸다.
“수, 숨어라! 무어라도 꼬투리가 있는 놈은 전부!”
본디 오결개(五結丐)부터는 개방 내에서도 간부로 불리는 배분이다. 그런 오결개는 간부답게.
개방의 대피를 지휘하고 있다.
도사의 눈에 거지의 꼬투리가 어디 한두 개겠냐 만은, 최대한 트집 잡힐 것을 줄여보려는 노력이다.
사제들이 놀아 주지 않자 평량으로 매주 내려온 무정검은 수시로 개방 분타를 엎어 버리곤 했다.
거지에게 더럽다느니, 거지에게 구걸한다느니 같은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며 온갖 행패를 부리고 다녔던 무정검.
이제는 개방 거지들 사이에서 무정검이라는 칭호보다 무정견(無情犬)이라는 칭호로 더욱 자주 불리는 정문이다.
“자, 장로님은?”
이런 비상사태는 오봉학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일전에 서녕에서 정문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 오봉학은 정문에게 처절한 복수를 당하고 있었다.
평량 거지들 쪽박을 다 깨겠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던 셈이다.
한 사결개가 서둘러 오봉학의 집무실에 들어선다. 오봉학 역시 저 사악한 무정검을 감당하지 못하기에 얼른 대피시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미 텅 비어버린 오봉학의 집무실.
처음 무정견이 온다는 외침이 들림과 동시에 오봉학은 잽싸게 도망을 친 후였다.
개방에서 50년을 버틴.
철면노개(鐵面老丐)라는 이명에 알맞은 그런 대처였다.
판자로 대충 지어진 장원 내부에는 혼란만이 가득했다.
최대한 트집 잡힐 것을 치웠다고는 해도, 무정견은 없는 트집마저 만들어 내고 마는 그런 자였다.
두려움이 방도들을 채울 무렵.
“내가 처리하마.”
진한 눈썹에 조금은 큰 얼굴.
다부진 몸과 험악한 인상의 거지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허리에는 여섯 개의 매듭이 멋들어지게 걸려있다.
“호, 홍형!”
홍구.
개방의 평량 분타에서 오봉학 다음으로 배분이 높은 홍구가 앞에 나서자, 이내 방도들의 혼란이 조금 줄어든다.
차기 칠결개 후보로 불리며 먼 훗날에는 개방의 방주가 될지도 모르는 개방의 기대주, 호연신개(浩然新丐) 홍구가 나서자, 혹시나 하는 그런 기대가 거지들을 스친 것이다.
무릇 예전부터 개를 잡는 것은 거지들의 일이었다. 앞뒤 안 가리고 사람에게 달려드는 개는 개방의 죽봉에 맞아 버릇을 고치게 만들어야 하는 법.
개방이 너무 강호에서 대접받아 본분을 잊은 것일까.
다른 방도들이 조금은 숙연한 표정을 지으며 홍구의 호연지기에 감명한다.
그래, 무정견이든 뭐든.
개방의 죽봉으로 혼내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개방의 거지들이 조금은 다짐을 다잡고 있을 무렵.
- 콰아아아앙!
판자로 된 분타의 대문이 거칠게 날아간다.
그리고 모습을 나타낸 이는.
모두가 아는 그, 공동의 대제자, 무정검 이정문이었다.
홍구의 몸이 서서히 정문을 향해 움직인다. 이제는 제법 탄력까지 받아 달리는 모양새의 홍구.
- 탓 ! 탓 ! 탓 !
홍구는 경신술까지 곁들인 걸음으로 정문에게 다가섰다.
호연신개가 항룡십팔장(亢龍十八掌)을 다섯 수나 익혔다던데, 여기서 보여주려는 것일까.
방도들의 눈이 빛을 발하던 그때.
“오셨습니까! 형님!”
홍구의 허리가 직각으로 꺾인다.
!!!
분명.
누가 보아도.
홍구의 외견은 정문보다 못해도 열 살은 더 많아 보이는 외견이다. 헌데 갑자기 형님이라니?
방도들은 전혀 알 수 없는 호연신개의 행동에 어안이 벙벙한 중이다.
“야.”
그저 앞으로 시선을 향하며 눈만 내리까는 정문. 그의 시선이 닿은 홍구의 뒤통수가 유난히도 뜨겁다.
“내가 산문 쪽에 거지새끼들 두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하셨···습니다···.”
확신은 없다.
여기서 부정하는 말을 하면 곧장 매질이기에 홍구는 정해진 답을 택해 얼른 답했다.
“내가 오는 길에 본 놈들은 뭘까? 아, 걔들은 개방 거지가 아닌가?”
“···그···럴 수도 있지···않을까요?”
“그래? 그럼 내가 걔들 잡아다 매질해도 개방은 아-무 상관없겠네? 맞지?”
“······.”
- 턱.
정문의 손이 홍구의 뒤통수에 올라간다.
폭행이나 공격, 뭐 그런 거는 아니다.
그저 아래위로 쓰다듬으며 홍구의 뒷머리를 만져대는 정문의 손길.
오히려 이런 손길이.
더욱 무서운 법이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거지 생활 끝나냐?”
“······시정하겠습니다!”
“잘하자, 진짜. 상도(商道)라는 게 있지, 어디 도사들 영업하는 데 거지들이···!”
산문이 도사들 영업하는 곳이란 말은 또 처음이다.
그저 산에 오를 향화객의 주머니를 가볍게 만들지 말라는 뜻이겠지만,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불손한 말이 아닌가.
그래도.
그저 조용히 넘어가는 게 상책일 것이다.
“호, 호연신개가···?”
“홍형이 어쩌다···”
자신이 처리하겠다며 자신 있게 나섰던 홍구. 그런 홍구에게 믿음의 시선을 보냈던 방도들이 차츰 시선을 거두어 간다.
아무리 거지라도.
저건 너무한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 무렵.
주변의 풍경이 이들의 눈에 들어온다.
적어도 다른 날에 비해 오늘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아무것도 부서지지 않았다.
심지어 쪽박까지 멀쩡하질 않나.
‘처리한다는 말이···’
이런 거였음을 이제는 방도들 모두가 알게 되었다.
사실 홍구는 이미 두 달 전 정문에게 도전한 전적이 있다.
개방에 와서 행패를 부려도 그저 모른 척하는 오봉학과 달리, 홍구는 이를 참지 않았다.
물론 무정검이 서영삼흉과 혈수살검을 베어버렸다는 소식은 홍구도 들었다.
허나, 모든 일에는 상상치 못한 행운이나 우연이라는 것도 깃드는 법.
아직 이립도 되지 않은 무인에게 겁을 먹을 만큼 호연신개는 소인배가 아니었다.
한바탕 난리를 치고 돌아가던 정문의 뒤를 쫓았던 홍구. 공동산의 산문에 닿고 나서야 홍구는 정문과 마주 설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죽지 않을 만큼.
딱 그만큼만 홍구는 정문에게 얻어맞아야 했다.
그날, 개방의 차기 방주, 육결개 홍구가.
단전을 위주로 날아드는 칠상권에 등을 돌리고 도망친 일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일 것이다.
그래서 홍구는.
정문에게 고개를 숙이고 그를 형님으로 모시기로 했다.
강호에서는 나이 어린 이에게 반해 동생으로 의형제를 맺는 경우도 흔하지 않은가.
자신의 패배를 필사적으로 포장하려던 홍구의 발악이었다.
‘······항룡십팔장을 모두 배우면···’
꼭 복수에 나서리라.
꼭 개방의 방주가 되어 언젠가는 공동산에 거지촌을 짓고 말겠다는 야심이 홍구의 가슴에 새겨진 날이었다.
정문은 홍구를 지나쳐 개방 분타의 상석으로 향해 몸을 앉혔다.
누가 본다면 정문이 이곳의 주인인 것과 같은 자세가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홍구는 어느새 정문의 옆으로 다가와 여전히 허리를 살짝 꺾은 채 대기하는 중이다.
“해서, 내가 말한 건?”
편하게 자리 잡은 정문의 입이 열리자, 이내 홍구는 주변에 눈짓을 보내 얼른 방도들을 물렸다.
함께 있어 봐야 화만 당할 것이 뻔하기에 눈치를 받은 개방의 거지들은 순식간에 분타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상황.
분타의 거지들이 모두 안을 비운 걸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나서야 홍구가 정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정기 보고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