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는 공동을 무시하지 마라-84화 (84/153)

84. 돈황으로 가자.

새외(塞外).

흔히 요새 바깥이라 불리는 그곳은 중원의 인물들에게는 미지의 장소에 가까운 곳이다.

북해(北海), 동령(東瀛), 서역(西域), 서장(西藏), 남만(南蠻)까지. 세세하게 바라본다면 더 많은 곳이 있겠으나 흔히들 말하는 새외는 이 다섯 곳을 말한다.

북해는 흑룡강을 넘어 더한 북으로 가야 마주치는 곳이고 동령은 바닷길을 건너 섬으로 닿아야 한다. 서역은 감숙과 청해에 붙어 있고 서장은 사천의 너머에 있으며 남만은 운남과 면을 맞대고 있다.

당연히.

변방이라 칭하는 곳에 새외가 붙어 있는 것이다.

변방이란 특성과 중원 황실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다는 특성은 결국 중원인들이 이곳에 대한 관심을 끊게 만들었다.

풍요로운 중원에 비해.

새외는 너무도 척박하기에 중원인이 감히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새외에 대한 정보는.

개방보다는 흑시창이 앞서고 있었다.

지금 정문이 구하려는 서역에 대한 정보 역시 마찬가지.

너무도 척박한 땅이기에 거지가 오히려 어울리지 않는, 그런 역설적인 곳이 서역이다.

계집은 봉긋 솟는 살집이 잡히면 웃음을 팔고 사내는 팔에 언덕이 솟으면 짐을 나르고 고삐를 잡아야 하는 그런 곳이 서역이고 새외였다.

개방 거지라는 놀고먹는 정의의 사도는.

풍요로운 중원인의 사치인 셈이다.

그렇게 웃음을 팔고 짐을 나르며 고삐를 잡는 인물들은 자연스레 흑시창의 인물들과 어울리고 또 흑시창에 스며들게 된다.

개방보다 흑시창이 새외에서 더 날아다닐 수 있는 이유였다.

그런 흑시창의 창두가 서역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정보를 다루는 자는 누가, 어떤 정보를, 언제 원하는 지까지 알고 있어야 하는 법이다

정문의 눈앞에 있는 저 흑시창의 창두이자 자신의 수하였던 조륜은. 그런 면에서는 일을 아주 잘하고 있는 것이다.

“서역에 새로 생긴 단체가 있다던데.”

정문은 차분한 어조로 놀란 기색이 없이 말을 뱉었다. 자신이 딱 필요한 정보를 물어 조금은 놀랐지만, 얼른 표정을 갈무리했다.

“설매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그저 새로 생긴 단체가 있다는 것까지.”

“흠···.”

개방도, 흑시창도, 금의위도.

각자 맡은 직위에 따라 다룰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된다.

당시 정문이 만났던 설매는 평량의 지부장.

감숙의 단주로 올라선 뒤 더한 정보를 받았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흑시창의 창두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나름 선심을 쓴 모양이군.”

“창두가 다루는 정보는 조금 달랐으면 하는데···”

“다르지.”

- 씨익.

조륜의 입에 웃음이 걸린다.

선물로 준비한 정보가 제법 큰 모양이다.

- 툭.

조륜의 품에서 서책이 하나 나온다.

늘, 흑시창은 이렇게 정보를 정리해 서책으로 전해준다.

창두 역시 이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미리 준비한 건가?”

“흑시창의 방식이지”

“마음에 드는군.”

“이제 가보도록.”

받을 건 받았고 줘야 할 건 줬다.

조륜은 모든 볼일이 끝났다는 듯 정문을 향해 축객령을 내렸다.

“매정하군.”

“자주 볼 테니 아쉬워하진 말고.”

“자주···?”

“그분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나? 그대를 돌봐달라고.”

“그게···”

“‘어떻게’는 적혀있지 않았지.”

그제야.

조륜의 입에서 저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정문은 자신이 오랜 기간 조륜과 떨어져 있어 중요한 것을 놓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방식.

조륜을 다룸에 있어서 방식까지 모두 묶어 놔야 한다는 사실을 정문이 놓친 것이다.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이상한 표정을 하는군? 그대를 돌보고 보살피겠다는 말을 하는 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표정 같은데···?”

분명 조륜은 광기가 가득한 충정으로 이전 생에 정문을 대했었다. 이는 깊은 충정이었으나, 한편으로는 꺼림칙한 면이기도 했던 점.

이제는 조금 그런 꺼림칙함이 없이 서로를 대하나 기대하던 정문의 기대가 깨어지려 하고 있다.

“······.”

“너무 걱정은 말고. 그저 돕겠다는 뜻이니.”

그래, 기우.

기우일 거라, 정문은 자신이 조륜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많기에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이라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배웅은 없네. 또 보지.”

- 휘릭.

가만히 멈춰서 잠시 생각에 빠진 정문에게 조륜이 다시금 축객령을 내린다. 장포까지 휘두르며 돌아선 모습이 단호하게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만나서 반가웠다. 그럼.”

정문은 불안한 생각을 머리 한 번 터는 것으로 날리고 조륜을 향해 작별을 고했다. 반가웠다는 마지막 말에 조륜이 슬쩍 반응한 것 같았지만, 별다른 제지는 없었다.

정문의 발이 흑시창의 지부를 나선다.

오랜만에 본 그리운 얼굴.

그리고 여전한 충정까지.

사실 조륜을 만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도 많았다. 이미 이전 생에 미련을 털어버린 정문에게는 굳이 그때 사람들을 만나며 연을 쌓는 것이 그리 중요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늘의 만남으로 인해 조륜이 수보 조숭에게 복수하겠다며 달려드는 것만큼은 막아냈다.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남긴 이전 생에 대한 미련을 모두 턴 것이라 정문은 그렇게 여기기로 했다.

공동산으로 돌아가는 정문의 발이 느릿하다.

이상하게도 달은 꼭 이런 날 더욱 밝은 법.

정문의 그림자가 계속해서 길어진다.

다섯 걸음. 세 걸음. 한 걸음.

점점 빈도가 늘어나며 멈추는 정문의 그림자.

마지막으로.

딱, 마지막으로 산문 앞에서 뒤를 한 번 돌아본 정문의 그림자가 지금 정문이 있어야 할 곳을 향해 내달렸다.

*

“가셨습니다.”

보이지 않을 것이 분명함에도 창밖의 풍취를 바라보는 조륜을 향해 설매가 말했다. 그의 어깨가 조금은 떨리는 것 같았지만, 날씨 탓이라, 설매는 그렇게 여겼다.

“음.”

꼴깍 소리까지 내며 침을 한 번 삼키는 조륜.

“어떠셨나요?”

“무엇이 말이더냐?”

“찾던 사람이 맞는지요?”

“찾던 사람이 맞냐라···, 애매한 질문이구나···.”

단순한 질문이다.

애매한 질문이 아닌.

헌데도 조륜에게는 저 질문이 조금은 애매하게 들리는 모양이다.

“······찾던 사람이냐 묻는다면, 맞다는 게 답이겠구나.”

“다행입니다, 창두.”

“허나.”

- 스윽.

조륜이 몸을 돌려 설매를 향한다.

백태가 잔뜩 낀 눈에도 반가움과 기쁨, 또 그리움과 슬픔이 복합적으로 아려있다. 그리고 반짝이는 다른 무언가도.

“오늘 찾으려 했던 사람은··· 아니더구나.”

한 줄기의 물기가 조륜의 뺨을 타고 흘렀다.

* * *

조륜이 건네준 서책을 정문이 찬찬히 읽어간다.

“음···.”

서책에는 서역에 새로이 생겼다는 그 세력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흑시창의 추측, 그리고 그들의 동향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중원의 문파가 모은 것치고는 제법 잘 모은 자료였다.

개방보다도 훨씬 실한 정보였고 고생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중원의 문파치고 잘 모은 자료였을 뿐이었다.

중원의 다른 문파에 대한 자료에 비한다면 턱없이 적은 정보의 양. 이는 새외에서 나름 정보 수집에 능하다는 흑시창도 그들의 뒤를 쫓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직접 가볼 수밖에 없나···”

그림자가 드리우는 정문의 눈.

당장에 새외로 치고 들어가 조사를 하는 것은 정문 역시 무리일 것이다.

정문이 황궁에서 대(對) 무림 정보를 다루는 일을 하긴 했어도 어디까지나 그 대상은 중원 무림이었다.

새외란 정문에게도 조금은 어려운 곳일 것이다.

- 턱.

정문이 책을 덮는다.

이미 눈으로는 모두 읽었다.

즉, 머리에는 모두 넣어 두었다는 뜻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분석과 파악.

정보는 모으는 것보다 모은 후가 더 중요하다.

‘새외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실히 근처까지는 가볼 가치가 있겠군.’

턱을 만지며 주변을 살피는 정문.

혹여나 지금 자신이 그리던 그림에 지금 감지되는 서역의 움직임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상해 보는 것이다.

깜깜하다.

무지(無知)의 영역.

정보를 다루는 자가 가장 싫어하는 알 수 없음의 영역이 정문의 머리를 덮었다.

꿈틀거리는 미간.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음이 분명했다.

그들은 중원에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하며 또, 중원에 있는 문파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불러 모으는 이들에게는 정파와 사파라는 구분이 필요치 않으며 부르는 목적 역시 알 수 없다.

허나,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공동이 머무는 감숙의 경계 바로 앞이라는 점이다.

감숙은 어디까지나 공동의 영역.

그리고 정문이 그리는 공동의 그림에는 감숙이 꼭 필요했다. 해서, 감숙과 면을 맞대고 있는 서역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세력이 준동한다면. 공동파 만큼은 이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후우우우.”

사문에서 처리해야 할 일은 모두 마쳐두었다.

사제들의 수련.

이는 이미 원하던 성취 이상을 이뤄냈다.

천선단이라는 영약을 먹인 덕도 있지만, 사제들이 스스로 수일(守一)해준 덕일 것이다.

사제들의 경험.

이도 이미 반절은 해냈다.

강호 곳곳으로 퍼져나간 사제들은 저마다 다른 각자만의 모험에서 무언가를 얻어 올 것이다. 강호행이라는 형식은 처음이지만, 이들은 이미 경험이 한미한 구파의 일대제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혈영문에서 일이 도움이 될 테지.’

자신이 기다리던 인물까지 마주한 이제는.

정문 역시 사문을 잠시 비워도 될 시기라, 정문은 그렇게 판단했다. 마침 들어온 정보 역시 실사(實査)가 필요하던 참.

그토록 고민하던 강호행의 목적지도 일거에 해결된 셈이다.

정문이 창가로 향한다.

달빛 역시 정문이 창가로 온 것을 아는지 조금은 밝은 빛을 나려 공동산을 훑어 준다.

마치.

마치 이 풍경을 눈에 가득 담아 놓으라는 은유처럼 느껴지는 순간.

정문은 그런 달빛의 배려를 거절하지 않는다.

저 멀리 보이는 태청궁의 지붕.

그 위로 보이는 조천문의 뒤태.

중대에 있는 단상과 넓은 연무장, 그리고 서대에 있는 작은 연무장의 모든 전경과 저 멀리 연지하에 비치는 달빛까지.

정문은 짧은 순간이나마 달빛 속에서 자신이 속한 곳의 아름다운 풍취를 눈에 담았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

그래, 그곳은 바로 여기라고 외치는 듯한 눈빛.

그런 눈빛이 계속해서 공동산을 훑었다.

만족스러운 하루.

그런 하루를 정문이 창문을 닫으며 끝맺었다.

다음날.

정문은 아침 일찍부터 태청궁에 들었다.

얼마 남지 않은 강호행 명단에 자신과 사제들의 이름을 올리기 위한 것이었다.

당연히.

사제들에게는 아직 통보하지 않은 상태였다.

“어? 정문 사혀어어어엉!”

조천문을 넘어 중대로 들어서는 정문을 향해 명화가 방방 뛰며 손 인사를 건넨다. 명화의 뒤로는 정문의 직속으로 배속받은 사제들이 모두 모습을 함께하고 있었다.

“마침 같이들 있었구나.”

“예, 사형. 평량에 다녀오십니까?”

조천문을 넘었다는 말은 도관을 벗어나 다른 곳에 다녀왔다는 뜻. 진명은 정문이 자주 평량에 드나드는 것을 알기에 이리 물었다.

“아니. 태청궁에 다녀왔다.”

태청궁이라는 말에 크게 반응하는 명화.

뒷짐을 살포시 쥔 명화가 슬쩍 걸음으로 정문을 향하며 말을 물었다.

“태청궁이요오오? 왜요오오오? 혹시- 강. 호. 해앵?”

때로는 여성의 감이 그 어떤 논리보다 무서운 법.

명화가 가볍게 던진 저 말은 정답이었다.

“응. 강호행.”

!!!

“어···, 어···? 진짜요?”

“안 그래도 찾으려 했는데 잘됐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처음에는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던 사제들도 이제는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정문을 바라본다.

본디 감숙을 떠나 더 넓은 중원을 돌아보라는 의미에서 나가는 게 강호행이다.

이번에는.

감숙이 아닌 다른 큰 도시를 구경할 거란 기대가 이들의 눈에 가득했다.

“조금 실망할 텐데···, 괜찮으려나.”

“어딜 가든 사형과 함께라면 무난하진 않을 겁니다. 편히 말씀하십쇼.”

이제는 퉁명스러운지 아닌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는 사풍의 반응이다.

“······뭐, 칭찬으로 들으마.”

아마도 목적지를 들으면 사제들은 실망할 것이다. 가는 길도 험하거니와 그리 새로운 도시도 아니니까. 거기에 이들이 기대하는 중원도 아닐 것이다.

해도.

지금은 가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너무 늦을 수도 있다.

정문이 살펴본 흑시창의 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분명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서역에서 일이 생긴다면 일차적으로 타격을 입을 곳은 응당 감숙이다.

사제들이 조금은 아쉬워해도.

지금은 눈물을 머금고 나서야 할 때이다.

씁쓸함과 미안함.

그 모든 감정을 담은 정문의 입이 열렸다.

“돈황(敦煌)으로 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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