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아쉽지만 여기서 헤어져야겠군요.
중원을 짓밟던 이민족의 노여움도 잊혀지고, 신장(神將)들의 석비(石碑)도 사토(沙土) 속에 묻혀버린, 그리고 그런 것들에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변방이 척박한 지역이 된 시대에 승려와 도사가 함께 사막을 걷고 있었다.
장액을 벗어난 후 마적을 잡아 그들의 말을 타고 달리던 이들.
허나, 그들의 마행(馬行)은 주천(酒川)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는데, 주천 이북 지역은 국경이기에 사마(私馬)의 통행이 제한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이 승려와 도사라는 신분이기에 굳이 허가를 받으려면 받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다만, 기수가 마적이라는 큰 문제점이 있었지만 말이다.
이들은 소란을 일으키는 것 대신 말에서 내리는 것을 택했다. 단전을 잘게 부숴 관병에게 마적을 인도한 후, 다시금 길을 나섰다.
확실히 국경에 가까워지는 게 실감이 난다.
도시를 오갈 때면 더더욱 검문이 강화되었고, 새로이 말을 몰게 할 마적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야.
진정한 변방에 이들이 들어선 것이다.
그래도 앞으로 나설 길은 그리 힘들지 않을 것이다.
험난했던 길이야 마적들 덕에 쉬이 넘겼고, 이제는 군사용으로 잘 닦아 놓은 관도만 타면 그만이다.
‘아미타불-. 무정검과의 동행도 내일로 끝인가.’
시원 섭섭한 감정이 고상에게 전해진다.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에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성격을 가진 무인이다. 그래도 크게 악의는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무정검이었기에 고상은 시원 섭섭함을 느끼는 중이다.
실제로 그 덕분에 마적이 모는 말을 타는 새로운 경험을 하지 않았나.
어디가서 말을 못하겠지만.
돈황을 하루 앞두고 이들의 발이 안서(安西)에 닿는다.
시간과 거리가 애매하기에 오늘은 이곳에서 묶어 가려는 것이다.
적당한 객잔을 잡아 짐을 푸는 승려와 도인들.
말에서 내려, 걸음을 걸은 고단함이 몰려오는지 다들 이른 시간에 코를 울리는 그런 밤이었다.
평화로운 밤이 지나고 맑게 개인 이른 새벽.
아직 닭은 울지 않았음에도 서량의 햇살이 먼저 찾아와 불청객이 되어 있는 그런 시간에 묵환이 홀로 객잔을 나선다.
천천히 객잔을 돌아 뒷마당에 작은 공간으로 향하는 묵환. 전날 미리 봐두었던 공터에서 가볍게 몸을 풀 생각이다.
검술과 달리 권장술은 매일 단련을 해주지 않으면 이내 몸 자체에서 문제가 생기고 만다. 무공 수련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단련은 권장술을 쓰는 권사에게 매일 필요한 노력인 것이다.
‘호, 혼자는 익숙하니까···’
혼자는 익숙하다.
이미 묵환은 대부분의 제자가 검수인 공동에서 홀로 권사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무인이다.
다른 이들이 쉬는 날에도 자신은 수일하는 것.
이제는 묵묵히 이겨낼 수 있는 외로움일 것이다.
그저 작은 수건에 물을 조금 적셔 홀로 뒷마당으로 향하던 묵환. 객잔의 옆을 지나는 그의 귀로 무언가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
- 팡! 팡! 팡!
하는 소리와 함께,
- 쩌엉! 쩌엉! 쩌엉!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소리는.
묵환에게 아주 익숙한 소리다.
‘궈, 권장술?’
- 파앙! 파앙!
이건 주먹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
- 쩌엉! 쩌어엉!
이건 각법을 수련할 때 나는 진각 소리.
모두 자신이 권장술을 수련할 때 나는 그런 소리였다. 아니 조금은 다르다. 이건 자신이 내는 소리보다 더, 그러니까 계열이 다른, 내가중수법이 아닌 외공에 가까운 권장술 소리일 것이다.
‘누, 누가?’
사형들 중에는 권장술을 따로 수련하는 이가 없다. 정문이라면 권장술에 있어서 묵환 자신보다 앞설 것이나, 사형 역시 공동의 무인. 이렇게 외가 계열의 소리는 나지 않을 것이다.
묵환이 벽에 붙어 조심히 고개만 빼꼼한다. 슬쩍 뒷마당을 내다보는 묵환의 고개.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
‘서, 서응사의 스님들?’
서응사의 승려로 위장한 소림의 나한오승이 웃통을 벗고 진득한 땀을 흘리며 주먹을 내지르고 있다. 그들의 탄탄한 근육이 땀과 함께 빛을 받아 금광(金光)을 내뿜는다.
“하아아압!”
- 파아아앙! 파아아앙!
“아-미-타-불-!”
- 쩌어어엉! 쩌어엉!
무슨 초식이나 투로를 그리는 움직임은 아니다. 그저 지르기와 내려찍기. 단순한 일권과 일각을 계속해서 같은 방식으로 이들이 내지르고 찍어대는 중이다.
파공음과 진각 소리가 예사로운 소리는 아니다.
‘서, 서응사의 무공이 이렇게···?’
이들의 정체를 모르는 묵환은 그저 서응사의 무공이 생각보다 강맹하다는 그런 생각만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묵환 도장?”
나한오승의 첫째, 무각이 묵환을 발견한다.
“어, 아, 아 그! 예! 옙!”
당황하며 팔을 내젓는 묵환.
타인의, 그것도 타문의 무인의 수련을 훔쳐보는 것은 무림 내에서 금기되는 행동이다.
“죄, 죄송합니다! 후, 훔쳐 보려던 게 아니라···!”
“아미타불-. 놀라셨나보군요. 허허, 훔쳐볼게 뭐 있습니까? 그저 지르기와 내려찍기가 전부인 것을요. 괜찮습니다.”
“그, 그래도···”
멋쩍어하며 연신 뒷머리를 긁적이는 묵환에게 무각이 밝게 웃어주며 뒷마당으로 나올 것을 청한다.
“괜찮습니다. 더러 눈에 띄기 쉬운 뒷마당이 아닙니까? 타인의 눈을 의식했다면, 멀리 갔을 것입니다.”
확실히 묵환이 아니어도 일찍이 눈을 뜬 사람은 누구나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몸을 푸는 이들이었다. 자신들의 모습을 타인이 봐도 괜찮을 거란 판단일 것이다.
나한오승은 꾸준히 소림승이라는 내색을 해선 안된다는 말을 사문에서 듣고 내려왔다. 늘 하는 수련이라는 것도, 딱 여기까지.
소림의 권법은 누군가 알아 볼 수도 있기에 이들도 자제하는 중이었다.
“소, 소리가 굉장하십니다! 다들 외가 무공의 대가셨군요!”
멋쩍은 묵환은 뒷마당에 들어서며 이들에게 어색한 칭찬만을 건넨다. 마치 자신이 이들의 수련을 엿보던 이유가 소리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아닙니다. 아미타불-. 묵환 도장이야말로 외가 무공의 대가가 아니십니까? 어깨와 팔, 다리와 복부에 안정적인 근육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과, 과찬이십니다! 저, 저는 타고 나서···”
항상 우렁차게 뱉던 묵환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든다. 자신의 출신을 말할때면 늘 가늘어지는 그의 목소리다.
조금은 축 처진 눈빛이 승려들의 몸에서 더 아래, 바닥으로 향하던 즈음.
“아미타불-. 축복을 타고 나셨군요. 전생의 공덕이지요.”
온화한 미소와 함께 따스한 말이 들려온다.
밝게 펴지는 묵환의 얼굴.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도 이렇게 반겨주는 이는 드물 것이다.
특히나 공동의 인물이 아닌 자들에게서는 더더욱.
“가, 감사합니다!”
너무 좋아 아미타불이라도 외칠뻔한 묵환. 그가 스스로 감정을 조금 제어하며 가볍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묵환 도장께서도 혹여 수련에 나오신 겁니까?”
무각은 그런 묵환을 향해 빙그레 웃어주고는 그의 목에 걸린 적신 수건을 가리키며 말을 물었다.
“예, 예! 저, 저도 외가 계열은 아니지만 권장술을 수련합니다!”
“아, 그러셨습니까? 허면···, 뒷마당을 비워야겠군요. 저희야 별다른 초식과 투로 수련을 하지 않아 괜찮지만···”
“저, 저도! 괜찮습니다! 기, 기초 수련만 할 거라···”
사실 예정에는 없던 말이다.
기초 수련이야 당연하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투로도 조금 그려볼 생각이었던 묵환이다.
허나, 왜인지.
저들을 그저 보내고 싶지 않은 묵환이다.
“아미타불-. 그러시다면···, 어떻습니까? 함께 단련을 하시지요.”
다시금 빙그레 웃는 무각의 얼굴이 묵환의 눈에는 대불(大佛)의 미소처럼 느껴졌다.
“조, 좋습니다!”
그렇게, 묵환은 소림의 나한오승과 함께 기본적인 신체 단련을 함께 했다.
구보와 마보, 철산고를 비롯한 단순한 신체 단련.
내가 계열의 무공을 주로 다루는 도문의 무인에게는 자칫 힘들수도 있는 이런 수련을 묵환은 이들과 엇비슷하게 해내고 있었다.
“과연···, 축복이란 말이 헛말이 아니군요. 묵환 도장의 체력이 굉장합니다.”
“사, 사형께서 매, 매일 체력 단련을 시키셔서···”
“무정검께서 말씀입니까? 허허, 대단하시군요. 저희 소리ㅁ···, 소리만! 저희는 소리만 들어도 힘들 것 같은데!”
슬쩍 말이 잘못나왔던 무각이지만, 묵환은 이상함을 모르는 것 같다.
“스, 스님들께서 하시는 수련도 다, 다 합니다!”
“이것들을 말씀입니까?”
“내, 내가중수법도! 모, 몸이 중하다 하셔서!”
“암요, 암요. 중하지요. 허허허. 오늘 빈승이 많이 배워갑니다. 허허허.”
소림의 나한들이나 매일 할 법한 수련을 도인에게 시킨다라. 무각은 그런 도문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듣는 중이다.
애초에 내가 계열의 권장과 외가 계열의 권장술은 수련법이 다른 법이다.
내가중수법이라고도 불리는 내가 계열의 권장술은 단순히 신체를 내기가 지나는 통로로 취급하기에 크게 단련에 나설 필요는 없다. 대부분 도문의 권장술은 내가중수법의 계열이고.
허나 외가 계열의 권장술은 신체 단련이 필수로 이어진다. 이는 신체 본연의 진기와 내기를 합쳐 치는 외가 계열 권장술에 반드시 필요한 수련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가 계열의 무공에 신체단련이 합쳐진다하여, 딱히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좋으면 더 좋을지언정···’
무정검이 이런 수련을 사제에게 아무런 의도없이 시켰을 리는 없다.
어쩌면, 공동에서 상상하지 못한 수준의 권사(拳士)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무각이 그렇게 예상한 날이었다.
* * *
당(唐)대의 시인 왕유는 위성곡(渭城曲)이라는 시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권군갱진일배주 (勸君更進一杯酒)
서출양관무고인 (西出陽關無故人)
그대에게 한 잔 술을 더 권하노라.
서쪽으로 양관을 나서면 아는 이도 없을 터이니.
떠나는 이를 향해 친우가 읊어주기 좋은 이 시는 양관을 가리켜 더는 아는 이가 없는 경계라 노래하고 있다.
또, 다른 당(唐)대의 시인 왕지환은 출새(出塞)라는 시에서 이런 시구를 남겼다.
춘풍부도옥문관 (春風不度玉門關)
봄바람은 옥문관을 넘지 못한다.
가히 옥문관 너머의 풍경이 얼마나 척박한 지 잘 묘사한 그런 시구일 것이다.
이처럼 중원의 시인들과 중인들은 그저 양관과 옥문관이라는 이대 관문 밖의 지역을 새외라 부르며 인세가 아닌 것처럼 인식하는 것이 다수였다.
그런 양관과 옥문관, 두 개의 관문이 자리한 도시가 바로 돈황. 중원이나 황조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닿는 최대한, 그러니까 가장 여유로운 의미의 중원의 끝자락이 이곳인 것이다.
승려와 도사들의 걸음이 돈황에 닿았다.
“아미타불-. 아쉽지만 여기서 헤어져야겠군요, 무정검.”
아쉽지만이라.
저말이 진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선은 아쉽게 이별을 고하는 고상이다.
공동이 향하는 월아문과 소림이 향하는 천불사는 명사산이라는 기준을 두고 양갈래로 길이 나뉘는 곳에 있다.
여기까지가.
동행의 끝일 것이다.
정문은 오는 길에 고상과 대화를 자주 나누며 하나둘 그의 의중을 떠보고 소림의 속내를 살폈다.
장경각주라는 이름과 노회한 노승의 외관에 비해, 고상은.
생각보다 허술한 사람이었다.
고상이 정문과 대화하며 자신이 소림승이라는 내색을 슬쩍 흘린 횟수가 두 손으로 꼽아도 모자랄 정도였기 때문이다.
산중에서 연구에 매진하던 학승은.
정문의 상대로는 많이 부족한 법이다.
이곳까지 오며 고상과 많은 대화를 나눈 정문은 이제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소림은 무언가를, 그렇니까 아마도.
불경이나 서책 정도로 예상되는 무언가를 가지러 가고 있는 길이라는 결론을 말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소림은 그걸 비밀로 하고 싶은 모양이고.
‘여기서 모른척 해줄까···’
조금은 대자대비한 마음이 드는 정문.
소림이랑은 크게 척을 진 일이 없기에 여기서 정문이 눈을 한 번 감아준다면, 차후 이 일을 트집 잡아 무언가를 얻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그런 계산이 선 것이다.
‘대환단은 무리고···, 소환단 정도는 내놓으려나?’
실룩거리는 정문의 입꼬리.
정문은 결심이 굳은 모양이다.
“고생하셨습니다. 빈도들은 월아문에 머물 겁니다. 한관주의 소개장이 있으니, 박대 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허허허, 설마요. 북감숙 유일한 정도 문파가 아닙니까? 그들이 공동을 박대하겠습니까?”
“혹여 일이 있다면, 월아문으로 찾아주십시오.”
“아미타불-. 끝까지 자비를 베푸시는군요. 그리하겠습니다. 공동 역시 미력한 중들의 힘이 필요하다면, 천불사를 찾아 주십시오.”
정겨운 인사말을 주고받는 고상과 정문.
첫 만남과 인상이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함께 몇 날 며칠을 여행한 사이다. 없던 정도 생기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무, 무각 스님!”
“묵환 도장. 다시 뵐 날이 오겠지요. 아미타불-.”
“꼬, 꼭! 서응사에 찾아 뵙겠습니다.”
묵환은 함께 신체를 단련하며 정이든 나한오승을 향해 아련한 눈빛을 보낸다. 늘 홀로 권장술을 익히던 그에게 나한오승은 좋은 추억을 선물해줬다.
“······.”
서응사에서 보자는 묵환의 말에 쉬이 답하지 못하는 오승들. 그저 그들은 대자대비한 미소만으로 묵환에게 합장을 보여줄 뿐이다.
다시는 보지 못할 것만 같은 이들.
그런 이들과의 아련한 작별이 찾아오고 각자가 원하는 곳을 향해 발을 옮겼다.
“또 볼거야. 아마도.”
길을 나서며 계속해서 축 처진 어깨를 보여주는 묵환에게 정문이 슬쩍 위로의 말을 던진다.
“서, 서응사에 가면 뵐 수 있겠죠? 다, 다들 절 밖으로는 잘 안 나오신다고···”
“뭐···, 서응사에 가면 이라고 장담은 못하지만 또 볼거다. 걱정말거라.”
서응사가 아니라, 소림사로 가거라. 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정문이 아직은 참기로 한다.
한참을 걸어 돈황 서북 방면에 있는 명사산에 닿는 공동의 도인들. 그저 명사산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들은 한참을 헤맨 다음이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산은 없었다.
그저 사막.
그런 사막을 더욱 웅장하게 보여주는 모래 언덕만이 이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이게 산이라니···”
“산적은 절대 없겠네요···.”
“발이 푹푹 꺼져 불편할 지경이요!”
투덜거리며 모래 언덕을 오르는 도인들.
한수량이 말하는 명사산은 그저 모래 언덕을 뜻하는 것이었기에 이들이 한참을 헤맨 것이다.
월아문은 이런 모래로 된 산을 하나 넘으면 나타나는 녹주(绿洲) 주변에 있다고 한다.
월아문(月牙門)이라.
어찌보면 조금은 패도적인 이름이다.
달의 송곳니라니(月牙).
하지만, 이는 무슨 기백이나 기세, 무공 따위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이들이 말하는 월아란.
도관 옆에 맑고 청명하게 빛나는 녹주, 월아천을 뜻하는 말이었다.
초승달의 모습을 닮은 그 녹주를 보고 고인들은 그저 초승달이라는 이름을 주기 싫었던 모양이다. 달의 송곳니라. 어찌 되었건 달은 포함되었지만, 조금은 낭만적인 이름이다.
“대막이 여기보다 넓다는 게 사실일까요?”
“지랄···, 사막이 그럴 수 있다고? 말도 안돼!”
도인들이 사막의 햇볕과 모래의 열기로 땀만을 쏟아 내며 정해진 방향을 따라 한참을 걷고 있을 때.
“저, 저기!”
“월아천이다!!”
“사형! 월아천입니다!”
저 멀리 조금은 분지와 같은 지형에 초승달과 닮은 모양의 호수가 아름드리 이들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그들이 찾아 마지않던, 월아천이 나타난 것이다.
공동의 도인들은 있는 기력, 없는 기력을 모두 써 발을 옮긴다. 푹푹 꺼지는 모래를 헤치며 월아천을 향해 달리는 이들.
고작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을 사막에서 보냈을 뿐인데도 이들의 입은 모두 말라 껍질이 벗겨질 정도였다.
- 첨벙! 첨벙! 첨벙!
서둘러 물로 입을 적시는 도인들.
마른 사막에서 만나는 녹주는 가뭄의 단비같은 존재다.
“휴···, 이제야 살 것 같네.”
목이 마른 자는 다른 것보다 우물부터 찾는 법.
이들은 도관은 제쳐두고 월아천에 먼저 뛰어들었다.
목을 추기고 난 이제야.
이들의 눈에 월아문의 도관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 속의 넓은 분지.
그리고 그런 분지에 딱 하나 있는 장원.
월아천을 옆에 두고 흡사 자신들의 개인 연못처럼 사용하는 모습이 주변과 나름 어우러져 이상하게 자연스러운 그런 도관이 월아문의 도관이었다.
“조용-하네요.”
“주변에 딱히 시끄러울 것도 없으니까.”
주변에는 딱히 시끄러울 것을 떠나 아무것도 없다. 본디 기도를 위한 도관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들어가보자.”
정문이 대표로 도관의 대문으로 다가선다.
방금 막 적신 입을 소매로 살짝 닦아내고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하는 정문.
헌헌한 대제자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중이다.
- 탕! 탕! 탕!
정문이 대문을 세 번 두드린다.
조금은 세지만, 분명 정중한 박자로.
“계십니까?”
······
아무런 답이 없다.
- 탕! 탕! 탕!
“계십니까?”
······
여전히 말이다.
“······.”
무언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는 정문.
그가 입을 닫고 서둘러 기감을 넓게 펼쳐본다.
!!
살짝 놀란 듯 들리는 그의 턱.
그의 짧은 반응을 진명이 놓치지 않았다.
“무슨 일 있습니까?”
“진명아···.”
“예, 사형.”
“기감을 펼쳐봐라.”
“기감을요?”
“무슨 일입니까?”
사풍까지 이 둘 사이에 합세하니, 이내 진명과 사풍, 두 도인이 눈을 감고 기감을 넓게 펼쳐보았다.
!!!
동시에 떠지는 두 도인의 눈.
“아, 아무도···”
“없군요···”
그들의 기감에는 그 무엇도 잡히지 않는 것이다.
잠시 고민하듯 눈썹을 교차한 정문이 대문에 올린 손에 살짝 힘을 줬다. 두드릴 때보다 더한 그런 힘을.
그러자.
- 끼이이이이익.
대문이 힘없이 열리며 텅텅 빈 도관의 한적한 풍경만이 이들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