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제가 꼭 찾을 겁니다.
처음에는.
그러니까 막, 기감을 펼쳤을 그때에는.
월아문의 도인들이 모두 도관을 비우고 어딘가로 볼 일이라도 보러 나갔나 하는 그런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도관을 완전히 비우지는 않는 법입니다.”
도학에 정통한 진명이 이런 경우는 잘 없다는 말을 전해준다.
흔히들 호향(護香)이라 말하는 도사의 사명 중 하나로, 절대 도관의 향이 꺼지는 일이 없도록 늘 한 명 이상의 도사가 도관에 머물러야 하는 계율을 진명이 다시금 일러준 것이다.
같은 도관에서 온.
도사들에게 말이다.
“흠흠···. 안다, 알아.”
“뭐, 몰랐던 건··· 아니오만···.”
“배, 배웠습니다!”
“들어는 본 것 같···네요···”
어떻게 된 일인지.
점점 가도(假道)만 늘어가는 기분이 진명을 스쳤다.
쓸쓸한 풍경에 예사롭지 않다는 진명의 말까지 더해지니, 정문은 좋지 않은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안을 한 번 살펴보자."
정문은 대문을 완전히 열어젖히고 다시금 자신들이 왔음을 큰 소리로 고한 다음 한 발짝 발을 도관 안으로 드밀었다.
같은 도관이라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이곳은 타문(他門). 조금은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이들이 도관 안을 살펴본다.
“흩어지자. 각자 안을 살펴보자고. 다들 집기나 전각 상하지 않게 조심들하고.”
"옙!"
늘 집기나 전각을 상하게 만드는 도인의 엄중한 경고를 뒤로 이들이 각자 흩어져 도관 안을 살펴본다.
정문은 우선 도관의 제일 큰 전각을 살폈다. 본디 월아문의 문주가 머물며 제를 올렸을 것이 분명한 전각. 그런 전각 안에는 그저 쓸쓸한 바람만이 불어 나올 뿐이다.
정문이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간다.
제를 올리는 삼청(三淸)을 모신 제당(祭堂)이 나온다. 절대 꺼져서는 안 되는 삼청당(三淸堂)의 향은 이미 그 생을 마감하고 한줌의 재가 되어 모래에 섞여 들었다.
향로에 손을 올리는 정문.
차가운 감촉만이 정문의 손을 적신다.
‘적어도 이틀에서 사흘은 지났겠군.’
향은 재가 되어서도 일정 시간은 열을 간직한다. 그런 향에서 냉기가 돈다는 말은. 이미 향이 꺼지고 제법 시간이 흘렀다는 뜻일 것이다.
정문이 돌아선다.
다른 곳을 살피려던 그의 눈에.
무언가 이질 적인 것이 들어온다.
‘저건···?’
기둥.
삼청을 그려놓은 서화의 바로 옆을 장식한 기둥에 일반적이지 않은 그림이 새겨져 있어 정문이 고개를 갸웃한 것이다.
일반적인 도가의 가르침으로는.
삼청의 주변에 다른 잡신을 두지 않는 법이다.
‘여자···?’
정문이 기둥으로 다가가 새겨진 그림을 살핀다. 얇은 허리에 쏙 들어간 곡선. 봉긋한 젖가슴에 교태로운 웃음까지.
누가 보아도 여성으로 보이는 인물이 하늘거리며 나부끼는 천을 두르고 또, 바람을 타는 것만 같이 날아가는 모습으로 기둥에 그려져 있다. 그녀의 품에는 작은 비파가 하나 안겨져 있다.
‘지신인가?’
지신(地神).
도관은 때때로 한 지역에 자리잡기 위해 그곳의 토속신앙과 결합하며 자신들의 세를 불려왔다. 도관이 생기기 전부터 그 지역의 중인들이 모시던 토속신앙의 신들을 도가에서는 지신이라 부른다.
조금은 신경이 쓰이는 그림의 배치지만, 정문은 그저 지신이겠거니 하며 전각의 밖으로 몸을 향했다.
도관의 앞마당을 지나 뒷마당으로 향하는 옆길을 정문이 지나간다. 슬쩍슬쩍 아래로 시선을 내리며 바닥을 살피는 정문.
앞마당과 뒷마당 사이에 있는 이 길이 유일한 흙길이기에 무언가 단서가 있을 지도 모를 것이다.
그렇게, 정문이 한참을 느릿하게 옆길을 걷던 중.
!!!
무언가, 제법 중요해 보이는 자국이 정문의 눈에 들어온다. 자잘한 흙들로 덮인 옆길. 그런 길에 움푹 패인 자국 하나가 정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발자국. 누군가의 발자국이 분명했다.
‘오른발···?’
발자국은 다른 짝이 없이 오직 하나만이 남아있다. 이는 경공을 펼치며 이곳을 밟았다는 뜻. 누군가 도관 내에서 경공을 썼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정문이 서둘러 고개를 들어 다른 발자국을 찾는다. 제아무리 경공의 고수라도 허공을 답보하듯 걸을 수는 없다.
주변에는 다른 발자국 역시 있을 것이다.
‘나라면···’
자신이라면 얼마나 뛸 수 있었을까. 정문은 그런 생각을 하며 슬쩍 발자국 옆쪽 땅을 박차고 최대한 멀리 몸을 날려본다.
- 타악!
- 툭!
허공을 몇 보 날더니 이내 떨어지는 정문의 몸. 한걸음에 내디딜 수 있는 거리는 이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정문이 고개를 뒤로 돌린다. 약간의 자만이 가득한 평가지만, 나름 객관적인 평가일지도 모른다.
자신보다 경공이 뛰어난 자는 드물테니까.
‘없다···?’
하지만, 정문의 뒤쪽으로는 아무런 발자국이 보이지 않는다. 최소한, 정문보다는 더 내디뎠다는 말이 될 것이다.
‘어떤 괴물이···’
자존심을 살짝 접어두고 자신이 찍은 발자국 앞을 살피는 정문. 그런 정문의 시선에도 발자국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
입을 다물고 현실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정문의 시야로 담벼락이 들어온다. 조금은 높지만, 그래도 충분히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담벼락.
어쩌면.
그래, 어쩌면.
이라는 생각으로 정문이 슬쩍 담벼락의 위로 발을 날렸다.
- 탓 탓 탁!
가볍게 세 번 정도 담벼락을 찬 후 닿은 담벼락의 위. 그곳에서 정문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된다.
‘······말도 안 돼.’
깨진 기와.
분명 왼발로 밟아 중심이 왼발 모양에 맞게 깨진 기와가 정문을 반겼다. 정문이 세 번을 박차고 올라온 이 담벼락을 누군가는 한 번에 뛰어올랐다는 말이다.
담벼락 너머는 계속해서 발이 꺼지는 사막만이 자리한다. 아마 바깥 쪽에는 발자국이 더는 남지 않았을 것이다.
정문은 그대로 몸을 날려 도관의 일 층 지붕으로 날아든다. 조금은 거리가 멀어 한 번은 마당을 찍고야 닿은 지붕. 그런 지붕의 기와에도. 깨진 자국이 남아있다.
‘또 오른발···. 아무리 지붕에서 뛰어내렸다고 해도···’
이건 너무한게 아닌가. 적은 어디서 시작일지는 모르나, 지붕을 한 번 찍고 옆길을 한 번, 그리고 단박에 담벼락으로 뛰어올랐다는 말이 된다.
문득 삼존(三尊)이나 천하십웅(天下十雄) 정도 되는 고수가 아니라면 이는 불가능할 거라는 그런 생각이 정문을 스친다.
그렇게 정문이 홀로 지붕에서 침전하던 그때.
“사형! 뭐 좀 나왔어요?”
사제들이 마당으로 돌아온다.
- 툭.
가볍게 마당으로 내려서는 정문. 다시금 고개를 들어보아도, 옆길에 있는 발자국까지 한걸음은 무리로 보인다.
“······호향이 되어있지 않더구나. 적어도 이틀에서 사흘은 지난 모양이다.”
“내원 쪽 전각에는 다기(茶器)가 있었습니다. 다기 역시 차게 식어있더군요. 사흘이 맞는 거 같습니다.”
“객사에도 아무도 없어요. 먼지가 조금 쌓였는데 오래된 거 같지는 않구요. 사흘 정도? 나머지는 모두 그대로 있어요.”
이들의 추론이 얼추 맞아떨어진다. 월아문이 이곳을 비운지는 딱, 사흘 정도 흘렀을 것이다.
“다른 건, 다른 건 없어요? 지붕에서 뭘 보고 계시던데?”
“······발자국을 찾았다.”
“발자국이요?”
“발자국이면, 제법 중요한 증좌가 아닙니까? 어딥니까?”
사제들은 그저 발자국을 찾았다는 말에 반색하며 위치를 묻는다. 이들의 말처럼, 다른 경우라면 발자국이 많은 것을 말해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문은 사제들에게 차례로 지붕의 발자국과 옆길의 발자국, 그리고 담벼락 위의 발자국을 보여줬다.
한쪽씩 찍힌 발자국이 딱.
발을 교차하며 한 걸음에 이 정도 거리를 뛰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도 이만큼 뛰는 건 실패했다.”
!!!
사제들은 정문의 경공술이 이미 오성을 넘어 대성에 달한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정문도 뛰지 못할 거리를 뛰었다니. 어쩌면 굉장한 고수가 다녀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
“······.”
닫히는 사제들의 입.
이들 역시 직감적으로 무언가 불안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우선은, 시내로 가서 월아문에 대해 알아보자. 아직 확실한 건 없으니···”
조금은 불안한 느낌을 받은 도인들이.
다시금 명사산을 넘었다.
* * *
당(唐)대까지만 하더라도, 천축으로 불경을 구하러 길을 나서는 승려들이 많았다.
한어(漢語)로 된 불경은 그 번역에 있어서 저마다의 모순과 사용하는 단어가 달랐기에 직접 원어 그대로 경전을 접하고 싶었던 중원의 승려들은, 저마다 봇짐을 꾸려 천축으로 발을 향했다.
그런 천축으로 향하던 승려들과 또, 천축에서 돌아오던 승려들이 잠시 돈황에서 몸을 쉬고 가는 사찰이 있었으니, 그 사찰이 바로 천불사였다.
천축에 다녀온 승려들은 가는 길에 자신이 몸을 쉬었던 천불사에 다시금 방문했고, 그런 그들은 천축에서 자신이 깨달은 무언가를 꼭 천불사에 남긴 후 발을 떠나곤 했다.
결국 천불사는.
천축에서 중원으로 향한 깨달음이 하나씩 더 남아있는. 일종의 예비 저장고의 역할을 해온 셈이다.
그런 천불사를 중원의 승려들이 찾는다면, 이유는 뻔할 것이다. 자신들의 선조가 남긴 서책이 상한 경우.
만약 천축과 관련된 서책이라면 그 필사본이 천불사에 남아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문은 이들이 천불사로 향한다는 말을 듣고는 불경이나 서책을 가지러 간다고 예상했다.
그런 예상에는.
이런 배경 지식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아미타불-. 사숙, 석굴이 참 많습니다.”
나한오승의 첫째 무각이 천불사가 있다는 석벽을 보며 감탄을 내뱉는다.
천불사는 지금 무각이 보고 있는 저런 석굴들로 이루어진 사찰이었다. 물론 석굴이 아닌 전각 역시 존재하기는 한다. 석굴로 향하는 입구에 세워진 작은 암자. 그게 석굴을 제외한 유일한 건물일 것이다.
고상 역시 천불사를 방문한 경험은 없다. 그저 서책과 전해지는 말로만 들은 천불사의 풍경을 그도 처음 보는 것이다.
“아미타불-. 안은 더욱 멋지다는 말이 있더구나.”
“그렇습니까?”
“맞습니다. 천불사의 대불동(大佛洞)과 벽화동(壁畫洞)은 가히 예술이지요. 천불사의 진정한 의미는 외관이 아닌 석굴 안에 있습니다.”
천불사와 자주 왕래하며 지내는 서응사의 승려 만중은 이런 소림승들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활짝 웃으며 천불사에 대해 알려줬다.
“천축과 서역에는 석굴 사원이 많다고 합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누구는 석굴 사원을 불가(佛家) 사원의 원류(原流)로 보기도 합니다.”
“서응사 역시 석굴 암자가 있지 않습니까?”
“감히 이곳에 비할 정도는 아닙니다. 아미타불-.”
만중의 말처럼, 천수 맥적산에 자리한 서응사 역시 일부 석굴 암자가 존재했다. 허나, 규모나 넓이의 면에서 서응사의 석굴 암자는 감히 이곳 천불사에 비할 것이 못 되었다.
“어찌 사원의 규모가 깨달음의 깊이와 같겠습니까? 원류를 찾아 수행하시는 스님들이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조금은 자신의 사문을 띄워주는 말에 만중의 표정이 밝아진다. 승려 역시 사문에 대한 자부심은 같은 모양이다.
무각은 진심을 담은 말로 만중을 미소짓게 만들고 이내 다시금 고개를 들어 절벽을 바라본다.
천개는 아닐 것이다.
허나, 분명 백은 넘을 정도의 수많은 석굴들.
“진정한 도는 중원 밖에 있었을지도 모르겠군요.”
“아미타불-. 부처께서는 천축에서 열반에 드셨다. 중원 안에 도가 있다는 믿음도 집착이니라.”
“다시 깨닫습니다, 사숙. 아미타불-.”
새로운 경험은 늘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이번 돈황행이 자신들에게 득이 없진 않다는 생각이 나한오승을 채웠다.
승려들이 천불사로 다가간다.
멀리서 보이는 웅장한 석굴에 비해 중심이 되는 암자는 그 모양새가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아미타불-. 저기 천불사의 입객당(入客堂)이 보이는군요.”
입객당이라는 커다란 글씨가 걸린 천불사의 대문은 여느 사원과 같이 활짝 열려있다. 한적한 곳에 있는 어느 도관과는 다른 모습이다.
“드시지요, 열린 문이니. 안에 드셔서 따로 인사를 건네면 될 것입니다.”
만중은 이미 이곳이 익숙하다는 듯 이들을 안내한다. 같은 감숙 안에 자리한 사찰 답게 서로 왕래가 잦은 모양이다.
활짝 열린 대문으로 소림의 승려들과 만중이 들어선다.
천불사의 안은 어떤 모습일까.
그런 기대와 함께.
“아미타불-. 실례하겠···?”
“아미타불···?”
짧은 불호와 함께 대문을 넘는 승려들.
그리고 그런 승려들을.
혈흔이 낭자한 천불사의 내부가 맞이 했다.
!!
*
- 지이이잉-.
놋으로 된 주발(周鉢).
그런 주발의 윗면을 나무 방망이가 슬쩍 훑고 가니 맑고 청아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 토오오오옹-.
그런 소리에 섞여 한 번씩 울리는 주발을 치는 소리.
마치 마음을 비우라는 강요와도 같은 그런 청아한 소리가 방안을 가득채웠다.
- 지이이이이잉-.
다시금 맑은 소리가 들려온다.
그저 아래로 내리 깔아, 눈을 감은 건지 뜬 건지도 알 수 없는 비쩍 마른 노승이 주발을 계속해서 훑고 있을 뿐이다.
- 토오오오옹-.
주발을 울리는 노승의 모습이 중원의 승려와는 사뭇 다르다.
붉은 적포(赤袍)에 안에는 맨살.
머리를 민 건 중원과 똑같으나 수염은 따로 기르지 않았다.
그저 패인 주름과 축 처진 가죽만이 그의 나이를 짐작하게 만들 뿐이다.
- 지이이이이잉-.
소리는 끝나지 않는다. 계속해서 방 안을 울리는 맑은 소리.
소리를 계속해서 뿜어대는 노승의 뒤로 건장한 체격의 중년인이 불만 가득한 눈으로 노승을 바라본다.
“반선(班禪).”
그를 부르는 노승.
“······.”
중년인은 아무런 답도 없이 휙! 하고 고개만을 돌린다. 마치 지금 상황을 외면하려는 이의 모습이다.
“머리는··· 계속··· 기를 생각이더냐?”
“······뭐, 수련은 각자의 방식이 아닙니까?”
- 토오오오오오옹-.
“···그래, 그렇지···.”
중년인은 노승과 같은 복장을 하고 있다. 흘러내릴 듯 폭이 넓은 적포에 그저 맨살. 근육이 또렷해, 밖으로 보이는 모습이야 노승과 다르지만, 입은 의복은 같은 적포임이 분명했다.
- 지이이이이이잉-.
이제는 들려오는 소리에 중년인조차 조금 무심해지려하던 그때.
- 때애애애애앵-!
조금은 탁기가 섞인,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온다.
-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는 중년인이 다급한 표정과 함께 손을 앞으로 내밀려하자.
“앉거라···. 이는··· 잠시간의 이별이니.”
노승의 단호한 거절이 중년인의 접근을 막는다.
“······제가 꼭 찾을 겁니다···”
“그래···, 그래야지···.”
- 지이이이이잉-.
끝이 다가옴을 직감해서일까.
노승은 조금 더 기력을 쏟아 주발을 청아하게 핥아 간다.
- 때애애애애앵-!
다시 울리는 이질적인 소리. 그런 소리가 잠시 방을 울리고 일시에 그치더니,
- 척!
하는 소리와 함께 노승이 소매를 휘날리며 한쪽 벽을 가리킨다.
“돈황···으로 가거라. 거기서 내···, 너를 기다리마.”
말을 끝으로, 노승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