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는 공동을 무시하지 마라-109화 (109/153)

109. 완전함이란

“이, 이게 다 뭡니까···?”

점점 포구로 다가가는 뱃머리에 나온 고상이 입을 쩍 벌리며 자신들을 반기는 당문의 무인들을 바라본다.

저들은.

모두 당문의 정예가 분명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사천부터는 편해질 거라고.”

정문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하선할 준비를 마친다. 어깨를 펴고 배를 내민 그의 자세가 당당하다.

“어서 오시게!”

포구는 이미 당문의 무인이 쫙 깔린 상황. 가주 당천정은 누구보다 앞서 나와 배에서 발을 내리는 정문을 맞이한다.

“오랜만입니다.”

“그렇지. 격조했네만. 이리 불러주니 고마울 따름이군.”

“청성을 부를 순 없으니까요.”

“그렇지! 암! 당문을 두고!”

몇 달 만에 만나 가볍게 던지는 농담에도 당천정은 정색하지 않고 웃으며 받아친다. 그의 성격은 여전히, 낙천적이다.

“당숙부. 오랜만에 뵙습니다.”

“수룡?”

당천정은 정문의 뒤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남궁수룡을 보며 고개를 가로 기울인다. 니가 왜 거기서 나오냐는 그런 표정이 숨김없이 수룡을 맞이했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습니다.”

“허, 감숙에 갔더냐?”

“예···, 잠시···.”

“흠, 무정검의 옆에서 많이 배운다면 좋은 일이지. 부럽구나. 내 아들이 없어 무정검에게 보낼 사람도 없으니. 쯧. 부러워!”

당천정은 수염을 매만지며 가볍게 혀를 찬다. 예전 같았으면 남궁수룡이 정색하고도 남았을 말. 누가 누구에게 무얼 배운다는 말인가.

“많이 배우려 합니다.”

허나, 지금의 수룡은 다르다. 무정검에 대한 열등감은 이미 존경으로 뒤바뀌었고, 당천정의 말이 틀렸다는 생각은 수룡에게도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좋은 자세니라.”

당천정 역시 친하게 지내는 수룡의 바뀐 자세가 마음에 드는 듯 인자한 웃음을 지어주고 시선을 뒤로 넘긴다. 얼굴이 익숙한 도인들이 많다.

서녕에서 난주로 돌아오며 함께 생활했던 공동의 도인들이 저마다 당천정에게 인사를 올린다. 워낙에 성격이 좋고 친근한 당천정이기에 이들과도 나름 격의 없이 지내는 중이다.

당천정의 시선이 고상에게 닿는다. 또 고개를 갸웃하는 당천정. 그가 눈을 잠시 깜빡이고는 무정검을 바라본다.

“거, 서신이 너무 요약된 거 같지 않나?”

“뭐···, 필요한 말을 다 한 거 같습니다만.”

“원, 사람하고는.”

당천정은 가볍게 핀잔을 주고는 고상을 향해 웃어 보인다.

“고상 대사시군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허허, 이거 예상치도 못한 귀인을 마주하는군요.”

“아미타불-. 이렇게 다시 뵙는군요, 당가주.”

아무리 고상이 강호에 얼굴을 잘 비추지 않는 장경각주라지만, 오대세가의 수장쯤 되는 인물과 마주한 적이 없지는 않다. 오래전 소림에서 마주한 둘은 서로에 대해 잘 기억하고 있었다.

“무정검을 만나···,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아미타불···, 말로 다 할 수 없지요··· 놀란 가슴만 몇 개인지 셀 수도 없습니다.”

“하하, 또 그 맛에 무정검과 함께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미타불-. 빈승은 역시 강호와는 맞지 않나 봅니다.”

욕일까 칭찬일까. 정문은 그 의도를 알 수 없는 두 사람의 대화를 바로 앞에서 감상하는 중이다.

“자, 갑시다. 내 말을 준비했고 또 무인들을 준비했으니 편히 사천을 지납시다. 내 난주에서 무정검에 빚진 걸 갚는 것이니 부담들 가지지 마시고!”

당천정은 멀뚱히 포구에 서 있는 이들을 안쪽 육지로 안내한다. 무인들이 지키고 있던 육지에는 당천정이 준비한 말과 수레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네는 앞으로 나오게. 들어야 할 이야기가 많으니.”

당천정은 정문을 지나치며 가볍게 말을 남기고 말에 올라탄다. 속가는 도가나 불가와 달리 걸어서 수행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특히나 가문의 일을 진행함에는 더더욱. 도사나 승려처럼 무지막지하게 걸어서 모든 길을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 달. 딱, 한 달이면 서장에 닿을 것이오. 내 장담하지. 길을 막는 이는 우리가 상대하겠소. 당문의 이름으로!”

복수는 열 배, 은혜는 두 배. 강호에 상징적으로 남은 당문의 은원이 공동을 이끈다. 정문은 가볍게 말에 올라타 말 머리를 당천정의 옆으로 향했다.

고상과 수룡 역시 그들의 옆으로 다가섰고, 사제들과 나한오승은 달뢰라마가 올라탄 수레를 옆에서 지킨다. 별다른 경계나 긴장은 필요 없다. 이들의 주변을 몇 겹은 되는 무인들이 둘러싸고 행군하는 중이니까.

말 그대로, 편안한 행군이 서장으로 이어졌다.

* * *

서장까지의 여정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사천에서도 손속과 수법이 매서운 당가의 보호가 이들을 둘러쌌기에 누구도 감히 덤빌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 달. 딱 그 시간이 조금 안 되는 여정에 이들은 서장의 국경을 넘었고 이내 달뢰라마를 마중 나온 서장의 라마승들과 마주했다.

“옴마니반메훔-. 랍궁의 명왕, 차륜다리(車輪多里)라 합니다.”

포달랍궁을 지키는 사대명왕. 그중에서 등에 차륜을 매고 불법을 수호하는 차륜다리가 서장의 국경까지 무승들을 끌고 와 자신들의 수장을 맞이했다.

“옴마니반메훔-. 라마···, 이 차륜이 부족해 이제야 라마를 찾아뵙습니다···, 부디 불초한 제자를 용서하소서···”

달뢰라마를 처음 알현한 차륜은 단박에 그가 자신들이 찾던 그 환생불, 달뢰라마임을 알아봤다. 라마승들 특유의 기감이 불기를 알아보는 것 같다.

새로운 만남이 있으면 아련한 이별 역시 있는 법. 차륜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달뢰라마는 이제, 두어 달을 함께 걸은 일행들과 이별을 준비한다.

“라마, 건강하세요. 얼른 기억도 찾으시구요!”

“다, 다시! 만날 겁니다!”

“건강하십시오. 훗날 랍살을 찾아 꼭 다시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뭐···, 괜히 당하지는 마시고. 밀승인지 뭔지는 얼른 처리하십쇼.”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한 이들. 공동의 도인들은 저마다 말을 남기며 달뢰라마와 작별을 고했다.

소림의 승려들 역시 마찬가지. 서장과 중원을 대표하는 두 불가의 승려들이기에 조금은 서먹하지만, 나름 앞길을 빌어주는 말들이 그 사이를 오갔다.

이제는.

한 명.

자신을 이중 가장 오래 돌봤던 한 여인과 작별을 남겨둔 달뢰라마였다.

“라마···, 건강하셔야 해요.”

“함께···, 함께 랍살에 머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부처도 이별은 아쉬운 걸까. 달뢰라마는 처음으로 불기를 뺀, 조금은 아이다운 말을 뱉어본다.

“···아시잖아요. 있어야 할 곳. 뿌리는 이곳이지만 월아문이 있어야 할 곳은 돈황인걸요.”

“옴마니반메훔···, 꼭···, 언제가는 다시 뵐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아쉬움이 가득 담긴 달뢰라마의 말에 화난설은 눈가가 촉촉한 미소로 그를 떠나보낸다. 월아문은 문도를 잃었고 어쩌면 재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뿌리라는 한 단어에 의지해 겨우 이뤄낸 이 결실이 그녀의 감정을 촉촉하게 만들었다.

차륜의 손을 잡고 달뢰라마가 걸어간다. 이제는 중원의 진영을 떠나, 서장의 진영으로 향하는 그. 그가 마지막으로 선두에 선 정문에게 다가온다.

“옴마니반메훔-. 나그네시여,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뭐···, 은혜랄 게 있습니까. 반선라마께 확실히 전해주십쇼. 약속은 지키라고.”

“당연히 그래야지요.”

이런 이별이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정문은 슬쩍 자신의 턱을 긁으며 어찌 이별해야 하나, 그런 고민에 빠진다.

“···저 역시···, 감사했습니다.”

이게 최선이라. 정문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 말을 남겨본다. 달뢰라마는 그런 정문을 향해 밝게 웃어주고는 차륜과 함께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나선다.

끝까지.

묵룡자와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은 달뢰라마다.

달뢰라마가 서장의 진영으로 향하자, 일제히 움직이는 라마승들의 움직임이 소리로 형상화된다.

- 척! 척! 척!

절도 있는 소리와 함께 그의 신형이 보이는 순간 내려가는 라마승들의 몸. 그들이 오체를 모두 땅에 닿는 자세를 취하며 자신들의 지존을 향해 예를 표한다.

“갑시다. 딱히 더는 나눌 말도 없어 보이니.”

“랍살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건가?”

“아미타불-. 빈승이 듣기로는 랍살이 아직 내전 중이라 하더군요.”

“흠···, 달뢰라마가 꼭 필요한 시점이군.”

“어쩌다 보니.”

“노린 건 아니고?”

“저를 높이 봐주시는 건 좋습니다만···, 천기를 보는 건 아니라서요.”

“모르지 또. 허허.”

정문은 당천정의 마지막 말에는 답하지 않고 말에 올라탄다. 대접을 받을 처지는 아니다. 그저 선의를 베푼 것도 아니고. 철저한 거래였으며, 말하지 않은 이득 역시 정문은 따로 챙겼다.

이제는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 다른 일을 준비해야 하는 정문이다.

“그래, 가세. 서장은 영 불편하군. 나 역시 사천이 그리워.”

“아미타불-.”

돌아서는 정문을 따라 당천정과 고상 역시 말머리를 돌린다.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을 쓴, 이들의 서장 행이 방금 그 막을 내렸다.

“돌아간다! 사천으로!”

당천정의 외침을 끝으로, 중원인들이 사천으로 돌아간다. 슬쩍 고개를 돌려 서장 쪽을 바라보는 정문. 그곳에는 차륜의 손을 꼭 잡은 달뢰라마 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쉽지만···, 지금은 대접할 상황이 아닙니다, 라마.”

“이해합니다, 차륜. 그저 아쉬움이 남을 뿐이지요.”

“······.”

연이란 이런 것일까. 억겁의 윤회도 극복한 존재조차 연의 고리란 것은 쉬이 끊기지 않는다니. 무상함이 차륜의 주변을 감돈다.

“···좋은 무인이었나 보군요.”

그저 달뢰라마를 달래보려 무정검을 칭찬하는 말을 남겨보는 차륜. 마지막에 가장 아련했던 둘의 인사를 기억하는 그였다.

“무정검 말씀입니까?”

“예, 라마. 그가 이번 일의 책임자가 아닙니까.”

“옴마니반메훔-. 좋은 무인입니다. 좋은 사람이구요. 또···, 불쌍한 사람이지요.”

차륜은 불쌍하다는 달뢰라마의 마지막 말에 눈을 꿈틀거린다. 중원 무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차륜이다. 허나, 그의 귀에도 분명 무정검이라는 이름은 들려왔다.

중원 내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거대 문파의 대제자이자 당금 강호에서 최고로 명성을 날리는 젊은 무인. 이제는 서장과 연까지 터놓은 그 무인을 보며 불쌍하다니. 이건 무슨 말일까.

그가 조금은 의아한 표정으로 달뢰라마를 바라볼 때.

“두 번의 삶과 두 개의 영혼···, 그리고 두 개의 단전까지. 옴마니반메훔-. 윤회의 고리는 어찌 또 다른 이를 이리도 괴롭힌다는 말입니까···”

불기가 가득한 달뢰라마의 말이 터진다. 서둘러 무릎을 꿇고 합장하며 귀를 기울이는 차륜. 포달랍궁에서 제법 높은 위치기에 그는 달뢰라마를 찾아오는 이 성스러운 불기에 대해 모르지 않았다.

“옴마니반메훔-.”

차륜은 성스러운 불기에 얼른 무릎을 꿇으며 합장하는 자세를 취한다. 달뢰라마의 이런 불기는. 서장에서 성스러움의 상징이다.

“그저 두지 않을 겁니다. 아직···, 예. 어쩌면 저와 같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역시··· 완전한 건 아니니까요.”

“완전함이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라마?”

“완전함이라···, 참으로 어려운 질문입니다. 그저 제가 드릴 수 있는 답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것. 그게 전부겠지요.”

“옴마니반메훔-.”

“언젠가는 제자리를 찾아야 할 겁니다. 무정검도···, 그 속에 있는 다른 사람도···”

마지막 말을 남기고 달뢰라마는 다시금 맑은 표정으로 돌아온다. 차륜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달뢰라마의 손을 잡고 진영을 향해 사라진다.

옴마니반메훔.

낯설지만, 익숙한.

그리고 다분한 감정이 실린.

그런 진언이 저 멀리서 정문을 스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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