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는 공동을 무시하지 마라-110화 (110/153)

110. 이정문이라는 이름도 많이 컸군.

당가타(唐家陀).

그저 평범한 한 집성촌을 돌아다니는 정문의 눈이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넓긴 넓군.’

중원에서 유명한 집성촌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 사천당문의 무인들이 모두 모여 산다는 그 당가타를 정문이 신기한 눈으로 감상한다.

‘공방에···, 약방, 수련장에, 또··· 객잔도 있군.’

일반적인 장원이랑은 다르다. 다른 곳에 가지 않더라도. 모든 일이 해결될 수 있는, 그야말로 마을 하나를 한 가문이 운영하는 모양새다.

‘살다 살다 당가타에 직접 와볼 줄이야.’

당가타라는 이름이야 친숙하다. 황궁에서 지낼 때도 늘 이곳의 소식은 주시하던 그였으니까. 언제고 한 번은 와보고 싶다, 그런 마음도 정문에게는 없지 않았다.

정문이 걸음을 계속한다. 사제들과 승려들은 행군하며 제대로 받지 못한 치료를 당가타 내에 있는 의원에서 정밀히 다시 받는 중이다.

홀로 지낼 수 있는 간만의 자유시간. 정문은 이를 산책으로 보내며 여유를 즐기고 있다.

‘이제는 이런 여유도 끝이려나···’

씁쓸한 미소로 주변을 살피는 정문. 사천은 제법 괜찮은 곳이다. 오가는 길이 절벽으로 막혀 험준하다는 말은 있지만, 막상 그 절벽만 지나고 나면 이렇게 좋은 풍경이 자리하지 않나.

그런 생각과 함께 산책을 이어가던 정문이 별원에서 멀지 않은 연못가에서 걸음을 멈춘다.

이제는 친근한 얼굴이 정문을 맞았다.

“아. 신뇌검.”

“무정검. 산책 중이셨나 보군요.”

“예, 뭐. 당가타라는 곳이 쉬이 들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좋은 곳입니다. 남궁과는 다른 풍경이지요.”

“그렇습니까? 남궁 역시 궁금하군요.”

“다음에는 안휘도 찾아주시지요. 아버님 역시 반기실 겁니다.”

“······.”

평범한 대화다. 그저 마주친 명문 문파의 후계자들이 나눌 법한 그런 대화. 허나 정문은 수룡의 마지막 말에 슬쩍 넋을 잃고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남궁에서 초대라···’

슬쩍 웃음이 나와 그만 무례를 범할 뻔하는 정문.

이전의 삶에서는 기대조차 하지 못했을 것들은 정문은 지금 누리고 있다.

‘당가타에서 대접받고 남궁에서는 초대를 받는군.’

사실 이전의 삶까지 갈 필요도 없는 문제다. 당장에 이 몸에서 깨어났던 그 날. 그때의 공동파 대제자 이정문이었어도 이런 호사를 누렸을지 정문은 장담할 수 없었다.

‘이정문이라는 이름도 많이 컸군.’

새삼 정문은 그간 바래 마지않던 강호를 누비는 무인의 삶을 잘 즐기는 중이다.

“싫으십니까···?”

“아, 아닙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허허. 불러만 주신다면, 당연히 가야지요. 신뇌검 역시 공동산을 한번 찾아주십시오. 도관이라 별건 없지만, 경치가 제법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공동산을 향해 가던 중 길을 돌렸습니다. 저 역시 공동산에 꼭 올라보고 싶군요.”

“그렇습니까···?”

“아쉽게도 오르지는 못했지만요.”

“일전에는 돈황으로 가시는 길이었다고···?”

“···예, 평량까지 갔다가 자리를 비우셨다는 소식을 들어서···”

“허면, 절 찾아오셨던 겁니까?”

“······.”

여기서 본론을 꺼내야 할까. 수룡은 그런 생각에 잠긴다. 자신이 찾아온 진짜 목적. 정문에게 도전하기 위함을 말이다.

그가 용기를 끌어 올려 입을 막 열려고 할 때.

“여기들 있었군!”

밝고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둘 사이를 가른다.

“당가주.”

“숙부님.”

“뭣들 하시나, 여기서? 한 판 붙기라도 하려고?”

“허허허. 설마요.”

“······.”

평소와 같이 던진 농담에도 정문과 수룡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이게 여유롭게 앞서가는 자와 뒤처짐을 인정하고도 열심히 쫓아가는 이의 차이일 것이다.

“뭐, 농담이네. 수룡은 늘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당천정은 시선을 피하는 수룡을 보며 가볍게 어깨를 툭 치고 둘 사이로 끼어든다. 당문이라는 거대한 세가의 수장답지 않은, 친근한 모습이다.

“당가타 생활은 좀 어떤가? 괜찮은가?”

“배려해주신 덕에 편히 쉬고 있습니다. 사제들 역시 제대로 치료를 받고 있구요.”

“뭐, 배려라 할 것까지야 있나. 더한 것도 줄 수 있네만.”

“여기서 더 말씀입니까?”

“뭐, 가령 내 딸이라던지.”

!

당천정은 농담인지 진담일지 모를 말을 꺼내 정문을 당황시킨다.

“저···, 이래뵈도 도사입니다만.”

“하는 짓이 그닥 도사같이 보이진 않네만.”

“가주님 역시 당문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만.”

- 씨익.

자신의 말에 한 수도 접지 않고 들어오는 정문을 보며 당천정이 밝게 웃는다.

“그래,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내 딸을 보내지.”

“도사입니다. 이제 도문의 대제자를 겸한.”

“공동은 결혼 못 하나?”

“안 합니다. 당문은 또 데릴사위를 들여야 하지 않습니까? 공동파 장문인을 데릴사위로 데려가실 생각입니까? 욕심이 과하십니다.”

“쯧. 세상에 가지지 못할 게 어디 있나. 천하제일 후기지수에, 중견고수, 이제는 절정의 고수까지. 고작 이년 여 만에 모두 가진 이도 있거늘!”

“꿈 깨십시오. 허몽입니다.”

“뭐, 차차 내 딸아이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세. 보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니. 아참. 대화는 딱히 나누지 않는 걸 추천하고.”

- 딸꾹!

당천정, 딸, 대화란 단어가 나오자,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수룡이 깜짝 놀라며 딸꾹질을 한다. 무언가 좋지 않은 기억이 그를 스치는 모양이다.

“···?”

“될 수 있다면···, 얼른 감숙으로 돌아가시길 권합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

정문은 별다른 의미 없는 당천정의 말에도 경기하듯 반응하는 수룡을 보며 그의 딸 역시 예사 인물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졌다.

“저녁에 시간들 어떤가? 함께 술이나 나누지.”

“무정검만 괜찮으시다면.”

“저 역시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다만···”

“다만?”

“고상 대사를 함께 불러주시겠습니까? 나눴으면 하는 대화 역시 있어서.”

“흠···, 소림승과 술을 마실 일은 없고··· 서역 세력에 대한 말을 꺼내려는 거로군.”

이미 서장까지 향하며 정문에게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간단하게 들은 당천정은 정문이 그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꺼내려는 것이라, 그렇게 예상했다.

“예, 앞으로 일 역시 함께 논의했으면 합니다.”

“흠, 언뜻 듣기로도 예삿일이 아니라고 생각은 했었네만. 제법 무거운 이야기가 오가겠군.”

“가볍지는 않을 겁니다.”

“술 대신 차를 준비해야겠군. 식사를 마치고 다들 모이도록 하세. 내 사람을 보낼 테니.”

가볍지는 않을 거다. 정문의 저 말이 가지는 무게를 당천정은 모르지 않았다.

말을 끝으로 당천정은 몸을 돌려 집무실로 향한다. 다른 이들은 몸을 휴양하고 있는 곳이지만, 가주에게는 사무가 밀린 일터일 뿐이다.

수룡과 정문 역시 인사하고 서로 발길을 돌린다. 정문은 계속해서 산책을. 수룡은 자신의 처소로 발을 옮겼다.

* * *

- 턱.

들려오는 발소리에 어린 여인이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본다. 그녀의 뒤에는. 공동의 도인, 무정검이 자리하고 있다.

“화낭자. 놀라셨소? 딱히 그럴 의도는 아니었소만.”

“잠시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어요. 확실히··· 돈황보다는 푸른 도시네요.”

뒤를 돌아선 여인은 화난설.

월아문의 여식으로 달뢰라마의 귀환을 도운 그녀가 뒤를 돌며 정문에게 웃어 보인다.

“외롭지는 않소? 이제는 달뢰라마까지 없으니.”

“딱히요. 명화 도장이 잘 놀아주시고 또 주변을 구경하면 시간이 금방 가는걸요.”

“흠, 그렇다면 다행이구려.”

“배려해주신 덕이에요. 감사하고 있어요.”

“뭐, 당문이 한 거지 내가 한 게 아니오만.”

“아니요. 대접 말구요.”

“···?”

“덕분에 무사히 라마를 서장까지 모셨어요. 월아문의 희생도··· 헛된 게 아니겠죠. 모두 무정검 도장 덕분임을 알아요.”

화난설의 입에서 제법 친절한 칭찬이 쏟아진다.

첫 만남은 분명 좋지 않았다. 서로의 무공을 펼쳐 보였고 정문은 그녀를 죽일 뻔도 했었다. 나눴던 대화마저도 좋지 않았던 첫날.

그녀는 그저 무정검을 가벼운 도인. 그 정도로만 인식하고 바라봤음을 정문은 모르지 않았다.

“나에 대한 평가가 제법 바뀐 모양이오?”

“뭐, 제 옷을 처음 벗긴 남자니까?”

“그, 그건··· 분명 오해였다고···”

당황하는 정문.

일전에 옷을 갈아입으며 생겼던 오해를 화난설이 농으로 풀자 당황하고 마는 정문이다.

“농담이에요. 농담.”

농담이라면 꺄르륵 웃는 화난설. 이제 겨우 약관을 넘긴 그녀의 웃음이 제법 아름답다.

“···당가타에는 어느 정도 더 머무를 예정이오. 혹여 불편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하시길.”

당황으로 얼굴이 붉어진 정문이 발을 돌리려 한다. 하지만, 그런 정문의 옷깃을 붙잡는 화난설의 말.

“이제···, 월아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농에서 바로 이어지기에는 조금 진중한 말이 그녀의 입을 탄다. 웃음으로도 가려지지 않던 수심이 그녀의 눈에 아린다.

“······장담할 수는 없소만, 재기가 쉽지는 않을 거요.”

“역시 그런가요?”

“문주와 낭자의 용기는 대단했소만, 문도들은 그렇지 못했지. 이제는 돈황에도 그간 있었던 일들이 말로 풀렸을 테니···, 쉽지는 않을 거요.”

“도망간 문도들···, 그들 때문인가요?”

“중인들은 언제나 칭찬거리보다는 욕할 거리를 더 찾는 법이오. 아마 시선은. 그대들의 용기보다는 떠나간 문도들의 비겁함. 그곳에 몰릴지도 모르겠소. 그들 역시 월아문도로 싸잡아 불릴 테고.”

“냉정한 세상이군요.”

“각박한 세상이고.”

- 휴우우우.

정문이 내놓는 예측에 화난설은 크게 한숨을 쉬며 어두운 표정을 떠올린다. 아비는 분명 돈황을 떠날 생각이 없을 것이다.

문도들이 늘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어쩌면, 월아문이라는 문파가 이번 대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상황. 화난설은 이제 막 끝낸 하나의 과제에 이어 몰려오는 다른 과제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방법이 영 없는 건 아닌데···, 그 길 역시 결단은 필요할 거요.”

“방법이···요?”

“있긴 있소. 허나, 결단은 꼭 필요한 일. 혹여 들을 생각이 있다면, 내 한번 풀어볼 의향은 있소.”

“······.”

정문이 무슨 말을 할까. 그의 계책이 신묘함은 이미 화난설도 알고 있다. 가끔은 무모하게도 보이지만, 그는 항상 자신이 뱉은 말을 그대로 실현했음까지도 알고 있는 그녀다.

“선택은 낭자와 문주께 달렸소만.”

“듣겠어요. 들려주세요. 월아문이···, 돈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계책을요.”

난설은 잠시 고민하던 눈빛을 하더니 이내 결심으로 눈빛을 바꾸며 정문에게 다가간다. 당장에 월아문이라는 이름을 유지할 수 있다면 무엇을 못 하겠는가.

“계책이라 할 것도 없소···, 방법이라면. 의외로 간단하니.”

“너무 돌려 말하지 않으셔도 돼요. 눈치는 충분히 있으니까요.”

“그렇소? 그럼···”

정문은 본론만 하라는 난설의 당돌한 말에 슬쩍 입꼬리를 올리고 바로 자신이 하려던 말을 뱉는다.

“공동의 속가가 되시오. 그럼 월아문은 살아날 수 있소.”

!!!

너무도 충격적인 말이 떨어져서일까. 난설은 그만 답하는 것도 잊고 충격에 빠진다. 갑작스레 공동의 속가라니. 이게 무슨 뜻일까.

“돈황 역시 감숙의 일부. 공동의 이름값이 먹히지 않는 곳이 아니지. 월아문은 이번 일에 공동과 협력했다. 그리고 서로에게 반해 속가와 본산의 관계를 맺었다. 그런 말이 퍼진다면, 새로이 찾아올 문도 수 역시 적진 않을 거요.”

“고, 공동의 속가란 게···, 그리 쉽게 될 수 있는 건가요?”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오만···, 보통은 직접 개파를 하지 흡수하는 일은 잘 없소.”

“헌데도, 예외를 두겠다는 말이군요?”

“나 또한 원하는 게 있기에.”

정문은 자신을 향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난설에게 직접적으로 원하는 것이 있다는 말을 전한다. 이런 거래에서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비천종···을 원하시나요?”

“문주에게만 전해지는 무공은 아니라던데.”

“그렇다고 외인에게 전하는 무공 역시 아니죠.”

“속가와 본산의 관계가 되면. 딱히 외인은 아니오만.”

“······.”

오히려 직설적인 말을 들은 난설은 정문이 제안한 말이 더욱 신빙성 있게만 들려온다. 사실. 그렇게 나쁜 거래 조건은 아니다.

비천종이야 자신들 고유의 무공이지만 수련이 어려워 문주의 자손이 아니고는 쉬이 익히지 못하는 무공이다. 이런 식으로 월아문이 망한다면. 더는 전승되지도 못할 그런 무공.

반대로 공동의 속가가 된다면. 새로이 공동의 검술까지 하사받게 된다. 비천종이 아무리 뛰어난 경공이라도. 검술에 약한 이들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임을 여실히 느낀 화난설이다.

“그저 제안일뿐. 억지로 무공을 뺏으려고도 하지 않을 테니, 편히 생각해보고 말씀해주시오.”

때로는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거래에 이득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쪽이 제안한 안건이 매력적일 때는 더더욱.

- 스윽.

말을 남긴 정문이 돌아선다. 아무런 작별도 없이, 슬쩍 여운을 남기고 자리를 뜨려던 정문. 그런 정문의 옷깃을. 난설은 한 번 더 잡고 만다.

“공동의 속가라면···, 누군가 속가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겠죠?”

‘걸렸다!’

밝은 표정으로 돌아서는 정문.

“그렇소. 문주께서 공동산에 들어 한동안 수련을 하셔야 할 거요.”

“그럼, 비천종은 공동의 무공이 되는 건가요?”

“그건 아니오. 그대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나 홀로 익히겠소. 이건 약속할 수 있소.”

“개인적인 거래였군요.”

“그만큼 탐이 나기에. 또 나에게는 그 정도의 권한도 있고.”

“공동의 속가라···, 확실히 매력적인 제안이네요.”

“매력적이면, 얼른 받으시는 게···”

“하지만 거절하겠어요. 아버지는 월아문을 비우고 공동으로 가려 하지 않을 테니까요.”

자신 있게 그녀를 압박하던 정문의 입이 굳고 만다.

이런 반응은.

예상치 못한 정문이다.

“···잘 생각해 보시는 게···”

“대신 제가 제안을 하죠.”

“제안을 말이오? 그게 무슨···?”

지금 월아문이 가진 게 비천종 말고 무엇이 있나. 정문은 가진 게 없는 이들이 제안하겠다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정문이 살짝 긴장하며 그녀의 말을 기다린다. 슬쩍 올라가는 화난설의 입꼬리. 난설은 당황한 정문을 재밌다는 듯 바라보며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공동의 이대제자! 절 공동의 이대제자로 받아주세요. 그게 제 조건이에요.”

정문의 손에 비천종의 비급이 들어온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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