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공동으로 충분할까.
“확실히···,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군.”
저녁을 먹고 당천정의 집무실로 모인 무인들.
고상과 정문에게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상세히 들은 당천정의 얼굴이 제법 무겁다.
“아미타불···, 빈승 역시 그리 생각합니다. 새외(塞外)에 새로 생긴 세력은···”
늘 중원을 침략하려 했다. 고상은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저들은 오래간 은밀히 준비했습니다. 특히 중원에게는 더더욱이요. 이건 중원을 적대시하는 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번 달뢰라마와의 일이 있기 전까지, 저들은 늘 중원과 충돌을 피해왔습니다.”
“흠···. 대비가 필요하겠군.”
“아미타불···, 미리 대비하는 게 나쁠 건 없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과거 마교의 침공 역시···”
저들처럼 이뤄졌다. 고상은 누구나 아는 중원 무림의 아픔을 꺼내, 이번 일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강화한다.
“뼈 아픈 역사입니다. 직접 겪은 건 아니지만, 상세한 기록이 당시의 아픔을 잘 나타내고 있지요.”
마교는 마치 신궁이라 불리던 이들처럼 존재를 철저히 숨기며 세를 불려 나갔다. 중원인에 대한 회유 역시 마찬가지.
어쩌면 이런 행보가, 중원을 노리는 새외의 전형적인 행보일 지도 모르겠다.
“아미타불-. 저들의 행보가 마교와 닮아있습니다. 어쩌면, 저들의 침공 역시 예정된 수순일지도 모릅니다.”
“흠···, 역사에서는 중원이 미리 대비하지 못해 크게 고생을 했습니다. 과거는 언제나 차후에 대한 거울이 되는 법. 이번에는 이를 쉬이 넘기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말은 통한다. 정문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상과 당천정의 대화를 지켜봤다.
조금은.
더 구체적이었으면 하는 정문의 바람이다.
“무정검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나?”
다행히.
당천정은 정문이 말을 이끌어갈 건덕지를 던져준다.
“대비는 확실히 필요합니다. 특히나 공동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말입니다.”
“아미타불···, 공동은 유일하게 서역과 면을 닿아 있는 곳이지요. 이해합니다. 소림은 이를 도울 것이구요.”
“당문 역시 도울 것일세. 빚과는 별개로. 감숙 다음에는 사천이 분명하니 말일세.”
“···제가 세가의 일을 결정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반드시 공동을 돕겠습니다.”
제법 의리가 충만한 말들.
이런 말들이 터지고 나서야, 정문은 자신이 원하던 말을 던져볼 결심을 마친다.
“해서 말입니다만···”
“복안이 있는가?”
“아미타불···, 무정검의 책략이야, 믿을 만한 일이지요.”
조금은 기대가 가득한 말들이 정문을 향한다.
다들 정문의 책략이 매번 사태를 잘 풀어 왔음을 모르지 않았다.
“정도 무림인들이 한번 모였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있습니다.”
!
“정도 무림인들이라 하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그 모두가 말입니다.”
!!
거침없이 뱉어지는 정문의 말에 당가주와 장경각주, 그리고 소가주의 행동이 일시에 굳어 버리고 만다.
“모두···말인가?”
“예, 모두. 부르긴 모두를 부르겠지만···, 모두가 참석하진 않겠지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제법 복잡한 관계로 묶여있다. 이들이 자주 모이고 회담을 나눌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수십 년에 한 번 있는 일.
구파일방조차 함께 모이는 일이 드문데, 거기에 오대세가까지 모두 오라니. 중원 무림 전체에 발생한 대사(大事)가 아니고는 쉬이 있을 일이 아니다.
“아미타불···, 분명 좋은 대책이긴 합니다만···, 몇이나 이를 응할지.”
“반절만 모여도 남는 장사가 아니겠습니까?”
“반절이라···.”
“물론 그 이상을 기대합니다만. 최저치가 그 정도라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보자, 당가에 남궁, 그리고 또 누가 이를 받으려나.”
정문의 말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다른 이들.
이들 역시 정문의 말처럼 정도의 명문이 모여서 준비를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들을 전부 모은다면, 시간이 제법 걸릴 문제입니다. 빈승은 그때까지 여유가 있을지, 그 역시 불안합니다. 아미타불-.”
“흠, 대사의 말씀이 맞네. 당장에 모이는 것을 안다면, 저들이 행동에 나설 수도 있지 않나? 저들을 자극해 행동에 나서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고상과 당천정은 정문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걸리는 점들을 차분히 골라본다.
만약 저들이 정말로 중원을 침범할 결심이 선 상태라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움직이려는 순간, 바로 행동에 나설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 씨익.
정문은 자신의 제안에 대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입꼬리를 살짝 비릿하게 올린다. 오로지 고상만이. 저 표정이 어떨 때 나오는 표정임을 알아차린다.
‘아, 아미타불···, 저 표정이 왜 또···’
“시간은 충분합니다.”
“시간···이 충분하다?”
“예, 당가주. 저들은 적어도 반년, 길게는 일 년 이상을 중원을 넘보지 못할 겁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어째서?”
“그야, 여기 있는 분들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
자신들은 이제야 고창신궁이라는 곳에 대해 자세히 들은 참이다. 서장으로 향하며 말이야 전해 들었지만, 지금처럼 진지하게 말을 나눈 건 아니었기에 이들이 무언가를 해두었을 리는 없었다는 뜻이다.
“얼마 전 함께 해낸 일이 있지 않습니까? 모두의 협력으로.”
“달뢰라마를 말하는 건가?”
“아미타불-. 무정검. 포달랍궁은 아직 내전 중이라 들었습니다. 과연 서장이 서역의 발목을 잡을 수는 있을지.”
“내전은 곧 끝날 겁니다. 보자···, 이제쯤이면 반선도 랍살에 들었을 테니···, 한 달이면 내전이 수습되겠군요.”
“그리 간단한 일입니까?”
“뭐, 달뢰라마를 모셨으니, 이제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정문은 유수처럼 자신의 안목을 풀어내며 던져지는 질문에도 모두 대답을 들려준다. 자신이 가진 의견에 확신이 가득 찬 것이다.
“포달랍궁은 칠 년. 자그마치 칠 년이란 세월을 달뢰라마와 반선라마가 자리를 비운 채로 내전을 겪은 곳입니다. 내전이란, 비겁하게 중립에 숨기 좋은 전쟁. 수장이 없는 곳에서는 더더욱 그렇겠지요.”
“이제 달뢰라마가 왔으니···, 중립 뒤에 숨었던 이들 역시 돌아올 거란 말이군.”
“정확하십니다. 거기에 포달랍궁의 무력을 담당하는 반선라마까지. 그가 이끈 정예들도 궁으로 돌아왔을 것이니, 내전은 쉬이 수습될 겁니다.”
“······.”
분명 고상은 정문이 이번 일을 진행하는 처음부터 정문과 걸음을 함께했다.
하지만, 정문처럼 저런 거시적인 관점을.
고상은 가지지 못했다.
말은 된다.
신빙성 역시 있고.
당천정은 마지막으로 남은 의문마저 정문이 풀어준다면, 이번 일에 동참하리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무정검. 다 좋네. 말도 되고. 허나, 내 하나 더 의문이 남네만.”
“하문하시지요.”
“자네 말처럼, 포달랍궁이 한 달 안에 내전을 수습한다고 치세. 그렇다면, 저들 역시 내부의 혼란을 수습해야 할 터. 저들이 그 기간에 서역을 칠 여유가 있겠는가?”
아무리 내전이라고 해도. 전쟁은 전쟁이다. 이를 막 수습한 세력이 다시금 전쟁을 일으키려 할지. 당천정의 의문은 그곳을 향했다.
“내전은 결국 집안싸움입니다. 내전이 수습된다고 해도···, 가주님의 말씀처럼 완전히 하나의 조직으로 나아가기에는 많은 난관이 있겠지요.”
“물론이네. 불신 역시 가득할 거며 지난 일을 들어 서로를 비난하려 할 걸세.”
“아미타불···, 잔인하지만, 현실적인 안목입니다.”
“그럼 여쭙겠습니다. 그런 내부적인 분위기를 수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무엇을 해야 하냐니···? 당연히 그들을 하나로 뭉치고 또, 새롭게 신뢰를 쌓을···”
!!!
그저 정문이 묻는 말에 답을 뱉던 당천정. 한 가문의 수장으로서 자신이 아는 것을 차분히 뱉던 당천정의 머리에 한 줄기 빛이 스친다.
- 짝!
“적···, 그렇지! 외부의 적! 외부의 적을 만들면 되는 거군!”
당천정은 스친 빛을 놓치지 않고 잡아낸다. 손뼉까지 치며 옳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당천정의 표정이 밝아진다.
“중립이라는 이름 뒤에 숨었던 이들은 온전한 병력까지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들은 그간 내전에 참여치도 않았을 테니, 여력은 충분할 겁니다. 또···, 외부의 적은 저들의 상징과도 같은 수장을 노렸습니다. 집안 식구를 하나로 묶기에는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을 겁니다.”
“과연···!”
당천정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정문을 바라본다.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는 눈빛과 함께 사태를 바라보는 정문의 시각에 감탄을 보내는 눈빛이다.
“고상 대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미타불-. 빈승의 미천한 생각으로는···, 무정검의 말에 반박할 거리가 없습니다.”
“허면, 일을 진행해도 되겠군요. 허허허.”
당천정은 걸리던 마지막 의문이 사라지자, 조금은 진중함을 버리고 가벼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제 무얼 준비해야 합니까?”
“흠, 수룡. 누군가 정도 대회의 개회를 선포해야겠지. 우선은 거기서 시작. 대회가 열리고 난 다음 일은 순리를 따라갈 걸세.”
“아미타불-. 발안은 그럼 누가···?”
“공동이 발안하겠습니다.”
!
서로 눈을 맞추는 당천정과 고상.
공동이 나서주면, 다른 이들은 분명 짐을 덜게 된다.
그럼에도, 이들은 한 가지 걱정이 마음에 걸리고 만다.
- 공동으로 충분할까.
그런 현실적인 걱정을 말이다.
공동의 명성이야 많이 올랐다. 이전과 비교하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그럼에도, 아직은. 이런 큰 회의를 주최할 여력이 되는지, 이들에게는 의문이 남았다.
“물론, 여기 계신 분들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아미타불···, 도움이라면?”
“참석을 천명해주십시오. 소림과 당문, 남궁까지 합세해 참석을 천명한다면···, 다른 이들 역시 쉬이 불참하지 못할 겁니다.”
“흠···, 그건 분명 가능성은 있네만···, 장담은 못 하네.”
“난주에서 화산의 속가 무인들 역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본산에도 분명 보고가 올라갔을 터. 화산 역시 이번 일에 기꺼이 응할 것입니다.”
공동이 발안하고, 소림과 화산, 당문과 남궁이 이를 지지한다. 어쩌면, 제법 괜찮은 그림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저는 중원의 생리를 잘 모릅니다만···, 만약 무정검의 말씀이 모두 맞는 말이라면···, 가능성은 있어 보입니다. 특히, 반절만 참석해도 성공이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가만히 말을 듣고 있던 남궁수룡.
그가 어른들의 결심에 무게추를 달아준다.
반절만 성공해도 된다.
그런 명확한 기준을 말이다.
“아미타불···, 어찌 될지는 모릅니다만, 빈승은 사문에 이번 일을 건의하겠습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입니다.”
“흠, 만약 기준이 반절이고 또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당문 역시 거절할 이유는 없네. 명문들이 머리를 맞대야 할 상황임은 분명하니.”
회담이 결착에 이른다.
당천정과 고상이 결심을 내린 이상, 더는 지체할 사안은 없을 것이다. 정문은 빠르게 일정을 정리하며 차후에 준비할 일들을 설명했다.
귀환에 대한 일정과 발안문을 띄울 시기. 그리고 회의를 가질 날짜까지. 정문은 오래도록 일을 준비한 사람처럼 빠르게 이를 안내했다.
“뭐, 이 정도면 충분하겠네. 시간이 늦었으니, 오늘은 이만 자리를 파하지.”
“다들 배려해주신 덕입니다. 공동은 이를 잊지 않겠습니다.”
정문의 짧은 인사를 마지막으로 무인들이 집무실을 떠난다. 당천정을 남겨두고 밖으로 향하는 셋. 천천히 걸음을 걷던 고상이 슬쩍, 정문에게 다가선다.
“무정검.”
“예, 대사.”
“소림은 분명히 이번 일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리 말씀해주셔, 아직도 감사하는 중입니다.”
“대신. 이런 판단에···, 소림이 감숙에서 몰래 일을 진행한 것에 대한 사과 역시 담겨있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 일은··· 이미 잊었습니다.”
처음에는.
소림이 반대한다면 이를 이용해 지원을 끌어내려 했던 정문이다.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도 호의적이었던 고상의 반응에 정문은 지난 일을 덮겠노라, 그런 선언을 남긴다.
“아미타불···, 혹여 이것 때문에 그간 모른 척을 하신 겁니까?”
“딱히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끝까지 반대하셨다면, 한 번은 꺼내 볼 작정이었습니다.”
“역시.”
“예?”
“천불사에서 오늘까지. 모두 무정검의 생각대로 흘러갔다는 말씀이시군요.”
!!!
이건.
한 방 먹었다.
정문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알을 조금 굴려본다.
“······.”
“아미타불-. 문제 삼으려 확인한 건 아닙니다. 그저···, 개인적으로 궁금했을 뿐. 어쨌건, 잊었다는 말은 믿으며 숭산으로 가겠습니다.”
당황하는 정문을 뒤로 고상은 유유히 걸음을 나아간다.
매번 정문에게 휘둘리던 소림의 장경각주가.
처음으로 정문을 당황시켰다.
‘허, 참. 이렇게 한 방 먹네.’
씁쓸한 미소를 정문이 지어가던 도중.
“무정검.”
또 다른 무인이 정문의 뒤로 다가온다.
“아, 신뇌검. 아직 계셨습니까?”
“말씀을 하나 전하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말입니까? 무엇을···?”
이건 또 뭘까.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정문을 향해, 수룡은 자신이 준비한 말을 꺼낸다.
“남궁은···, 이번 일을 중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말입니다.”
“함께해주셔, 감사하고 있습니다.”
“지지···, 역시. 장담은 드리지 못해도 제가 강하게 건의를 하겠습니다.”
“···갑자기 그런 말씀을 왜···?”
다시 하나.
회의에서 모두 끝난 말이 아니냐는 그런 의문을 정문이 띄울 때.
“그럼에도···, 조금 생색을 내었으면 합니다.”
“생색···?”
“예, 부끄럽지만, 한 번만 생색을 내볼까 합니다.”
“······주시는 도움이 적지 않기에, 공동은 들어 드릴 수밖에 없겠군요.”
눈앞에서 자신이 하려는 일이 작지 않음을 내세운다.
정문은 수룡이 무언가를 바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별다른 큰 소망은 아닙니다만···”
“뜸을 들이시니, 더 겁이 납니다.”
뭘까.
분명 수룡은 다 가진 놈이다.
천하제일 후기지수란 명칭만은 정문이 뺏었지만, 그 하나만을 제외하면, 남궁의 후계자가 공동의 후계자에게 딱히 바랄 것이 없다는 말이다.
정문이 의심이 짙은 눈으로 수룡을 바라본다.
답지 않게 긴장까지 하는 정문.
그런 정문을 향해, 잠시 숨을 몰아쉰 수룡의 입이 부끄럽게 열린다.
“한 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