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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공동을 무시하지 마라-112화 (112/153)

112. 사이가 좋아 보여서.

- 챙! 챙! 챙!

- 촤악! 촤악! 촤악!

오가는 검들 사이로 상반되는 두 눈빛이 마주한다.

누군가는 생사의 기로에 달렸듯 필사적인 눈빛을.

또 다른 이는 여유가 가득 담겨 상대를 가늠하는 무심한 눈빛을 발하는 중이다.

‘흠···, 진명이가 조금만 더 수일하면···, 될 것도 같고.’

무심한 눈빛을 뿜는 검수는 오롯이 상황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생각까지 떠올린다.

그럼에도.

- 촤아악!

진중한 눈빛의 검수만이 옷깃을 찢어 먹을 뿐이다.

“허억. 허억. 헉···”

일방적으로 공세를 퍼부었다. 이건 명확한 사실. 다만, 상대의 막아내고 뿌리치는 검에 실린 기력이 만만치 않았기에, 진중한 눈빛을 띤 남궁수룡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귀공자.

명문가의 후계자라는 말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남궁수룡은 늘 옷 가짐 역시 바르고 흐트러짐이 없는 사내였다.

비록 지금은.

무복 곳곳이 찢어진 누더기의 상태지만 말이다.

닿지 못할 높은 곳임을 몰랐던 건 아니다. 격차가 존재함은 객관적이었으니까.

다만, 그 격차가. 너무도 여실히 드러나, 수룡은 더 당황스러운 와중이다.

‘피라도 조금 내줘야 하나?’

반대로 무심한 눈빛의 정문은.

그저 수룡을 바라보며 어디까지 보폭을 맞춰 줄지. 그런 생각을 하며 손속을 계산하고 있다.

나이에 비해 과한 여유가 정문의 몸에 가득하다.

- 쩌러엉! 쩡-!

- 꽈아앙!

다시금 뇌기를 뽐낸 수룡의 검이 정문을 향한다.

이번에도.

수룡은 멀리 날아가고, 또 동시에 구르며.

자신이 바라보던 곳과 현재 서 있는 곳의 격차를 여실히 느끼는 중이다.

찢어져 넝마가 된 옷에 흙까지 묻어, 남궁보다는 개방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려 가던 즈음. 문득 수룡의 눈에 자신의 무복이 들어온다.

‘······이게 실전이었다면···’

정문은 분명 살이 아닌 천만을 찢었다. 다시 생각해도 놀라운 경지의 조절. 수룡은 이게 실전이었다면, 너덜해진 것이 옷이 아닌 자신의 몸이라는 상상에 살짝 치를 떨었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못 하고 끝이 난다.

그런 생각에 수룡은 검에 가득 뇌기를 서리며 자세를 고쳐 잡는다.

- 지이이잉!

이미 떨어질 때로 떨어진 기력을 모아 마지막 한 수를 준비해보는 수룡.

“마지막 수를 준비하려 합니다.”

수룡은 마지막 일격을 날릴 준비를 마치자, 정문을 향해 이번 공격이 쉽지 않음을 미리 알려준다.

고개를 절레 돌리는 정문. 명문 정파란 자들은 이런 점이 참 고리타분하다.

“오십쇼. 마지막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니.”

‘옷깃만이라도···’

옷깃만이라도 스치자. 자신의 옷에 잔뜩 남은 흔적을 보며 수룡은 소박한 소망을 떠올렸다.

- 타타타타탓!

뇌기가 가득한 검으로 정문을 향해 달려가는 수룡. 정문은 처음부터 한 번도. 저 자리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 수룡은 그런 다짐과 함께 몸을 공중으로 높이 날린다.

- 쩌르르릉! 쩌어엉!

거칠게 내려치는 수룡의 검. 그의 검이 그리는 검로들 따라 섬전과 같은 뇌기가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 슈와아악!

- 카아아아아아앙!

정문은 그런 혼신의 일격을 무심한 표정으로 퉁! 하고 쳐내버리고 만다. 마치 바람에 날리는 갈대처럼, 수룡의 검이 위로 다시금 올라간다.

‘!!!!’

검과 함께 공중으로 떠오르며 눈을 크게 뜨는 수룡.

공격이 막혔다는 생각보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무언가가, 그를 더 당황스럽게 했다.

- 솨아아아!

자신을 쳐낸 정문의 검. 그 검이 어느새 다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그 광경에 수룡은 어찌 대처해야 할지 감히 상상이 가질 않았다.

‘멈추겠지···?’

계속되는 교전 와중에도 정문은 손속에 정을 두고 있었다. 살을 벨 수 있음에도 수룡의 옷만 찢어 간 게 그 증거. 그런 생각에 수룡의 마음에 안도감이 자리할 때.

수룡은.

정문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만다.

!!!

진지한 눈빛. 자신의 검로가 향하는 그 끝을 바라보는 정문의 눈빛이 수룡의 숨을 멎게 만든다. 마치, 그 끝을 반드시 베어 버리고 말겠다는 일종의 살기와 같은 진중함이 정문에 눈에 담겨 있다.

‘설마···?’

정문의 기세는 검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안도는 불안으로 바뀌고, 적당히는 진심으로 바뀐 순간.

‘막아야 한다!’

근맥이 끊어지는 고통을 참으며 수룡이 높이 튕긴 검을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들인다. 올라오는 정문의 검을 막을, 그런 의도로.

- 까아아아앙!

수룡의 몸이 멀리 날아간다. 대각선으로 급하게 검을 비틀어 일격을 막아 냈지만. 충격을 흘리기에는 무리였다.

- 후우우웅!

- 콰앙!

살았다. 분명 죽지 않았으니, 산 것이다. 그런 생각보다 먼저 몰려온 생각은.

“우욱!”

거칠게 날아가며 담벼락에 박혀버린 자신의 내부가 너무도 아프다는 생각이다.

“우와악!”

속이 진탕되는 느낌에 토혈이 몰려온다.

“크윽-.”

입가를 소매로 닦으며 고개를 드는 수룡. 그의 눈앞에는 다시금 무심한 눈빛을 한 검수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무정···검···’

무정검.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다.

강호에 떠돌던 이름이 그에게 붙은 거니까.

허나, 지금 마주하는 저 눈빛을 보면.

이를 지은 이는 무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고수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남궁수룡을 스친다.

“한 수···, 배웠습니다.”

“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양보해줘서 고맙다라. 자신이 뱉을 때는 몰랐다. 이 말을 듣는 이들의 심정이 어떠한지. 저 말이 얼마나 패자의 폐부를 찌르는지, 수룡은 이제야 느끼고 있다.

“따로 말은 남기지 않겠습니다.”

정문은 인사를 나눈 후 검을 검갑에 넣고 그대로 돌아선다.

열 마디의 말보다, 지금은. 그저 홀로 침전할 시간을 주는 게 좋을 것이다.

‘흠···, 해주고 싶은 말은 많다만···뭐···, 대련만 복기해봐도 얻을 건 있을 테니까.’

정문은 수룡과 아무렇지 않게 펼치던 대련 와중에 곳곳에 수룡의 무공을 지적하는 검로를 심어뒀다.

만약 수룡이 여기서 그저 슬퍼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정문과의 대련을 복기한다면. 분명 수룡은 아직 성장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침전에 빠진 수룡을 뒤로 정문이 걸어간다.

여전히.

수룡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 * *

“공동의 이대제자, 화난설이 사숙과 사고를 뵙습니다.”

- 척!

멋들어지게 무릎을 꿇으며 화난설이 진명과 사풍, 명화와 묵환에게 인사를 올린다. 포권한 주먹을 어깨 쪽으로 당기는 난설의 모습이 제법 공동의 무인다운 자세다.

“···‘예비’를 붙이라니까.”

“확실히 되는 거 아니었나요?”

“···우선은 본산에 들러 장문인께 허락을 받아야지. 이대제자가 비록 내 제자가 될 아이들이긴 하다만···, 사문에 새 사람을 들이는 게 어디 그리 쉬울까.”

“피이. 다 되는 거처럼 말씀하셔 놓고는요.”

“되긴 된다니까!”

사제들은 갑작스럽게 생긴 사질과 또, 그녀를 대하는 사형의 말투가 변한 것에 영 적응을 못 하고 있다.

“그래, 말은 들었습니다만···, 아니. 들었다만! 새 사질이 이렇게 생기니 기쁘구나.”

“잘 부탁해! 명화 사고라고 부르렴! 이대제자 중에는 여자아이들이 적어 늘 걱정이었는데! 난설이가 언니가 되어주면 되겠네.”

“무, 묵환 사숙! 그렇게 부, 불러!”

“쳇, 편애하는 모습이 딱 눈에 보이는군. 무성이가 실망하면 어쩌려고?”

처음 말을 들었을 때야 사제들 역시 놀라는 눈치가 가득했지만, 우선 정해졌다는 말이 정문의 입을 타자, 이들은 어느새 따스한 사숙과 사고의 모습으로 돌아 간다.

“늘 수일하거라. 그거면 되니.”

“예! 진명 사숙! 열심히 하겠습니다!”

“또···, 스승님이 되실 분을 굳이 닮지 않아도 된다. 이것 역시 명심하면 좋을 것이니.”

무슨 뜻일까. 정문이 너무 높이 나는 새이기에 굳이 이를 목표라 삶지 말라는 그런 말일까.

아니면···.

정문의 기행을 닮지 말라는 말일까.

난설은 조금 헷갈리는 중이다.

“나이가 많긴 해도, 입산 순서에 따라 산에 가면 막내가 될 거야. 잘 적응할 수 있겠니?”

“그럼요. 당연히 사형들을 제가 모셔야죠.”

공동의 이대제자들은 연령의 분포가 다양하다. 열 살이 겨우 넘은 아이들부터 묵환과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 아이들까지.

아마, 난설은.

이대제자 중 최연장자가 될 것이다.

“거, 아직 정식으로 입산하지도 않은 애한테 잔소리들이 많냐. 대충 해두거라.”

“사형이! 제대로! 말! 안 했을까 봐! 그러죠!”

“아, 대충은 해뒀대도!”

“대충! 대충! 대충! 막 수련도! 전투도! 대충 하시는 분이었으면! 이해를! 하지!”

점점 뒤로 물러서는 정문. 명화의 기세에 감히 당해내지 못하고 그가 조금 물러나 몸을 피하려던 그때.

- 풉!

둘의 티격태격을 지켜보던 난설의 입에서 바람이 샌다. 모두의 시선이 향하는 난설.

“···사, 사이가 좋아 보여서! 죄송합니다!”

돈황에서 난주로 향할 때도 이런 상황에 난설은 웃음을 터트린 적이 있다. 그녀는 일전부터. 공동의 이런 친근한 사제관계를 동경한 것 같다.

“거, 사질도 있는 데, 둘이 참. 닮지 말거라! 닮지 말아!”

퉁명하게 말하는 사풍도.

근심 가득하게 둘을 보며 한숨을 쉬는 진명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혼자 실실거리는 묵환까지도.

모두 난설의 눈에는 친근하게만 보였던 듯하다.

“익숙해지거라. 대사형은 대단한 분은 맞다. 허나, 그리 높은 분은 아니시지. 적어도 우리에게는 말이다.”

“엄청···, 멋진 말 같아요!”

“흥. 그럴 수밖에. 너도 어느 정도 수련을 하면 겪겠지만, 공동은···”

누구나 가리지 않고 검을 뽑아 정문에게 달려들어야만 한다. 사풍은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뭐, 아직 겁줄 필요는 없겠지. 여튼, 수일하거라!”

“옙! 사풍 사숙!”

“매, 매번! 그리 답하지 않아도 된다!”

사풍은 조금 붉어진 얼굴로 몸을 돌리며 팔짱을 끼고 자리에 앉는다. 이대제자를 대함에는 아직 서툼이 많은, 사풍이다.

“다들 준비하고 있거라. 이레만 더 당가타에서 머물고, 평량으로 향할 것이니.”

“드디어 집에 가는군요.”

“와! 본산! 너무 좋아요!”

장장 석 달 만의 귀환이다. 막상 평량에 도착하면 넉 달이 넘을 터. 이렇게 길게 사문을 비워본 적이 없는 사제들은 귀환할 생각에 표정이 밝아진다.

“너무 좋아하진 말고. 가면···, 아마 어느 때보다 바빠질 테니.”

정문은 슬쩍 한마디를 던지며 사제들의 기대감을 눌러본다. 앞으로 준비해야 할 거국적인 행사 역시 사제들에게 설명해야 할 터.

그렇게, 이레가 지나고, 소림의 승려들과 남궁의 소가주, 그리고 공동의 무인 여섯이 당가타를 떠나는 날이 찾아왔다.

* * *

“흠···.”

한 도인이 조용히 자신의 손에 들린 서신을 읽어간다.

‘급보(急報).’라 적힌 서신을 천천히 읽어가는 그의 얼굴이 제법 다부지다.

“뭐라 적혀있길래 사형의 표정이 그렇습니까?”

“노각 사형이야 늘 저런 표정 아닙니까, 별 내용이야 있으려구요,”

그런 도인의 뒤로 무언가를 어깨로 나르며 말을 묻는 사제들. 이들의 모습이 청익과 건오. 그런 이름과 어울린다.

“별 내용이···, 있구나.”

!!

사제들은 자신들의 어깨에 짊어져 있던 것들을 땅에 떨구며 노각을 바라본다. 그들이 떨군 것이 꼭. 사람의 형상이다.

“심각한 겁니까?”

“자세한 설명은 없다. 그저···, 급히 사문으로 귀환하라는 명령 뿐···.”

“귀환령···말씀이십니까?”

강호에 나간 제자들을 사문으로 바로 복귀시키는 장문인의 명령이 귀환령이다. 이는 쉬이 떨어지지 않는 그런 명령이기에 사제들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어본다.

“음, 아마도. 날이 밝는 즉시, 평량으로 떠나야겠다.”

“이거 영 불안은 합니다만···”

다행히 큰일은 아닐 것이다. 이 역시 도인들은 알고 있다.

“큰일이라면 풍문이 돌지 않았을 리가 없죠. 우선 가봅시다. 가면 알 테니.”

사제들은 떨궜던 신형을 주워 원래 향하던 곳에 쌓아둔다. 사람의 신형으로 쌓인 작은 탑. 붉은색 무복을 입은 무인들이 한 곳에 모인다.

도인들은 빠르게 자리를 정리하고 한 장원을 나선다.

그들이 나서는 대문의 뒤로는.

추영(追靈)이라 적힌 현판이 하나 부서져 있고, 서른이 조금 넘는 무인들이 단전이 박살 난 채 산으로 쌓여 있다.

다음 날.

빠르게 도시를 떠난 세 도인의 뒤로, 추영파라는 작은 사파가 멸문했음을 알리는 풍문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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