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네이노옴! 게 섯거라!
“흠, 조금 이른 것 같지만···, 곧 다시 볼 테니.”
당가타의 입구까지 배웅 나온 당천정이 떠나는 이들을 보며 아쉬운 듯 말을 남긴다.
“아미타불-. 이제부터는 이별을 아쉬워할 틈도 없겠지요.”
“다른 건 몰라도 무정검이 내 딸 아이 한 번은 보고···”
“아미타불···”
이 사내도, 정상은 아니다. 고상이 눈을 감고 고개를 조금 흔든다.
“난주로 기술자를 하나 보내주십시오. 잡은 무인들에게 알아낼 정보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흠, 알아내야 할 것들이 제법 많겠군.”
“섭혼검이 살아 있으니, 제법 깊은 정보를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래, 듣자 하니, 장문인께서 직접 나서셨다지?”
“못난 제자들 때문이죠.”
섭혼검을 스승이 잡고 묵룡자를 제자가 잡았다라. 이상하게 돌아가는 판세에도 무정검이라면 이해가 가는 당천정이다.
“뭐···, 기술자는 수배하는 즉시 난주로 보내겠네.”
말을 끝으로 무인들이 당가타를 떠난다. 조금 걸어 성도를 빠져나와 나타난 두 갈래의 갈림길. 하나는 서쪽 감숙으로, 또 하나는 흔히들 말하는 중원으로 나뉘는 갈림길이다.
“아미타불-. 여기서 헤어져야겠군요, 무정검.”
“대사, 오랜 시간 감사했습니다.”
“감사라니요. 오히려 신세는 빈승이 지지 않았습니까? 과례는 비례인 법입니다. 무정검.”
“정도 대회는···, 직접 오실 예정입니까?”
“아미타불-. 앞일은 알 수 없는 법이니다만···, 이번 일을 돌이켜 본다면···, 스승님께서 직접 나서실 가능성이 큽니다.”
“권존(拳尊)께서 말씀입니까?”
“허허허허, 권존이라 불리시지만, 그 칭호를 좋아하시진 않으시니, 혹여 만나 뵙거든 그저 노사라고 부르시면 좋아하실 겁니다.”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그럼, 또 뵙지요, 아미타불.”
얼마 전 정문에게 한 방 먹여 기분이 좋은 고상이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사질들과 뒤로 물러선다.
남궁수룡과 정문이 얼마 전 대련을 나눈 걸 아는 그가 짧은 대화 시간을 양보하는 것이다.
“···신뇌검.”
정문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수룡을 바라본다. 그날 대련이 있고 난 뒤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기에 더욱 어색하게 느껴지는 두 무인이다.
“···무정검.”
“···정도 대회 때는 참석을···?”
“당연히 해야지요. 아버님을 모시고 공동산에 꼭···, 오르겠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평범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두 무인의 사이로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정문은 이런 기류를 타파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럼···, 다음에.”
먼저 포권하며 물러서려는 정문.
그런 정문을 보며 수룡이 입술을 한 번 깨물고 용기를 낸다.
“일전에 대련···, 감사했습니다.”
“···저 역시, 배운 게 많았던 시간입니다.”
아니다. 아니란 걸 수룡도 분명히 안다.
그럼에도 수룡의 태도는.
변화가 없다.
“그저 대련을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남겨두신 가르침···, 그 부분에 대한 감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
남겨둔 가르침이라.
정문은 수룡의 검을 받아내며 곳곳에 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숨겨뒀다. 그의 검로의 빈틈과 나아갈 부분. 그리고 버려야 할 부분까지 모두.
정문은 수룡이 복기(復棋)를 통해 이를 알아내느냐, 혹은 알아내지 못하느냐에 따라 차후 그의 경지가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
다행히.
그는 복기를 통해 이를 알아챈 모양이다.
“제가 한 게 있겠습니까? 모두 소가주의 성취이니. 부디 그런 말씀 마시고 훗날 또 대련합시다.”
정문은 어색함을 지우고 친한 친우를 대하는 친근한 표정으로 수룡을 대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저렇게 나오는 무인을 정문은 싫어하지 않는다.
정문은 조금 전 어색하게 돌아서던 때와는 달리, 후련한 마음으로 돌아선다. 그의 뒤로 수룡이 잠시간 포권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정문은 애써 돌아보지 않았다.
무인들이 각자의 발걸음을 옮긴다.
원래 있어야 할 곳.
그리고 새로운 일이 시작될 그런 곳으로.
* * *
천선단을 괜히 준 것일까.
부리나케 도망가는 정문의 머리에는 그런 생각이 스친다.
“네이노옴! 게 섯거라!”
- 탓! 탓! 탓!
“사, 사숙이시면 서시겠습니까!”
빠르게 도망가는 정문의 뒤로 한 중년의 도사가 나뭇가지를 휘두른다. 아무렇게나 꺾은 것이 아닌, 매를 치기 딱 좋은 그런 회초리를.
- 휘이익!
공동 내에서 자신을 따라잡을 사람이 없을 거라 자평했던 정문. 그런 정문의 행운유수 신법이 이내 중년의 도인에게 따라잡히고 만다.
“으잇!”
- 슈욱!
아슬하게 회초리를 피해내는 정문. 그의 정수리 위로 기세 좋은 나뭇가지가 스치고 간다.
서장까지 긴 여정을 마치고 공동산에 돌아왔을 때까지만 해도 나쁠 건 없었다.
모두가 정문을 반겼고, 묵룡자를 꺾었다는 말에 다들 엄지를 치켜올리며 정문을 칭찬했다.
정도 대회에 대한 당문과 소림, 남궁의 지지를 얻었다는 소식에는 손뼉과 함께 탄성까지.
남부러울 것 없는 그런 귀환이, 정문을 맞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장문인과 장로들에게 멋들어진 보고를 마치고 황성각을 나온 다음부터 분위기가 급변했다.
정문은 손에 회초리를 든 누군가와 마주해야 했는데, 그는 다름 아닌 율법을 담당하는 구천각의 각주, 자산이었다.
- 휘이익!
회초리가 다시금 정문의 옆을 스친다. 마치 검술처럼 날아오는 자산의 회초리. 정문은 그저 뒤를 보지 않고 도망가기 바쁘다.
“장문인을! 그것도 암행으로! 어! 율법이란 게 있거늘!”
“들으셨지 않습니까? 분명 위험했습니다!”
- 휘익!
“자공도! 자명 사형도! 심지어 자준까지 있거늘!”
“제가 그냥 부른 게 아닙니다! 다 깊은···”
“어허! 이놈이! 일단 서지 못해!”
정문은 일전에 난주에서 있었던 격전을 대비해 스승인 자정을 증원으로 부른 적이 있다. 보통은 아무리 가까운 사승관계라고 해도. 이렇게 장문인을 스스럼없이 문외(門外)로 부르는 일은 잘 없을 것이다.
당연히 정문은 섭혼검이나 묵룡자를 이기기 위한 목적만으로 자정을 부른 건 아니다. 복안이. 얕게는 있었다는 말이다.
- 휘이익!
또 한 번 회초리를 피해낸 정문이 억울한 듯 소리친다.
“제가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라니까요!”
“오냐, 그 생각, 나도 좀 들어보자! 일로 안 와!?”
말할 수는 없다. 곧 열릴 회의에서 있을 일과, 또 그 일을 위해 준비했다는 그 말을. 제자가 스승의 명성을 올려보려 꾸민 일이라는 말은 깊이 삼키는 정문이다.
그 역시, 불손하니까.
‘차라리 맞고 말지.’
그런 생각에 정문은 조금 더. 발걸음에 힘을 실어본다.
“진짜! 제 속을 왜 몰라주십니까! 사숙!”
“허허, 이제는 사숙한테 소리도 치는구나! 허허허허!”
- 휘이익!
자산은 부드럽게 말하건 거칠게 말하건 휘두르는 회초리를 멈추지 않는다. 꼭 한 번. 사질 놈을 벌하고야 말겠다는 그의 의지가 굳건하다.
“뿐만이 아니다! 이놈! 또 문외에서 뭐? 이대제자를 받아? 네놈이 아예 규율을 새로 쓰지 그러느냐!”
자산은 장문인을 부른 죄 외에도 정문이 문외에서 제자를 받은 것을 걸고넘어진다. 한 사람이 한 문파에. 그것도 구파일방이나 되는 곳에 드는 일은 이리 쉬이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장문인께서도 허락하신 일을 사숙께서 왜 그러십니까!”
- 스윽.
계속해서 앞으로 뛰어가던 정문. 정문이 몸을 돌리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회초리를 피하며 자산과 마주한다.
“네놈의 부추김이 없었다면 과연 허락이나 했을까!”
“······.”
알고는 있다. 이번에 자신이 벌인 일들이 모두 규율에도 어긋나고 조금은 정도도 벗어났음을. 해서 정문은 당당히 맞서는 것보다 이렇게 피하며 사숙의 화를 누그러트리는 길을 택했다.
보이지 않으면 화도 줄어드는 법.
자산이 자신의 경신술을 따라오는 계산은 정문에게 없었다는 말이다.
‘역시. 천선단 때문이야! 천선단!’
정문의 머리에 신의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망할 영감.
자신은 먹어도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게 다른 문도들에게는 약발이 죽이게 들어 다들 효과가 짱짱하다.
진명과 사풍은 어느새 남궁세가의 소가주와 엇비슷하고 명화와 묵환 역시 후기지수 중에는 상위를 다툴 것이다. 다른 사제들 역시 마찬가지.
허나, 이런 약발을 가장 잘 받은 사람들은.
자정을 비롯한 윗배, 즉 장로 배분의 도인들이었다.
‘평소라면 좋아할 상황이지만···’
사숙과 스승의 무위가 한 층 성장했다. 자정은 섭혼검을 쉬이 잡았으며 심지어 무공을 담당하지도 않는 사숙이 자신의 신법을 쫓아온다.
평소라면 좋아할 상황이지만, 그 성장한 무공을.
자신을 혼내는 데 쓰는 것은 달갑지 않은 정문이다.
“호오? 눈빛 좀 보게! 무정검, 무정검 하더니, 이제 사숙마저 무정히 칠 요량이냐!”
“사숙······!”
“오냐, 치거라! 쳐! 네놈이 무정검인들! 다정검객인들! 이 무명소졸(無名小卒) 자산! 내 사질 놈에게 겁먹는 소인배는 아니니! 내 오늘 공동의 율법을 집행하겠노라!”
자산은 멋들어진 말을 남기고 회초리를 뒤로 당긴다. 흡사 무공과 같은 모양의 자세. 그리고는 일절 기싸움도 없이, 정문에게 달려드는 자산이다.
- 슈우우욱!
자산의 회초리가 정문의 가슴을 찌른다. 뒤로 땅을 차며 간격을 벌리는 정문. 찌르는 공격에 적절한 대응이 정문의 몸을 타고 나온다.
하지만.
- 휘리리릭!
정문을 따라가는 회초리의 끝이 어느새 곡선으로 바뀌며 정문의 하복부를 노려간다. 천운검의 변화가, 회초리의 끝에서 빛을 발한다.
‘보, 복마검법까지···?’
사질을 혼내는 데 복마검법이라니. 정문은 자신을 벌하고 말겠다는 사숙의 강한 의지를 몸으로 느끼고 있다.
- 휙!
정문의 몸이 자산의 검로와 같은 방향으로 크게 회전한다. 조금은 우스운 자세지만. 어쨌건 이를 피해내는 정문.
- 스스스슥!
그가 자산과 조금 멀어진 곳에 손으로 땅을 짚으며 겨우 자세를 일으킨다.
“쉬이 잡을 거라 여기진 않았느니라!”
“사숙···, 계속 이렇게 나오시면···!”
“흥! 말했지만 내 사질 놈에게···!”
겁먹지 않는다! 그런 말을 자산이 마저 뱉으려던 그때.
- 파파파파팟!
정문의 발이 빠르게 땅을 차며 표표하게 자산을 향해 날아간다.
!!!
‘이, 이놈이 정말로 사숙을···?’
처음부터. 실제로 정문을 벌하거나 때려주려 나선 자산은 아니다. 그저 분위기. 사문 내에도 누군가 자신을 혼낼 사람이 아직은 남아있음을 자산은 정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최근에 높아진 정문의 무명에 자산은 다른 장로들과 같이 기뻐하는 감정이 앞서고 있었다. 허나, 그와 함께. 정문과 공동파에 대한 걱정 역시 함께 몰려왔던 자산.
공동산의 누구나 알듯이 공동은 한 무인의 뛰어남에 의지하는 그런 문파가 아니다. 공동은 한 명의 뛰어남보다는 여럿의 만남을 통해 만들어진 곳.
자산은 너무도 올라간 무명에 정문이 이 정신을 잊진 않을까. 다른 이들이 자신을 어찌할 수 없음을 알고는 더 막무가내로 나가진 않을까, 그런 걱정에 부러 회초리를 든 것이다.
자산이 눈을 크게 뜬다.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
그렇다면.
사질에게 얻어맞더라도!
사문의 무공에 당하더라도!
당당히 눈을 뜨고 당하리라.
그런 생각으로.
하지만.
- 후우웅! 파팟!
하는 소리가 한 번 더 들리더니 이내 자신의 바로 앞에 떨어진 정문이 다시금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이제까지.
자산이 평생을 살며 보았던 어떤 무인들보다 높이 날아오르는 정문. 그리고 공중에서 몸을 튼 정문이 자산의 머리를 넘어 이십 보는 더 멀리 있는 나무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한다.
!!!
이건.
자신이 알던 공동의 행운유수가 아니다.
자산은 그렇게 확신했다.
“계속 이렇게 나오시면! 진심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이놈이!?”
“그리고! 사숙의 마음은 압니다! 절대 자만하지도! 안하무인으로 굴지도 않을 테니, 걱정 마십쇼!”
정문은 그렇게 하늘을 날 듯이 뛰어올라 자산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고 만다.
자산은 정문의 뒤를 더는 쫓지 않는다.
신법도 신법이지만, 정문의 마지막 말이.
그가 정문을 쫓을 이유를 지웠기 때문이다.
- 툭.
그저 그가 한 행동이라곤, 회초리를 바닥에 던지고 턱을 매만지며 밝게 웃는 게 전부였다.
‘알고 있다라···’
어쩌면 자신이 이런 행동을 벌인 것이 불필요한 일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자산을 스친다.
뭐, 그럼 어떤가.
정문의 마음만 바로 잡혀있다면, 아무렇지 않은 자산이다.
도관을 향해 발을 돌리는 자산.
그가 잠시 멈춰 정문이 날아간 곳을 바라본다.
다시 생각해도.
“흠···, 신묘한 신법이로다.”
생전 처음 보는, 그런 신묘한 신법이다.
쫓으려 마음먹었다면, 과연 쫓을 수는 있었을까.
자산은 아마 불가했을 거라, 두어 걸음 뒤였다면 자신을 능히 떨궜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자산의 머리를 스친다.
방금 그 신법은.
분명 공동은 신법은 아니라는 것.
- 턱.
도관을 향하던 그의 발이 멈춘다.
그리고 돌아서서 회초리를 다시 주워드는 자산.
‘사문 외의 무공을 익힌 죄까지···.’
정문이 죄목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