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는 공동을 무시하지 마라-118화 (118/153)

118. 담벼락.

“허어, 참. 바로 본론이 나오니, 말 꺼내기가 곤란스러워지는군.”

당당하게 불만이 있다는 말을 뱉었던 팽가혁이 당황한 듯 볼을 긁어내린다. 안건이라고 해도 조금은 둘러 갈 줄 알았던 말이, 바로 본론으로 직행한 탓이다.

사실 팽가혁은 이번 일에 당문과 남궁이 연관된 걸 꼬투리 잡아 크게 목소리를 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대세가란 이름에 많은 가문이 오갈 때도 굳건히 그 자리를 지켰던 곳이 당문과 남궁, 그리고 팽가였다.

권력 싸움 때문에 팽가가 그렇게 나섰던 것일까.

사실만 말하자면, 그건 아니다.

팽가는 남궁과 당문처럼, 두 가문과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흔히들 말하는 친우. 어린 시절부터 교류하며 가주들 사이에 싹 튼 우정이라는 게 있는 이들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준비하며 팽가혁은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당문도 남궁도 아는 일을 그저 서신으로 접한 그는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섭섭함이 남아있었다.

‘삐졌던 거지···’

황궁에서 일하며 이 세 가문의 관계를 아는 정문은 처음부터 팽가혁이 단단히 삐진 채로 조천문을 넘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가 회의에서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보였을 때도 마찬가지.

그래도 좌세경을 비난하며 개회를 재촉하는 모습에서, 팽가혁이 공과 사는 구별하는 인물이라, 정문은 그렇게 판단을 조금 바꿔봤다.

지금도.

물러서려 하고 있고.

‘나중에 좀 풀어줘야겠군.’

무언가를 하나 만드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뭐···, 우선은 논의부터 합시다. 이 팽모, 할 말은 많으나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천치는 아니외다. 누구처럼.”

팽가혁은 자세를 고쳐 앉고 표정을 달리한다. 무림맹이라는 말은 그도 가볍게 여길, 그런 말은 아니니까.

무림맹이라는 말에 각 문파의 수장들이 크게 반응한 건 아니다. 눈을 크게 뜨는 이도 좌세경뿐이었고, 크흡! 하는 소리를 내는 이도 청성의 장문인뿐이었다.

다들 어느 정도는.

무림맹이라는 안건을 예상한 듯 보였다.

“이 정도 수의 문파를 모을 때···, 무림맹이라는 말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닙니다만···”

“꼭 무림맹에 관한 말이 아니어도 됩니다. 공동의 제안일 뿐이니. 혹 다른 복안이 있으시다면, 자유롭게 들려주시지요.”

자정은 유연한 태도를 보이며 다른 이들의 의견을 구한다. 별다른 대안은 없을 것이다. 정문이 그렇게 확신했으니까. 자정은 제자의 확신을 믿어보려 한다.

“아미타불-. 소림은···, 무림맹 부활에 찬성하는 바입니다. 과거 정마대전과 정사대전에서는 뒤늦은 결집으로 많은 피해를 봤어야 했습니다. 역사에서 만일이라는 말이 가지는 허무함에 대해서는 압니다만, 만일 무림맹이 상설되어 있었다면···”

많은 생명이 살았을 것이다. 공초는 그렇게 불기가 가득한 말을 하고 싶었다.

“화산 역시, 찬성입니다. 다들 무림맹이라는 이름을 꺼리는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예, 그 전란의 상징. 혹여라도 서역의 침략이 없다면, 그런 상징성 역시 지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화산은 기꺼이 찬성하겠습니다.”

화산의 운양 역시 나서며 무림맹의 부활을 반긴다. 정문이 미리 서신을 보내 지지를 구했던 문파들도, 정도 대회의 안건이 무림맹임을 예상한 듯 보였다.

연이어 당문과 남궁까지 무림맹 부활을 찬성하는 말을 이어갔다. 당문은 감숙 다음은 사천이라는 말을 고수했고, 남궁은 창천이 중원이 있어야 떠오른다는 멋들어진 시구를 선사했다.

이제 남은 문파는.

팽가와 무당, 종남과 청성, 그리고 점창과 개방.

개방이 의외로 답이 늦지만, 정문은 그러려니 하며 나머지 문파들에게 작은 미끼를 던져보려 한다.

- 스윽.

손을 드는 정문. 아직 배분이 일대제자이기에 정문은 발언권을 청해 입을 열어야 한다.

“괜찮겠습니까?”

답이 없는 수장들.

이는 허락일 것이라.

“우선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문은 가볍게 인사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저 질문이 하나 있어···”

“편히 해보시게. 아는 것이라면, 다들 답을 해줄 터이니.”

당천정은 정문이 다른 속내가 있음을 알고 얼른 장단에 맞춰 인자한 당문의 가주를 연기한다. 정문이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모를 리는 없으니까.

“오래전 무림맹이라는 것이 있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일이라지요?”

“흠, 자네뿐 아니라 이곳에 모인 우리도 역사로만 접했을 뿐이네. 그 실체를 목격한 무인은 더는 남아 있지 않지.”

“아미타불-. 빈승 역시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모인 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공초 역시 무림맹을 몸으로 겪지는 못했다. 그저 전해지는 말로 듣고, 또 그들의 해산 후에 있었던 이들만을 겪었을 뿐.

정문은 이런 반응에 기꺼워하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일대제자의 모습을 연기한다.

“허면, 무림맹은 모든 문파가 참여해야 하는 곳입니까?”

!!!!!!!!

일순간에 굳어지는 충산의 얼굴.

정문이 던진 미끼를 충산이 제대로 삼킨 것이다.

동시에 올라가는 당천정의 입꼬리.

당천정은 정문이 던진 수가 무엇인지, 아는 모양이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네. 여기서 논의해보고···, 굳이 반대하는 문파들은 정중히 불참을 권유하면 되는 법이니.”

“아미타불-. 뜻이 맞지 않는 이와 굳이 같은 길을 갈 수는 없는 법입니다. 같은 정도를 바라봐도 이를 이루는 것에는 여러 길이 있는 법. 굳이 비난할 필요도. 설득할 필요도 없을 것이지요.”

완벽한 당천정의 도움과 의도하지 않은 공초의 연계까지. 정문이 던진 미끼가 충산의 입을 타고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그렇군요. 의문을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문은 짧게 포권하고 다시금 자리에 몸을 앉혔다. 자신이 던질 미끼는 전부. 던졌다는 그런 표정이다.

정문이 말이 끝나자, 이내 충산의 눈이 깊어진다.

정문과 저들이 주고받은 말은 이곳의 표결이 어떻든. 일정 수만 넘게 참여한다면, 무림맹의 부활이 감행될 수 있음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혹여, 그 반대하는 문파가, 무당이라도 말이다.

‘소림에 화산, 당문에 남궁까지···, 거기에 또 누가 동조할지 알 수가 없구나···’

무당은 세력이 크고 강한 무인이 많은 정도 문파임이 분명하다. 그런 무당을 누가 감히 노리겠나.

하지만, 누가 감히 무당을 노리겠냐는 말 앞에는 이들 자체의 세력이 강함과 함께 또 다른 담벼락이 무당을 지키고 있었는데, 바로 구파일방이라는 거대한 담벼락이다.

아무리 강대한 문파라도 여럿의 연합을 이길 수 없고 티끌은 모아서 태산이 되며 개미는 힘을 합쳐 야수를 이기는 법이다.

그렇기에 정도 문파들이 만든 두 단체가 바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무당이 무림맹이라는 이름 앞에서 고민에 빠질 수 있었던 이유도 이것 덕분이다.

무림맹이 없더라도.

무당은 구파일방에 여전히 속하니까.

몰려드는 사파들을 막아 낼 다른 담벼락이 있으니까.

하지만, 방금 정문은 한마디의 질문으로 무당 앞에 높게 쌓인 구파일방이라는 담벼락을 치워버렸다.

만약 구파일방의 다수가 무림맹으로 넘어간다면.

구파일방이란 말은, 그저 이들을 가리키는 단어, 그 이상의 힘을 내지 못할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충산의 머리.

이미 소림과 화산, 그리고 공동이 무림맹에 찬성했다. 남은 건 종남과 청성, 무당과 점창, 그리고 개방.

개방은 믿지 못한다. 저들은 이번 일에 서신을 옮기는 일을 맡았고, 또 오봉학은 감숙에 머물며 공동과 가깝게 지내는 인물이 아닌가.

그렇다면, 남은 건 종남과 청성, 점창이 전부인데.

“점창 역시 찬성합니다.”

!!

그런 충산의 셈을 단박에 깨트리는 목소리가 구석에서 들려오고 만다. 조용히 존재감 없이 회의를 지켜보던, 점창의 장문인 단목경이 목소리를 낸 것이다.

“저, 점창도 말씀입니까?”

“예, 충산 장문인.”

“점창은 요즘 사문 내 사정이···”

좋지 않다. 점창비사로 오년 전 일대제자들을 모두 잃은 그들은 이제야 그 세를 회복하는 중이다. 그런 이들에게 무림맹에 손을 보탤 여력이 있나, 충산은 그런 말을 묻고 싶었다.

“좋지 않습니다. 물론 아시다시피 말입니다. 허나, 점창은 남만과 면을 맞댄 곳입니다. 서역의 발호가···, 언젠가는 남만으로 바뀔 수도 있는 법이지요. 그때는 공동 역시 점창의 편을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점창은 찬성입니다.”

“물론입니다. 공동은 점창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정문은 종남과 무당이 보라는 듯 자리에서 일어서 점창에게 허리를 숙였다. 이제 대세는. 완전히 기운 것이다.

충산의 고개가 내려간다.

이럴 거면.

진작에 참여를 알려 무림맹 내에서 영향력을 높였어야 한다는 생각이 충산을 스쳤다.

‘실책이로다···’

결국, 충산은 힘없이 손을 들어 찬성을 표했다.

연달아 찬성하는 종남의 위일도. 눈치를 봐도, 충산보다는 조금 느린 위일도다.

“개방도 찬성입니다. 그저 상황을 조금 지켜봤습니다. 표심에 영향이 있을까 해서.”

“현명하신 대처입니다.”

아닌 걸 안다. 그저 서신을 주기 전 미리 언질을 주지 않은 것에 대한 항의임을 정문은 모르지 않았다. 그래도 결국 찬성했으니, 감숙 분타는 그대로 두기로 하는 정문이다.

“뭐, 팽가 역시 찬성이오. 거절할 이유는 없소이다. 대신. 남궁과 당문은 나와 면담을 좀 해야 할 것이오.”

여전히 뾰루퉁한 팽가주. 그럼에도 공사의 구분은 명확하다.

“얼마든지.”

당천정은 웃으며 그런 팽가의 투정을 받아준다.

“처, 청성도 찬성이오!”

마지막으로 청성까지 참여하며 표결이 끝이 난다.

결론은.

만장일치의 무림맹 부활.

백여 년의 역사 속에 실체를 잃었던 무림맹이, 다시금 무림에 나타난 순간이다.

중론이 모아진 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우선은 발언권이, 일에 먼저 찬성한 이들 위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당장에 위험한 건 감숙입니다. 감숙에 무림맹을 두어 저들을 견제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미타불-. 첫 번째 목표는 중원의 조금도 저들에게 내어주지 않는 겁니다. 감숙에 맹의 본부를 둠으로써 저들에게 우리의 의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무림맹의 위치는 감숙.

그것도 난주로, 정해지는 것 같았다.

“허면, 난주가 어떻습니까? 난화무관을 맹의 본부로 개축하는 것이? 서장이 시간을 벌어줬다고는 하나, 건물을 새로 올리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소, 속가를 내어놓겠다는 말씀입니까?”

난화무관을 개축하자는 말에 종남의 장문인이 기겁하며 눈을 크게 뜬다. 속가 하나가 가지는 가치가 문파에게 얼마나 큰 이익인지를 모르는 위일도가 아니다.

“난주는 저들과 우리 중원이 처음으로 충돌한 곳입니다. 상징성으로도 좋고, 위치 또한 나쁘지 않습니다. 무림맹으로 쓰인다고 하면 난화무관의 제자들 역시 불만은 없을 겁니다.”

불만이 없다라. 아마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 않을까. 정문은 그렇게 생각하며 운양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은 곧, 무림맹 본부의 무사가 되는 것이니까.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각 문파의 수장들이 모인 만큼, 한 단체에 필요한 일들이 무엇인지 다들 익히 알고 있는 덕분이다.

“흠, 대략적인 구상은 끝나가는군.”

“자세한 인선과 조직 내부는 중소 문파의 의견 역시 들어야 합니다. 여기서 전부 정하는 건 자칫 독단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옳습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아닌 무림맹으로 거듭나는 이상, 다른 이들의 의중 역시 무시할 수는 없지요.”

무림맹은 단지 거대 문파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끝나는 단체가 아니다. 그들과 함께 여러 속가와 다른 중소 문파 역시 규합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무림맹.

충산이 결국 이들에게 동조한 이유 역시 수많은 문파가, 곧 이 담벼락 밑에 동조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파일방보다 큰, 그런 담벼락에.

“개방이 이를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겠습니다. 자원의 조달 역시, 상단에 지원을 청하지요.”

“흠, 각 문파에서 지원에 참여하고 싶은 상단을 알아봅시다.”

위치도, 조직도, 자금도 이야기가 끝났다. 이제는 정해야 할 것이 하나만 남은 상황.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을 정해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허면, 이제 하나가 남았군요.”

“맹주···, 맹주를 추대해야지요.”

맹주라는 말에 각 문파 수장들의 눈이 빠르게 빛난다.

무림맹주.

당장에 열둘이나 되는 거대 문파를 거느리는 조직의 수장이 되는 인물이다. 거기에 중소 문파까지 규합하면 그 수는 헤아릴 수가 없을 터. 당연히 그에 걸맞은 지도력과 무공, 명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정문은 진작에 이 자리에 올릴 사람을 정해두었다.

당천정을 지긋이 바라보는 정문. 전음을 보내볼까. 그런 생각을 하다 자신과 죽이 잘 맞는 걸 떠올려 그저 눈빛으로 대신한다.

‘이번 일을 진행하고 또 감숙에 연이 깊은 사람! 최근 명성도 날리고 무공도 적당한 사람! 얼른 추천합시다, 당가주!’

지긋한 눈빛이, 당천정을 향했다.

“흐음?”

정문의 눈빛을 잡아내는 당천정. 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손을 들어 올린다.

“이 당모! 한 사람을 추천할까하오.”

- 씨익.

밝게 웃는 그의 입.

정문의 생각을 제대로 알아들은 걸까.

정문은 기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당천정을 바라봤다.

“예, 당가주, 추천하시지요.”

“흠, 이 당모. 무정검을 추천하오!”

!!!!!!

정문의 머리가 일시에 바닥으로 떨어진다. 최근 들어 가장 격하게 반응하는 정문의 몸. 너무도 나가버린 어이가. 정문의 몸을 떨구고 말았다.

‘이 양반이 돌았나?’

당천정을 바라보는 정문의 얼굴에 살벌한 기운이 가득하다.

반대로 당천정은.

잘했지 않냐는 그런 표정을 지을 뿐이다.

“···금스흔 믈씀입느드믄···!”

이를 악 깨물고 감사한 말임을 전하는 정문. 누가 보아도 전혀 감사하지 않은, 그의 태도다.

“후우. 나이가 너무 어립니다. 배분도 낮구요. 누가 이립도 안 된 놈이 이끄는 맹에 참여하려 하겠습니까? 무공을 높이 봐주시는 건 감사합니다만, 아직 배워야 할 점이 많습니다.”

정문은 한숨을 한 번 크게 내쉬고는 얼른 자리를 사양한다. 애초에 정문이 원했던 그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허면, 무정검께서 추천할만한 인물은 없습니까?”

“강호에 이제 발을 들인 제가 무엇을 알겠습니까만···, 그저 감숙이 이번 일에 중하고 또···, 난주와 가까이 있는 인물이 그 자리를 맡는 것이 옳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문은 직접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딱 한 명. 그 자리에 걸맞는 인물을 생각하며 자신의 의견을 뱉었다.

감숙에 연고를 두고 난주와 가까운 인물. 거기에 맹주에 어울리는 무공과 명성까지 갖춘 인물이라면.

아마, 단 한 명밖에 없을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공동의 장문인, 자정에게 향한다. 무정검이라는 걸출한 제자를 키워냈으며 최근 섭혼검을 단박에 제압해 명성을 떨친 고수에게.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무인들. 모두가, 이 생각에 동의하는 그런 모습이다.

“······?”

자정은 자신에게 쏠린 눈빛에 조금 당황하며 주변을 돌아본다. 고개를 끄덕이는 정문. 그가 차분히, 스승에게 전음을 보낸다.

[스승님께서 싫지 않으시다면, 받아주십시오.]

강요는 아니다. 그저 싫지 않다면 받아달라. 판을 깔았으니 선택은 직접 하라는 제자의 말이 스승을 향했다.

이제야 상황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바로잡는 자정. 그가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시더니, 이내 앞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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