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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공동을 무시하지 마라-119화 (119/153)

119. 평화 속에서 피어난 꽃.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맹주님.”

혼원루를 나서는 각 문파의 수장들이 한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다들 이름 꽤나 있는 문파의 수장들이기에 이렇게 예를 차리며 인사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인사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인물은.

공동의 장문인, 자정이었다.

“많이 부족할 겁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화산, 소림, 무당, 종남, 청성, 점창, 당문, 남궁, 개방까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상좌에 이름을 올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들이 모두, 공동의 장문인에게 허리를 숙였다.

그 누구도.

감히 예상하지 못한 결과.

‘크으. 보기 좋다아. 좋아!’

정문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 그림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그래, 뭐.

사실은 제일 편한 사람을 맹주 자리에 앉힌 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당장에 서역과 이런저런 문제로 격돌하게 된다면, 정문이 최전방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어야 함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정문을 가장 자유롭게 풀어주고 또, 그런 정문의 뒷수습을 해줄 수 있겠는가.

자정.

자신의 스승이자, 또 자신을 가장 믿어주는 장문인이 아니고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거기에.

공동의 이름 역시, 이제는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컸음을 전 강호에 알리려는 의도도 있었고.

해서 정문은.

난주 근처에서 묵룡자 일행과 부딪혔을 적, 일부러 증원으로 자정을 불렀다.

섭혼검은 사파 무림 내에서도 제법 이름난 무인.

그런 무인을 자정이 잡게 함으로써.

맹주라는 직위에 어울리는 명성을 자정에게 선물하려던 것이 정문의 의도였다.

결과는 보다시피.

제대로 먹혀들었고.

‘그것도 모르고 자산 사숙은···!’

문득 사숙에게 맞은 회초리가 쓰라린 정문이다.

자정 역시 이런 정문의 의도를 알기에 맹주의 직을 수락했다.

이번 일을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도 자신의 제자였고, 앞으로 있을 서역과의 분쟁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는 이 역시 자신의 제자다.

그런 제자에게.

자정은 뒤에서 든든히 버텨주는.

취병봉이 되어주려 장문직을 수락한 것이다.

“이제는 자주 뵙게 될 겁니다. 다음번 회합은···, 난주겠군요, 맹주님.”

화산은 회의가 끝나는 대로 난주에 있는 속가 개축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저 한 문파의 속가를 여는 것이 아닌 무림맹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본부를 만드는 일인 만큼.

수많은 자원과 인력이 투입되어 최대한 그 공사 기간을 줄이려 노력할 것이다.

초석은 다졌다. 이제는 내실을 채워야 할 때.

개방이 곧 무림맹의 창설 소식과 새로운 맹주에 대한 소식을 강호 전역으로 뿌릴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이 움직일 이들 역시 있을 터.

정도 대회에 참여하지 않은 문파들부터, 곧 참여를 천명할 문파들, 그리고 최대한 눈치를 보며 참여를 간 볼 문파들까지.

한동안 강호에는 무림맹이라는 이름이 계속해서 입을 탈 새로운 바람임을 정문은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파리 같은 놈들도 곧 꼬이겠지.’

무림맹이라는 곳을 좋게 보지 않을 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있을 터. 당장에 서역을 견제하기 위해 결성한 무림맹이라고는 하나, 이런 기치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바로 떠오르는 건 강남 지역과 청해의 사파들. 그들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그리고 중소 정파가 힘을 합쳐 세운 무림맹을 그저 곱게만 바라보진 않을 것이다.

‘서역 이전에 어쩌면 중원부터 정리해야 할 수도 있겠군.’

뭉치지 않는 것이 사파의 특성. 하지만, 무림맹이라는 거대한 계기가. 이들이 뭉치게 될 단초를 줄지도 모른다.

‘흑시창을 한번 들려야겠군.’

이제 무림맹이라는 이름 아래서 활동하게 된다면, 이전처럼 자유롭게 흑시창과 접촉하지 못한다.

무정검이라는 칭호와 함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정문 역시. 무림맹 내에서 한 자리를 맡아야 함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니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래도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우선은 무림맹이 온전히 문을 열고 나서야.

산적한 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손님들을 배웅한 자정과 정문은 몸을 돌려 공동파 무인들이 모인 곳으로 향한다.

정도 대회의 결과와 함께 장문인이 맹주로 추대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문도들에게 전하려는 것이다.

자정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한 번 긁고는 대회에서 있었던 일을 풀어갔다. 모두의 앞에서. 자신의 입으로 맹주임을 밝힌 자정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도, 반응은.

- 와아아아아아아!- 매, 맹주니이이이임!

- 고, 공동이 맹주를!

- 당연한 일이지! 암!

나쁘지 않다.

저마다 다양한 반응들이 자정을 축하한다. 누구는 눈가에 물기를 머금고 있고, 또 다른 누구는 연신 땅을 차며 몸을 방방 뛰며 기쁨을 표출한다.

무림맹의 맹주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는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무림맹에 속한 그 어떤 무인보다. 맹주가 높은 사람이고, 또 인정받는 무인이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공동의 무인들이 기뻐하기에는.

충분했다.

“허어, 매, 맹주라니! 사형께서 맹주라니요!”

“으흠···! 당연한 일이지! 암! 당연하고 말고!”

“태을무극···, 원시천존···! 공동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군요!”

빛이라면, 진작에 발하고 있던 공동이다. 누군가의 등장과 동시에 말이다.

정도 대회가 열린다는 말에야 공동의 명성이 올라갔음을 느꼈던 장로들은, 그 감동이 전부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감동을 맞이했다.

태청궁의 궁주이자, 자정 다음가는 배분의 자명이 그런 사제들을 뒤로 정문을 바라본다.

자신의 사질.

그리고, 사문 내 분쟁의 중심에 있던, 그 대제자에게.

“정문아.”

“예, 사숙.”

“네놈의 작품이더냐?”

“예? 사숙, 무슨 말씀인지···?”

“사형이 먼저 나섰을 리는 없지 않으냐.”

자명은 화가 나서 따져 묻는 모습이 아니다. 그저 따스한 표정을 간직한 채, 정문에게 차분히 말을 물어가는 자명.

“······.”

정문은 감히 그런 물음에 쉬이 답하지 못한다.

“괜찮다. 불손하다고 혼내려 묻는 것이 아니니.”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허나···, 스승님께서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으시니 다른 이들 역시 동의를 한 게 아니겠습니까.”

“순전히 너의 영향력만은 아니라는 뜻이구나.”

“섭혼검을 잡은 일도 있고···, 또 난주와 서녕을 오갈 때 보여주셨던 결단 역시 있지 않습니까? 능히 한 맹을 이끌어 가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정문은 진심을 담아 스승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았다. 섭혼검을 잡은 일은 자신이 꾸민 거니 뭐, 딱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난주에서 서녕으로 곧장 달려왔던 자정의 모습만큼은. 정문도 진심으로 인정하고 있는 근엄한 장문인의 모습이다.

“정문아.”

“예, 사숙.”

자명은 다시금 은근한 목소리로 정문을 부른다. 조금은 낯간지러운, 그런 표정으로.

“···고맙다.”

!!

갑작스럽게 터지는 자명의 감사.

사숙이 사질에게 저런 말을 하는 것이 흔한 일일까.

보통은 ‘잘했다.’ 라거나 ‘고생했다.’ 정도의 말이 전부인 관계에서 ‘고맙다.’라는 말이 나와버리니, 정문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사숙···.”

자명은 자신을 바라보는 정문의 시선을 외면하고 등을 돌린다. 그저 공동이 다른 문파처럼 돌아가길 바랐기에 정문의 손을 들어줬던 것이 자명이었다.

처음 평량에 나설 때도, 또 속가행과 논검회에 향할 때도.

허나, 자신의 바람보다.

정문은 더 큰 영향력을 보여주며 공동의 명성을 여기까지 이끌었다.

이제는.

믿었던 만큼 해냈다는 말도 부족한 상황.

자명은 그저 고맙다는 짧은 말 속에 모든 감정을 담아 짧게 정문에게 전해보았다.

그의 어깨가, 자랑스럽게 떨리고 있었다.

* * *

정도 대회가 끝난 다음 날.

많은 것이 변한 중원 무림의 상황을 나타내듯, 공동의 산문은 서신을 들고 뛰어나가는 무인들의 모습으로 분주하다.

그들의 손에 들린 서신에는, 새로이 정도 무림을 지킬 무림맹의 탄생을 알리는 말과 함께, 신임 맹주, 자정의 이름이 적혀있다.

무인들은 마치 식물이 뿌리를 내리듯 순식간에 강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하나의 성을 건너 다른 무인의 손으로, 또 다른 성으로 건너가 다른 무인의 손으로.

파발과 같이 퍼져나가는 소식에 정도 무림의 모든 문파가 눈앞에 다가온 변화와 함께 새로운 바람을 맞이하는 순간이다.

“서신을 준비해라! 당장에 가입을 알린다! 공동산! 공동산으로 달려가라!”

“옙!”

서둘러 가입을 준비하는 무인들부터.

“흠, 얼마나 가겠나?”

“오래가지 않을 겁니다. 사공이 모이면 배는 산으로 가는 법. 열두 문파의 모임이 평화로이 끝나진 않을 겁니다.”

“서둘러 가입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군?”

“지켜보시지요. 사태를. 평화 속에서 피어난 꽃은 한 철을 넘기지 못하는 법이니.”

“흠.”

조금은 눈치를 보며 참여를 보류하는 곳들까지.

저마다 강호에 새롭게 퍼져가는 파문에 몸을 실을지, 아니며 그런 파문을 멀리서 관망할지, 정문이 예상했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중이다.

그리고.

그런 강호의 풍경을 즐겁게 바라보는 이도 있었으니.

바로, 흑시창의 창두, 조륜이었다.

“흠-. 머리 굴러가는 소리들이 여기까지 들리군.”

손으로 서신을 더듬어가며 각 문파의 움직임을 살피는 그의 얼굴에는 재밌다는 웃음기가 가득하다.

무림맹이라니.

황궁에 있을 적에는 어떻게든 그런 움직임을 막으려 애를 쓰던 사람이 벌이는 짓치고는 재밌지가 아니한가.

“무인의 삶에서는 또 다르시다는 건가. 하하하.”

늘 이곳에서 머물며 돌보겠다는 말은 이미 전한 상황이다. 정체를 알아챈 사실을 모르더라도 충분히 도움은 구할 수 있는 상황.

헌데도 정문은.

영, 흑시창을 찾지 않는 중이다.

이해는 한다.

무림맹이라는 곳이 정파의 연합인 만큼, 정사지간에 놓인 흑시창과 관계를 맺어봤자 무엇이 이득이 되겠나.

또, 저 무정검이라는 분은.

처음 흑시창에서 정보를 받아갈 때와 지금의 위상이 다른 사람이다.

그때는 그저 공동이라는 구파일방 말석의 대제자였다면, 지금은 정도 무림을 움직일 정도의 명성을 자랑하는 고수.

이전과는 확실히.

행동의 양상에 제약이 걸릴 것도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실 분도 아니지만.”

조륜은 들려오는 정문의 소식이 싫지 않은 듯 자꾸만 서신을 더듬으며 읽었던 내용을 반복해서 감상한다. 그 속에 담긴 무정검의 발자취가, 조륜의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려졌다.

그렇게.

조륜이 한참을 무림맹과 관련된 서류들을 읽고 있을 때.

- 다다다다다다.

흑시창의 지부 내에서 잘 들려오지 않는.

다급한 발소리가 조륜의 귓가를 간지럽힌다.

- 스르륵. 탁.

문이 열리고 모습을 나타낸 사람은 흑시창의 감숙 단주, 설매. 정문과 조륜을 연결해줘 단번에 흑시창의 수뇌부로 떠오른 그녀가 제법 급한 표정을 하며 방으로 들어선다.

“설매야. 걸음이 급하구나.”

“급보입니다, 창두!”

“급보?”

“황궁이···, 황궁이 움직였습니다.”

!!!

- 턱!

조륜은 황궁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며 몸을 일으킨다. 백태로 가려진 그의 동공이 떨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보고하라.”

친근한 창두의 모습에서 근엄한 창두의 모습으로 변하는 조륜의 모습. 황궁이라는 말이 나온 이상, 더는 친근하게 있지 못하는 조륜이다.

“수보 조숭을 쫓던 감시조 세 개 조가 동시에 연락 두절. 그 외 금의위 호천대를 쫓던 이들 역시 똑같습니다. 절멸···이 예상됩니다.”

“감시조의 등급은?”

“갑급. 모두 갑급에 조장은 단주급으로 꾸렸습니다.”

“무림맹···, 때문인가?”

“아마 그런 거로 보입니다. 서둘러 인원을 보강하여 후발대를 보내겠습니다.”

감시조가 당했다. 이 말은 정보의 단절의 의미하는 말. 늘 그들의 동향을 살피던 흑시창에게, 정보의 단절은 제법 큰 타격이다.

- 슥.

조륜은 펄럭이는 소매를 휘둘러 설매의 말을 물린다.

“이미 늦었다. 이제 와 후발대를 보낸들···, 빈 곳만 감시하게 될 뿐이야.”

“조숭이···, 황궁을 나선 걸까요? 호천대까지 끌고?”

호천대는 금의위 최고 전력의 일익(一翼)을 담당하는 무력대로, 웬만한 문파의 중진, 그 이상을 하는 고수들로 구성된 무력 단체였다.

“그건 아닐 거다. 호천대를 전부 이끈다면, 눈에 잘 띌 수밖에. 굳이 감시조를 치우고 움직일 정도라면···, 호천대주만을 데리고 나갔을 것 같구나.”

“···혹, 무림맹과 접촉을?”

금의위의 눈은 언제나 무림을 향하고 있다. 정파든 사파든, 그게 새외이든 상관이 없이 말이다. 그런 그들이. 무림맹 부활이라는 소식에 반응하지 않을 리가 없다.

“우선···, 감숙 내에 인원을 충원하거라. 난주와 평량에 특히. 혹여라도 접근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면 절차 없이 바로 보고하고. 조숭의 정보 등급을 을급으로 내린다. 모든 지부에 용모파기를 보내, 그의 행적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끌어모으도록!”

“존명-!”

설매는 얼굴 옆으로 주먹을 당기며 절도있게 말을 남기고 몸을 물렸다. 일이. 생각보다 다급하게 흐르는 것 같다.

‘조숭···, 다시 움직이는가···’

문득, 자신이 읽었던 서신 속 누군가의 말이 조륜의 머리를 스친다.

- 평화 속에서 피어난 꽃은 한 철을 넘기지 못한다.

‘평화라···’

과연 지금을 평화의 시대라 부를 수 있을까.

모르는 이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새외가 준동하는 것을 아는 이들이 아직은 얼마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곧 저들도 알게 될 것이다.

자신들이 평화라 믿었던 그 시기가, 위기라 불리는 다른 이가 몸을 불리고 있던 그런 시기였다는 것을.

전란 속에서 피를 머금고 자란 꽃은 겨울의 모진 비바람도 이겨내는 법이다.

어쩌면.

무림맹의 존속이.

제법 오래갈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 조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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